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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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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배출의 수레바퀴를 멈춰라

배출 총량 규제와 탄소세 부과 등 더 현실적으로 ‘동기부여’하는 방식 논란 중
등록 2009-12-17 16:30 수정 2020-05-03 04:25

지구 문명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기후 대재앙이 엄습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탄소 감축을 위한 국제적 목표와 시기, 방법을 둘러싼 논란은 여전하다. 전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보고서로 평가받는 영국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의 ‘스턴 리뷰’(Stern Review·2006)를 보자. 이 보고서는 현재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의 280ppm 이산화탄소환산량(CO₂e)보다 훨씬 높은 약 430ppm이며, 산업혁명 이후 이미 지구 온도가 0.5℃ 이상 증가했고 앞으로 10∼20년 동안 추가적으로 최소 0.5℃ 정도 더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배출량 증가세가 오늘날의 속도보다 커지지 않더라도 온실가스 농도는 2050년까지 550ppm CO₂e에 이를 것이고, 이 농도에 달하면 지구 온도가 2∼3℃ 이상 상승하게 된다. 현재 지구 기온이 마지막 빙하시대보다 단지 약 5℃ 따뜻할 뿐이란 사실에 비춰볼 때 지구가 얼마나 급속히 뜨거워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모든 국가가 동참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 2007년 7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의 한 발전소 굴뚝에 올라 “STOP CO₂”라고 적힌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 REUTERS/ KACPER PEMPEL

모든 국가가 동참하지 않으면 기후변화 대응은 실효를 거둘 수 없다. 2007년 7월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폴란드 바르샤바 외곽의 한 발전소 굴뚝에 올라 “STOP CO₂”라고 적힌 펼침막을 내걸고 있다. REUTERS/ KACPER PEMPEL

스턴 리뷰가 기후변화에 대한 경제적 측면의 분석이라면,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회의 보고서는 과학계가 발표하는 권위적인 페이퍼다. IPCC 4차 보고서(2007)는 지구의 안녕을 위해 지구촌 모든 국가가 당장 공동 행동에 나서야 한다면서, 앞으로 20년간 10년에 약 0.2℃의 상승률로 온난화가 진행되고 현재 약 368ppm 수준인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21세기에 490∼1260ppm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이 보고서는 지구 평균온도는 1990년에서 2100년 사이에 약 1.4∼5.8℃ 상승하고, 금세기 동안 평균 해수면 수위는 1990년 대비 8∼88cm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모든 나라가 똑같이 참여해야 하는

공포스런 미래를 경고하는 스턴 리뷰나 IPCC 보고서가 미래 공상과학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기후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들 보고서가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른바 미래 기후변화 진행의 불확실성이다. 미래에 새로운 대안이 나와 현재 투입해야 할 비용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좀더 빨리 탄소 배출 문제를 예방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주장이다. 온실가스 저감 기술 혁신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이 지구를 구할 것이라고 희망을 걸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가능성 역시 ‘동기부여’에 달려 있다. 배출량을 엄격히 규제하는 국제적인 행동과 규범이 존재하지 않는 한 저탄소 배출 기술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이 빠르게 확산되기는 어렵다.

온실가스는 특정 국가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즉 다른 국가들이 동참하지 않는 한, 어떤 국가가 값비싼 고통을 치르면서 탄소 배출을 크게 줄여도 그 고통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미국은 교토의정서의 배출 제한에서 개발도상국들이 제외됐다는 점을 자신의 교토의정서 불참을 합리화하는 구실로 삼고 있는 반면, 중국·인도 등은 “미국·유럽 등은 지난 100년 넘게 환경 비용을 치르지 않고 거의 공짜로 산업대국이 됐는데, 왜 우리한테는 환경 비용을 지불하라고 요구하느냐”며 반발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해법은 지구촌 모든 국가가 동참하는, 효율적이고 현실적인 전 기후변화 대응 규범을 구축하는 일이다. 그럼 어떤 방식들이 있을까?

크게 보면 각국의 온실가스 의무 감축량과 배출 총량을 설정한 뒤 이 목표를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교토의정서가 추구하는 방법이다. 각국은 저탄소 배출 기술 능력을 향상시키든, 아예 탄소 배출이 수반되는 자국 내 생산을 줄이든 어떤 방법으로든 이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교토의정서는 이를 위한 경제적 수단으로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협정에 포함하고 있다. 정책당국이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설정하고 이에 상당하는 탄소배출권을 산업부문별로 혹은 기업별로 할당하면 기업들이 할당량의 잉여분 또는 부족분을 서로 거래하는 것이다. 즉 배출권을 다른 기업 등에서 구입하면 자기 기업에 할당된 한도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탄소배출량을 줄일수록 배출권 잉여분이 발생하고 이를 돈을 받고 다른 기업에 팔 수 있게 된다.

1997년 일본에서 교토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리는 동안 기자회견을 하는 미국 하원의원들. 미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25% 이상을 배출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가장 소극적이다. AP연합

1997년 일본에서 교토 기후변화협약 회의가 열리는 동안 기자회견을 하는 미국 하원의원들. 미국은 전세계 이산화탄소의 25% 이상을 배출하면서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가장 소극적이다. AP연합

탄소배출권 시장, 반도체의 3분의 2 육박

국가별로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선진국은 개도국·후진국에 온실가스 저감 설비를 구축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개도국·후진국에서 줄어든 온실가스 분량만큼 탄소배출권을 획득하게 된다. 기업들은 청정개발체제(CDM)나 조림사업 등을 통해 추가적인 탄소배출권을 획득해 거래할 수도 있는데, 시장에서 거래되는 탄소배출권의 가격과 온실가스 저감 시설을 자체 도입하는 데 따른 비용을 서로 비교해 어느 쪽을 선택할지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탄소배출권 시장은 현재 유럽기후거래소 등 전세계 10여 개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데, 2008년 현재 전세계 탄소배출권 시장은 1260억달러 수준(2010년 전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90억달러)에 이른다. 유럽연합은 2005년부터 전력·정유·철강·제지 등 1만2천여 사업장을 대상으로 역내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고, 영국은 2002년부터 1천여 기업이 영국 내 기후변화협정에 참여해 배출권을 거래하고 있다. 일본은 자발적 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2006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시행하고 있다.

배출량 감축을 넘어 탄소를 흡수하는 나무를 심어 이산화탄소를 제거·포획하는 방법도 있다. 숲 조성(탄소 흡수원)을 하는 국가에 탄소배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연동된다. 파푸아뉴기니 등 일부 개도국은 ‘열대우림연합’을 설립해 브라질·인도네시아 등 열대우림지에서 벌채를 줄일 경우 이에 대해 탄소배출권을 부여하자는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숲의 나무를 잘라내지 않고 유지하는 것도 보상을 해달라는 것이다. 이 열대우림 구상은 특히 지구적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노력에 개도국이 처음으로 동참 의지를 표출한 것이라서 더욱 주목된다.

그러나 배출권거래제는 탄소 배출량 의무 감축 한도를 배분하는 문제가 먼저 전제돼야 한다. 미국과 중국 등은 각국의 배출량 한도 설정과 관련해 국내총생산(GDP) 1달러당 탄소 배출량을 정할지, 1인당 탄소 배출량을 정할지 등을 놓고 대립하고 있고, 개도국들은 세계 최대 오염 배출국인 미국을 돕기 위해 자신들의 소득과 성장을 희생할 이유가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배출권거래제 아래서 한 국가의 탄소 배출 수준을 높여주는 건 그 나라에 돈을 주는 것과 같기 때문에 목표 수준을 설정하는 건 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어느 국가도 먼저 위험을 떠안지 않으려 하는 동안 지구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탄소 배출의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릴 수 있는 새로운 방법으로 부각되는 것이 ‘탄소세’라는 국제 공동세 부과다. 유럽연합은 온실가스 의무 감축에 참여하지 않는 국가에서 수입되는 상품에 대해 탄소관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탄소세는 기업과 소비자 모두에게 자신의 환경오염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써 그들의 행동을 바꾸도록 자극하는 대안적 시스템이다. 그러면 각 기업과 가정은 세금 징수를 피하기 위해 탄소 배출 에너지 사용을 줄이게 될 것이다. 즉 전세계 모든 국가에 제품 생산에 수반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에 기초한 공동세를 부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세금은 높게 책정돼야 한다. 이와 관련해 세금 부과는 국제기준을 정하되 세율 등은 각국별로 정할 수도 있다. 단 전세계 모든 국가가 이 제도 도입에 동참해야 한다. 이 제도 도입을 주창하고 나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 시스템의 장점은 국가별로 감축 목표 수준을 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며 “나쁜 것(오염)에 대한 공동세가 도입되면 각국은 세수입을 거둬들이고, 이 수입으로 국가 경제성장을 촉진하거나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이를 분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임승차국에 무역제재 가하는 방식도

공동세 외에 무역제재를 동원하는 방식도 있다. 예컨대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불참하면서 미국 기업들은 탄소 배출 감축 의무로부터 벗어나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 미국에서 철강을 생산하면서 철강 1t당 2t의 탄소를 배출하고 탄소배출권 가격이 t당 30달러(2006년 유럽 탄소배출권거래소 기준가격)라면 미국 철강기업은 철강 1t당 60달러 상당의 보조금을 받고 있는 격인데, 이때 다른 국가들이 미국산 수입 철강에 t당 60달러의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식이다. 이는 지구환경을 약탈하는 기업들을 탄소 배출 감축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경제적 인센티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코펜하겐 회담에서도 배출권 거래와 전 지구적 탄소공동세 부과, 국제 무역제재 방식 가운데 어떤 탄소 감축 체제가 더 현실적이고 비용효율적인지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온실가스의 사회적 비용은
1t당 25∼50달러 추산


교토의정서에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로 규정하고 있는 건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6가지다. ‘탄소’(carbon)는 6가지를 통틀어 부르는 용어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2006 유엔 기후변화정부간패널(IPCC) 온실가스 인벤토리 가이드라인’이라는 분야별 온실가스 배출량 목록 작성지침을 두고 있다. 협약 당사국은 이를 토대로 자국의 탄소 배출량을 산정해 국가보고서 형태로 유엔기후변화협약총회에 제출해야 한다.
국내 탄소 배출량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산정하는데, 이때 산림 및 토지 이용 분야는 ‘탄소 흡수원’으로 작용해 탄소 배출량을 저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2억9800만t, 1995년 4억5300만t, 2000년 5억3100만t, 2006년 5억9900만t인데, 삼림 등 흡수원을 고려한 순배출량은 2006년 5억6800만t에 이른다. 온실가스별 배출량은 2006년 기준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5억4230만t, 이산화탄소 흡수량 -4130만t, 메탄 120만t, 아산화질소 5만t, 수소불화탄소 589만t, 과불화탄소 287만t, 육불화황 1781만t이다.
탄소의 사회적 비용(탄소 배출에 따른 사회·경제적 피해액)은 얼마나 될까?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전세계 여러 연구자들의 추정치(230여 개)를 한데 모아 정리해본 결과 탄소의 사회적 비용은 탄소 1t당 25∼50달러(1995년 기준)가 적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탄소배출권 시장이 제한적으로 형성된 유럽연합에서 배출권은 탄소 1t당 78달러(2009년 1월)에 거래되고, 미국 일부 에너지 기업에서는 탄소 1t당 15달러를 적용해 투자를 결정하고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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