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회장 선임에 정권 실세가 개입했다는 미스터리극의 핵심 조연은 이명박 대통령의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이었다. 우제창 민주당 의원이 폭로한 내용을 보면, 올해 초 천 회장은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대통령이 정준양으로 결정했다”며 사퇴를 종용했다. 박 차장은 그의 말마따나 ‘자연인’ 신분이던 지난 연말과 올해 초 포스코 회장 선임과 관련한 핵심 인사들을 두루 만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왜 인사 개입에 나섰을까? 포스코와는 어떤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혹 이권을 주고받는 관계는 아닐까?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철강공단의 전경. 포항철강공단에 입주한 포스코와 외주업체들은 대선으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 교체 등으로 몸살을 치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90/396/imgdb/resize/2009/0706/03386819_20090706.jpg)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철강공단의 전경. 포항철강공단에 입주한 포스코와 외주업체들은 대선으로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경영진 교체 등으로 몸살을 치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자료
우선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포스코의 관계를 좇다 보면 한 가지 의혹과 맞닥뜨리게 된다. 30억~40억원대의 포스코 관련 전사적 자원관리(ERP)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따냈다는 것이다. 더구나 세중나모 쪽에서 구축한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실품이란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05년 11월16일 외주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한 ‘외주사 ERP 구축 지원 프로젝트’의 공급업체로 세중나모인터랙티브를 단독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ERP는 기업의 회계·세무와 인사·재고·노무 관리 등을 통합해주는 시스템인데, 특별한 기술과 장비 없이 포스코 현장 내에서 청소·정비 등의 업무를 맡는 외주업체에게도 이 시스템을 구축시켜 경영투명성을 높인다는 취지였다.
세중나모인터랙티브는 홈페이지 제작 등 웹에디터 업계의 유명 기업이었지만, ERP 분야에선 초보였다. 불과 1년여 전에 ‘케피스’라는 벤처기업으로부터 ERP 사업부문을 인수하고, 관련 인력 일부를 스카우트한 상태였다. 당연히 포스코 계약 건은 세중나모인터랙티브가 따낸 첫 번째 대규모 ERP 프로젝트였다. 연간 50억원 수준이던 매출도 단번에 갑절로 늘었다.
당시 세중나모인터랙티브는 국내 최대 정보기술(IT) 기업인 삼성SDS와 2004년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중소기업 IT화 지원사업’ 수주 1위를 기록한 더존다스 등 3개사를 제치고 이 계약을 따냈다. 경력이나 실적 면에서 앞선 ‘골리앗’들을 제압한 셈이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ERP 업체들에 공문을 보낸 뒤 제안서를 받았고, 납품실적·회사규모·정비능력 등을 심사해 세중을 선정했다”면서 “포스코 외주업체 중 한 곳인 포우산업에 2005년 초 납품한 전력도 강점이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의식해 어쩔 수 없이 사용”하지만 포스코가 제안서를 받았다고 주장한 업체들은 제안서를 낸 일이 없다고 밝혔다. 한 IT 대기업 관계자는 “당시 포스코 외주업체 프로젝트 소문을 듣고 내부 검토를 하긴 했지만, 입찰 제안서를 보낸 적은 없다”면서 “나중에 세중나모가 선정됐다는 소리를 듣고 허탈했던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세중나모인터랙티브의 경쟁대상으로 거론된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당시 포스코로부터 제안서를 보내달라는 통보를 받기는 했지만, 조건이 안 맞는다는 생각에 제안서를 보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ERP업계 관계자는 “포스코가 민영화된 공기업인 까닭에 당연히 입찰공고를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아예 그런 과정 자체가 없었다”면서 “처음부터 세중나모로 내정돼 있던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세중나모는 ‘유령’들과 경쟁했던 것일까. 이에 대해 당시 업체 선정 업무를 담당한 포스코 관계자는 “분명히 업체들의 사업 제안서를 받았으며, 일부 ERP 업체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세중나모인터랙티브가 ERP 구축에 들어간 지 올해로 4년째가 됐다. 아무리 까다로운 구축 작업도 6개월 정도면 완료된다는 게 ERP 업계의 상식이다. 그러나 포스코 외주업체 상당수는 여전히 “프로그램 속도가 너무 느리고 오류가 많다”는 불만을 제기한다. 세중나모가 외주업체 중 최초로 프로그램을 공급했다는 포우산업마저도 최근까지 ERP 중 기본인 회계 시스템을 2000년대 초반부터 써왔던 다른 업체의 프로그램으로 돌리고 있다.
포스코의 눈길이 두려워 ‘이중 비용’을 들이는 사례도 있다. 한 외주사 관계자는 “포스코가 ERP 사용 여부를 매년 외주사 평가에 반영하기 때문에 천 회장네 프로그램을 쓰는 척하면서, 기존 회계나 급여관리 프로그램을 병행해 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석연찮은 과정을 거쳐 선정된 천신일 회장 회사의 제품이 외주사들의 경영 부담만 키운 것이다.
지난해 초 세중나모 쪽에서 “프로그램 유지·보수비를 받겠다”고 통보하자, 외주업체 사장들이 “개발 완료도 안 됐는데 무슨 염치냐”며 집단 반발하기도 했다. 포스코 노무외주실 관계자도 “일부 업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우리도 골치가 아프다”고 말했다.
현재 세중나모 ERP 사업부문을 담당하는 세중IS 관계자는 “ERP가 돌아가려면 자재 입고부터 생산 및 출고까지 업무 과정을 표준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일부 협력사들의 문제는 이들이 업무 표준화를 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세중나모에서 ERP 부문이 분사된 세중IS의 서울 서초동 기술연구소 모습. 포스코 외주사들은 세중이 공급한 ERP 프로그램이 수년째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90/393/imgdb/resize/2009/0706/03385912_20090706.jpg)
세중나모에서 ERP 부문이 분사된 세중IS의 서울 서초동 기술연구소 모습. 포스코 외주사들은 세중이 공급한 ERP 프로그램이 수년째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박영준 국무차장과 포스코의 관계에서도 ‘이권’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박 차장과 친분이 있는 포스코 외주·하청 업체 사장들 중 정권 교체 뒤 포스코와의 거래 실적이 늘어난 이들이 많은 것이다.
이상득 의원 지역구인 경북 포항 남구의 한나라당 중앙위원 직함을 가진 이동조 사장이 운영하는 제이엔테크가 대표적 사례다. 기계설비 공사업체인 제이엔테크는 2006년과 2007년 매출이 각각 25억원과 27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 매출이 100억원으로 4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이전엔 포철산기, 포항강판 등 포스코 소규모 자회사들의 정비성 공사만 시행했는데, 지난해 포스코건설의 하청업체로 공식 등록되면서 대규모 설비공사를 따낸 것이다. 한 외주업체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포스코 임원들이 스스럼없이 ‘이동조 사장은 관리에 들어갔다’는 말들을 하곤 했다”고 전했다. 포스코 임원들이 이 사장을 특별히 배려해주고 있다는 의미다.
급격한 매출 상승이 특혜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동조 사장은 “수년 전부터 중국 업체와 합작해 (철강재 생산 관련) 설비를 설계·생산하고 있는데, 지난해 포스코에 대형 공급 물량이 생겨 매출이 단기 급등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병재 전 자유총연맹 포항시지부장도 특혜 의혹을 받고 있다. 박씨 부부는 포스코건설의 하청을 받아 전기설비 공사를 하는 범한산업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 회사는 지난해 103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6년(59억원)과 2007년(46억원) 수치와 비교하면 갑절이 된 셈이다. 범한산업 관계자는 “지난해 매출 성장은 60억원대 전기강판 공사 입찰을 따냈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그동안 역량을 쌓아왔기 때문에 기회가 닿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박 사장은 지난 2005년 포스코가 군소 외주업체 20여 곳을 통폐합해 5개사로 재편할 때, ‘피앤피’라는 제철소 내 전기배선 공사업체의 경영권도 확보했다. 같은 시기 이상득 의원의 특별보좌역이자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 경북선대위 기획정세분석본부장을 지낸 김순견씨도 포철산기 밑 협력사 4곳을 묶어 만든 대광산기의 오너가 됐다. 김 사장은 당시 외주업체 선정 과정에 대해 “매출, 고용규모, 안전사고 건수 등 여러 조건들을 따져 경쟁업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포항에서 만난 포스코 및 외주업체 관계자들은 “포스코 하청권을 따내는 데는 상당한 정치적 수완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포스코의 핵심 관계자는 “포항 지역에서 이동조·박병재·김순견 사장 등 박영준 차장과 친분이 있는 포스코 외주·하청 업체 사람들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메신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동조 사장은 “박 차장과 친하긴 하지만 포항에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 정치인들도 직책 맡아 고액 연봉정권 실세 인사들과 포스코의 관계가 어떤 그림이 될지는, 포스코가 포항 지역 정치인들과 ‘사업’을 통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모습에 비춰봐도 짐작할 수 있다.
최영만 포항시의회 의장은 포스코로부터 열연·냉연 코일을 구입한 뒤 일정 크기로 절단해 파는 ‘넥스틸’의 회장 명함을 갖고 있다. 최 의장은 현재 넥스틸의 지분이 전무하고 출근도 하지 않지만, 넥스틸로부터 연봉 6천여만원을 받는다. 이상구 포항시의회 부의장은 포스코 자회사인 포스렉의 ‘사장 보좌역’으로 수년째 2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챙기고 있다. 포항시의회의 한명희 의원은 포항스틸러스축구단의 ‘사장 보좌역’으로 연간 1억5천만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 의장은 “넥스틸 창업에 간여한 멤버이기 때문에, 현재 직함이나 월급이 문제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급히 끊었다. 이상구 부의장과 한명희 의원에게도 수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포항경실련의 이재형 사무국장은 “지역 정치인들이 포스코 납품권을 챙기거나 하청업체 임원직을 차지하는 것은 포스코가 이들을 관리하기 때문”이라며 “정권이 교체된 만큼 지역 정치인과 토호들의 포스코에 대한 요구 수준도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초 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의 포스코 담당 기자들에게는 회장 후보의 비위 사실을 제보하는 각종 투서들이 날아들었다. 투서는 누가 보낸 것일까? 전직 포스코 계열사 사장과 대화를 나누며 흥미로운 분석을 들었다. “투서들의 등장은 포스코 경영권 교체기에 늘 나타나는 현상인데, 이 중 일부는 포스코 외주업체 쪽에서 자료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포스코 회장 후보들 간의 각축전 막후에선 자기와 친분 있는 사람을 회장으로 밀려는 외주업체 사장들의 세력다툼도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만큼 포스코 이권 구조의 핵심이 하청이나 납품권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올여름부터 이권다툼 본격화할 것”포항에서 만난 포스코 및 외주업체 관계자들은 “포스코의 떡고물을 떼어먹으려는 사람들의 아귀다툼이 올여름부터 본격화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외주업체 사장은 “지난해에는 참여정부 때 취임한 이구택 회장이 있었고, 촛불시위로 여권이 위축돼 있었기 때문에 포스코 이권을 둘러싼 정치권의 개입이 본격화되지 못했다”면서 “그러나 회장이 바뀐 올여름부터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당장 7월1일에는 포스코 현장에서 청소·정비·단순조업 업무를 맡는 외주업체들의 재계약이 시작된다. 포항 현지에서는 8·9월부터 운송·물류 업체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는 이들이 많았다. 운송·물류 사업이나 철강제품 대리점 쪽은 개별 업체의 매출 단위가 1천억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익명을 요청한 포스코 사외이사는 “정치권이 재벌들로부터 ‘차떼기’ 정치자금을 챙기기 힘들어진 만큼, 대기업과 거래하는 중견·중소 기업인들의 이권을 챙겨주고 ‘실탄’을 지원받는 거래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면서 “현 정부가 포스코 회장 선임에 무리하게 적극 개입한 것도 결국 ‘돈줄’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대기업과 하청업체들 사이의 거래는 최소한의 정보조차도 제공되지 않는, 사회적 감시의 사각지대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일정 규모 이상 대기업은 하청업체들과 거래한 기본적인 내용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해 외부의 평가와 감시가 이뤄지도록 한다면 권력의 농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포항=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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