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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원자’가 되어 나가자

30여 의원이 밤을 새워서 지켜낸 ‘야성’… 당의 전술적 작전은 ‘코드명: 좌로 한 클릭’
등록 2009-06-19 10:41 수정 2020-05-03 04:25

6월10일 저녁 7시35분께, 서울광장에 무대가 마련됐다. 가장 먼저 할머니 한 분이 올라왔다.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씨였다.
“어젯밤 비가 많이 왔죠. 오늘 이 자리에 우리가 모일 수 있을지 상당히 마음이 조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면 된다는 것을 오늘 또 한 번 배웠습니다. 어젯밤에 야당 의원님들이 비닐을 입고 비를 맞으며 천막을 치고 여기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면 됩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영길 최고위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30여 명이 6월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6월 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 불허 방침에 맞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영길 최고위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30여 명이 6월9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정부의 ‘6월 항쟁 계승 및 민주회복 범국민대회’ 불허 방침에 맞서 연좌 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의원총회 “33인의 의열단이 되자”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15만의 박수로. 무대의 바로 앞 첫 줄에는 야당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 대표가 무대 위에 올랐다. “어젯밤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이 서울광장을 지키기 위해 애쓰신 민주당 의원들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노 대표가 민주당을 공개적으로 칭찬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정확히 1년 만이었다. 2008년 6월10일, 서울광장에는 50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그때도 민주당은 광장에 있었다. 광장에 모인 이들 중 하나였다. 참가자였다. 2009년 6월10일, 서울광장에는 15만 명의 시민들이 모였다. 이날 범국민대회의 주최자는 5개 야당과 500여 시민·사회·노동단체, 4대 종단(불교·천주교·기독교·원불교)이었다. 주인공은 민주당이었다.

6월9일 늦은 오후부터 비가 내렸다.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 중앙에 천막을 치고 앉은 민주당 의원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밤이 되면서 비바람으로 몰아쳤다. 광야였다. 천막 앞으로 비가 들이쳤다. 천막 틈 사이로 바람이 몰아쳤다. 의원들은 담요로 몸을 가리고 누웠다. 남대문시장에서 급히 사온 담요였다. 불편하다는 이는 없었다. 이날 밤을 새운 의원들은 이강래 원내대표, 이미경 사무총장, 우윤근 원내수석부대표, 이종걸·강기정·서갑원 의원 등 30여 명이었다. 이날 의원총회에서 “33인의 의열단이 되자”고 외쳤던 최영희 의원도, 역시 의원총회에서 “국민과 함께 처절한 투쟁을 해야 한다”고 했던 김재균 의원도 함께 있었다. 같이 밤을 새운 김재윤 의원은 “광장은 민주주의다. 광장을 지켜야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원들은 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6월10일에 서울광장은 시민들에게 개방될 수 있었다. 민주당이 서울광장이라는 들을 ‘재야’(在野)에서 지킨 덕분이었다.

민주당이 바뀌고 있다. 야성 회복과 함께 집권에 대한 꿈과 비전도 되찾았다. 야성은 이미 지난 1월의 본회의장 점거 때 대부분의 구성원들 사이에 체득됐다.

“민주당만의 행사가 아니어서 큰 의미”

전략적 목표는 ‘2012년 민주개혁 정권 수립’이다. 민주개혁 정권 수립을 위한 첫 단계는 민주개혁 진영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다. 정세균 대표는 6월10일 서울광장에서 “민주당만의 행사도, 시민사회만의 행사도 아닌 민주개혁 진영 전체가 하나 됐다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모이면 다시 2012년 민주개혁 정권도 세울 수 있다”고 외쳤다. 물론, 중심에 민주당이 서겠다는 생각이다.

안민석 의원은 “민주당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그리고 시민·사회·노동단체까지 끌어안는, 2012년 집권을 향한 대연대의 틀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우리가 먼저 제안해서 만드는 것만이 민주당이 정국의 중심에 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최근 민주당 원내외 인사들과 만나 “새로운 민주연합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연대와 연합은 의지와 뜻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행동과 실천이 필요하다. 전술적인 작전은 ‘코드명: 좌로 한 클릭’이다.

강기정 의원은 “이제 민주당에서도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필요가 있다”며 “진보적인 생각부터 중도보수적인 생각까지 동시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폭넓은 연대는 좌우로의 확산을 전제로 한다. 민주당이 그간 ‘오른쪽’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온 만큼, 이제는 ‘왼쪽’을 확대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강기정 의원은 “최재성·조정식·김상희 의원 등 10명과 가칭 ‘개혁모임’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들을 중심으로 진보적인 정책 개발과 활동을 해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386세대들이 대다수인 수도권의 민주당 원외지구당 위원장들도 6월부터 정기적인 모임을 준비 중이다. 오영식 전 의원은 “그간 386 원외지구당 위원장들이 지역 활동에 집중해왔던 것이 사실”이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계기로 정기적으로 모여 앞으로의 과제들에 대해 뜻을 모아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의 ‘좌로 한 클릭’은 이미 실천되고 있다. 첫 행보는 용산 참사 피해자 손잡기였다. 정세균 대표는 6월4일 의원 워크숍에서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4~5개월 돼가는데 아직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뗐다. 그리고 사흘 뒤인 6월7일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았다. 민주당은 그간 그들과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듯한 태도를 취했던 것이 사실이다.

조정식 의원은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과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과 토론회에서 이야기를 해보니 ‘큰 틀에서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며 “특히 민주당 지도부가 용산 참사 피해자들을 찾아간 것을 진보 정당들이 높게 평가했다. 앞으로의 연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쌍용자동차 현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재성 의원은 “의원들이 대중이, 민중이 고통받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며 “개혁모임 차원에서 용산 참사 현장도 가고, 쌍용차 노조 지원도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또한 대구·경북 등 민주당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의원들이 순회하면서 시국토론회도 열 예정”이라며 “온라인을 통한 시국토론회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용산·쌍용 다음은 ‘무브온’

온라인은 이후 민주당이 주력할 공간이기도 하다. 강기정 의원은 “당 미디어국을 중심으로 한국판 ‘무브온’을 만드는 계획 수립이 끝났고, 최근 당 지도부에도 공식적으로 보고됐다”며 “미국의 무브온처럼 자발적인 대중과 민주당이 함께 만들어가는 구조를 참고해 만들어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무브온(moveon.org)은 ‘다음 아고라’의 미국판이다(물론, 지금의 아고라가 아닌 2008년의 아고라를 생각해야 한다). 토론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한 청원과 정치 선전을 위한 모금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진다. 실리콘밸리 기업인 두 명의 제안으로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회원 320만 명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온라인 진보운동 단체로 거듭났다. 미국 민주당 좌파들과 연계해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간 ‘액션플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강기정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슬퍼하며 분향소를 찾은 500만 명의 열기와 20% 중반대로 돌아온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통적인 지지자들이 다시 민주당을 찾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며 “이들의 직접적인 선거 참여를 이끌어내려면 이들이 현실에서 참여할 수 있는 활동과 공간을 민주당에서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재선 의원은 “내부적인 동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조·중·동 절독운동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뉴민주당 플랜 2.0’에 거는 기대

민주당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뉴민주당 플랜’의 수정이다. 뉴민주당 플랜의 초안을 맡았던 오영식 전 의원은 “뉴민주당 플랜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경제와 평화 문제였다”며 “여기에 ‘민주와 반민주’, 그리고 개혁의 문제를 넣어 새롭게 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전 의원은 “뉴민주당 플랜을 총괄하는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며 “뉴민주당 플랜이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된 상황을 반영해 바꿔갈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뉴민주당 플랜 공식 발표를 미뤄왔다. 그는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면 10월 재보선 전에는 ‘뉴민주당 플랜 2.0’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영식 전 의원은 “4·29 재보선 결과에 대해 당 지도부는 수도권에서의 승리라고 평가했고, 이를 위해 중도적인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실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호남에서 진보 정당 후보들이 모두 승리한 것”이라며 “이는 유권자들이 민주당이 개혁적인 색채와 정책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대연대’를 이야기하기 전에 풀어야 할 것이 있다. 지난 대선과 총선, 그리고 재·보궐 선거 과정에서 탈당한 인사들의 복당이다. ‘내부 통합’이다. 이해찬 전 총리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친노’계와 정동영 의원과 신건 의원 등 ‘정동영계’의 복귀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이 문제에 대해 당 지도부와 중진, 원내외 인사들이 만나 논의하는 자리가 최근 있었다”며 “중진들은 모두 ‘꼼꼼한 사전 준비를 통해 신중하게 접근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그는 “민주당을 떠난 이들이 다시 모이는 시점은 내년 초가 적절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다들 감정의 골이 깊어 하루이틀에 될 일은 아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시민·정동영을 어찌할 것인가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유시민 전 장관의 경우 현재의 민주당을 ‘호남에 기반한 기득권 정당’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민주당 틀로는 절대 결합할 수 없다는 생각인 것으로 안다”며 “만약 단기적으로 힘들다면 대연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결합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연대를 위한 장정은 시작됐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감정의 골은 깊고, 차이의 강은 넓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의 감정과 차이에 대면 ‘미미’할 수도 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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