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21일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서울 석관동 캠퍼스의 총장실에서 황지우 총장을 만났다. 우파 문화단체, 우파 언론 그리고 문화부가 거론하는 한예종의 과오를 물었다. 총장직을 내놓은 뒤 다른 교수들과 함께 학교를 떠나라는 ‘그들의’ 기소는 정당한가? 이 펼친 2시간 동안의 ‘심문조서’가 아래에 있다.
- 통섭 교육이 뭔가.
= 모든 장르를 융합하는 것이다. 세계적 트렌드다. 4년 중기 사업으로 세웠다. 정부 예산을 받은 국책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2008년 한 해만 진행했고, 지난해 말 국회에서 올해 예산 전액 삭감을 결정했다.
- 첫해 사업이 부실했던 것 아닌가.= (사업 첫해인) 지난해 3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학교를 방문했다. 주요 사업을 보고하는데 “통섭 같은 거 하지 말라”고 했다. 한예종의 본디 설립 취지가 실기 중심이니, 하던 거 계속 하고 새로 (일을) 벌이지는 말라는 취지였다. 이후 장관을 여러 차례 만났다. “대통령은 문화산업에서 신성장동력을 발견하겠다 했고, 문화부 정책 방향도 콘텐츠 융·복합이니, 한예종의 통섭 교육은 이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여러 차례 설명했다.
- 문화부 국장이 지난 3월에 찾아와 거취를 물었다고 (황 총장이 5월19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런데 문화부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나.
= 학기 초라고 기억했기 때문에 3월 초라고 했던 것인데…. 내가 다시 업무일지를 보니 1월8일 오후 1시30분이었다(보여준 일지에는 ‘문화부 예술국장 내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평소 친하고 존경하는 분이다. 학교 현황에 대해 가볍게 대화하다가 말미에 “총장 거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더라. 퇴진하라 마라 직접 언급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의 맥락에서 퇴진을 원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1년간 그런 흐름도 있었고….
- 자질이 안 되는 사람들이 한예종에 들어왔다는 지적이 있다.
= 몇몇 교수들의 전공 불일치에 대한 지적이 감사 최종 처분 요구서에 있다. 그런데 이건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생물학 전공한 사람을 왜 교수로 뽑느냐고 묻는 것처럼 우문이다. 잣대도 일관적이지 않다. 다른 전공으로 교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걸 전부 지적하지도 않았다. 이창동 영상원 교수는 국어과 나왔다. 전직 장관이라 봐준 건가. 경영학과·화학과 나와서 소설가나 사진가가 되어 학교에 들어온 경우도 있다. 감사 처분 요구서에는 ‘서사창작과’ 폐지도 있다. 내가 총장직에서 물러나면 학과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갈 학과를 없애라는 것이니, 내 경우에는….
- 진중권 객원교수는 1년 계약에 한 학기만 강의하고 두 번째 학기 몫인 1700여만원을 그냥 받아갔다던데.
= 내가 강의하지 말라고 했다. (감정에 겨운 듯 얼굴이 약간 구겨졌다.) 진 교수의 전문성을 높이 평가해 통섭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객원교수로 1년간 채용했다. 진 교수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6월 촛불 때 진 교수의 ‘활동’이 있었다. 정부가 진 교수를 껄끄러워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당시 나는 통섭 관련 예산을 확보하려고 구걸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내가 결정했다. 2학기 강의는 하지 말고, 통섭 프로젝트만 집중해달라고 했다. 객원교수에겐 강의만이 아니라 연구기획 역할도 있다. 그가 받은 돈은 정당하다.
- 감사 처분을 수용할 것인가.= 이번 감사는 일반 대학에도 큰 파장을 줄 것이다. 행정관료의 논리로 대학 교육을 재단하면 안 된다. 통섭은 4년 중기 과제의 연구사업이었다. 이를 기다려주지 않고 1년 만에 죽였다. 그 사업을 죽인 사람들이 이제는 사업 결과가 부실하다며 책임자를 중징계하라고 한다. 죽인 시체에 또 칼질하는 것이다. 너무 그악하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황 총장은 이날 점심도 거르고 기자의 ‘심문’에 응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문화부에서 전화가 왔다. 자리를 피해 전화받는 그의 목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전화기 건너편에서는 언론과 더 이상 인터뷰하지 말고 사태를 수습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05년 심장 수술을 받았던 황 총장은 인터뷰 직후 병원에 입원했다. 기사 마감 시점까지, 심장 정밀진단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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