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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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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드림, 실버타운!

등록 2001-05-15 00:00 수정 2020-05-02 04:21

호텔급 노인전용 주거시설, 가난한 서민들에겐 아직 남의 나라 먼 이야기

실버타운에는 어떤 이들이 살고 있을까. 또 이곳에 살려면 얼마 정도의 돈이 들까.

호텔급 노인전용 주거시설, 부자들의 최고급 양로원쯤으로 여겨지는 실버타운에 입주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최소한 중산층 이상 반열에 오른 이들이나 들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서민들에겐 아직 남의 나라 먼 이야기일 뿐이다.

의료보험 대상 질병은 무료서비스

도심에 있는 실버타운의 대표격인 서울시니어스타워(서울시 신당동)의 예를 들어보자. 영구임대 방식으로 운영되는 시니어스타워는 15평, 23평, 30평 등 세 가지 평형을 갖추고 있다. 이 평수는 임대면적이며 전용면적(실제 주거면적)은 그 절반 수준이다. 헬스클럽을 비롯한 여러 가지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는 실버타운의 평형은 모두 이렇게 따진다.

시니어스타워 15평짜리의 경우(1인 거주) 입소할 때 1억3600만원의 보증금을 내고 다달이 33만원의 생활비를 내게 된다. 두 사람이 입소해 30평짜리 방에 살게 될 경우 보증금 2억7200만원에, 월 55만원의 생활비를 내야 한다.

월 생활비는 식비, 관리비, 부대시설 이용비, 의료혜택 등 모든 서비스 비용을 포함하고 있어 기본적인 생활은 가능한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33만∼55만원의 생활비는 과히 비싸지 않은 수준으로 여겨질 법도 하다. 중산층이라면, 살던 집을 처분하면 어렵지 않게 보증금을 마련하고 생활비는 자녀들의 도움이나 연금 등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지만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입소보증금 가운데 일부는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입소보증금은 입주보증금과 생활운영보증금으로 나뉘는데, 생활운영보증금은 15년 동안 골고루 나눠 공제한다. 30평형의 경우 입주보증금은 1억8200만원, 생활운영보증금은 9천만원이므로 다달이 50만원(9천만원/15년×12개월)을 공제하게 된다. 따라서 실질적인 월생활비 부담은 105만원(생활비 55만+보증금 공제 50만원)에 이르는 셈이다. 15평형이라면 53만원(생활비 33만+보증금 공제 25만원) 수준이다.

계약기간중 입주보증금은 인상하지 못하나 5년 안에 중도해지할 경우 입소보증금의 10%를 위약금으로 내야 한다. 월생활비는 1년에 한번씩 물가상승(하락)을 감안해 상향(하향) 조정토록 돼 있는데, 지난 98년 문을 연 뒤 지금까지 한번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삼성생명 공익재단이 지어 지난 5월9일 개원한 경기도 용인의 실버타운 ‘노블카운티’는 시니어스타워에 비해 훨씬 비싸다. 입주보증금만 최하 2억4300만원(30평형, 1인 거주)에서, 최고 8억3800억원(72평형, 2인 거주)에 이른다. 여기에 110만∼180만원에 이르는 월생활비가 든다. 일반 서민들로선 꿈꾸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이런 절대액수만을 놓고 비싸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운 구석도 있다. 월생활비에는 식사비, 세탁비, 일반관리비가 포함돼 있는데다 각종 편의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또 의료보험 대상인 질병에 대해선 무료 진료해주는 서비스도 실시하고 있다. 더욱이 실버터운에 들어오지 않고 독립적인 가옥에서 산다고 하더라도 관리비, 식비 등 생활비가 만만치 않게 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아직은 적자상태… 입주비 더 오를 듯

노블카운티는 A동 269세대, B동 271세대 등 모두 540세대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A동은 현재 160세대가 계약을 맺어 이미 입주했거나 할 예정이다. B동은 2003년께부터 분양할 예정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입주계약 때 전직을 자세히 따져묻지 않기 때문에 입주자들의 신상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주로 전직 변호사·교수·의사·약사 등 전문직 출신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경제력을 갖춘 노부부들이 자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또 자신들만의 생활을 즐기기 위해 실버타운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신당동 시니어스타워의 경우 고소득층보다는 군인, 교사 출신 등 연금생활자들이 선호하고 있다. 노블카운티에 견줘 보증금이 저렴하기 때문에 중산층이 살던 집을 처분하면 비교적 수월하게 보증금용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여겨진다. 입주자들은 고정적인 수입이 얼마간 있어 월생활비만 댈 수 있으면 부담은 그다지 크지 않다고 전한다.

시너어스타워를 소유·관리하고 있는 송도병원의 이승희 홍보팀장은 “총 144분양세대 가운데 샘플 2세대를 뺀 142세대가 꽉 들어차 있으며, 30세대 가량이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리가 나면, 언제든 들어오려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양로원’이란 이미지 탓에 자녀들이나 노부부 스스로도 꺼리는 경우가 있는데 막상 시설을 둘러보고나면 생각이 달라지는 이들을 많이 봤다”고 전했다.

실버타운은 지난 94년 유료노인복지시설에 대한 민간기업의 참여가 허용되면서 대거 설립됐다. 이후 운영미숙, 분양률 저조 등으로 문을 닫는 곳이 생겨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가 최근 들어 다시 붐을 이루고 있다. 관계법령에 실버타운이라는 개념은 없으며 유료양로원, 유료노인주택 등이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규모가 크고 노인을 위한 레저, 의료 등 복지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유료양로원과 구별된다. 현재 실버타운으로 부를 만한 곳은 전국에 7개 안팎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실버타운 사업에 나섰다가 재미를 본 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당동 시니어스타워도 아직은 적자상태이며 모자라는 돈은 송도병원에서 메우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생겨나는 실버타운의 입주비는 현재 수준보다 다소 높게 책정될 것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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