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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직업이기 때문에 ‘이유 없이’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교도관들, 사형장의 기억과 촉감은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등록 2009-03-13 14:25 수정 2020-05-03 04:25

“물어볼 걸 물어봐야지. 왜 지금 와서 그런 걸 묻고 그래요. 겨우 가슴에 묻고 살고 있는 사람에게. 할 말 없어요.” 그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지난 1997년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경험이 있는 그는, 지금은 은퇴해 경기 일산에 살고 있었다. 사형 집행 경험이 있는 교도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한 전직 고위 교정공무원(교도소장 출신)은 “90년대 말에 은퇴한 문아무개 교도관은 사형 집행 당시 받은 심적 고통으로 은퇴 직후 속세를 떠나 출가했다”며 “교정공무원들에게 사형은 참으로 힘든 내적 고통”이라고 말했다. 사형 집행 직후 충격으로 그만둔 교도관은 허다하다고 한다. 사형 집행 때문에 이혼한 교도관도 있다. 무엇이 그들에게 그렇게 깊은 상처를 남겼을까?

1987년까지 운영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사형장 풍경. 오른쪽의 교도관이 포인트라 불리던 레버를 당기면 교수대 바닥이 꺼지는 구조였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1987년까지 운영됐던 서울 서대문형무소(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의 사형장 풍경. 오른쪽의 교도관이 포인트라 불리던 레버를 당기면 교수대 바닥이 꺼지는 구조였다. 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사형은 교도관의 십자가”

사형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어쩌면 교도관일지 모른다. 이들의 임무는 교도소와 구치소에서 재소자들을 교화하는 것이다. 그들은 평소 사형수와 한 공간에서 지낸다. 그들의 말을 들어줄 때도 있고, 그들에게 명령을 내릴 때도 있다. 그 속에서 관계가 형성된다. 법무부 장관의 사형 집행 명령이 떨어지면 상황은 달라진다. 그의 목숨을 끊어야 한다. 사형수는 거개가 돈이나 원한의 동기로 인간을 죽인 죄를 지었다. 교도관은 그런 동기도 없이 사람을 죽여야 한다. 단지 직업이기 때문에.

한 교화위원을 통해 사형에 대한 한 현직 교도관의 심경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사형은 우리가 지고 가야 하는 십자가다. 사형 집행 명령이 떨어지면 우리 중 누군가는 사형장에 들어가야 한다. 5명의 교도관이 5개의 집행 버튼을 동시에 누르지만, 결국 그중 한 명은 사형수의 목숨을 끊는 것이다. 사람 죽이는 일을 누가 좋아하겠나.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사람 죽이려고 택한 것은 아니다. 1997년이었다. 사형 집행 이야기가 돌면서 다들 ‘나는 못하겠다’고 해서 교도소 전체가 뒤숭숭했다. 그때 집행하러 들어간 교도관들이 집행하고 나서도 며칠 동안 한숨도 못 자고 힘들어했다.”

문장식 상석교회 목사는 “사형이 있기 전날엔 교도관들이 많은 술을 마신다”며 “어떻게 제정신으로 사람의 목숨을 끊을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사형 집행 당일에도 교도관들은 밤새 통음한다. 입회한 검사와 검사시보도 마찬가지다. ‘악령·귀신이 집까지 따라간다’는 속설에 따라, 사형 집행 당일에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이들의 관행이다. 사람을 죽이고 도저히 가족을 볼 자신이 없어 만든 미신일 것이다.

사형 집행 당일. 교도관 3명이 사형수를 방에서 데려온다. 교정용어로 ‘연출한다’고 한다. 2명이 팔짱을 끼고, 1명이 앞장선다. 사형수들은 처음엔 순순히 따라온다고 한다. 그러나 사형장 부근에 이르면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기도 한다. 교도관들은 그럴수록 더 힘껏 팔짱을 껴야 한다. 울며불며 제자리에 주저앉아 억지로 형장으로 끌고 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형장에는 소독약인 클레졸 냄새가 가득하다. 사형 전날 재소자들이 청소할 때부터 뿌리기 시작해, 형이 집행되고 주검을 내릴 때마다 또 뿌린다.

입회관석에서는 소장과 보안과장, 입회 검사와 서기 그리고 성직자(교화위원) 등 20여 명이 사형을 지켜본다. 사형수는 입회관석 앞에서 ‘범죄 사실을 인정하냐’는 소장의 인정심문을 받고 유언을 남기게 된다. 교도관들은 성직자들의 예배나 예불 소리를 들으며 사형수의 얼굴에 용수(얼굴가림천)를 씌우고 교수대로 끌고 들어간다. 목에 올가미를 걸기 전, 발버둥을 막기 위해 손발을 묶는다. 올가미가 걸린 것이 확인되면 교도관 5명이 집행 버튼을 누른다. 발밑이 꺼지고, 목이 매달린다. 교수형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무게로 스스로의 삶을 끊어야 하는 잔인한 형벌이다. 인정심문부터 교수까지 걸리는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는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의 사형 장면. 살인과 사형이라는 두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독한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꼽힌다. 그 고통은 교도관들에게 그대로 남는다.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의 사형 장면. 살인과 사형이라는 두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지독한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로 꼽힌다. 그 고통은 교도관들에게 그대로 남는다.

서울구치소 첫 사형 집행일에 생긴 일

질긴 사람의 목숨을 끊는 곳이니만큼 끔찍한 일들이 끊이지 않는다. 1989년 8월4일, 경기 의왕시로 자리를 옮긴(1987년 11월 이전) 서울구치소에서 첫 사형 집행이 있었다. 첫 사형 집행 대상은 김동술(당시 26살)씨였다. 교도관들은 신부의 집도가 끝나자 곧바로 그의 머리에 흰 용수를 씌우고 손발을 묶었다. 목에 올가미를 걸었다. 교도관들이 집행 스위치를 눌렀다. 바닥이 내려앉지 않았다. 당황한 교도관들은 그를 옆으로 밀어놓고 형틀을 수리했다. 김동술은 용수를 쓴 상태로 쓰러져 벌벌 떨었다. “주여, 이 몸을 거두어주소서”라고 큰 소리로 기도를 올렸다. 45분 뒤, 그는 다시 목매달렸다. 그간 그에게 연장된 것은 삶이 아닌 죽음이었다.

교도관은 사형수의 체중과 키에 따라 올가미 밧줄의 길이를 조절해야 한다. 잘못 계산하면 낭패가 벌어진다. 교도관 출신으로 사형 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고중렬(77)씨의 말이다. 고씨는 서대문구치소 시절 교도관으로서 수많은 죽음을 집행해야 했다. “사형수의 목에 오랏줄이 제대로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포인트(사형 집행 장치)를 당기면 사람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집니다. 밧줄이 너무 길게 잡혀서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교도관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지르는 사형수들의 목에 다시 올가미를 걸고 끌어올려 매달아야 한다.

여성 사형수들의 집행은 더 처연하다. 문장식 목사가 기록한 1991년 12월17일의 일이다. 사형수 강영리(당시 36살)씨와 홍순영(당시 24살)씨의 집행이 있었다. 강씨는 살인교사, 홍씨는 유괴살인으로 사형을 확정받았다. 오후 3시15분, 강씨는 “(찬송을) 더 크게 불러주세요”라고 목멘 소리로 외치며 교수대로 끌려들어갔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도 끊겼다. 교수형이 집행되면 경추 골절로 즉사하거나 질식사한다. 후자의 경우 완전한 사망까지 10여분이 걸린다. 문 목사의 메모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집행 교도관들이 휘장 속에서 하는 말이 밖으로 들렸다. 한 직원이 ‘갔어?’라고 말하니, 다른 직원은 ‘오래가’라고 답한다. 조금 있다가 ‘가버렸어?’라고 하니, 다른 직원은 ‘아직 멀었어’라고 한다.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오후 3시35분, 홍순영씨가 끌려왔다. 작은 키에 앳된 몸매였다. 소장의 인정심문에도 대답을 못하고 소리내어 울기만 했다. 마지막 유언을 하라는 소장의 말에도 고개만 흔들었다. 입회한 김우성 신부가 가톨릭 의식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흐느껴 울기만 했다. 흐느끼는 홍씨를 교도관들이 교수대로 끌어갔다. 오후 3시50분에 형이 집행됐다. 오후 4시 정각에 죽음이 확인됐다. 문 목사는 “홍씨는 형 확정(1991년 9월) 뒤 넉 달도 지나지 않아서 마음의 준비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면담이 있다’는 교도관의 말에 따라 나왔다가 갑자기 처형당했다”고 말했다.

사형은 징벌적 차원을 넘어선다

이런 모든 순간의 기억과 촉감, 그 비명과 발버둥을 교도관들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지난 10년간은 전국 1만여 명의 교도관들에게도 그런 고통이 중단된 시간들이었다. 이제 그 고통의 시간이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천주교 대전교구 교정사목부의 강창원 신부는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은 국가 대신 죽음을 실제로 집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가 겪는 고통은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사형이라는 형벌이 한 사회에 주는 고통은, 사형수 한 명의 목숨을 징벌적 차원에서 뺏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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