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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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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몰래 기습적으로, 왜 그랬을까

고령과 금산 등 임기 만료 코앞에 둔 지방의원들이 통과시켜, 단양에선 개발과 위탁 맞바꾸기
등록 2009-02-12 15:29 수정 2020-05-03 04:25

“작년부터였나, 수도요금 청구서를 보고 알았죠. 그전에는 청구서 밑에 ‘정읍시’, 이렇게 나와 있었는데, 갑자기 ‘수자원공사’로 돼 있었으니까. 아, 그리고 정읍터널 가기 전 사거리에 수돗물 오염도를 보여주는 전광판이 생겼습디다. 자세히 보니 수공이라고 써 있던데.”
전북 정읍시에서 믿음철물을 운영하는 김창용(49)씨는 정읍시의 상수도 민간위탁 소식을 한참 뒤에야 들었다. 김씨의 철물점은 정읍시 상하수도사업소 맞은편에 있다.

2009년 2월까지 모두 15개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수자원공사에 상수도 운영을 위탁했다. 그런데 상수도 민간위탁 결정 과정에서 주민 무시와 로비 의혹 등이 속출했다. 2008년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물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김현태

2009년 2월까지 모두 15개 지방자치단체가 한국수자원공사에 상수도 운영을 위탁했다. 그런데 상수도 민간위탁 결정 과정에서 주민 무시와 로비 의혹 등이 속출했다. 2008년 3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물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 김현태

수공이 발표한 눈부신 사업 성과…

정읍역 앞에서 일광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인천(72)씨도 마찬가지다. “한참 뒤에 공사 때문에 어디선가 들어서 알았죠. 홍보는 없었던 것 같애요. 언제 바뀌었는지도 모르고, 공사하면서 그런가 보다, 했어요. 맨날 땅 파고 해대더니 요즘은 날이 추워서 그런가 조용합니다.”

1월23일 오전에 만난 정읍 주민은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정읍시가 수공과 상수도 민간위탁 계약을 맺은 것이 2004년 12월이었다. 그로부터 햇수로 5년째가 됐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정읍시가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린 적이 거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수돗물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대개 부정적이다. 아직 상수도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도시를 벗어나면 더하다. 면 단위 지역의 상수도 보급률은 전국 평균(92.1%)에 훨씬 못 미치는 45.2%에 그친다. 수공에 따르면, 2009년 2월 현재 전 국민의 7.9%인 397만여 명이 아직도 우물 등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 수공의 주장에 따른다면 상수도 민간위탁 사업의 성과는 눈부시다. 우선 노후관 정비 등 시설개선 투자로 일자리를 창출했다. 수공에 따르면, 위탁사업을 시작한 뒤 2008년까지 수공과 지자체는 시설개선비로 모두 1104억원을 투자해 연 10만9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올해에는 560억원을 투자해 3만5천 명에게 일자리를 나눠준다는 계획이다. 수공은 수질검사를 강화해 고품질의 수돗물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도 빠뜨리지 않았다. 모두 250개 항목의 철저한 수질검사와 노후 정수장 폐쇄를 통해 양질의 수질을 확보했다는 것이 수공 주장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상수도 민간위탁 계약의 당사자인 지자체와 수공은 하나같이 위탁 계약을 ‘조용히’ 처리했다. 앞뒤가 안 맞아도 한참 안 맞는 이야기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경북 고령군에서 벌어졌다. 고령군의회는 2006년 3월23일 고령 상수도 위탁운영계획 동의안을 부결했다. 8명의 군의원 가운데 5명이 반대했고, 3명이 기권했다.

그로부터 석 달 뒤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같은 해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낙선한 군의원들이 똑같은 안건을 기습적으로 상정해 통과시켰다. 전국공무원노조 고령군지부에 소속된 이창화씨는 ‘허를 찔렸다’는 표현을 썼다.

“2006년 3월 첫 상정 때는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어서 주민이 반대에 나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5월 지방선거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6월26일 임기 만료를 나흘 앞두고 기습적으로 통과시킬 줄은 몰랐던 거죠. 야바위하듯 넘겨버린 겁니다.”

“보호구역 해제되면 좋은 사람은 군수”

이씨는 “선거를 앞둔 3월에는 시민단체의 반발과 주민 여론을 의식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낙선한 지방의회 의원들이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민간위탁 동의안을 처리한 사례는 더 있다. 충남 금산군 역시 10명의 지방의원 가운데 8명이 5·31 지방선거에서 낙선했고, 6월26일 군의회에서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경기 동두천시도 사정은 거의 비슷했다.

주민의 충분한 동의 없이 민간위탁 계약이 맺어지기는 충남 논산과 전북 정읍도 마찬가지다. 최근 민간위탁을 추진하고 있는 경기 광주시도 시민단체가 나서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홍보를 하지 않았다. ‘상수도 민영화 반대 광주시민 대책위원회’ 신천호 위원장은 “그나마 대책위가 공청회 등의 절차를 요구하니까 일부 모양을 갖추려 하고 있지만 주민 홍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고령과 단양의 경우 상수도 민간위탁에 따른 이권 문제도 걸려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령군이 환경부에 폐쇄를 신청한 고령정수장 위쪽 운수면, 그러니까 상수원인 회천 상류 쪽에 이태근 고령군수의 땅 8만9513㎡(2만7천여 평)가 있다. 만약 고령정수장이 폐쇄돼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풀린다면 운수면도 개발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이창화씨는 “정수장 인근 땅이 상수원보호구역에서 해제되면 가장 혜택을 볼 사람은 이태근 군수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군은 아예 지자체와 수공이 지역개발과 상수도 위탁을 맞바꿨다. 2008년 7월 상수도 민간위탁을 시작한 단양은 1983년 충주댐 완공으로 지역 일부가 수몰된 경험이 있다. 자연스럽게 단양에는 ‘수공 때문에 피해만 받는다’는 정서가 형성됐다. 실제로 충주호 주변을 개발해보려 해도 이 지역을 관리하는 수공이 비협조적이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유를 들어 상수원 주변 개발에 난색을 표했다.

상수원보호구역에 유람선을 띄운다?

하지만 수공은 단양의 상수도 관리를 맡으며 태도를 바꿨다. 단양군과 수공은 상수도 위탁 계약과 함께 단양읍 별곡 4단지 개발과 수상 레저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중보 건설 등에 협력키로 했다. 별곡 4단지는 수공이 소유한 16만4천㎡ 규모의 하천 부지로, 패러글라이딩 이착륙장으로 쓰이고 있다. 단양군은 이 땅을 개발해 관광지로 만들고 싶어했다.

단양의 이런 계획이 수공의 상수도 광역화 구상과 맞물려 탄력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2008년 11월 단양군의회 회의록을 보면, 엄재창 도의원은 “별곡 4단지 개발사업이 어느 정도 추진이 돼가고 있느냐. 제가 들은 바로는 수자원공사에서 양해각서(MOU)까지 체결해놓고 아주 미온적으로 나온다고 그러더라”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전국공무원노조 단양지부도 양해각서 체결 직후 “실시협약의 거의 모든 조항이 ‘상호 협력한다’ 등의 문구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물론, 사업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거의 없다. (상수도) 사유화를 대가로 받아낸 것이 이처럼 막연한 양해각서 한 장이냐”고 비판했다.

단양군의 계획대로 충주호 주변 관광지 개발이 이뤄지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장효배 전국공무원노조 충북지역본부 민영화저지특위 위원장은 “충주호는 수도권의 상수원인데, 여기에 유람선을 띄우고 각종 수상레저시설을 이용하게 하면 수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상수도 민간위탁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지자체를 상대로 한 수공의 로비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경남 사천시는 2005년 12월부터 30년 동안 상수도 운영권을 수공에 맡겼다. 논산·정읍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이뤄진 민간위탁이었다. 그런데 수공은 상수도 관리를 시작하면서 사천에 2006년과 2007년 각각 25억원씩 모두 50억원을 지원했다.

상수도 관리를 맡기면서 전례 없이 ‘웃돈’을 받은 배경을 사천시는 이렇게 설명했다. “관로(수도관)는 확보해야 하는데 시 재정이 빈약해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인센티브로 시에서 수공에 50억원 지원을 요구했다.” 사천시 설명대로 수공에서 받은 돈은 2006~2007년 ‘수자원공사 전입금’ 명목으로 사천시 예산으로 처리됐다. 이 50억원은 당시 특혜 시비에 휘말려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

수공의 양강승 수도사업처 차장은 “사천에 지원된 50억원은 상수도 위탁의 대가로 지원한 것이 아니라 사천이 새롭게 광역정수장에서 물을 받기 위해 설치해야 할 수도관 비용이었다”며 “감사원 감사를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감사위원회에서도 처분 사안에서 아예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광주 상수도 관계자들 수공 직원과 외유

2008년 10월에는 경기 광주시 상수도사업소 관계자 10명이 수공 직원과 함께 프랑스와 스페인, 스위스 등 유럽 3개국을 다녀왔다. 광주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민간위탁 협의를 진행하다가 계약 당사자인 광주시와 수공 관계자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온 사실은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광주시에 구체적인 여비 내역 등을 요구했지만 뚜렷한 이유없이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공은 광주시와 수공이 각각 비용을 부담했다고 해명했다. 또 상당 부분은 개인 부담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수공 관계자는 “광주시 공무원들과 수공 직원이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마드리드, 스위스 제네바 등을 다녀온 것은 사실”이라며 “수공 직원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비용을 각각 부담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09년 2월까지 수공과 상수도 민간위탁 계약을 완료한 지자체는 모두 15곳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계약 과정이 매끄러웠던 지자체는 별로 없다.




수돗물 병입 판매
차라리 공기를 담아 팔아라


최근 수돗물 병입 판매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수도법 개정안에 대한 카툰이 인터넷을 떠돌고 있다. 내용은 단순하다. ‘수돗물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사람들이 수돗물을 직접 먹게 되면 망해버릴 사업인데, 왜 하려고 할까.’ 만화 속에서는 이 단순한 질문에 답변을 하지 못한다.
수도법 개정의 핵심은 정수장 물을 고도정수 처리해 병에 담아 팔겠다는 것이다. 우선 지구를 덥게 하는 주범인 페트병을 양산하겠다는 것이니 환경적으로 권장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수돗물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서 병입 수돗물을 판매하겠다는 이상한 논리다. 또 병입 수돗물로 이윤을 창출해 이를 다시 수도사업 개선에 사용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수돗물 불신은 심각한 상황이다. 상수도 수질의 문제는 주로 노후된 수도관망의 문제다. 따라서 수돗물의 질을 높이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 노후관을 교체하는 데 돈을 쓰면 될 일이다. 노후관 개선에 돈을 쓰면 될 일을 왜 굳이 엄청난 세금을 들여 고도정수처리장을 짓고, 고도정수 처리된 물을 페트병에 담아 팔아 이윤을 낸 다음 다시 노후관을 개선하는 힘든 과정을 거치려는 것일까.
고도정수처리 시설은 전체 정수 시설의 약 20%이며, 이 중 95%는 낙동강 페놀 사태 이후 수돗물 불신이 높은 경남에 집중돼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 상수도 상황에서 이러한 정수처리 시설 건설은 불가능에 가깝다. 건설비를 빼더라도 2~3년마다 정수처리 시설의 활성탄을 교체해주는 데 드는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인구밀집도가 높고 세입이 좋아 운영관리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적은 부산시조차도 고도정수처리 비용을 대기 위해 낙동강수계지원금에서 한해 14억원 이상을 지원받고 있다.
결국 두 개의 국민, 두 개의 수돗물, 그뿐이다. 수돗물은 병에 담아 팔고, 지방자치단체는 이 새로운 수익사업에 매달리고, 수돗물 직접 음용률은 점점 낮아지고, 수도관망 투자는 줄어들고, 수도꼭지의 수질은 낮아지고, 수돗물 이용 금액은 점점 높아질 것이다. 병에 든 물을 사먹을 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여기에 민간업자까지 병입 수돗물 판매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면?
수도법 개정으로, 병입 수돗물 판매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수도사업자다. 수도사업자는 현재 대다수가 지자체이지만 환경부는 이를 민간회사에 위탁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다. 세금으로 만든 정수장에서 나온 물을 국민이 또다시 돈을 주고 사먹는 이중 부담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생수나 정수기 물을 먹고 있으니 이보다 좀 더 싼 가격에 수돗물을 사먹는 게 어떠냐고? 그럼 모두가 병에 든 수돗물을 사먹게 하지 왜 굳이 상수도관을 깔아 수도꼭지로 물이 나오게 하나. 관망은 왜 정비하나.
신자유주의는 기존 자본주의에서 상품화되지 않았던 공공영역을 가장 탐낸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철학은 여기에 기반한다.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촛불에 떠밀려 ‘공공부분(의료·물·전기·가스)의 민영화는 없다’고 선언했던 것은 그의 본심이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공공부분의 민영화는 그 이후 공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더욱 탄력을 받아 진행되고 있다. 상수도 민영화도, 병입 수돗물 판매도 대답은 한 가지다. 기업의 이윤 창출. 차라리 숨쉬는 공기에도 세금을 매겨라.
강은주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물사유화 저지 공동행동 집행위원

정읍·사천·광주(경기)=최성진 기자 csj@hani.co.kr·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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