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 전화 오는 거야. 전화가 안 오는 부동산은 죽은 부동산인데.” 1월8일 오후 6시. 황재웅(39)씨가 휴대전화를 닫으며 말했다. 하루 일을 마감하는 시간에 첫 통화를 했다. 그나마도 물건을 내놓은 사람이 팔릴 기미가 보이는지 묻는 전화다. 그는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서 10년째 공인중개사무소를 하고 있다. 2003년 11월 뉴타운 2차 지구로 선정된 한남뉴타운 지역이다. 불티나게 오던 전화는 딱 끊겼다. 갖고 있는 물량은 온통 ‘매도 물건’이다. 방금 전화 온 고객은 중소기업 사장이다. 투자 목적으로 대출을 받아 4억원짜리 빌라를 산 그는 몇 달째 이자 200만원을 내지 못해 결국 물건을 내놓았다. 경매에 넘어가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려는 사람이 없다. 3억~4억원의 자본을 갖고 투자하려는 사람들은 집값이 좀더 내릴 때만 바라보면서 숨죽이고 있다. 그의 ‘투자 고객’ 리스트는 30명에서 5명으로 줄었다.
2004년, 박아무개(47)씨도 보광동 뉴타운 바람에 몸을 실었다. 그가 만두가게를 하던 골목에만 공인중개사무소가 서너 개 생겼다. 주부였다가 공인중개사자격증 시험을 봐서 붙었다는 서아무개(37)씨가 거래 한 건에 수백만원씩 버는 걸 봤다. 가게를 얻고 컴퓨터, 책상, 인쇄기 등 집기를 구입하는 데 드는 초기 투자 비용은 5천만원이면 될 것 같았다. 여기에 자격증만 있으면 이후 사업을 하면서 드는 비용도 별로 없을 것 같아서 부동산중개업을 시작했다. “만두가게 할 때는 매달 350만원씩 벌었거든요. 그걸로 사업하다 진 빚 3억원을 갚았지. 근데 이자 1억5천만원이 남았거든. 이건 좀더 빨리 갚고 싶더라고.” 실제로 박씨는 꽤 실적이 좋았다. 2006년에만 22건의 매매를 했다. 1억원을 넘게 벌었다. 그러나 2006년 말 한남뉴타운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2007년에는 한 달에 1건 파는 데 그쳤다. 지난해는 8월 전에 2건을 팔았고 이후에는 “손님 구경을 못했다”.
실제로 용산구의 부동산 거래 실적은 2006년을 기점으로 크게 줄었다. 2006년 1만631건이던 부동산 거래는 2007년 6293건, 2008년 4678건이 됐다. 펀드 반토막보다 더한 감소다. 용산구에 등록된 부동산 업체는 모두 929개. 결국 한 업소당 1년에 5건을 거래했다는 얘기다. 두 달에 1건도 하기 힘든 수치다.
거래가 없다 보니 가게들은 속속 문을 닫았다. 박씨는 “지난해 상반기에는 가게는 그대로고 사람만 바뀌더니, 9월 지나면서부터는 부동산 자체가 문을 닫은 곳이 여럿”이라고 말했다. 용산구청 관계자는 “가게를 내놓은 뒤 가게가 안 나갈까봐 문만 열어둔 ‘개점 휴업’ 상태인 곳도 많다”고 전했다. 지난 12월 전세 계약 2건으로 “50만원 벌었다”는 박씨는 가게 문을 닫는 대신 두 아이 학원을 끊었다. 부동산중개소는 절감하려야 절감할 비용이 없다. 아이들 학원비 50만원은 가게 임대료 80만원에도 못 미친다.
공인중개사들은 대부분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직장을 나왔거나, 직장에서 떨려져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문 자영업’을 꿈꾸며 공인중개사자격 시험 공부를 했고, 사무소를 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로 공인중개업은 ‘실업 타개책’으로 정부가 적극 권장한 업종이었다. 1998년 정부는 “실업 대책으로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를 늘리고, 격년제로 실시하던 것을 매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응시자 수는 급증했다. 1993년 2만8천 명, 1995년 4만2천 명이던 것이 1997년 12만 명, 1999년 13만 명으로 늘었다. 넥타이 매고 직장으로 출근하던 사람들이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002년, 외환위기 이후 공급량이 줄어든 반면 경기 회복으로 수요는 늘면서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자 응시자 수는 한 번 더 뛰었다. 26만 명이 2002년 치러진 공인중개사자격 시험에 응시했다. 그중 25%는 직장인이었다. 초기 자본이 많이 들지 않고 크게 경력이 없어도 자격증과 몸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부동산중개업에 뛰어들었다.
‘실업 타개책’으로 정부가 적극 권장이아무개(43)씨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다니던 무역회사를 접고 애완용 조류 농장을 하던 그도 2002년 시험을 봐서 합격했다. 2003년 천안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시작했다. 2004년 개통된 KTX가 천안 아산역을 관통해 지나간 덕분에 인근 지역에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부동산 바람’이 불었다.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무산되기 전이다. 이씨는 2년 뒤 식구들이 있는 예산으로 내려왔다. “천안이 개발되니 하방 효과로 예산에도 아파트 건설이 시작됐어요. 큰돈을 벌지 않더라도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어요.”
법무·세무 지식까지 갖추었던 터라 그럭저럭 중개소를 끌어가던 이씨는 지역에서 건설사가 주저앉는 바람에 지금 위기를 맞았다. 예산에는 C&우방건설이 499세대를 제공하는 아파트를 건설 중이었다. 애초에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위기라고 평가받던 C&우방건설은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고, 이어 11월에는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태다. 이번 금융위기로 건설사들은 ‘구조조정’의 운명에 처했다. 건설사가 무너지면서 계약자들은 물론 이들과 거래하는 부동산중개업자인 이씨까지 덩달아 손발이 묶였다.
금융위기로 투자자들이 지갑을 닫고 부동산 거래는 끊기자 정말 집을 옮겨야 하는 실수요자들도 거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6억원짜리 집을 분양받은 최아무개(49)씨는 마포에 있던 집을 팔아 그 돈으로 입주 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도대체 집이 나가지 않아 골치를 썩이고 있다. 결국 5억원을 대출받아 매달 금융 비용만 300만원이 든다. 금융 비용을 감당 못해 입주할 아파트도 내놓았는데 그조차도 여의치 않다. 은평뉴타운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김아무개(53)씨는 “지금 은평뉴타운에 입주 못한 사람들 대부분이 최씨와 같은 경우”라고 말했다. 금융위기는 주택 거래를 실종시켜 순수한 주택 실수요자들의 ‘집 옮기기’에 태클을 걸고 있는 셈이다. 덩달아 ‘집 중개자’들의 생계도 어둡다.
상가는 더하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상인들과 함께 30년 고락을 같이해온 안익호(73)씨는 요즘은 상인들 ‘우는 소리’ 듣는 게 일이다. 그가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관철동은 보신각 사거리에서 종로3가로 이어지는 일대다. 강북 지역에서 가장 붐비는 상권 중 한 곳이다. 한 피자체인점 사장은 안씨만 보면 하소연한다. “아니 도대체 어디까지 낮춰야 되는 거야.” 그는 이미 권리금을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낮췄다. 안 사장은 “이런 때는 아무도 가게를 새로 열려고 하지 않지. 투자해서 손해 보느니 노는 게 돈 버는 거거든.” 인근 노래방, DVD방 등이 손님 부족으로 가게를 내놓고 나갈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가게를 보러 오는 사람은 없다. 안씨는 지금 상가 매물만 15개 넘게 갖고 있다. 보통은 5개 정도만 갖고 있었다. 예전엔 회전율도 빨랐다. 지금은 6개월이 지나도 물건이 안 빠진다. 20~30년 동안 이곳만 지켜온 ‘터줏대감’들이 많은 이곳에도 문 닫는 업체가 속출한다. 한국공인중개인협회 종로지회장을 맡고 있는 안씨가 관리하는 70여 개 업체 중 6군데는 휴업을 신청했고, 10군데는 문을 닫을 예정이다. 안씨는 이 때문에 “지나가다가 식당이 텅 비어 있는 것만 봐도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열 달 넘게 거래를 못한 안씨는 기자가 문을 나서자 켜둔 난로를 가만히 껐다.
섣불리 시작해 된서리 맞는 초심자위기에 더욱 취약한 것은 초심자들이다. 섣불리 시작했다가 불황 바람에 문을 닫은 중개업자들이 많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뱅크 현관명 거래네트워크본부장은 “문 연 지 2~3년이 안 돼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금 대거 폐업 또는 휴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아무개(41)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강씨는 2004년 다니던 무역회사를 관뒀다. 일흔 살 넘은 아버지가 30년 넘게 부동산 중개로 경제활동을 하는 걸 보면서 평생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그가 살던 아현동이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염리3동에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인근에는 20여 개의 공인중개사무소가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저마다 정보력, 마케팅 기술 등으로 투자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그는 자본이 많지 않아 가게 위치도 좋지 않았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앉아서 기다려 집을 연결해주던 ‘아버지 시대의 복덕방’은 끝났지만 강씨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강씨는 “3년간 5천만원을 손해 봤다”고 말했다.
그는 가게를 접고 지난 12월부터 강남구 대치동에서 20년째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는 사장 아래로 들어가 일을 배우고 있다. 사장에서 직원이 된 셈이다. 그러나 강남에서도 매도가와 매수가가 3억~4억원씩 차이가 나 한 건의 실적도 올리지 못했다. “이쪽은 대체로 월급제가 아니라 실적제라 지난달 수입은 없네요.” 강씨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일하는 사무실에는 직원이 4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그나마도 빨리빨리 그만둬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 5개월째란다. “워낙 거래가 없다 보니 중개인 회전율도 빠르고요. 심지어 바로 옆 김밥집 아줌마가 불평해요. 요즘에는 도시락만 먹냐고요.”
“지금 갖고 있는 상가 물량만 15개다. 권리금을 3억원에서 1억5천만원으로 낮춘 한 피자가게는 아홉 달째 가게가 안 나가서 걱정이다. 종로통에서 30년 동안 장사꾼들과 호흡을 같이했는데, 열 달 동안 1건도 못 팔아본 것은 처음이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ㅇ부동산 안익호(73) 사장
“8월 이후로 손님을 못 봤다. 가게 임대료 80만원을 못 내 두 아이 학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부동산중개소는 절감하려야 절감할 비용이 없다.” -서울 용산구 보광동 ㅎ부동산 박아무개(47) 사장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해 회사를 그만두고 부동산중개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더 이상 아버지 때처럼 앉아서 기다리는 직업이 아니더라. 경쟁은 너무 심해졌고, 부동산 규제는 매일같이 바뀌어 처음부터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업종이다. 나 같은 2~3년차는 금융위기를 맞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 ㄱ(41)씨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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