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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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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야의 촛불

2008년 마지막 날 서울 보신각에 섞인 촛불시민들…
2009년 ‘거리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신호탄인가
등록 2009-01-08 11:38 수정 2020-05-03 04:25

5, 4, 3, 2, 1 “와∼.”
2008년 12월31일에서 2009년 1월1일로 해와 날이 바뀌던 순간. 예년 같으면 폭죽만 수놓았을 서울 종로 보신각 하늘에는 타종 소리와 함께 노란 풍선 수백 개, 작은 열기구를 연상케 하는 풍등 10여 개가 날아올랐다. 풍선에는 ‘우리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씌어 있었다. 일제고사 때 체험학습을 허용했다는 이유로 파면·해임당한 전교조 교사 7명을 학교로 돌려보내 달라는 간절한 소망이 담긴 문구였다. 풍등에 적힌 ‘아듀 2008, OUT 2MB’는 다가오는 새해만큼은 지난해처럼 민주주의가 후퇴하지 않기를 바라는 촛불들의 마음을 담았다.

2008년 마지막 날 밤 서울 종로구 조계사 건너편 평화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전교조 해직교사의 복귀를 바라는 풍선을 들고 나오는 시위 참여자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경찰이 보기에 불법 시위용품이면,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없어도 시위 장소에 나오지 못한다.

2008년 마지막 날 밤 서울 종로구 조계사 건너편 평화박물관으로 들어가는 골목길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전교조 해직교사의 복귀를 바라는 풍선을 들고 나오는 시위 참여자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경찰이 보기에 불법 시위용품이면, 현존하는 명백한 위협이 없어도 시위 장소에 나오지 못한다.

‘아듀 2008, OUT 2MB’

이날 보신각 일대에는 타종을 보러 온 가족이나 연인들은 물론 애초 다음 아고라를 통해 공지된 대로 현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기 위해 모인 촛불시민들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여름 촛불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과 관련한 생존권, 검역권 등을 주요 이슈로 삼았다면, 이날 촛불은 문화방송 민영화를 필두로 한 언론 관련 법안을 한나라당이 국회에서 무리하게 통과시키려는 데 대한 저항의 의미가 컸다. 수도·전기를 비롯한 사회 공공의 영역을 대거 민영화하려던 분위기가 멈칫한 상황에서 정부가 다시 방송 쪽부터 민영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탓이다. 인권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데 대한 문제인식은 그 저변을 이뤘다.

친구와 함께 촛불을 들러 나온 김순재(37·자영업)씨는 “다원화된 사회가 정착하고 있는데, (현 정권이) 방송과 신문을 장악해서 여론을 호도하려는 게 근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세상을 자꾸 20년 전으로 회귀시키려는 반동적 움직임에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대학 91학번인 김씨는 90년대 초반 운동권에 심정적으로는 동의했어도 시위 현장에 적극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그를 현장으로 끌어낸 건 “우리 사회가 이렇게 계속 가야 하나?”라는 진지한 고민이다.

보신각 인근 지하 보도에서 만난 회사원 강아무개(30)씨는 “조·중·동 같은 거대 신문사나 재벌이 방송을 장악했을 때 생길 영향력이 걱정돼 나왔다”며 “여당이 법안을 밀어붙이려 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했다.

깃발 두고 촛불시위대와 몸싸움

이들처럼 한국 사회의 반동적 분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전날인 3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촛불문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었다. 서울 노량진동에 살고 있는 윤정모(62·자영업)씨가 이날 행사에 참석하게 된 건 시대를 향한 분노 때문이다. 윤씨는 1987년 6월항쟁 당시 서울 명동의 한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그해 7월9일 이한열 열사 장례식을 비롯해 최루탄·지랄탄이 시야를 어지럽히던 시위에 몇 차례 참여한 바 있다. 지난해 여름 촛불이 광화문 일대를 수놓을 때도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젊을 때 얼마나 어렵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어떻게 옛날로 돌아갈 수 있나 싶다”는 윤씨는 “방송이 조·중·동과 재벌에 넘어가면 희망은 사라지고 앞으로 더 힘든 싸움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윤씨는 “늙으니 이제 춥지도 않다”며 살갗을 파고드는 찬바람 속에서도 결연한 의지를 벼렸다.

경찰은 12월30일 촛불문화제 때만 해도 경고방송을 몇 차례 하는 것에서 그쳤으나, 31일 보신각 앞에서는 ‘불법 시위용품’을 빼앗겠다고 나서면서 시민들의 거센 저항을 받았다. 저녁 7시50분께는 경찰이 한 단체의 깃발을 빼앗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촛불시위대와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전경 한 명이 머리를 다쳐 긴급 후송됐다. 시민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경찰을 비난했다. 30분쯤 뒤에는 조계사 맞은편 평화박물관에서 보신각으로 이동하려는 노란 풍선들을 경찰이 가로막으며 또 한 차례 극심한 마찰을 빚었다. 전교조 및 ‘일제고사 부당징계 철회와 일곱별 쌤들의 복직을 원하는 교사·시민모임’ 쪽은 노란 풍선 5천여 개를 밤 12시에 날려보내려 했으나, 경찰은 풍선도 시위용품이라며 현장에서 마구 터뜨리거나 날려보냈다. 경찰이 양초와 초를 받치기 위한 종이컵 등도 철저한 검문검색으로 가려내 미리 압수하면서 이날 현장에서는 실제로 많은 촛불을 볼 수는 없었다.

선거 없는 해, MB 정부는 조급증
수많은 깃발과 손팻말이 지난 12월31일 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도로를 메웠지만 대한민국 제1의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 1채널의 생중계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깃발과 손팻말이 지난 12월31일 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 도로를 메웠지만 대한민국 제1의 공영방송이라는 한국방송 1채널의 생중계 화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촛불집회의 절정은 한국방송의 생중계가 시작되기 전 촛불을 든 언론노조 조합원 1천여 명이 보신각 앞으로 몰려들면서부터였다. 이들은 ‘독재 타도, 명박 퇴진’과 같은 구호를 외치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경찰이 보신각 바로 앞 행사장을 전·의경으로 빙 둘러싼 채 초대가수 공연, 타종, 오세훈 서울시장의 새해 인사말과 같은 행사 진행을 보호했으나, 촛불시민과 언론노조 조합원들은 스피커 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로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조·중·동 방송은 국가 재앙방송’ ‘국민기만 서민말살, 이명박을 탄핵하라’와 같은 글귀가 적힌 손팻말을 일제히 흔들었다. 사상 최초로 반정구 구호가 넘쳐나는 보신각 앞 제야의 종 행사는 2009년 한 해도 촛불이 거리의 정치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정치 상황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그런 점에서 앞으로 야당의 구실이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연말부터 민주당이 시민·민중 세력의 요구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국회 안에서 행동에 나서면서 이들 세력이 권력과 직접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난해에는 경제위기가 빨리 오면서 정부의 탈공공화가 주춤했지만, 올해는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라서 이명박 정부가 조급증을 갖고 (관련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이려 할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며 “위임받은 권력을 과도하게 행사하려는 과정에서 시장 논리를 더 밀어붙이면 지금까지 국가 공공성에 의지해온 자영업자, 서민, 비정규직 등과 큰 충돌이 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2009년에도 수많은 촛불들을 거리로 불러낼 이슈들은 충분히 널렸다. 이미 상당수 기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벌이면서 실직자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오고 있는데다 2월 말이면 수십만 청년실업자가 또 양산된다. 정부가 비정규직 사용 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안까지 추진하면서 정규 고용에서 배제된 실업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여름 촛불집회의 방아쇠를 당긴 청소년들도 입시 경쟁을 강화하고 학생과 교사를 철저히 대상화하는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불만이 쌓이고 있다.

‘MB악법 저지 48시간 비상국민행동’의 박래군 공동 집행위원장은 “그리스 폭동도 청년실업 문제였듯, 우리의 청년실업 문제도 언제든 터질 수 있는 사안으로서 2∼3월 경제위기설이 현실화하면 상반기에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그렇게 되면 쇠고기 문제 때보다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이 더 어려워질 것”

지난해 각종 비리 의혹과 검찰 수사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주요 시민사회 단체들이 얼마나 빨리 조직을 추스르고, 운동의 이슈를 선점하면서 활동을 벌여나갈지도 촛불의 움직임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우선은 지난 12월 초 시민사회단체연석회의 차원에서 마련한 민생 관련 요구안을 정부가 수용해 정책의 방향을 선회하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가 현재 추세대로 특권층을 위한 정책을 계속 추진할 때는 정부와 민중 사이에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돌이 빚어질 것으로 김 처장은 내다봤다. 지난 1년 동안 쌓인 불만에 민생고라는 뇌관까지 작동하는 탓이다. 이때 시민사회단체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해 촛불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이) 대중의 힘을 정치적 힘으로 승화시켜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올해는 정치적 방향타를 제대로 세우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시민사회단체들도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궂은 날씨도 3월이면 풀린다. 국민들은 이미 양초 하나씩을 손에 든 채 불을 켤 성냥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TV에는 없었던 촛불
소리 죽이고 화면 안 잡고


2008년의 마지막 날. 촛불은 타올랐지만, 방송은 이를 외면했다. 이날 한국방송은 밤 11시30분부터 서울 종로 보신각 타종 행사를 생중계했다. 종각 사거리에 모인 시민들 가운데 5천여 명은 각종 깃발과 함께 ‘이명박 OUT’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그리고 “이명박은 물러가라” “독재 타도” 등의 구호를 외쳤다.
그러나 방송 화면은 달랐다. 깃발을 들고 행사장 중심에 서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화면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행사 중간중간 시민들의 모습을 높은 곳에서 잡아내던 부감 앵글도 없었고, 현장 리포터가 시민들을 인터뷰하는 장면도 볼 수 없었다. 반정부 구호는 아예 박수소리 효과음으로 바뀌었다. 텔레비전으로 타종 행사를 본 시청자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준 셈이다.
방송을 본 이아무개(34·회사원)씨는 “아주 잠깐 깃발이 보였는데, 그 이후에는 깃발이 보이지 않았다”며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인터넷 뉴스를 찾아봤더니 그곳에서 깃발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통령을 타도하라’고 구호를 외치는 시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두려워서 그런 것이냐”며 “한국방송이 다시 예전의 관영방송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걱정됐다”고 말했다. 문화방송 의 신경민 앵커는 1월1일 방송을 마치며 “이번 보신각 제야의 종 분위기는 예년과 달랐습니다. …소란과 소음을 지워버린 중계방송이 있었습니다. 화면의 사실이 현장의 진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 그래서 언론 특히 방송의 구조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시청자들이 새해 첫날 새벽부터 현장실습 교재로 열공했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멘트를 했다.
한국방송은 이에 대해 “ 프로그램은 제야의 종 타종식을 매개로 한 음악 공연 축제 프로그램으로 기획됐다”며 “공연이 중심이어서 시위대 현장음 등은 지우고 방송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소리도 소리지만, 깃발 들고 시위하는 군중 화면 자체를 잡지 않았다”며 “이는 의도적으로 입맛에 맞는 장면만 잡아서 보여주겠다는 ‘조작 방송’으로, 현장 생중계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찾아볼 수 있는 현장도 이렇게 왜곡하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어떤 조작·왜곡이 일어날지 걱정”이라며 “걱정, 두려움 그리고 시민의 눈을 왜곡하려는 방송사에 대한 불쾌감이 동시에 밀려온다”고 말했다.


글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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