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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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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모랑 닮았다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 커지면서 입지 좁아졌던 노사모,
‘MB가 진정한 신보수 정권인가’ 비판 번지는 뉴라이트
등록 2008-11-21 13:08 수정 2020-05-03 04:25

뉴라이트가 노사모의 전철을 밟고 있다. 미워했지만 어느새 닮아가고 있다. 2000년 총선 이후 노무현 팬클럽으로 출발한 노사모는 이후 시민 정치참여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상당 부분은 노사모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노무현 편향’에 발목이 잡혔다. 보편적 시민운동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참여정부의 쇠락과 운명을 같이했다. “처음에는 노사모에 대한 공감대가 넓었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실망이 커지면서 노사모의 입지도 함께 좁아졌다. 노사모가 하나의 운동으로서 넓은 영향력을 유지하려 했다면 노무현 정부와의 거리를 확보해야 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의 분석이다.

후보 경선 과정에서 터져나온 갈등

지난 2007년 5월3일, 이명박 당시 대선경선 후보가 경북 경산시 남천 둔치에서 열린 뉴라이트 경북연합 희망전진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

지난 2007년 5월3일, 이명박 당시 대선경선 후보가 경북 경산시 남천 둔치에서 열린 뉴라이트 경북연합 희망전진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

뉴라이트 단체들의 미래는 어떨까? 여론은 시민단체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치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시민운동 본연의 역할이라는 정서가 강하다. 이런 인식의 확산에는 뉴라이트 단체들도 한몫했다. 이들은 참여연대 등을 ‘친노 단체’로 낙인찍어 비판해왔다. “요즘은 정부든 정당이든 기업이든 시민단체들의 동의나 비판적 지지, 심지어 묵인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시민단체들이 도덕성과 공익성을 규정하는 골리앗이 돼버렸다.” 박효종 교과서포럼 대표가 지난 2005년 3월10일 보수단체가 주최한 어느 심포지엄에서 한 이야기다. 개혁 성향의 시민단체들에 던졌던 그의 말은 이명박 정부 시대의 뉴라이트 단체들에 되돌아오고 있다.

애초 뉴라이트 운동이 내건 ‘대의명분’은 선진한국 건설이었다. 이를 위해 신보수와 신진보가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데, 당장은 신보수부터 재구성해야 한다는 게 뉴라이트 운동가들의 삼단논법이었다. 이들의 논리는 보수 진영은 물론 시민사회 지형 전체에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김윤철 대안지식연구회 연구위원은 “한국 정당들이 워낙 몰이념적이고 몰정책적으로 경쟁해왔기 때문에, 이념을 중심에 둔 뉴라이트 운동이 대단히 새롭게 보이는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은 뉴라이트의 ‘새로움’에 흠집을 내는 계기가 됐다. 보수 정권 창출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뽑아야 하는지는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생각이 달랐다. 급기야 뉴라이트 진영의 최대 조직인 뉴라이트전국연합 내부에서 사달이 났다. 일부 회원들이 ‘뉴라이트전국연합 중립성 회복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해 8월16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방대한 조직을 통해 특정 후보 승리를 위한 노골적 편파 운동을 해왔다”며 이 단체 공동의장인 김진홍 목사의 사과와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지난해 11월28일 이명박 대선 후보에 대한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김진홍 공동의장이 이번 인터뷰에서 “정치적 이슈에 민감했던 탓에 시민운동으로서 바람직한 모습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걸 인정한다”고 말한 것은 1년여 전의 일에 대한 자평인 셈이다.

“수구적 이미지, 통탄할 일”

그러나 이 문제는 한나라당 내부 계파 경쟁보다 더 큰 차원으로 옮겨붙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뉴라이트 운동이 바랐던 진정한 신보수 정권인가에 대한 의문이 뉴라이트 진영 안에서 번지고 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최근 새로 단장한 단체 홈페이지의 인사말에서 “새로운 보수 정부는 국정의 기본 목표인 선진화의 설계도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다른 관계자는 “참여정부의 무능함을 그렇게 비판했었는데, 이제는 이명박 정부가 무능하다는 질타를 듣고 있으니 우리로선 답답할 따름”이라며 “정권 차원을 넘어 보수 운동 전체를 새롭게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에 대해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억울하다는 분위기다.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그 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합리적이지 않은 정책을 내놓는다면 당연히 우리도 누구보다 강력하게 정부를 비판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 여론이 있는 정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간의 통념과 달리 합리적인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지지하는 것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도 얼핏 보면 반대 주장이 맞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 간접투자 재원 90%를 지방에 먼저 배분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그걸 알고도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다른 뉴라이트 운동가들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진정성’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눈치다. ‘전향 운동권’ 출신으로 자유주의연대에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이제 뉴라이트가 ‘MB 2중대’로 읽히고, 합리적·이성적 운동이 아닌 수구적 이미지를 갖게 됐다. 통탄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가 맛이 갔으니 백약이 무효”라며 “이젠 뉴라이트라는 말을 써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사회운동의 확장에 필수적인 인적 자원의 고갈 양상도 뉴라이트 단체들엔 부담이다. 지난 총선을 거치면서 뉴라이트 운동을 대표했던 상당수 인사들이 국회나 정부기관에 진출했다. 신지호(자유주의연대)·제성호(뉴라이트전국연합)·나성린(한반도선진화재단) 의원 등은 뉴라이트의 주요 단체에서 핵심 역할을 했었다.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 고배를 마신 인사들은 아예 뉴라이트 단체에서 발을 빼고 있다. 안병직 시대정신 이사장은 “정계 진출의 욕망이 있는 사람들로선 다음 선거까지 먼 장래를 보고 순수한 시민운동을 하겠다고 하면 힘이 좀 빠진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를 대하는 태도도 뉴라이트 운동의 지반을 좁히고 있다. “청와대는 뉴라이트 단체들하고만 대화하는데, 이명박 대통령 개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극도로 고조되면서 그 불만이 뉴라이트 단체들에 그대로 향하고 있다”고 신진욱 교수는 말했다.

시민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해

뉴라이트 운동은 정치적으로 승리했다.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토대인 시민사회에는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 사이 이명박 정부와 뉴라이트 단체를 동일시해 비판하는 여론이 급증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정치운동에는 성공했지만 시민운동과 담론운동의 차원에서는 실패했다”고 뉴라이트 운동을 평가한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역사 교과서나 건국절 논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입지가 좁아졌다. 시장을 외쳐왔는데 스스로에게 시장성이 있는지 물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중순, 와 동아시아연구원이 국내 ‘파워조직’의 영향력과 신뢰도를 조사했다. 뉴라이트의 영향력은 지난해 10위에서 23위로 떨어졌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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