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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하다, 전문가들 말 좀 해봐!

외환시장 요동치고 부동산 추가 하락 무게… 주식은 선방론 다소 우세
등록 2008-10-08 14:39 수정 2020-05-03 04:25
추석 연휴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추석 연휴 이후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서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도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란상을 연출하고 있다. 한겨레 김진수 기자

안개 속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 신청 소식이 알려진 지 3주가 지나고서도 금융시장은 좀처럼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한복판에서 생성된 금융위기라는 파도는 이제 미국 내 실물경제로, 또 유럽과 아시아의 금융시장으로 밀려들어가고 있다. 추석 연휴 직전과 직후, 그리고 10월2일의 경제지표들은 드라마틱한 변동성을 보여준다. 환율은 1110원대에서 1160원대로, 그리고 다시 1223원대까지 치솟았고, 9월16일 90포인트가 폭락했던 코스피 지수는 1300~1400대에서 널뛰기 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안개 속에서도 째깍째깍 시계침은 돌아간다. ‘발단-전개-절정-결말’이라는 드라마의 구조에 견줘볼 때, 과연 미국발 금융위기의 후폭풍은 어느 지점까지 도달한 것일까. 또 장기적으로 한국의 금융 및 실물경제에는 어떤 교훈과 숙제를 남기게 될까. 주식, 외환, 부동산 등 각각의 경제 영역에서 금융위기의 후폭풍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둡고 긴 터널 앞에 선 이들은 어느 때보다 겸손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이 그린 미래의 경제지도는 희망에서 절망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아우르고 있었다. 과연 누구의 점괘가 맞을 것인가.

<font size="4"><font color="#C21A8D">■ 외환시장</font></font>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뒤 가장 난맥상을 보이는 것은 역시 외환시장이다. 외국에서 달러를 빌리려면 거의 고리대금 수준의 이자를 줘야 하는 극심한 수급 불균형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은 롤러코스터를 탄 형국이다. 9월16일에는 50.90원이 오르더니, 17일에는 44.00원이 내렸고, 다시 18일에는 37.30원이 뛰어올랐다. 지난 10월2일에는 36.50원이 급등하면서 1223.50원을 기록해, 지난 2003년 4월25일(1237.80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외환은행의 김두현 차장은 “외환위기 이후를 돌아보면 환율은 늘 빠지기만 했고, 지난 3년간 그런 쏠림 현상이 극대화된 상황이었다”면서 “올해 엄청난 위기를 겪으며 환율이 한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연말까지 1250~1300원 가능성”

단기적인 환율 전망은 어떨까. 익명을 요청한 한 외환딜러는 “9월 위기설이 돌 때 정부가 시장의 루머를 단속하겠다고 선언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1400원설도 있다는 얘기를 기자한테 했다간 큰일 날 것”이라며 입단속을 했다. 취재에 응한 대다수 외환딜러들은 시장의 단기 안정은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데 동의하면서, 올 연말까지 예상되는 고점으로 1250~1300원 정도를 꼽았다. 기업은행의 이명훈 팀장은 “미국의 구제금융안이 우리 외환시장을 안정시킬 거라는 점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은행 간 거래가 꽁꽁 얼어 있고, 무역수지 적자가 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시중은행의 외환자금팀 관계자는 “환율이 단기간에 거의 250원 넘게 오른데다, 달러를 벌어오는 수출업체들은 결제를 미루고 달러로 기름을 사와야 하는 정유사들은 선결제를 하려고 안달하는 상황은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올해 초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은 최대 애로 요인도 환율이었다. 전세계적인 원유·원자재 가격 급등 상황에서도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고집하며 서민들에게 물가폭탄을 안겼다. 통계청이 발표한 소비자물가지수는 2월과 3월엔 각각 3.6%와 3.9%씩 올랐고, 7~9월에는 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가 급등하자 정부는 다시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쏟아 부었다. 정부의 개입 방법에 따라 외환시장에는 도시락 폭탄, 알박기, 공룡알, 가랑비, 좀비 등의 신조어가 무더기로 등장했다. ‘도시락 폭탄’은 정부의 대규모 달러 매도가 점심시간에 집중된 것을 빗댄 말이다. 외환딜러들은 달러화가 일정 수준에 이를 때마다 개입하는 전략을 ‘알박기’라고 부른다. 알박기 물량이 클 때는 ‘공룡알’, 작은 규모의 미세 조정은 ‘가랑비’다. 지속적으로 달러를 사도 환율 당국의 매도 개입 물량이 계속 나오는 것은 죽지 않는다는 뜻의 ‘좀비’라고 불린다.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24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서 연일 환율 급등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정부의 외환보유고가 2400억달러 아래로 떨어지면서 외환시장에서 연일 환율 급등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이제는 정부의 어지간한 개입에도 좀처럼 통제가 불가능해진 외환시장 자체가 일종의 ‘좀비’가 됐다. 정부의 외환보유액은 올 들어 9월까지 226억달러 감소한 2397억달러 안팎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정부가 보유 달러를 현물 및 외화자금시장(스와프시장)에 적극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지속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문제는 외환보유액 감소와 더불어 단기외채 등도 증가하고 있어, 시장에서 ‘실탄’으로 쓸 수 있는 외환보유액이 200억∼800억달러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외환시장에서 세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시장에 지나친 쏠림 현상이 발생했을 때 개입을 통해 조절하는 게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인데, 이명박 정부는 한두 달의 상황도 예측하지 못한 채 너무 가볍게 움직인다. 환율이 내려가면 외평채를 발행하고 환율이 올라가면 느닷없이 외환시장에 달러를 퍼붓는 등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했던 몇 달 전의 행위들을 곰곰이 반성해야 할 때”라고 비판했다.

경상적자 지속 땐 절하 압력 당연

시장 참여자들의 자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외국계 은행 외환딜러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우리는 주식이든 환율이든 한 방향만 보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 관련 펀드에 ‘몰빵’하며 금융상품 리스크가 커졌듯, 환율 추세에 대해서도 일방적인 흐름을 확신하는 개인·기업·전문가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최근 수급 불안에 따른 외환시장 붕괴는 철저히 차단해야 하지만, 현재의 환율 수준만 놓고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연구위원은 “지금 환율은 4년 전 수준으로 돌아와 있고, 경상수지나 자본수지가 적자일 때 절하(환율상승) 압력은 당연한 일”이라며 “최근 2~3년의 상황을 돌아보면 환율이 오르든 내리든 우는 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문제였다”고 비판했다.

<font size="4"><font color="#C21A8D">■ 주식시장</font></font>

증시 전망은 외환시장보다 낙관적인 분위기가 우세하다. 추석 연휴 이전 수준의 주가를 회복하진 못했지만, 유럽·아시아의 주요 증시들에 비해 낙폭이 크지 않았다는 평가 때문이다. 적립식이 아닌 거치식 펀드의 경우 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지금이 저가 매수의 적기라며 공격적 매수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익명을 요청한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미국처럼 파생상품 시장이 크진 않다지만, 내년엔 실물경기 침체, 금융 불안, 부동산 거품 붕괴 등이 겹치면서 복합 불황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소기업의 키코 문제 등까지 덫이 되는 상황에서 증시가 표류하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영익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은 파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주식·펀드) 비중을 늘려갈 때”라고 주장했다. 3개월 안에 주가가 1770 안팎까지 회복하고, 내년 3분기까지는 상승세가 이어진다는 것이다. 안수웅 LI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사례를 돌아보면, 미국도 구제금융으로 시장이 빠르게 안정되면서 주가 반등의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연말에는 코스피 지수가 1600선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주가가 고점 대비 35% 이상 빠진 상황인데, 이걸 바닥권으로 볼 수 있다”고 안 센터장은 덧붙였다.

“저가 매수 기회” “반등시 현금화” 갈려

그러나 신중론 또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SK증권의 오상훈 리서치센터장은 “연말 주가는 1300포인트 정도로 보고 있으며, 추세 반전의 시기도 내년 하반기나 돼야 가능할 것”이라며 “특히 수출 경기가 급속도로 후퇴할 우려가 커 기업 실적도 내년 상반기 바닥을 보일 전망”이라고 밝혔다. 오 센터장은 주식·펀드의 비중을 줄일 것을 권유하면서도, 미국 구제금융안 통과 뒤 잠깐 나타날 ‘안도감’ 장세 때까지 시기를 늦추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주택 가격 하락이 멈춰야 세계 금융시장이 안정될 텐데, 아직도 10~15%는 추가 하락해야 한다는 분석들이 많다”면서 “올 연말까지 코스피 지수는 1300에서 1550선을 왔다갔다 할 전망이며, 여유자금이 없는 사람들은 단기 반등 시점이라고 판단될 때를 만나면 주식·펀드를 현금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font size="4"> <font color="#C21A8D">■ 부동산 시장 </font></font>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서울 강남·서초·송파·목동과 경기 분당·평촌·용인 등 ‘버블세븐’ 지역의 아파트값 하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거래가 아예 자취를 감추다시피 한 상황에서, 값을 대폭 낮춘 급매물만 간간이 등장하는 정도다. 분당 새도시에서는 105~109㎡(32~33평형) 매맷값의 저지선으로 여겨졌던 6억원이 붕괴됐다. 인근 용인 성복동 105~109㎡는 심리적 마지노선인 5억원이 무너졌다.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에서는 102~109㎡가 10억원대 이하로 떨어지는 곳이 늘고 있다. 법원 경매에서도 강남 집값은 맥을 못 추고 있다. 지난 9월2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시세 20억원 안팎의 압구정동 미성아파트 153㎡가 16억44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한국은 몇 시인가?

미국발 금융위기 한국은 몇 시인가?

‘버블세븐’ 거래 실종속 하락 가속화

부동산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서울과 수도권 부동산 가격의 추가적인 하락을 피할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부동산 시장도 대출·금융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시장의 대내외적 불안이 부동산 시장을 계속 억누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게 거품이 적절하게 꺼져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서브프라임 사태만큼은 아니더라도 국내 부동산 시장의 심각한 문제가 표출되는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엇갈린다. 후자를 주장하는 전문가들 중 상당수는 추가적인 규제 완화, 돈줄이 막힌 건설사에 대한 정부 지원 등 건설업계의 요구조건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한국 경제 내부의 불안 요소로 꼽힌 것은 주택 건설사들의 부실과 과도한 주택담보 대출이었다. 주로 수도권 이외 지역에 많은 아파트를 짓는 중소·중견 건설사들은 은행이 아닌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이름으로 금리가 높은 자금을 조달하는데, 지방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지고 금리가 오르면 연쇄 부도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 소장은 “묻지마 투자를 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중소·중견 건설사의 붕괴는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게 될 것”이라며 “(업체들이) 얄밉더라도 정부가 연쇄 부도를 막아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처럼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금융 불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 대해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 팀장은 “우리는 주택을 담보로 잡을 수 있는 인정 비율을 50%가 넘지 못하도록 통제해왔기 때문에, 가격 폭락 상황이 아니라면 개인의 자산 손실이 빚어질 가능성은 적다”고 못박았다. 그는 “길게 놓고 보면 우리나라도 미국, 유럽, 캐나다 등과 마찬가지로 2000년대 이후 저금리에 힘입어 집값이 과도하게 오른 측면이 있다”면서 “거품의 조정은 피하기 힘들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도 막아주되 규제완화는 신중

앞으로 국내 부동산 시장, 특히 서울·수도권 아파트의 경우 가격 하락은커녕 급등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종부세 완화, 그린벨트 해제 등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열리는 2010년께에는 폭등하는 모습을 보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시중은행 부동산팀장은 “우리가 외환위기 때 이미 목격했듯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주택 규제를 풀면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상황에선 정부가 복지정책을 쓴다 해도 돈으로 메울 수 없는 중산층의 몰락을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 분야별 전망

미국발 금융위기 충격 분야별 전망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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