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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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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이명박의 미래다?

지지층 ‘배신’하여 위기 자초하고 부동산 정책에 발목 잡히는 등 닮은 운명,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노무현은 이명박의 미래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많은 곳에서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지지층이 불안한 탓에 갈라지기 쉽다. 부동산 정책으로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 ‘확고한 반대층’ 때문에 고전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 뒤에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점이 모두 녹아 들어 있다.

‘이명박 민주당원’ 떨어져 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남 출신으로, 호남 지역과 수도권과 영남 지역의 개혁지향적 표심의 결합으로 16대 대통령에 올랐다. 대통령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는 지지층의 이탈로 줄곧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제일 먼저 이탈한 층은 호남이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분당에 이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차별화 시도로 호남 지역의 지지를 잃었다. 이른바 친노세력도 청와대-정부-당-외곽세력으로 나뉘면서 세포분열을 계속했다. 개혁세력은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자신을 규정짓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갈지자 행보로 등을 돌렸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체결은 그 정점이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지지층이 불안하다. 최재천 전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영남과 서울 강남에 근거한 보수세력과 경제 성장을 기대한 이른바 ‘이명박 민주당원’의 결합으로 당선됐다고 봐야 한다”며 “현재 이명박 민주당원은 대부분 떨어져 나왔다고 봐야 하고, 보수층도 분열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민주당원은 ‘레이건 민주당원’에 빗댄 말이다. 레이건 민주당원은 미국에서 전통적인 민주당원이었지만, 도널드 레이건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보수지만, 경제적으로는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계층이다. 이명박 민주당원은 민주당을 지지했다가 이번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를 선택한 이들인데, 사회적으로는 진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실리추구적인 보수적 성향을 가진 계층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연구실장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계층은 지역적으로는 영남, 이념적으로는 보수, 세대로는 50대 이상, 소득별로는 부유층이라는 전통적인 지지층에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이념적으로는 중도, 연령별로는 30~40대, 소득별로는 중산층들이 결합한 구조”라고 말했다. 한 실장은 “2월의 ‘강부자’ ‘고소영’ 내각 파동을 거치면서 수도권의 30~40대 중산층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3~4월 공천 파동에서 영남의 친박근혜 보수세력이 대거 이탈하기 시작했다. 5~6월의 쇠고기 촛불정국에서는 수도권의 30~40대 중산층이 완전히 등을 돌렸다. 10%의 지지율은 이런 이탈의 결과였다”고 말했다. 8월 들어 25~30% 정도로 회복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친박세력의 한나라당 복당과 진보세력의 결집에 위기감을 느낀 전통적 보수층의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다.

이른바 ‘친이명박 세력’의 분열과 갈등도 친노세력의 그것과 유사하다. 친이명박으로 분류되는 한 초선 여당의원은 “이상득 의원과 정두언 의원의 권력투쟁에 이재오 전 의원의 미국행으로 친이세력은 완전히 무너져버렸다”고 말했다.

보수층을 갈라놓을 수 있는 뇌관들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변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이명박 지지층을 구성하고 있는 보수층 중 상당수는 박근혜 전 대표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갈라져 나올 수밖에 없다”며 “박근혜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영남 보수층은 대거 이명박 지지에서 이탈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 역시 큰 변수다. 불교도들이 가장 많은 지역이 부산·경남과 대구·경북 등 영남권이다. 친박근혜 성향이 강한 이들 영남 불교도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찍었지만, 이명박 정부의 친기독교적 성향에 대한 불만이 높다. 8월27일로 예정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 영남 쪽 사찰과 신도들이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범불교도대회를 준비 중인 불교계 인사는 “범불교도대회 이후에도 정부의 가시적인 조치가 없을 경우 영남권에서 가장 먼저 지역별 범불교대회를 열어 정부를 압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 비수도권을 적으로?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은 것은 부동산 정책이었다. 노무현 정부는 자신들의 집권 전략인 ‘수도권 대 지방’의 구도에 따라서, 수도권의 부동산을 묶고 지방의 부동산 개발을 촉진하는 전략을 썼다. 그러나 지방에 풀린 부동산 개발자금은 되레 강남으로 유입됐고, 전국적인 개발 열기는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강남권 아파트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해 정권 중반부터 종합부동산세(종부세) 도입과 재개발 규제, 개발이익 환수제도 도입 등을 서둘렀지만, 이는 아파트 소유자의 정권 외면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 4월 총선 때 수도권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킨 ‘아파트 투표’는 그 후폭풍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강남 재건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8·21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전날에는 인천 검단·오산 세교 지구에 신도시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재건축 완화를 통해 강남 중산층들의 마음을 잡고, 신도시 건설을 통한 경기 부양으로 밑바닥 민심도 잡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의 토대를 더 허약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연구위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IMF 충격을 조기에 벗어난다는 명목 아래 재건축과 전매 제한 완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 폐지 등 대대적인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가 그 부작용을 노무현 정부가 극심하게 치렀다”며 “결국 자신들이 정권을 쥐고 있는 동안 반짝 경기를 살리겠다고 장기적인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아파트 가격의 상승은 장기적으로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게 된다. 남 연구위원은 “중산층은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명목상의 소득은 증가하지만, 증가한 금융비용으로 가처분 소득을 줄여야 한다. 무주택층도 전세 가격 상승과 내 집 마련을 위한 투자 등으로 가처분 소득이 줄게 된다”며 “소수 부유층의 소비는 늘어날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결국 내수 감소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정책의 정점에는 종부세 논란이 있다. 한나라당은 당 정책위원회와 정부 간의 논의를 거쳐 10월께 부동산 세제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종부세에 대해서는 좀더 신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겠지만, 1가구1주택자 중 종부세를 부담하기 힘든 연금생활자 등 노령층에 대해서는 종부세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정도에는 당내의 공감대가 이뤄진 상태”라고 전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2005년 종부세 도입 당시 기준시가를 9억원으로 하고, 세대별 합산이 아닌 개인별 합산으로 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종부세는 한국에서는 상위 2%에 부과되는 일종의 ‘부유세’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며 “정부가 어떤 형태든 종부세를 건드리게 되면 민란에 가까운 민심의 저항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귀영 연구실장은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중산층의 이기적인 욕망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겠다는 전략인데, 이는 결국 무주택자와 비수도권을 적으로 돌릴 가능성이 높은 정책”이라며 “노무현 정부가 강남으로 상징되는 아파트 소유층과 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부동산 정책 전반이 실패한 점을 곱씹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위임 민주주의’의 실패인가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최근 나온 감세 방침과 부동산·교육정책 등을 보면 청와대와 여당이 한나라당 지지층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중도적 성향의 지지자들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사실상 25%만을 선택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이경헌 대표는 “정부와 여당은 180석이라는 거대여당의 힘을 믿고 9월 정기국회부터 밀어붙이기 강경 드라이브를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이에 맞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은 선명성 경쟁 등의 압력 때문에 대화보다는 대치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고, 결국 18대 국회는 제대로 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허약한 견제세력(야당) 때문에 보수는 긴장감을 잃어버리고 잦은 내부 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국회의 약화로 이어진다. 국회와 정당정치의 약화는 한국 정치 전체의 비극이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대표(정치학 박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라는 여당을 믿지 않았고, 국회의 권능도 무시하려는 성향이 강해 국면마다 자신이 직접 나서 국민과의 대화를 시도했다”며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성향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정당의 대표로 출마해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집권 뒤 유권자와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일방적 권한만을 행사하려는 방식을 정치학에서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로 정의한다. 중남미의 대통령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개념인데, 불행히도 한국적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정책 실패의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초기에는 인기를 끌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지지도의 하락이 불가피하다.

대통령이 집권여당을 무시하면, 집권여당에서도 대통령을 무시하게 된다. 이른바 차별화의 시작이다. 박상훈 대표는 “대통령이 정당을 통제하는 힘이 약하면 다음번 대선에 도전하려는 이들이 자유로워진다”며 “다음번 대선을 준비하려는 이들은 일찍부터 대통령과 거리를 두려고 하고, 이는 총체적인 대통령의 통치 위기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기는 자신을 찍어준 이들을 배신하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명박 정부 성공의 핵심은 ‘실용정신’의 회복이다.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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