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에서 온 사와이의 사투와 필리핀에서 온 에밀린의 신혼생활
▣ 부여=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사와이(49)씨가 사륜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쌩하고 달려든다. 고추밭에 간 그를 데리러 갔던 신재현(52)씨의 사륜 오토바이도 그 뒤를 따라온다. 사와이씨가 사륜 오토바이의 뒤 짐칸에서 대야를 꺼낸다. 그는 오락가락하는 비를 피해 축사 옆에 펼쳐둔 자리에다 고추를 부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는 집 앞의 나무 밑에 철퍼덕 앉았다.
시아버지가 쓰러지자 시어머니는 정신을 놓고
구교4리는 아니지만 ‘효부상’까지 받은 이주결혼 여성이 있다고 해서 찾아나섰다. 사와이씨의 집은 충남 부여군 임천면 구교3리 첫 집이다. 마을 큰길에서 갈려나온 길은 사와이씨의 집과 닿으면서 끝이 들렸다. 그래서 사와이씨가 앉은 곳에서 논과 산과 동네가 한눈에 굽어보인다. 마찬가지로 동네를 굽어보는 집 한쪽에 원두막이 마련돼 있다. 원두막에는 시어머니, 시아버지 두 분이 거의 종일을 앉아 있다. 담배를 끊은 시아버지는 끊임없이 누룽지 사탕을 집어든다. 끝까지 녹이지 못한 사탕을 길에 툭 뱉어내면 강아지 은지가 쪼르륵 달려간다. 시아버지가 이렇게 먹는 사탕이 일주일에 세 봉지다.
사와이씨는 2000년에 신재현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또렷하게 날짜를 짚어나갔다. “1999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에 교회(통일교) 맞선을 했습니다. 타이에서 신부 200명이 왔습니다. 타이로 돌아가 서류를 마련하고는 다시 한국으로 와 2000년 2월14일에 결혼했습니다.”
그는 타이 중부지방에서 태어났다. “부여에 해당하는 것이 나콜라시마, 임천면에 해당하는 것이 암프 농숭, 구교3리에 해당하는 것이 농크아춧, 제가 태어난 곳입니다.” 2살 때 부모님을 잃고 이모집에서 자랐다. 중학교까지 학교를 다니고 농사를 도왔다. “타이에서 농사짓기 편해요. 약도 안 주고 비료도 안 주고. 모내기하고 풀만 매면 돼요.” 26살에는 방콕으로 나와 공장에서 일했다. 기계 뜨개질을 하는 공장이었다. “남자는 그냥인데 여자는 돈을 벌어야 해요. 돈을 벌어 친정 어머니, 아버지에게 집으로 돈을 보내야 하지요.” 남자친구도 잠깐 사귀었다. 결혼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자 헤어지게 됐다. 그 뒤 다니게 된 교회에서 맞선을 보라고 권했다. 40살 때 일이다. “한번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됐다.
결혼하고 6개월 만에 혜선이가 생겼다. “말도 없고 듣는 것도 힘들어요.”(그는 과거형을 현재형으로 얘기하곤 했다.) 아픈 데가 없는 게 다행이었다. “제가 몸이 아픈 게 없어요. 아파도 조금만 아파요. 애기 가졌을 때 조금 힘들어요.” 2001년 5월30일 혜선이가 나왔다. 시아버지는 건강하셨고 남편은 시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었고 사와이씨는 아기를 보면서 집안일을 주로 했다. 그래도 집안은 어려웠다. 2003년에는 처녀 시절 산 금목걸이를 팔았다. 거기서 생긴 돈 20만원은 혜선이한테 필요한 이것저것을 사는 데 썼다. 2005년 혜선이도 유치원에 다니게 되어 부여에 있는 비닐 차덮개 공장에 취직을 했다. 공장에서 열흘을 일했을 때다. 시아버지가 논에서 쓰러졌다는 연락이 왔다. 풍이 왔다. 시아버지는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 정신을 놓은 시어머니도 며칠을 앓으셨다. 일어난 시어머니가 윗도리를 입는데 안과 겉, 앞뒤를 몰랐다. 밥 지을 줄도 몰랐다. 아들에게 “이름이 뭐여” 하고 물었다.
마을 평균 2.2명의 외국인 신부
시아버지가 입원을 하고 시어머니가 정신을 놓은 사이, 남편은 우두서니였다. 설마설마하던 일이 청천벽력같이 다가왔다. 남편은 농사를 따라 지었던 거지 혼자서는 지을 줄 몰랐다. 사와이씨는 딸을 보며 끝없이 중얼거렸다. “우리가 할 수 있잖아. 해야지. 다 할 수 있어.” 논 15마지기, 밭 150평의 일이 몽땅 사와이씨에게 떨어졌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일을 하고 아침 7시 반에 들어와 시아버지, 시어머니 똥오줌을 치우고 밥을 차려드리고 혜선이를 학교에 보낸다. 잠깐 들렀던 동네 어르신이 말 한마디 거든다. “요즘 시어머니, 시아버지 안 모실라고 하지, 이런 사람이 없어. 동지섣달 눈이 쌓여도 안 놀아. 마을에서 칭송이 높아요.” 6월14일에는 부여 라이언클럽에서 효부상을 받았다.
사와이씨는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한다. “여기서 바라보고 있으면 좋아요. 타이에는 이런 게 없어요. 산도 없고 집도 없고 비닐하우스도 없고 논만 있어요.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눈, 봄에는 초록, 타이는 이런 게 없어요.”
사와이씨는 완연한 한국의 ‘가장’이다. 눈물이 날 법한 이야기에도 담담하다. 사와이씨의 사투는 특별하지만 그의 위치가 한국 농촌에서 특별한 것은 아니다. 올해 초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국 군 단위 2개 마을 중 1곳에는 결혼이주 여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있다고 응답한 곳의 43.4%는 1명, 2∼3명이 있다는 곳도 44.2%에 달했다. 평균 마을당 2.2명으로 집계됐다.
구교4리에서 몇 년간 이루어진 결혼식에서 신부 자리는 모두 외국에서 온 여성이 섰다. 7년 전 베트남 신부가 한 명 재혼 자리로 들어왔다. 중국 여성과 결혼한 집도 있는데 지금은 대처로 나갔다. 중국 동포와 결혼한 한 가정은 수원으로 나가 산다. 중국 동포와 결혼한 또다른 가정은 며느리가 아기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다. 현재 구교4리에는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 가정이 하나, 필리핀 결혼이주 여성 가정이 둘, 정부의 공식 명칭인 ‘다문화가정’이 이렇게 셋이다.
필리핀에서 온 앨라이자 크루즈 아불린씨와 에밀린 누피아노(30)씨의 남편은 외사촌 간이다. 앨라이자씨가 먼저 시집을 왔다. 지지난해 말 아들 찬우를 얻고 지금 임신 4개월이다. 남편 지한선씨의 고모 되는 지영자(63)씨는 이 필리핀 신부가 단정하고 마음에 들었다. 당시 셋째아들 최종찬씨의 나이 만 33살. 얼마 안 됐지만 금세 40이 되고 50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일을 추진했다. 다니던 교회의 목사가 필리핀의 목사와 연락이 닿았다. 최씨는 필리핀으로 날아가 한 달을 머물며 서류를 마련했다. 지영자씨도 며느리를 보러 필리핀으로 날아갔다. 남편 쪽에 비하면 에밀린씨는 ‘덜 조직적’이었다. 목사의 제안을 받고 자신의 사진을 보내주었다. 왜 맞선 상대의 사진은 안 보내냐고 물었는데, 최종찬씨가 필리핀에 도착했다. “이전에는 외국인과 결혼하는 것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놀라웠다.” 지난해 최씨가 4월 말에 도착한 필리핀에서 5월29일 결혼식이 이루어졌다. 에밀린씨에게 남편의 첫인상은 “열심히 일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일하던 패스트푸드점에서 1년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으로 떠났다.
“생선 요리하라니까 튀겨버리데”
에밀린씨는 올 5월 딸을 낳았다. 8개월 만의 조산이었다. 1.3kg의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한 달을 지냈다. 인큐베이터를 나오자 아기는 부쩍부쩍 자랐다. 딸 이름은 에밀린씨가 앨라이자씨에게 물어 ‘민지’를 낙점받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잘 대해주지만 낯설고 물선 곳에서 에밀린씨의 마음고생은 심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면 앙금을 털어낸 이야기들은 풀려나온다. 이런 이야기들. 오래간만에 큰며느리가 집을 방문했는데, 시어머니가 부엌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며 잘 대해주었다. 에밀린씨에게만 이것저것 시키니까 슬그머니 ‘내가 외국인이라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복지부에서 파견한 한국어 교사 황희선 선생님이 시어머니 지명자씨에게 이런 사정을 전하자 지씨는 “그래, 다음번에는 일거리를 다 내놓고 함께 국을 끓이고 무침을 하자”고 제안했다. 시아버지 최영섭(66)씨는 “낚시를 해온 붕어를 요리하라고 하니까, 튀김을 해버리데. 거기는 뭐든 다 튀겨버려. 찌개를 끓이면 맛있는데 말이지.” 시아버지의 ‘찌개 대신 튀김’은 양반이다. 에밀린씨는 김치 냄새가 정말 싫었다. 초반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없었다. 임신 중에는 특히 심했다. 별명이 ‘미스 브레드’였던 사람이었다. 그런 에밀린씨는 지금은 가리는 것 없이 다 먹는다.
에밀린씨는 필리핀 방가시네 루나 칼리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했다. 1998년에 들어가 2002년에 졸업했다. 일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학교를 다닌 때보다 휴학이 더 많았다. 필리핀의 공식어 타갈로그어 외에 교육기관어인 영어도 잘 구사한다. 남편은 에밀린씨와 영어로 이야기를 나눈다. 최영섭씨는 “우리 종찬이가 영어 선생님을 하나 구했어. 영어 공부하려고 만날 지들끼리 영어로만 이야기해”라며 농담 섞어 섭섭함을 표현했다. 시어머니는 둘에게 영어로 이야기하지 말고 한국말로 하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생활을 해야 하는 거잖어.” 그걸 들은 장용미 선생님(앨라이자씨의 육아교육 담당)은 “한국에 살러 왔지만 한국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때때로 외롭다, 그래도 행복하다”
7월24일로 5개월간 진행된 에밀린씨의 한국어 방문교육이 끝났다. 황희선 선생님은 마치면서 “말이 부쩍 늘어가는 지금이 제일 중요한 시점이다. 센터로 꾸준히 교육을 들으러 오라”는 충고를 던졌다. “우리 며느리가 참 똑바르고 똑똑혀”라고 말하는 지명자씨와 며느리 사이에 여전히 의사소통은 원활하지 않다. 지명자씨는 며느리가 뭘 하고 싶은지 한번 물어봐달라고 말한다. 에밀린씨는 말한다. “결혼은 어렵다. 가족이 있지만 문제는 있고 때때로 외롭다.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행복하다. 지금도 잘해주시지만 어머니가 딸같이, 허물 없이 대해주었으면 좋겠다.” 필리핀과 한국 중에 골라서 산다면 어디에서 살고 싶을까. “하나만 선택해야 된다면… 남편은 타갈로그어를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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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신부와의 결혼은 한국 농촌의 전형적인 결혼 형태다. 2007년 농림어업 종사 남성의 결혼 가운데 41.0%가 국제결혼이었다(통계청). 옛 행정자치부의 2007년 4월 통계에 따르면, 전국에 거주하고 있는 국적 미취득 결혼이민자와 혼인귀화자는 총 12만6955명으로 이 가운데 12.5%인 1만5847명이 농촌 지역(군단위)에 거주하고 있다. 이 중 98.0%가 여성이다.
농촌 지역 여성 결혼이민자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최근 조사는 ‘결혼이민자 가족 실태조사 및 중장기 지원정책 방안 연구’로 전국 1177가구가 조사 대상이 됐다(전북대 사회학과 설동훈 교수, 2006년). 이 조사에 따르면, 농촌 지역 여성 결혼이민자는 전체 결혼이민자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 동포와 중국 한족의 비율이 적다. 대신 베트남 출신이 25.6%, 일본 출신이 12.1%, 필리핀 출신이 10.2%, 타이 출신이 3.7%로 동남아 국가와 일본 출신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결혼이민자와 배우자의 평균연령을 비교해보면 배우자가 평균 9.8살 많다. 여성 결혼이민자의 평균연령은 31.1살인 데 비해, 배우자의 평균연령은 40.7살이다.
교육 수준에서는 농촌에 거주하는 여성 결혼이민자 중 중졸 이하가 29.0%, 고졸은 42.7%, 전문대졸 이상은 26.6%이다. 배우자의 교육 수준과 비교해보면 여성 결혼이민자 중 77.8%가 배우자와 교육 수준이 같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절반이 넘는 수의 체류 기간이 2년이 안 된다. 1년 미만인 경우가 30.6%이며 2년 미만인 경우가 23.7%로, 54.3%가 한국 생활이 2년이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2~3년 미만인 경우는 16.8%, 3~4년 미만은 8.1%, 4~5년 미만은 4.9%, 5년 이상은 16.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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