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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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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은 왜 이렇게 자유로운가

등록 2008-07-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정국 주도권 찾기 위해, 시위대 도발 위해 거리낌 없는 경찰… 〈PD 수첩〉 검찰 수사 등 국민 기본권 제한하는 보이지 않는 폭력도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폭력에 관한 한 한국은 외눈박이다. 시민의 물리력 행사에는 과민 반응하지만,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에는 너무 둔감하다. 두 달 넘는 촛불 정국 동안 보수언론은 온통 시위대의 행위에만 두 눈을 부릅뜬 채 그들의 행위를 ‘폭력’이라고 일컬었다. 하지만 숱하게 자행된 공권력의 폭력은 ‘폭력’이라고 부르기조차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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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집회를 하는데 전·의경이 서 있는 것 차제가 국가가 위력을 과시하는 행위인데도 시위대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며 “우리 모두가 국가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박래군 한겨레21인권위원(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은 “국가가 만든 법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는 국가 우위의 사고 구조 때문”이라고 여긴다.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포섭된 결과라는 것이다.

공권력 집행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후퇴

문제는 법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국가폭력은 정당하느냐는 것이다. 정부는 ‘미신고 불법 집회에 대한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는 논리를 펼치면서, 집회및시위에관한 법률(집시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을 무기로 각종 폭력을 행사한다. 법은 국가가 가진 가장 큰 무기이자 폭력을 행사하는 근원이다. 하지만 촛불집회·시위가 ‘형식논리적으로’ 합법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모든 경찰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대영 경실련 사무총장은 “현행 법률을 위반할지라도 헌법이 보장한 자유권의 범위 안에서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집회시위를 폭압적으로 탄압하는 건 명백한 민주주의의 후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촛불집회에 대응하면서 시위대의 폭력성을 부추기고 이를 부각시켜 정국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의도적인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지난 6월30일 새벽 경찰버스 차벽을 열고 전·의경을 투입해 의도적인 도발을 감행한 게 한 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국가폭력이 정당성을 잃은 대표적인 예로 본다. “국가가 평화적인 촛불시위를 함부로 진압하지 못하다가, 추가 협상 뒤 시위를 종결시키기 위해 폭력을 유발한 건 스스로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 교수는 “국가 공권력의 행사는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뿐만 아니라 상황에 대한 판단이 정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폭력은 시위 현장에서의 가시적인 물리력 행사를 넘어 더욱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법의 이름을 빌려 문화방송 〈PD수첩〉에 대해 수사에 착수하고 누리꾼들의 조·중·동 광고주 압박운동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이라고 결정한 일 등이 그것이다. 눈에 보이는 폭력은 국민이 쉽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되레 문제가 덜 될 수 있다. 합법의 이름 아래 기본권을 제한하고, 수사권이라는 국가의 독점적 권한을 통해 압박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에 훨씬 더 은밀하고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를 지낸 김갑배 변호사가 분노하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국가권력이 짜놓은 담론의 구조를 뛰어넘음으로써 국가폭력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고 본다.

“촛불집회를 주최 쪽에서 ‘문화제’로 부르는 것도 문제다. 촛불집회는 정치성 집회 아닌가? 이는 이혼 뒤 재결합으로 인해 (아버지와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이가 차별을 받으면 차별하는 풍토 자체를 바꿔야 하는데, 아이 성을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격이다. 헌법 정신에 비춰 야간집회도 허용돼야 하고 신고하지 않는 집회를 열 수도 있다. (이를 제한하는 집시법 등에 대해) 불복종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주최 쪽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다.”

“촛불집회를 왜 문화제라 부르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이른바 ‘민주정권 10년’이란 허울뿐이라고 비판한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을 거치는 동안 우리 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당 부분 달성됐다고 믿지만 국가폭력을 제어하기 위해 제도적 측면에서 필요한 변화는 없었다는 인식이다. “정치 세력을 선택하는 문제 못지 않게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의 문제도 중요하다. 현행 집시법은 대부분의 집회를 불법으로 만들고 해산할 수 있을 정도로 자의적으로 운용되고 있지만, 지난 10년 동안 이런 집시법을 비롯해 국가보안법, 선거법 등에서 어떤 큰 변화가 있었나? 지금도 국민의 기본권과 의사 표현 자체가 합법의 이름으로 통제될 수 있는 상황을 고치지 못하고 이제 와 후회하는 것 아니냐.”

수사·심의기관을 통한 광범위한 국가폭력은 물밑에서 계속 진행 중인 가운데, 경찰의 현장 폭력은 일단 잦아든 모습이다. 이제부터는 폭력을 먼저 행사하는 쪽이 촛불 정국의 마지막 주도권을 잃게 된다. 국가폭력의 인내심이 어디까지 갈지 관심을 끄는 이유다.



피의자가 된 경찰

막무가내 연행, 살수차도 위법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눈에 띄게 명백한 불법 폭력을 저질러 수사기관임에도 피의자 반열에 오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게 미란다 원칙 고지 없이 시위대를 체포하는 행위다. 형사소송법 제200조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 피의 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은 촛불이 켜진 뒤 지금까지 시위대 1천여 명을 체포해 이들 중 상당수를 경찰서로 데려가 48시간 동안 조사를 벌였지만, 연행된 이들은 대부분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은 바 없다”며 경찰의 불법 행위에 몸서리치고 있다.
아무 때나 이뤄지는 불심검문 때도 경찰의 불법은 계속된다.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불심검문 때 경찰관의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검문을 하는 사유를 알리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불심검문에 나서는 대부분의 전·의경은 이러한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살수차를 근거리에서 직접 쏘는 행위도 물론 위법이다. ‘경찰장비의 사용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살수차를 사용할 때 발사 각도를 15도 이상 유지하고 20m 안쪽의 시위대에게는 쏘지 말도록 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이 규정이 지켜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지적이 인권단체들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음에도 경찰은 시정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이 잇따라 어청수 경찰청장 등을 고소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기로 한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되는 게 경찰의 이런 명백한 불법 행위다. 민변은 지난 7월2일 어 청장을 비롯해 한진희 서울경찰청장, 서울경찰청 특수기동대장과 경비과장, 종로경찰서장 등 경찰 관계자들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어 청장은 이미 폭행을 당한 시위대 여러 명에게 직접 고소를 당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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