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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황혼에 촛불을 켜다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시장만능은 전세계적인 저항 불러일으키며 퇴조… 이명박 정부의 시대착오적 정책에 제동 거는 시민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올해 초 한국에 온,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타인 예일대 석좌교수는 “신자유주의와 탈규제 등은 이미 끝자락에 있고 세계는 이제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러스타인뿐 아니라 홉스봄도 이미 1980년대 말에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실적은 완전히 불신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영화를 강조해온 자유시장 근본주의는 21세기 들어 불만과 불신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의 성격을 둘러싸고 이는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저항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른바 ‘반세계화 운동’이 세계화되는 현실이 한국에서도 출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과연 촛불집회를 ‘신자유주의 공포’에 대한 국민의 저항으로 볼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때문에 지지한 건 아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이번 촛불집회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본격적인 저항인지 여부는 판단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흐름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고 본다. 민영화와 감세, 복지 삭감 등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이런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대해 ‘일정한 한계를 그으려는’ 시민들의 행동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사회학)는 “신자유주의는 조세·검역·의료 등 국가의 주권이 작동하는 영역을 약화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며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도대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위한 정부가 맞냐?’고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주장하는 건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제동을 거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다수의 국민들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건 나눠먹을 파이가 줄어들어 먹고살기 힘들어진 경제 상황에서 경제성장을 지지한 것일 뿐 신자유주의 정책 기조를 지지한 건 아니다. 김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쟁 체제에 익숙해져 있는 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교육에서 경쟁은 좋지만 오버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건, 또 의료·수돗물까지 민영화하는 건 곤란하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가 사람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긴 하지만, 먹을거리에 대한 검역주권, 교육, 의료 등은 신자유주의적 정책 기조에서 배제돼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게 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신자유주의를 잘하면, 또 대운하를 파면 경제가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도한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의심이 꺼지지 않는 촛불집회의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 6월14일 과 고려대 갈등연구센터가 공동으로 촛불집회에 참가한 중고생 333명을 대상으로 벌인 면접조사를 보자. ‘광우병 쇠고기 관련 촛불집회가 끝난 이후, 교육·대운하·한-미 자유무역협정(FTA)·민영화와 관련된 촛불집회가 있다면 어느 정도 참여하겠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응답자들은 대체로 ‘(적극) 참여하겠다’(교육 문제 67.8%, 한반도 대운하 62.3%, 한-미 FTA 61.7%, 공기업 민영화 60.8%)고 대답했다. (과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상당한 반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콘텐츠학)는 “월러스타인 등이 신자유주의가 퇴조 국면이라고 말하는 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촛불 저항은 생활의 문제를 고치려는 대중들의 생활정치이고 생명정치다. 생활에 기반한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감수성이 촛불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도 “추상적인 신자유주의란 말보다는 시장만능주의, 약육강식주의 등으로 부르는 게 더 낫다”며 “촛불집회는 사람답게 먹고 살고 싶다는 욕망이 표현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웰빙’으로 대표되는 몸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나고 있는데, 광우병 쇠고기 반대는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얘기다. (유물론이 아니라) 이른바 ‘유체(唯體)론’이다.

왜 넥타이는? 왜 20대는?

흥미로운 건 집회 현장 참가자들을 집단별로 구분해볼 때 10대와 여성이 촛불을 주도하고, ‘직장인 넥타이 부대’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다. 30∼40대 샐러리맨들은 신자유주의적 흐름에 이미 익숙해져 있거나 이를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일까? 물론 직장인 참여율이 저조한지 여부는 참가자 전수조사를 해봐야 제대로 확인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홍성태 교수는 “거리에 여학생과 주부가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30∼40대 직장 남성들은 인터넷에서 촛불시위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고 본다”며 “샐러리맨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고 일상이 시스템화돼 있어 집회 참여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은 기존 정치권력을 둘러싼 민주화운동에 나섰던 세대들인데, 지금은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 인터넷 등 다양한 경로로 바뀌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 남성 직장인들은 밥과 고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고, 이 때문에 광우병 쇠고기 반대 집회 현장에 선뜻 참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김종엽 교수는 “나도 촛불집회에 나갈 때면 모자 쓰고 청바지 입고 운동화를 신는다. 옷차림만으로는 집회 현장의 직장인 참가자가 잘 안 보일 수 있고, 체력의 부담도 있어서 새벽까지 남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김종엽 교수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자신들의 생활 기반을 고려할 때 20대 대학생이 모든 계층 중에서 가장 먼저 집회에 나와야 할 집단인데도 이들은 이번 촛불집회에서 보수적 혹은 지체된 집단으로 나타났다”며 “10대는 광우병 쇠고기에 교육 문제를, 의료인들은 의료민영화 쟁점을 같이 끌고 나온 반면, 대학생들은 청년실업 문제 등을 쟁점화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좌파 경제학자 그레고리 앨보는 (필맥)에서 “신자유주의는 정치적 발화 지점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흡인력이 약화되고 있다. 21세기에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해놓은 일에 이의를 제기하는 ‘항의의 태풍’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촛불집회를 인간다운 삶과 생명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전개하는 항의의 태풍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앨보 등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그 정치적 정당성의 상당 부분과 대중적 호소력의 거의 전부를 최근 10년 사이에 잃어버렸다. 민영화·재정긴축·고금리 등을 앞세우면서 1980∼90년대에 기세 좋게 항진해 세계를 지배하기에 이른 신자유주의가 이제는 정치적 부채가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기양양하던 신자유주의의 웅변은 이제 지친 목소리가 됐고, 더 이상 유권자들의 표를 얻을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역전이 일어났다. 신자유주의는 소득과 고용의 사회적 불평등, 사유화된 공공자산에 대항하는 사회적·정치적 투쟁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유럽과 남미 등 전세계 많은 곳에서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 정부들이 패퇴하고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다시 집권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는 여전히 경제정책을 지배하고 있고 스스로 붕괴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일부 진보적 경제학자들이 “신자유주의 흐름이 끝물에 이르렀고, 자유시장 근본주의는 실패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파산을 맞고 있다”고 말하지만, 영국 블레어 정부와 독일 슈뢰더 정부 그리고 브라질 룰라 정부에 이르기까지 사회민주주의 정부조차 어떤 의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강력히 촉진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여정부를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촛불집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시장주의에 대한 불신이 한층 팽배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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