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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제론 역부족?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역사적으로 여당 견제론이 늘 작동했으나 지금 신당에겐 조건 충족시키는 요소 없어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지난 1월22일 국회 브리핑룸. 박상천 민주당 대표가 ‘새로운 정당 구도와 정치 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하여, 통합과 쇄신을 위한 제언’이란 제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는 “이러한 정당 구도로 총선이 치러진다면, 차기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개헌선을 넘는 국회의석을 확보할 것”이라며 “이미 대통령직과 호남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의 지방자치단체를 장악하였으므로 국회까지 완전히 장악하면 무소불위의 일당 독주 체제를 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 안정론이 정부 견제론보다 우세

그가 에둘러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통합 배경으로 내건 건 ‘견제론’이었다. 뜻 모아, 힘 모아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견제해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1월11일 문화방송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갤럽에 의뢰한 조사 결과를 보면, “정치 안정을 위해 한나라당이 더 많이 당선되는 것이 좋다”는 응답이 52%로 나타났다. “권력 견제를 위해 야당이 더 많이 당선되는 게 좋다”는 응답은 36.6%로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국정 안정론’(61.3%)이 ‘정부 견제론’(36.1%)보다 높게 나타났다. 안정론이 우세한 셈이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한나라당의 ‘권력 독점’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총선 때까지 불과 두 달 남짓 남았다. 김윤재 정치컨설턴트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을 평가하기엔 시간이 너무 짧다”며 “신당의 손학규 체제가 이명박 당선자가 내걸었던 경제 패러다임을 인정했기 때문에, 견제나 비판을 해줄 야당을 원하는 국민들이 통합신당에 투표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역사에 기댄 분석도 있다. 국민들이 1988년 이후 전략적으로 판단해 어느 한쪽에 권력을 몰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도 견제론이 크게 작동할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 1987년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국민들은 이듬해 ‘여소야대’ 국회를 만들었다. 또 1998년 김대중이 대통령으로 뽑히자,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제1당으로 만들어줬다. 2004년 탄핵 역풍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개헌 저지선만은 만들어달라”고 호소해 121석을 획득했다. 얼핏 ‘보이지 않는 손’이 견제론으로 작동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견제론의 역사엔 ‘정치적 조건’들이 숨어 있다. 1988년엔 야당에 한국 현대 정치사를 주무른 ‘3김’이 있었다. 2000년엔 김대중이 집권한 지 몇 년이 흐르면서 실망층이 늘고, 반대로 건국 이후 처음으로 정권을 내준 한나라당이 상당한 수준의 인적 청산을 이뤄내고 영남 지역주의를 강화한 것이 작용했다. 2004년 총선에서도 ‘잔다르크’처럼 등장한 박근혜와 천막당사 이전, 큰 폭의 물갈이 등 당 쇄신이 한나라당을 몰락에서 구해냈다.

“저쪽에서 큰 실수 하기만 바랄 뿐”

신당엔 ‘견제론’을 작동시킬 만한 역사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그다지 없어 보인다. ‘3김’은 퇴장했고, 이명박 정권이 집권한 지 두 달 만에 총선이 치러지며, 박근혜와 같은 메시아가 없다. 또 호남은 영남에 견줘 지역적으로 소수일 뿐이다. 견제론이 힘을 얻기 어려운 조건들이다. 신당 관계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며 “저쪽에서 뭔가 큰 실수를 해서 견제 심리가 작동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4월9일 유권자들은 어느 쪽에 ‘표심’을 실을까? 견제론, 아니면 안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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