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필리핀에서 건너온 ‘춘희’들

등록 2008-01-25 00:00 수정 2020-05-03 04:25

가수로 비자 받은 뒤 기지촌 성매매에 내몰려… 피해 여성 늘어나는데 지원시설 턱없이 부족

▣ 동두천·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몇 가지 물어봐도 괜찮아요?”

“네.” 능숙한 한국어로 필리핀 여성 샌드라(23·가명)가 말을 받았다. 그는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의 한 미군 전용 클럽에서 1년4개월째 바텐더로 일하고 있다. 고향은 필리핀 마닐라고, 집엔 부모님과 여동생 둘, 남동생 하나가 있다고 했다. “얼마를 버냐”는 질문에는 즉답을 피했다. 평소 안면이 있던 클럽 사장이 “내 친구니까, 그냥 말해도 돼”라고 거들자 그제야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한 달에 600달러를 벌 때도 있고, 1천달러를 벌 때도 있고….” “기사를 쓸 거면 내 이름은 가명으로 해주세요. 친한 미군들이 많아서.” 샌드라가 난처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저만치에서 필리핀 여성 네다섯 명이 무리지어 클럽으로 들어오는 미군들을 기다리고 있다. 말이 어수선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아이를 낳고 미군에게 버림받아

샌드라에게는 한국에서 일하다 알게 된 세 필리핀 친구가 있다. 모두 ‘GI’(Government Issue·미군이라는 뜻의 군대 은어)와 사귀다 아이를 낳았다. 그중의 하나인 제니(26)는 지난해 12월 한국을 떠나 필리핀으로 돌아갔고, 다른 두 명은 아직 한국에 머물고 있다. 샌드라는 “처음엔 결혼하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제니에게 제대로 생활비도 안 보내준다”고 말했다. “그냥 우리랑 재미를 본 거죠. 속았다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죠.” 제니의 출산 예정일이 가까워지자 친분이 있던 필리핀 여성들이 100달러씩 걷었고, 동두천에 있는 한 산부인과에서 ‘야매’로 아이를 낳았다. 샌드라는 “병원 이름은 한국말로 쓰여 있어 읽을 수 없었다”고 했다.

샌드라의 친구 모니카(24·가명)는 동두천 보산동의 ‘폰숍’에서 일한다. 미군 부대 주변에는 외국인 명의로 개통할 수 있는 임대폰이나 전화카드를 파는 ‘폰숍’이 많다. 그곳에서 한 달에 600달러를 번다(정말 그렇게 버는지 알 수 없다). 미군 남자친구와 관계를 맺은 뒤 임신했고, 8개월 전에 딸을 낳았다. 미군은 혼인신고는 해줬지만, 지난해 7월 별다른 말도 없이 미국으로 떠났다. 남편은 300달러씩 보내오는 달도 있고, 별다른 소식이 없는 달도 있다. 그는 “아이가 있어서 클럽에서는 일하기 힘들다”고 했다. 낮 동안에는 보모에게 아기를 맡기고 한 달에 200달러를 준다. 다른 친구인 에바(28·가명)는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아이는 같이 생활하기가 힘들어 필리핀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손에 들려 부모님께 보냈다.

한국전쟁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한국 사회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믿기 힘든 경제성장을 이뤄냈고, 올림픽을 개최했고,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강에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 여성들은 더 이상 미군 부대 앞의 클럽에 머물며 주스와 성을 팔지 않는다. 소설가 박완서는 2004년 발표한 에서 미군 부대에 취직한 뒤 결국 미군들을 상대로 한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하고 만 옆집 춘희의 사연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제 동두천 보산동과 의정부 ‘뺏벌’, 평택 안정리 등에서 ‘춘희’들을 찾을 순 없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필리핀 여성들이다. 한국 여성들이 떠난 뒤에도 미군은 끊임없이 젊은 여성들의 ‘몸’을 욕망하고, 한국 정부는 자국 여성에게 했던 것처럼 여성들의 몸이 미군에게 안정적으로 제공되도록 여러 행정적 편의를 제공하는 중이다.

필리핀 여성들은 어떻게 한국에서 일하게 됐으며, 그들이 받는 처우는 어느 정도일까. 지금까지 한국 내 미군 기지촌 주변에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생활 단편이 언론에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그들의 구구절절한 생활 실태 조사가 이뤄진 적은 거의 없다.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 문제를 놓고 1986년부터 활동을 이어온 두레방은 지난해 5월부터 다섯 달 동안 경기도 평택 ‘K-55’(오산 비행장) 앞 클럽들을 현장 조사해 필리핀 여성 17명의 심층 인터뷰를 이끌어냈다. 두레방은 심층 인터뷰와 필리핀 여성 45명의 설문조사 결과를 모아 지난해 12월 보고서 ‘2007년도 경기도 외국인 성매매 피해여성 실태조사’를 펴냈다.

무용수는 안 되고 가수는 된다?

여성들은 어떻게 한국에 입국할까. 우리나라는 국내에 들어와 활동하는 외국 연예인들에게 ‘E-6’ 비자를 발급한다. 여성들은 필리핀 현지 신문이나 잡지에 난 광고나 친구의 소개로 현지 에이전시와 만나게 된다. 필리핀 여성 EL(29·가명)은 “비자 취득 방법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필리핀 에이전시 사무실에서 카메라를 두고 노래 연습을 한다. 립싱크다. 테이프를 찍어 한국으로 보낸다. 한국 기획사 쪽에서 고용하겠다는 통보가 오면 필리핀 에이전시가 한국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한다. 한국 대사관으로 가 직원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게 다다.”

한국의 공연기획사는 여성들의 테이프를 받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 제출한다. 영등위의 ‘공연 추천 소위원회’는 그 테이프로 심의를 진행한다. 영등위는 심의를 통과한 여성들을 ‘가수’로 국내에 들여오겠다며 법무부에 “비자를 내달라”고 추천한다. 추천이 들어오면 법무부는 기계적으로 여성들에게 E-6 비자를 지급한다. 최초 발급 때 체류 기간은 6개월로 정해지고 최장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여성들은 실제 자신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아는 경우도 있지만, 정말 가수로 활동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왔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법무부가 매해 펴내는 ‘출입국관리통계연보’를 보면, 2006년 12월 현재 E-6(예술흥행)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온 사람은 4510명이고 그 가운데 1327명이 불법 체류 상태인 것으로 확인된다. 이 불법 체류자의 82.8%인 1100명이 필리핀 사람이다. 영등위 관계자는 “한국에 공연기획사가 너무 많아서 현황 파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정부가 만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여성들을 ‘수입’해 오는 것인 만큼 최소한의 ‘눈 가리고 아웅’은 있다. 2002년께부터 새움터와 두레방 등 여성단체들이 “정부가 국제적 성매매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언론에서도 ‘무용수’ 신분으로 들어온 러시아·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이 성매매에 내몰린다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필리핀·우즈베키스탄·러시아 정부에서는 “외국인 무용수의 비자 발급을 중단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하기에 이른다.

판매액 못 채우면 벌금과 성매매

우리 정부의 ‘솔로몬의 지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 왔다. 국무조정실은 2003년 5월28일 관계부처 회의를 거쳐 ‘유흥업소 종사 외국인 여성무희 대책’을 발표한다. 법무부는 대책에 따라 2003년 6월1일부터 ‘무용수’로 공연 추천이 들아오는 외국인 여성들에 대해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당연히 ‘무용수’가 아닌 ‘가수’에 대해서는 비자 발급이 계속된다. 그게 필리핀 여성들이 카메라 앞에서 춤추지 않고 ‘립싱크’만 하는 이유다.

여성들은 대한민국의 ‘춘희’가 그랬던 것처럼 ‘7남매의 장녀’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입국하기 전까지 텔레마케터, 웨이트리스, 판매사원, 가수, 비서 등으로 일했다. 평택 신장동에서 일하는 소조(가명)는 24살이다. 그는 “대가족이라서 대학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17살 때부터 백화점에서 일했다. 돈을 더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 외국으로 갈 결심을 했다. 첫 달 월급은 에이전시 비용과 비행기삯으로 지출돼 받지 못했다. 한국 기획사에서 나온 매니저가 여권과 외국인 등록증을 가져갔고, 돌려받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위해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음료수와 술 판매액을 할당받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벌금에 시달린다. 때때로 성매매를 강요당하기도 한다. 멜리사(22·가명)는 “계약서에는 매달 710달러를 받게 돼 있었는 데 둘째 달부터 400달러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각이나 결석을 하면 어김없이 벌금이 떨어지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성매매를 나가라’는 압묵적인 강요에 시달린다. 업주는 성매매를 나가면 주스 300잔을 판 값으로 돈을 정산해 멜리사에게 지급했다. 여성들은 성매매를 ‘바파인’(bar fine)이라고 불렀는데, 여성들을 클럽 밖으로 데리고 나가 업소에 끼친 손해를 미군 남성이 ‘벌금’(fine) 형식의 돈으로 메운다는 뜻이다. 메릴(27·가명)은 “주인이 바파인을 안 하면 필리핀으로 돌려보낸다고 해 일주일에 한두 번씩 성매매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업소에서 도망나와 채소 공장에서 포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로셸은 지난해 12월19일 두레방으로 다급한 구호 요청 이메일을 남겼다. 그가 한국에 온 것은 2006년 3월18일이다. ‘가수’로 한국에 입국했지만 노래는 부르지 않았고, 클럽에서 술을 팔았고 성매매에 내몰렸다. 견디다 못한 로셸은 동두천 미군부대 캠프 호비 앞의 ‘턱거리’에서 두 달 동안 일하다 업소를 탈출했다.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준 것은 미군 병사였다. 그들은 9개월 동안 동거했고, 로셸은 임신했다. “남자친구는 나를 떠나 다른 여자에게로 갔다. 그는 내게 1달러도 주지 않았다. 출산 예정일은 2월12일이다. 아이에게 아빠 성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클럽을 탈출해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변한 로셸과 그 아이가 적절한 의료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지원시설 전국에 단 세 곳

‘공범’인 한국 정부는 여성들의 성매매 피해 앞에서 뒷짐을 지고 있다. 외국인이 성매매 피해 여성으로 인정되면 3개월까지 외국인 성매매 여성 지원시설에서 살 수 있지만, 그것으로 끝이다(재판이 진행 중인 경우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한이 연장된다). 유영님 두레방 소장은 “딱한 사정을 알면서도 도와줄 길이 없을 때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기사에서 언급된 EL·소조·멜리사·메릴 등의 증언은 두레방의 실태조사 보고서를 참조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