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가 대운하 강행하는 이유…20년 신념, 이면엔 총선 겨냥한 노림수?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대운하 강행 추진 의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이 당선인이 아닌 그 누구도 그의 속내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과거 대운하 구상에 대한 발언과 자서전 등을 통해 이 당선인의 생각을 사실과 가깝게 재구성할 수는 있다.
1987년 겨울 노태우에게 첫 제안[%%IMAGE4%%]
우선 이 당선인 입장에서 바라본 대운하 논란이다. 그에게는 오직 대운하만이 한반도 국운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다. 이 당선인의 친구 이돈환(6·3동지회 자문위원)씨는 1월3일 과의 통화에서 “평소 이 당선인의 철학으로 볼 때, 이명박 정부는 임기 5년간 대운하에 모든 역량을 쏟을 것”이라며 “대운하 없는 이명박은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추부길 당선인 비서실 정책기획팀장 역시 “이 당선인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업인 만큼 본인이 아니라 누가 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이 대운하 구상을 처음 공식 석상에 꺼내놓은 것은 1987년 겨울이었다. 그때 이 당선인은 현대건설 사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당시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당선인은 경부운하 건설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듯, 새로 들어서는 정부에서는 경부운하 건설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 이 당선인의 경부운하 계획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1996년 7월18일이었다. 당시 신한국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이 당선인은 이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서울에서 부산 간 운송비가 부산~미국 LA 간의 해상 운송비보다 높다”고 지적하며 500km 길이의 ‘경부운하’ 건설을 제안했다.
이 당선인이 내세운 논리는 운하 건설로 물류 비용을 3분의 1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어렵다고 생각하면 어렵겠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당선인은 운하 건설을 촉구하기 위해 경부운하건설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동료 의원 60여 명으로부터 서명을 받기도 했다. 물론 정부는 그의 경부운하 계획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당선인은 2001년 세 번째로 경부운하를 제안했다. 당시 이 당선인은 한나라당 국가혁신위원회 미래경쟁력분과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그때 이 당선인과 같은 분과에서 일했던 김형오 의원과 강만수 전 재정경제원 차관, 백용호 이화여대 정책대학원 교수 등은 모두 현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여기서 이 당선인은 “2002년 한나라당의 대선 공약으로 한반도 대운하 계획을 내놓자”고 주장했다. 경부운하 계획이 여기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미래경쟁력분과 간사를 맡았던 곽창규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은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운하처럼 논란이 예상되는 이슈를 먼저 제안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운하 계획을 ‘아웃’시켰다”고 말했다. 5년 만에 다시 빼든 운하 계획이 당 혁신위에서 묵살당했는데도, 이 당선인은 “괜찮다. 안 받아도 된다. 나중에 내가 써먹어야겠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빠져나왔다고 전해진다.
“괜찮다, 나중에 내가 써먹겠다”
이 당선인의 독백은 또다시 5년 뒤 실체를 드러냈다. 서울시장을 그만둔 직후인 2006년 10월 이번에는 아예 기자들과 함께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직접 찾았다. 이 당선인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운하 건설로 제2의 국운 융성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도 그는 각종 강연과 토론회를 통해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필요성을 수차례 역설했다. 그리고 대운하 계획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그의 가장 핵심적 공약으로 떠오르면서 마침내 공론의 장으로 확실히 등장했다.
여기까지는 이명박 당선인 입장에서 바라본 대운하 추진의 역사다. 이 당선인은 대통령과 정부, 환경단체는 물론 심지어 같은 당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를 향해 품어온 의지를 20여 년간 꺾지 않았다. ‘대운하가 곧 국가경쟁력’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이 당선자 본인과 측근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당선인의 신념이 ‘지금, 여기’의 정치·시대적 현실과 조화를 이뤄내느냐 여부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지와 신념이 집착으로 보일 수도 있고, 심지어 패착이 될 수도 있다. 당장, 대운하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이 무시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이 당선인의 ’신념’ 이면에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제기되고 있다.
우선 짚어볼 대목은 ‘왜 지금’이냐는 사실이다. 이 당선인은 대선이 끝난 뒤 채 열흘이 지나기도 전에 한반도 대운하를 조기에 착공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 당선인이 대운하 드라이브를 통해 향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두 가지 상황이 맞아떨어졌다. 하나는 대선 직후 이 당선인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이 높아진 상태라는 점이다. 이 당선인이 ‘믿는 구석’이다. 또 하나는 이 당선인의 대운하 드라이브에 대해 비판과 견제 기능을 담당할 정치세력이 없다는 현실이다. 즉, 대통합민주신당이 당 쇄신 문제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정당 기능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 틈을 노려 대운하 추진을 확실히 못박아두겠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윤경주 폴컴 대표는 “대운하 이슈는 상당히 인화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인수위 단계서부터 아예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선과 오는 4월9일 총선이 맞닿아 있는 현실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운하는 총선용이라는 논리다. 이미 이 당선인 쪽에서는 대선에서도 대운하 공약으로 적지 않은 효과를 누린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효과를 총선까지 이어가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운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와 이 당선인의 발언은 묘한 어울림을 낳는다. 대운하에 대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기대가 높은 지역이 대구다. 12월12일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얼미터 조사 결과 대구·경북 지역의 대운하 건설 찬성 여론은 44.8%로 반대(23.4%)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대선 직후인 1월2일 여론조사에서도 대구·경북 거주자의 대운하 건설 찬성 응답은 69.9%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대구 민심을 노렸나
이명박 당선인 또한 일찌감치 대구를 대운하의 최대 수혜 지역으로 공식 낙점했다. 이 당선인 본인의 말이다.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운하를 만들면 강을 바다처럼 뱃길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우리도 독일의 뒤스부르크와 같은 거대한 항만도시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대구를 염두에 두었다. 대구가 거대 내륙 항구도시가 되면 항만에서 화물을 선적해 내륙 운하를 통해 곧바로 일본이나 동남아 등으로 화물을 수출할 수 있게 된다. 생각만 해도 신이 나는 일이다.”(이명박 자서전 중)
박근혜 전 대표와 총선 공천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고 있는 이 당선인이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대구·경북 주민들이 생각할 때 박 전 대표는 ‘짠하고 정이 가는’ 대상이지만 지금 당장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이 당선인은 대운하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 박 전 대표 쪽이 일부 이탈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명분 싸움에서만 밀리지 않는다면, 나머지는 대운하로 충분히 돌파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여기에 이 당선인 쪽은 최근 호남과 충청에는 ‘동시 착공’이라는 새로운 카드도 내놓았다. 대선을 앞두고 ‘경부운하’ 계획을 ‘한반도 대운하’로 격상(?)시킨 것에 이어 동시 착공이라는 제2탄을 내놓은 것이다. 역시 총선을 앞두고 호남과 충청 민심을 노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대운하 강행 추진의 이면에 대한 분석은 이명박 당선인의 진심과 거리가 있을 수도 있다. 앞서 본 것처럼 이 당선인은 한반도 대운하만이 국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선 직후부터 대운하 드라이브를 거는 이유가 이 당선인의 순수하고 올곧은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정치적 노림수 때문인지는, 그가 대운하 건설 반대 여론을 어떻게 아우르는지에 따라 자연스럽게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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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당선인의 한반도 대운하 구상은 과연 실현될까.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대운하 ‘반대’ 여론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대운하까지 가는 길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이 당선인 주변에서는 “반대 여론은 수렴하되, 대운하 건설은 확실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최측근들의 이같은 주장은 이명박 당선인 특유의 ‘돌관(突貫) 정신’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돌관 정신이란 바로 이 당선인이 몸담았던 현대건설의 기업정신이다. 이종수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해 11월 외부 행사에서 “어떤 장애물이 가로막아도 목표점을 향해 흔들리지 않고 돌진해, 원하는 바를 이뤄내는 것이 현대건설의 대표적 정신 ‘돌관’이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돌관 공사’라는 표현을 최근까지도 흔히 쓰고 있다. 장비나 시설이 부족하더라도 ‘하면 된다’는 정신력으로 최대한 짧은 기간에 공사를 마치는 것이 돌관 공사다.
이명박 당선인이 반대 여론이 많은데도 한반도 대운하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주로 세 가지 사례를 든다. 경부고속도로와 청계천 복원, 서울숲 조성 사업 등이다. 시작 전에 모두 반대 여론이 높았던 사업들이다.
그때마다 이 당선인은 돌관 정신으로 이를 극복했다. 일각에서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 당선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식이었다.
건설 방식도 돌관 공사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한 이 당선인은 스스로 이를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싼값에 건설한 공사’라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공사에 대해서도 이 당선인은 ‘살인적 일정’으로 진행됐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숲 공사에는 공기 단축을 위해 서울숲에 심어야 할 나무를 다른 곳에 심어두었다가 다시 옮겨심는 기발한(?) 방식을 동원했다.
이명박식 돌관 정신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임명할 때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전력 시비로 인해 이재오 한반도대운하TF 상임고문 등 당 안팎의 반대 여론이 있었음에도, 이 당선인은 이경숙 위원장 임명을 끝내 고집했다. ‘돌관 인사’다.
이명박식 돌관 정신은 인수위 운영 방식에도 적용됐다. 지난해 말 이 당선인은 인수위 ‘노 홀리데이’를 선언했다. 휴일을 반납한 채 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공휴일인 1월1일에도 인수위 관계자들은 현충원 참배를 한 뒤 사무실 근무를 해야 했다.
이 당선인의 돌관 정신을 읽는다면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반대 여론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간접적인 이해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의 이명박 당선인 심리 분석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황 교수는 최근 대운하 건설 추진을 강조하는 이 당선인의 살아온 발자취와 발언 등을 통해 관련 작업을 진행했다.
황 교수는 “이 당선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취’인데, 성취했다는 사실 자체보다 난관을 극복하고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에서 만족감을 얻는 유형”이라고 말했다. 성취 자체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청계천이나 대운하 등 직접 눈으로 보이는 결과물에 집착한다는 것이 황 교수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 당선인에게 ‘반대 여론’은 어떤 의미일까. 황 교수의 말이다. “이같은 유형의 사람이 반대 여론을 합리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없다. 설득할 방법도 없다. 이 당선인에게 대운하는 곧 그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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