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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 ‘네거티브’의 잔혹사

등록 2007-12-28 00:00 수정 2020-05-03 04:25

범여권이 실패한 수많은 이유들…BBK 한 방·완전국민경선제 한 방만 믿은 선거전략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왜 우는 겁니까.’

마음속에서 물음표가 무수히 솟아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12월19일 오후 6시 각 방송사의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대다수 방송사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예상 득표율이 50%를 웃도는 것으로 내다봤다.

다른 문제는 쓰나미처럼 쓸려버려

대통합민주신당 상황실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관계자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상황실 뒤편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제17대 대선에서 기록적 참패를 당한 대통합민주신당 상황실의 공기는 낯선 비통함과 익숙한 패배주의로 내내 무거웠다.

대통합민주신당의 대선 패배 원인을 설명하기란 어렵다. 대통합민주신당의 한 관계자가 “우리가 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꼽아보면 대략 100가지는 될 것”이라고 털어놓을 정도다.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이 담겨 있다.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정동영 후보가 대선에서 패한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선을 중심으로 했을 때 가장 먼저 지적돼야 할 부분은 선거전략의 부재였다. 정동영 후보의 대선 패배 역사는 곧 ‘한 방의 잔혹사’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정 후보 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네거티브에만 몰입했다. 대선 후보에 대한 검증 작업은 기본적으로 언론이 맡아야 할 영역임에도 대통합민주신당에서는 모든 선거전략의 초점을 네거티브 하나에 맞췄다. 신문광고, TV광고는 물론 심지어 TV토론에서도 후보가 주제와 상관없는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기도 했다.

네거티브에 대응할 만한 준비가 갖춰지지 않은 후보에게는 네거티브가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선거에서 네거티브 일변도의 선거전략은 이미 폐기된 지 오래다. 네거티브를 하더라도 포지티브 전략을 통해 후보 본인의 경쟁력을 충분히 보여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사실은 선거전의 기본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정동영 후보의 패배는 1996년 미국 대선에서 클린턴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은 밥 돌 공화당 후보의 패배를 닮았다. 당시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클린턴 후보에게 크게 뒤진 채 출발한 밥 돌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줄기차게 네거티브에 매달렸고 줄기차게 끌려다녔다. 밥 돌 후보는 다른 것은 변변히 해보지도 못하고 대선에서 참패했다.

정 후보는 게다가 모든 ‘화력’을 BBK 의혹 하나에만 집중했다. 이명박 당선자 쪽 백성운 선대위 상황분석실장은 “우리는 이 당선자의 자녀 위장취업 문제가 국민 감정을 곧바로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항으로 보고 상당히 우려했다”며 “그럼에도 저쪽(신당)은 우리가 만반의 대응책을 마련해두고 있는 BBK로만 공격해왔다”고 말했다.

이 당선자 쪽의 또 다른 핵심 관계자도 “BBK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거 하나에만 매달린 것은 명백한 실수”라며 “그게 너무 부각되니까 다른 문제는 모두 쓰나미처럼 거기에 다 쓸려버렸다”고 말했다.

물론 이같은 사실을 정 후보와 대통합민주신당 쪽이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정 후보 쪽의 한계라면 한계였다. 이목희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우리에게도 좋은 정책이 많았지만 우선 시간이 너무 없었고, 하나하나 풀어가기에는 지지율이 너무 벌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노무현에 대한 어정쩡한 태도

후보 단일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으면서도 이를 깔끔하게 마무리짓지 못한 것도 패인 가운데 하나다. 범여권에서는 2007년 초부터 공개적으로 후보 단일화 카드를 논의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이 극적인 단일화에 성공한 것이 모범답안이 아니었음에도 대선 전날까지도 후보 단일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후보 단일화가 실패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에 앞서 정동영 후보로서는 충분한 정치력을 보여주지 못한 셈이 됐다.

좀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통합민주신당은 완전국민경선제라는 ‘한 방’을 지나치게 믿었다. 2002년 ‘빅 히트’를 기록한 민주당 경선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화려하게 부상했던 선례에 5년 동안 취해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은 국민의 무관심과 ‘박스떼기’ 등 온갖 부작용만 남겼다. 경선 결과도 조직력에서 가장 앞선 정동영 후보의 압승으로 끝났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였으므로 경선 효과도 미미했다.

한나라당이 지난 수년간 지속적으로 당의 체질을 개선하고 당의 중심을 강화할 때, 대통합민주신당은 이런저런 정치공학에 매달렸다. 대표적인 것이 ‘서부벨트론’이다. 호남과 충청을 잇는 서부벨트를 형성해서 한나라당 후보를 영남 후보로 고립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여기에 부산·경남에서 김혁규 전 경남지사와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등을 앞세워 20% 정도만 얻어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이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정동영 후보는 이인제 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했다. 여기에 심대평 국민중심당 대표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각각 이회창 후보와 이명박 당선자 쪽으로 옮겨갔다. 이명박 당선자를 영남에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 후보가 호남에 묶였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정동영 후보가 끝까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것도 패인으로 지목될 수 있는 부분이다. 끌어안으려 했다면 제대로 끌어안아야 했고, 그게 아니라면 완전히 선을 그었어야 한다. 하지만 정 후보는 이도저도 아닌 태도로 일관했다.

이명박 당선자 쪽 핵심 관계자는 “차라리 정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안고 선거전을 시작했다면 판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적어도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범여권의 핵심 지지층이 2002년 대선처럼 열심히 뛰었다면 득표율 차이가 조금은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정동영 후보 본인의 출마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반노 정서’의 실체가 확인됐고, 열린우리당이 철저하게 심판받았는데도 참여정부의 적자이자 열린우리당 최대 계파의 수장인 정 후보가 그대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정동영 후보 본인 출마부터 문제

김능구 이윈컴 대표는 “책임지고 불출마를 선언했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대로 나온 탓에 범여권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시각이 싸늘했던 것”이라며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가 단일화를 거부해왔던 명분도 책임져야 할 사람(정동영 후보)이 대선에 나왔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김능구 대표는 또 “말로만 하는 반성이 아니라 2004년 총선 때 한나라당이 했던 것처럼 수십 명에 이르는 중진들을 불출마시키고, 비록 ‘쇼’로 보일지라도 천막당사로 옮기는 정도의 ‘반성’이 아니라면 대통합민주신당으로서는 다음 총선에서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패배 이후 쇄신과 자기 반성 논의에 한창인 대통합민주신당에서 어떠한 반성의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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