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철 변호사 인터뷰… “삼성은 이미 자정능력 잃고 한계에 다다라, 여론의 힘으로 개선시켜야”
▣ 진행=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정리=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김용철(49) 변호사는 “구속도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긴장하면서도, 한편으론 삼성과의 인연으로 겪어야 했던 고생을 털어낸다는 홀가분함도 보였다. 그는 지난 5월부터 경기도 양평에서 칩거하는 중이다.
일이 시작된 것은 지난 5월이었다. 그는 2004년 9월 입사한 법무법인 서정에서 사직을 권고받았다. 김 변호사는 “처음에는 두 달 동안 휴직을 권고받았는데 휴직 기간이 끝나도 복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짐작한 대로였다. 서정 쪽은 “삼성 이학수 부회장을 만나서, 삼성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근무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재벌기업이 로펌의 인사 문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가, 하고 반발심이 들었지만 참았다고 했다. 그러나 회사는 끝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민 끝에 결심을 굳혔다.
삼성은 왜 그의 양심고백에 조바심을 낼까. 김 변호사는 1997년 8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삼성그룹의 중추인 구조조정본부에서 일했다. 마지막 퇴사할 때의 직함은 법무팀장이었다. 그 자리에 있으면서,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 이끈 2003년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 때 삼성 쪽을 변호했다. 또 지금도 진행 중인 ‘삼성에버랜드 사건’ 관련 소송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는 “나름대로 떠난 회사에 대한 신의를 지키려 했지만, 삼성 쪽의 감시와 협박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왜 삼성의 ‘비자금’을 폭로하게 됐을까. 그는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란 조직이 갖는 해악이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내가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삼성에 있는 동안 양심을 잃어버려 이제는 자식들이 나를 존경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또 “최악의 경우 처벌을 받는 것도 각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여러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보다 높은 사람이 일을 벌였다고 봐야
김 변호사가 밝힌 폭로의 핵심은 삼성이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이다. 삼성 쪽에서는 “재무팀 고위 임원이 개인적으로 차명 거래한 것”이라고 해명하던데….
=계좌의 거래 내역이 있기 때문에 삼성에서도 완전히 잡아떼지는 못할 것이다. 내 추측이지만, 구조본 재무팀 고위 임원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꼬리 자르기를 할 것이다. 그게 누구 돈인지, 어떤 자금인지는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한다.
왜 그런 계좌가 생겼나.
=나도 모른다. 아무튼 내가 만든 것이 아니고, 내 동의도 받지 않았다. 입사 후 비서가 주민등록증 사본을 요구해 준 기억이 난다. 그것을 이용해 만들지 않았겠나. 삼성에서 법률적 책임을 피하려면 내가 ‘이름을 써도 좋다는 포괄적 동의를 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그게 안 되면 형사적인 문제가 따른다. 위조 사문서 행사, 금융실명제법 위반이다. 다른 소득을 감추려 했다면 조세포탈 등의 혐의가 추가된다. 나는 변호사고 법률가다. 아내에게도 인감을 안 맡기는 사람이다. 내가 전무로 그만뒀으니 나보다 높은 사람이 일을 벌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구조본에서 몇 사람 안 남는다.
그런 계좌가 있다는 것은 언제 알았나.
=회사에 있을 때부터 알았다. 얼핏 들은 것 같다. 이자의 종합소득세는 이자소득의 연간 합계가 4천만원을 넘을 때 낸다. 회사에 있을 때는 자기들이 신고하고 대신 납부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차명계좌 명의인이 전직 임원인 경우엔 매년 5월 종합소득세 신고 때 관재파트 직원들이 휴대전화 등의 선물을 가지고 가서, 세금을 내달라고 부탁하고 다닌다. 나에게도 올해 5월 휴대전화 두 개를 가지고 왔다. 내년 1년만 더 수고해달라고 했다.
계좌 존재 여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때는.
=퇴사한 뒤인 2004년 말이다. 우연히 집에 굿모닝신한증권 도곡지점에서 내역서가 날아왔다. 처음 날아온 것인데, 통보 사유에 ‘감사’(監査)라고 돼 있더라. 내역서를 고객에게 꼬박꼬박 통보해야 하는데 안 해서 지적을 받아 보낸 것 같았다. 삼성전자 주식이 7천여 주, 그때 가치로 26억원어치 들어 있었다. 아내가 “이렇게 큰 재산을 나 몰래 감춰뒀냐”고 따져서 해명하느라 혼났다. 내 돈이 아니라고 했다.
김 변호사 명의로 어떤 계좌들이 있나.
=정확히는 모른다. 우리은행 삼성센터지점 게 제일 큰 것 같다. 본인이 조회해도 안 나온다. 계좌번호도 안 나오고, 거래 내역도 안 나온다. 은행에서 ‘시크릿 뱅킹’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계좌를 만든 은행의 지점 담당자에게 가야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삼성센터지점(삼성 본관 2층)을 어떻게 가나. 간다고 해도 계좌번호도 모르고 담당자도 모르는데 방법이 없다. 내가 법률가다. 우연히 남의 돈이 내 명의 통장에 들어왔다고 해도 챙기면 횡령죄다.
검찰 선후배들에게 사기꾼이 되었다
삼성은 김 변호사와 다른 개인의 문제로 설명하고 있는데.
=개인 간의 문제였으면 그 개인이 연락을 하지, 왜 재무팀 직원이 오나.
그 돈이 비자금이라는 확신이 있나.
=(잠시 생각하다) 저쪽에서는 한 개인의 잘못으로 시나리오를 짜뒀을 거니까,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겠지. 그럼 아무래도 큰 싸움이 될 것이다. 이 마당에 내가 뭐라고 하겠나. 재무팀 관재파트에 가면 막도장이 많다. 현직은 막 쓸 거고, 전직도 쓰는데.
비자금과 관련해 다른 사례들도 있나.
=많은 사례가 있다. 더 자세히는 나중에 말하자.
고백 시점을 놓고 논란이 있다. 삼성 쪽에서는 3년 동안 자문료를 다 챙겨받은 뒤 일을 벌였다고 한다.
=자문료 얘기는 그렇다. 삼성 임원은 퇴직하면, 퇴직 후 관리 프로그램이라고 5~7년(삼성 쪽에선 2~3년이라고 함) 동안 챙겨주는 게 있다. 주는 방식이 두 개다. 하나는 비상근 고문으로 갑근세를 떼고 직접 주는 것, 두 번째는 내가 근무하는 로펌에 자문료 형식으로 주는 것이다. 나는 로펌으로 받았다. 삼성물산, 삼성코닝 등 4개 계열사가 부가가치세를 합쳐 매달 550만원씩 내가 다니던 로펌에 지급했다. 회사가 네 개니까 받는 돈이 매달 2천만원이다.
그 돈은 김 변호사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나.
=아니다. 법인에서 그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았다. 법인은 수백 군데 회사에 자문을 해 자문료를 받고, 의전상으로 받는 것도 있다. 그런데 삼성 입장에서는 나한테 줬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왜, 이 시점인가.
=진짜 고민 많이 했다. 괴로웠다. 회사(법무법인 서정) 쪽에서 ‘내가 있으면 기업 일을 못한다’고, ‘내가 있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처음에는 5월부터 두 달 쉬고 출근할 줄 알았다. 나는 옛 동료로서 의리를 지키며 조신하게 살려고 했다. 퇴사한 뒤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인사팀 고위 임원)이 굳이 만나자고 하더니, ‘삼성을 떠나서 나쁜 말 하면 불행해진다’고 하더라. 협박이다. 집에 와 생각해보니 조직을 떠나면 개인이 이렇게 되나 싶어 서글펐다. 기획위원이 된 것은 이 무렵이다. 나는 그동안 에 쓴 칼럼 등에서 삼성 얘기는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삼성은) 왜 그렇게 집요했을까.
=그 사람들은 아마 나 같은 경우를 처음 봤을 것이다. 삼성에서는 구조본 팀장으로 퇴사를 한 전례가 없다. 승급 제의를 하고, 회사를 고르라고 한다. 내 경우도 삼성화재 부사장 제의가 왔는데 거절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나간 것 자체를 배신이라고 봤을 수도 있다.
삼성을 떠난 이유는 뭐였나.
=더 이상은 죽겠더라. 몸이 힘든 것은 상관없다. 2003년 말 불법 대선자금 수사할 때 대검 중수부를 접촉하게 했다. 내가 후배와 선배들에게 ‘우리 수사에 협조할 테니 첫 번째로만 맞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나름 약속을 지켜서 우리는 좀 늦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벌자 (대선자금 책임자 격인) ○○○, ○○○이 사람들이 다 도망갔다. 내가 앞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로 살아야 하는데 후배, 선배들에게 사기꾼이 됐다. 이후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나는 업무에서 배제됐다. 나하고는 의논을 안 했다. 부하들도 나에게 보고를 안 했고, 어디 가서 뭐하는지도 몰랐다.
삼성 쪽, 반은 회유, 반은 협박
대선자금 수사에 대한 삼성의 변칙적인 태도가 퇴사의 원인인가.
=그렇다. 내 역할이 끝난 거다. 부사장으로 승급을 제의받았지만, 그건 사육당하는 것과 같지 않나.
대선자금 수사 때는 어떤 역할을 했나.
=메신저였다. 내가 상사에게 들은 말은 ‘삼성이 대선자금으로 40억원을 줬다’는 것이었다. 난 상사가 나에게 거짓말하는 줄은 생각조차 못했다. 상사는 검찰 조사 받으러 가기 전날 전화해서 ‘너한테만 말한다. 수백억원이다’고 하더라.
누가 그랬나.
=○○○(삼성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 거명)이다.
왜 배제됐다고 생각하나.
=나는 조직 안에서 대선자금 이런 것, 이제 털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 대선 비자금이 수사를 받는 사회다. 이제 지겹지도 않나, 삼성도 털고 가자고 했다. 말로는 다 고개를 끄떡거린다. 그런데 사실은 아니다. ○○○(전략기획실 고위 임원)이 뭐라고 하냐면 ‘삼성은 준 것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그게 삼성 청사에 빛나는 전통이다’라고 한다. 나는 그것을 깨뜨리자는 쪽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정의의 사도는 아니다. 나도 나쁜 짓 많이 했다.
비자금에 대한 삼성 쪽의 인식은.
=이재용(이건희 회장의 장남)이 한번 이런 얘기를 하더라. 단둘이 있을 때다. “비자금, 차명계좌 공공연한 일인데, 왜 내게만 문제 삼냐.” 그래서 길거리에 횡행하는 범죄도 증거가 잡히면 처벌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의 차기 총수가 될 사람이 국법 질서에 대한 느낌이 없다. 그런 교육을 안 한 거지.
삼성 쪽 반응은.
=그쪽은 나를 미친놈으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돈 보고 하는 짓이라고. 딜(거래)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저쪽에서 했다. 로펌을 차려준다고 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을 동원해 양쪽 모두에 좋은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는 말은 다 똑같다. 반은 회유고 반은 협박이다.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뭔가.
=모든 사회가 일정 정도의 부정과 범죄를 안고 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삼성 문제는 비등점에 왔다는 느낌이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려면 한 번은 넘어가야 할 산이 있다. 그 조직은 자기가 털고 갈 자정능력이 없다. 그러면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가장 큰 힘은 여론의 힘이고, 언론의 힘이다. 이것을 모아야 한다.
주변의 반응은.
=사람들이 (날 보고) 다 미쳤다고 하면, 내가 미친놈이 된 것이다. 정말 고민 많이 했다. 다 알잖냐. 삼성이 우리 사회에서 하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삼성 정말 좋은 회사다. 세계 최고의 제품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그 역기능이 이제 임계점에 다다랐다. 내게 할 일이 하나 남았다면, 삼성의 문제를 사회 공론화해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 것이다.
그곳을 거치면서 양심 잃어
삼성 안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처음 입사하자마자 삼성중공업 유령노조 사건이 있었다. 우리 쪽이 질 사건이라고 했다. 노무 담당 임원이 ‘상대 변호사가 25기인데 동기라며 보고 싶어한다’고 하더라. 그 사람을 만나 회유하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래서 만나보니, 나는 사법시험 25기고, 그 사람은 사법연수원 25기다. 10년 후배다. 그렇게 거짓말을 했다. 그때 화냈다. 없는 말까지 만들어서 그러냐고. 삼성에서 그런 속성을 많이 봤다. 나하고는 너무 안 맞았다. 나는 안 된다, 그러면 사회문제 된다, 회장 구속된다 그러고 다녔다. 내가 삼성에 간 것은 양쪽 모두에게 불행이었다.
삼성 입사를 후회하나.
=순전히 내 입장에서만 말한다. 솔직히 그곳에서 나중에는 대우를 잘 받았다. 호의호식했고, 사치도 많이 해봤다. 나는 늙어서 아내 손 잡고 산책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가정을 잃었다. 검사 때는 애들이 나를 존경했지만, 이제는 안 한다. 그리고 그곳을 거치면서 양심을 잃었다.
일이 잘못되면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막말로, 아니 역설적으로 내가 구속되면 끝이 나겠지. 검찰이 수사에 나서 범죄행위를 밝혔다는 뜻 아닌가. 나는 중요 범죄업무 종사자다. 그런데 나는 최종 책임자가 아니다. 나는 하수인이잖나. 나는 30대에 첫 직장을 잡았다. 검사였다. 검사 때는 깨끗하게 살려고 했다. 돈이 없어서 우리 큰애 자전거를 중고로 사줬는데, 새 자전거 탄 애들이 놀려서 애가 울고 들어왔다. 아내는 만삭인 채로 일하러 다니고. 남들이 그냥 다 하는 고생이겠지만, 나도 그렇게 살았다. 삼성에 와서 타워팰리스 계약하라는 거 안 했다. 살지도 않을 집인데, 주소 옮겨놔야 하잖아. 삼성에서 하는 짓이 다 그렇다.
삼성은 공개 사과, 책임자 문책해야
삼성에서는 7년 동안 100억원 넘은 돈을 보수로 받았다고 말한다.
=세전으로 부풀려 말한 것 같다. 계산은 안 해봤는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처음 가자마자는 외환위기가 터져서 월급도 적었다. 나중에 재무팀으로 갔다. 삼성에서 별로 신경 안 쓰는 작은 기업들을 좀 맡다가, 점점 업무 범위가 커졌다. 재무팀에서 한 2년, 법무팀장으로 1년 반 일했다. 물론, 많이 받은 해는 세전 기준으로 10억원 넘게 받은 때도 있다. 스톡옵션도 받았다. 내가 그걸 50만원 정도에 행사했다. 그래서 20억원 정도 만들었다. 100억원까지는 아니어도 아무튼 호의호식한 것은 맞다.
앞으로 전망은.
-우리 사회 기득권 세력이나 메인 스트림의 부패 문제는 언젠가 꼭 해결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나 자신이 죄인이다. 그래서 삼성에서 나를, 개인적인 흠을 잡아 공격하면 이길 방법이 없다. 삼성은 내가 일하고 월급 받은 것이나 가정사, 개인사를 왜 얘기하나.
추가 폭로 계획은.
=천천히 말하자.
삼성이 어떤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먼저 그동안 나를 감시하고 못살게 군 것을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한다.
책임자라면.
=구조본 핵심이니까 누구겠나.
삼성의 바람직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모르겠다. 이미 저렇게 돼버린 것 아닌가. 그동안 저지른 일이 너무 많다. 내가 보기엔 자정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대국민 투명경영, 정도경영 선언을 해도 그런 선언은 의미가 없다. (한숨) 그 큰 욕심을 어쩌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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