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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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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를 진정한 비무장지대로

등록 2007-10-26 00:00 수정 2020-05-03 04:25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넘어야 할 장애물들…치밀하고 내실 있는 준비 필요

▣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의 새 기운이 싹트고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비롯해 굵직한 경협사업이 현실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그럼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쟁점으로 떠올랐던 비무장지대(DMZ) 문제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청와대 쪽은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를 기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시기상조”라는 말로 남쪽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했다. 그럼에도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에 대한 논의는 조만간 시작될 수밖에 없다. 비무장지대의 긴장 완화와 평화지대화가 어떤 경로와 과정을 거쳐 실현될지를 진단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의 중요한 구성 요소이기 때문이다.

민간인 출입 막는 괴물, 지뢰

비무장지대의 평화지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무장지대의 해체가 아닌 실질적인 ‘보장’이다. 많은 사람들이 종전 선언을 거쳐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비무장지대가 사라지거나 철조망이 걷힐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행 과정에서 비무장지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적대감과 군사적 대치 상태의 완화를 거치며 존속될 것이다.

평화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은 비무장지대의 전면적인 해체가 아닌 재편을 의미한다. 전방관측소(GP) 철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현재와 유사한 공간적 구성을 갖는 비무장지대가 존립할 가능성이 높다. 남북 관계가 평화의 단계로 접어들어도, 상호 간의 경제적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남과 북의 경계는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지금과 같은 ‘중무장지대’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비무장지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는 개성공단을 오가는 경의선출입국제도나 금강산관광을 가는 동해선출입국제도를 보면 쉽게 납득이 가는 대목이다. 통일 과정에서 상당한 기간을 남과 북은 형식·제도적 관계에선 국가 대 국가로 만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무장지대에서도 남과 북의 군인들은 군사력을 대폭 감축하더라도, 국경수비대 형태의 접근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지금처럼 일촉즉발의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아닌 차원이다. 지난 10년간 이어졌던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남과 북의 일정한 이격 공간 없이 단 한나의 느슨한 경계선이 존재한다면, 많은 북한의 주민들은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위해 대거 남쪽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비무장지대의 공간적 유지를 추동하는 ‘괴물’도 있다. 대인지뢰다. 비무장지대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는 곳으로 꼽힌다. 지난 1997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국제대인지뢰대책회의(ICBL)는 전세계 분쟁 지역 중 대인지뢰가 가장 많은 지역의 1순위로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꼽았다. 군의 필요에 따라 계획적으로 매설한 지뢰보다 비행기에서 대량 살포한 ‘미확인 지뢰’가 더 많다. 여기에 전쟁 중 방치된 수많은 불발탄까지 합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대인지뢰와 폭발물이 비무장지대를 뒤덮고 있다. 그래서 남과 북이 합의해 비무장지대의 일부 지역을 제한적으로 이용하더라도, 나머지 지역은 상당한 시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북이 평화체제로 진입하면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조약이나 협정을 맺는 것 못지않게 이를 실현·담보할 구체적인 이행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을 통해 만들어진 비무장지대가 실은 중무장지대로 변했고, 지속적인 군사적 대치를 이어온 점을 무시해선 안 된다. 정전협정 이후 5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남북의 협정 위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의 역사는 서로 간의 위반의 역사였다. 그중에서 지속적이며 본격적인 위반이 세 가지 있다. 첫 번째가 전방관측소 유지·강화이고, 두 번째가 군사분계선을 향해 철책선을 서로 밀고 들어간 것이다. 세 번째는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공작원 침투와 파견이었다. 다만 ‘남파’와 ‘북파’로 알려진 공작원 혹은 특수부대 파견은 199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중지되거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군사적 긴장 높이는 ‘추진철책선’

전방관측소 유지와 ‘추진철책선’(비무장지대 안으로 침범해 들어간 철책)은 지금 이 시간에도 지속되는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 사례다. 현재의 추진철책선은 남북 양쪽이 각각 서로의 군사적 목적을 위해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에서 좀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움직인 결과였다. 전방관측소도 추진철책선과 같은 논리로 설치됐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비무장지대 안에서 유지되는 시설이자 주둔지인 전방관측소 운용은 추진 철책보다 훨씬 더 군사적 긴장감을 높여왔다.

비무장지대의 철책선은 남한이 2중 철책이고, 북한은 2중을 기본으로 하되 일부 지역은 5중 철책으로 짜여 있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남한의 철책이 훨씬 견고하고 긴장된 분위기를 풍긴다. 2중 철책인데다 철책 상단은 세 겹의 윤형 철조망으로 비무장지대 155마일에 걸쳐 이어져 있다. 외국의 국경지대나 접경지대의 그 어떤 철책선보다 군사적 긴장의 분위기가 엄혹한 것이 남한의 철책선이다. 북한의 철책선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2중 철책선을 기본으로 지역에 따라 중간중간 5중 철책선까지 나타난다. 보는 것과 다르게 방어 효과에서는 남한 수준을 뛰어넘는다. 전기 철조망 때문이다. 2중 철책선 중 하나는 전류가 흐르기 때문에 손에 닿으면 바로 치명상을 입거나 사망에 이르는 구조로 돼 있다.

추진철책은 서로 더욱 다가갔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총부리를 내리고 다가갔다면 평화가 왔을 것인데, 총을 겨눈 채 다가갔기 때문에 대립이 이어졌다. 그래서 평화체제 논의의 핵심은 바로 상호 간에 적대적 행위를 중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싸우지 않겠다는 구체적인 약속과 그것을 가능케 하는 담보다. 서로 신뢰하고 필요의 공감이 일치할 때 군축에 대한 진전은 이루어진다. 생각보다 많은 과정과 일정한 시간이 걸려야 비무장지대 군축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군 조직 축소에 저항도 있을 것

이 과정에서 만날 뜻밖의 ‘복병’도 고려해야 한다. 바로 평화체제 진입 과정에서 남과 북 양쪽 군대는 모두 각각의 체제 안에서 일정한 반발 혹은 저항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남과 북의 군대는 태생부터 서로의 피를 거름으로 성장해왔다. 대립과 적대의 역사를 자신의 발전 동력으로 정체성을 확립해왔다. 그런 상황이 근본에서 변화를 맞게 됐다. 그래서 군축 논의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군인들의 생존권 문제다.

상대적으로 훨씬 곤혹스런 처지로 몰리는 것은 북한 군부다.‘선군정치’로 상징되는 북한의 정치체제는 군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제도로 굳어져왔다. 남한 이상으로 지난 55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확대를 거듭해온 북한 군부 입장에선, 자신의 존재와 외연에 가장 큰 이념·논리적 바탕이 돼온 최전선이 바뀌거나 사라지는 체제를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처지일 수밖에 없다. 북-미 간 평화협상이 타결되더라도 북한 군부의 변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이념의 문제가 아닌 생존권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과 북의 군부는 모두 육군 중심의 기형적인 군대조직을 키워왔다. 각각 방위력의 핵심적 기조를 ‘전방 대결 구도에서 밀리지 않는다’는 것에 두고 살아왔다. 비무장지대의 긴장 완화와 대립 해소는 자연스럽게 군 조직의 변화, 즉 인원과 조직의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남한만 해도 비무장지대 주변에 10개가 넘는 ‘철책사단’을 비롯해 예비사단과 각종 지원부대를 합해 20만 명이 넘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 군축을 통해 서서히 병력이 후방으로 빠진다면 징병제 역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 같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수용하기 어려운 일일 수 있다. 군비 통제에 관한 국방부의 내부 보고서에서도 “군비 통제는 궁극적으로 군축을 지향하는 것이고, 그렇게 될 때 병행될 수밖에 없는 군 조직의 축소와 그에 따른 군 인력의 유휴화로 인한 기존 군 내지는 군 관련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직업에 대한 불안정 심리가 작용되고, 그것은 바로 조직의 동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역사에는 비약이 없다. 분단의 긴 세월 동안 이어져온 대립을 마감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과정은 공을 들인 만큼 결실이 나올 것이다. 비무장지대의 진정한 비무장화는 선언과 협정으로만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평화’라는 일관된 입장을 바탕으로 치밀하고 내실 있는 준비와 노력이 필요하다.



전방관측소 폐지가 첫걸음

대표적인 정전협정 위반 현장, 군사분계선 가까이 중화기 배치해 두고 서로 노려봐


2007년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북쪽에 철거를 제의했던 전방관측소(GP)는 남과 북이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군사시설이다. 지난 55년간 지속된 정전체제 아래서 대표적인 협정 사항 위반 현장이기도 하다.
1953년 7월27일 체결된 정전협정에는 상호 간의 충돌을 방지하고 정전을 유지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를 설정했다. 아울러 비무장지대 출입은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을 위한 목적으로 한정했다. 또한 출입자는 양쪽이 각각 1천 명을 넘지 않아야 한다고 합의했다. 민사행정 경찰의 무장도 반자동소총으로 제한했다. 그러나 냉전과 그에 따른 남북의 극한 대립은 정전협정의 알맹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었다. 양쪽 군대는 본격적인 전투를 치르는 상황을 만들지만 않았을 뿐, 정전협정을 지속적으로 위반했다. 그 핵심이 바로 전방관측소 유지·운용이다.
남북은 현재 상당한 인원과 무장력을 배치해 전방관측소를 유지하고 있다. 남한은 약 80~100개의 전방관측소에 2500~3000 명가량의 병력을 배치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북한은 280개가량의 관측소에 1만 명 안팎의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병력 배치 현황만 놓고 봐도 남과 북 모두 정전협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관측소에 배치한 무기 역시 협정 위반이다. 남한의 경우, K-1·K-2 등 자동소총은 물론이고 심지어 57mm 무반동포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뒤질세라 북쪽도 자동화기와 박격포 등 중화기를 배치해둔 것으로 전해진다.
흥미로운 것은 비무장지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관측소의 모습이다. 남쪽 관측소는 사방에서 볼 수 있도록 노출된 고지나 봉우리 등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성채처럼 조성돼 있다. 반면 북쪽은 단순한 경계초소 하나만 고지 위에 솟아 있다. 그러나 북쪽 관측소의 실체는 경계초소 뒤쪽에 있는 막사를 비롯해 지하에 벙커 형태로 구축돼 있다는 게 정설이다.
전방관측소가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의 눈길을 끈 것은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의 28사단 81연대의 530관측소에서 벌어진 ‘김일병 총기난사 사건’이 계기가 됐다. 이 사건으로 전방관측소의 실체가 세상에 알려졌고, 정전협정 위반 논란도 거세졌다. 현재 남한의 관측소는 비무장지대를 따라 이어진 철책선 어디에서도 쉽게 관찰이 가능하다. 일반인에게 공개된 주요 비무장지대 전망대에서도 관측소를 볼 수 있다.
남한의 관측소가 현재의 모습대로 구축된 것이 지난 1983년부터인데, 비무장지대 방어시설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견고한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관측소는 구형 막사와 비슷한 형태에 울타리만 두껍게 흙으로 다져 참호나 진지처럼 구축한 형태였다. 그러던 것이 현대화 사업으로 콘크리트 두께가 1m나 되는 중세의 성채와 같은 형태로 진화했다.
반면 북한의 관측소에 대해선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 많지 않다. 물론 양쪽 군당국은 서로의 관측소에 대해 상세한 현황을 파악하고 있지만, 이런 정보가 대중에게 공개된 적은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남쪽 사람들이 북쪽 관측소의 현황을 볼 수 있는 한 곳이 있다.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경의선 도로 옆에서 자세히 보면, 북한의 관측소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정면이 아닌 측면과 뒷부분만 볼 수 있지만, 그 실체는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북한의 관측소는 1960년 말부터 지하 벙커로 구축됐다. 지금도 견고함에선 남한의 관측소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부분의 관측소는 남과 북 모두 군사분계선 가까이 바짝 다가섰고, 점유하고 있는 위치 또한 상대에게는 위압감을 주거나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곳에 구축돼 있다. 특히 평소에도 상대방의 움직임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곳이 허다하다. 망원경을 들이대면 담배 피우는 모습까지도 보일 정도다. 중화기까지 포함된 군사력이 팽팽한 긴장 속에 응집돼 있어, 잠깐의 실수로 인한 오발이 상대에게는 도발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결코 양보하거나 물러설 수 없는 상대끼리 항상 일촉즉발의 긴장 속에 마주 선 곳이 바로 전방관측소다. 평화체제를 검토하는 첫걸음으로 전방관측소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방관측소의 철거는 남북 상호 간의 신뢰 구축 첫 단계인 군비 감축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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