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2000년과 달리 공동선언에 긍정적이나 보안법·핵폐기·NLL 등에 이견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6·15 선언, 여 뜨겁게 반기고 야 단단히 벼르고.”
“이명박 후보, 긍정적 평가…납북자 문제 등은 아쉬워.”
앞의 것은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 다음날 여야 정치권 반응을 딴 기사의 제목이다. 뒤의 것은 2007년 10·4 공동선언 다음날 한나라당의 반응을 딴 기사의 제목이다. 한눈에 봐도 두 기사의 제목 차이가 크다. 뒤 제목엔 ‘긍정적 평가’란 단어가 앞에 나온다. 또 ‘아쉬워’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조심스럽게 이견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내용도 살펴보자.
한나라당 내부 스펙트럼 다양해
“한나라당은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상호주의가 철저하게 배제되고 김대중 대통령이 범국민적 합의가 안 된 연합제 통일방안을 북쪽에 제안했다’며 17일 열리는 영수회담에서 정식으로 문제 삼기로 했다.”
“한나라당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북핵 폐기의 확실한 의지 표명이 안 담겼고 △납북자·국군포로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미흡하다,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한나라당은 반응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경고음을 냈던 데 비하면 매우 차분한 것이다.”
역시 앞의 기사는 2000년, 뒤의 기사는 2007년 각각 위 제목의 기사 내용 가운데 한나라당과 관련된 첫 부분들이다. 2000년 ‘상호주의’를 고집하는 태도는, 2007년 차분하게 바뀐다. 두 개의 기사를 갖고 큰 틀에서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한나라당의 태도 변화를 읽어낸다는 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7년의 시차에서 빚어진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작은 단서임은 부인할 수 없다.
‘2007 남북 정상선언’에 대한 한나라당의 반응을 좀더 살펴보자. 한나라당 안에도 비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당이 대선 체제로 정비된 상황이어서, 이명박 후보의 말이 대표성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이 후보가 4일 밝힌 입장은 이렇다. “두 정상의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핵폐기 문제와 인도주의적 문제인 이산가족 문제, 국군포로 문제, 납북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은 것은 매우 아쉽다.” 할 말은 하는 듯하면서도 ‘딴지’를 건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중심 이동이 태도 변화의 원인
당 대변인이자 이 후보의 ‘입’이라 할 수 있는 박형준 의원은 긍정적인 부분을 더욱 강조해 해석한다. 그는 과의 통화에서 공동선언문 제5항을 지칭하며 “후보의 대북정책과 충돌하지 않는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각론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크게 봐서 남북이 ‘윈윈’(상호이익)할 수 있는 평화 공동지대 창설 원칙은 우리도 천명한 바 있다”고 말했다. 총론에서 긍정하고 각론에서 조심스럽게 이견을 제시하는 모양새다.
총론을 긍정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당 자체의 변화에서 그 첫 번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변화의 노력들은 단선적이지만 때론 성과물을 만들어내면서 지난 3년 동안 길게는 2002년 이후 지속적인 과제로 추진돼왔다. 2004년 ‘탄핵 역풍’을 맞은 한나라당의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당시 과의 인터뷰에서 ‘정책적인 측면에서 한나라당이 변화를 꾀해야 할 부분은 뭔가’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우선 대북정책을 바꿔야 한다.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들은 대북지원이나 남북경협 등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 총선 이후 박 교수는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을 맡아 2004년 말 ‘선진통일의 길, 공개토론회’에서 가칭 ‘한민족 선진공동체 통일방안’이란 걸 제시한다. 2002년 대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할 땐 매번 거르지 않고 수구 냉전적 대북정책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물론 그즈음 국가보안법을 페지하려는 열린우리당과 대치하면서, 당의 보수적 대북관 이미지가 다시금 부각됐다. 하지만 2006년 당 정책위 차원에서 ‘새로운 대북정책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여는 등 노력은 지속됐다. 이즈음 당혁신위는 당 정강·정책상의 대북정책을 유연하게 다듬는 작업을 마친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한나라당 대북정책의 이념 좌표가) 중앙으로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극우 보수의 상징적 인물이던 정형근 의원의 가운데로의 ‘전략적 태도 변화’에서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이명박 후보의 등장은 주목할 만하다. 대북 문제마저 실용적·경제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상대적으로 이념적 보수성을 크게 탈색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중심 이동과 함께 대선이란 변수도 한나라당의 정상선언에 대한 태도를 결정지은 중요한 요인이었다. 한나라당은 그동안 선거에 영향을 줄까봐 대선 전 정상회담의 개최를 경계해왔다. 때론 반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린 정상회담을 대선을 의식해서 세게 비판할 수 없게 됐다. 대선은 불과 두 달여 남았다. 이념적 대립 전선의 형성을 원치 않는다. 현재 대선 구도가 유리하게 짜인 판에 어디로 튈지 모를 변수의 생성을 원치 않는다. 더구나 정상회담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당위론적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10월4일 남북 정상회담 대국민 보고에서 밝힌 얘기는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합의가 좋은 것이면 찬성하면 불리해지는 것이 없는 것이고, 합의가 나쁜 것이면 반대하면 불리해질 일이 없다. 합의 자체가 누구에게 유리·불리가 아니라 합의를 대하는 태도랄까, 후보들의 전략 자체가 유리·불리를 가르는 것이지, 이 합의가 누구에게 유리·불리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한나라당에도 ‘교훈’이 될 수 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지난 10년 동안 한나라당은 대북정책을 정하는 데 고민할 필요가 그리 많지 않았다. 즉자적이었다.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정부의 정책과 대립각을 세우는 선택을 하면 됐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해서 얻은 게 그리 많지 않았다.
이행 과정에서 갈등 불거질 수도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 진영에서 중시했던 납북자 문제 등에서 성과를 내지 못한 점을 솔직히 밝힌 점은 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발을 누그러뜨리는 쪽으로 작용했다. 노 대통령은 “다음에 이 문제(납북자 문제 등)를 풀어가는 데 밑거름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어떻든 이번에 해결하지 못해서 국민 여러분께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각론으로 존재하는 한나라당의 이견이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지는 관심거리다. 박형준 대변인은 “앞으로 해석이나 실제 시행해나가면서 부분적 논쟁이 생길 수 있는 것들이 공동선언문에 숨어 있다”고 말했다. 남북 정상선언은 그걸로 끝이 아니다. 구체적 이행 과정이 남아 있다. 남한 내부적으론 보수 세력과 보수를 대변하는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한나라당의 동의와 협력이 있어야 추진이 가능하다. 남북관계발전기본법에 따라 합의서 중 입법 사항과 혈세가 들어가는 부분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행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만한 요소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행 과정의 속도와 강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당장 돈이 들어가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 중 하나는 경의선 개·보수 문제다. 구갑우 교수는 “내년 베이징올림픽 경기대회의 남북 응원단이 경의선 철도로 이동할 수 있게 하려면 개·보수를 서두를 수밖에 없다”며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만큼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정치권이 이 부분에 대한 합의를 어떻게 이뤄낼지가 앞으로 합의문 이행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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