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남북을 가르고 남한 내부를 가르는 해상의 DMZ,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font>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몇 년 전 백령도에 간 적이 있다. 인천에서 쾌속선을 타고 4시간 이상을 달렸다. 참으로 멀었다. 백령도의 언덕에 올라 북쪽 바다를 보니, 너무 가까웠다. 심청이가 공양미 300석에 몸을 던졌던 인당수가 코앞에 보인다. 몽금포타령의 첫머리에 나오는 장산곶도 아주 가깝다. 먼 바닷길이 아니라, 육지로 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성에서 해주로 그리고 장산곶까지 황해도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를 유람할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
<font color="#216B9C">△남과 북이 화해와 협력의 미래를 약속한 6·15 공동선언에 합의하기 꼭 1년 전인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벌어진 교전 사태 때 우리 해군 고속정이 북한 경비정을 북방한계선(NLL) 이북으로 밀어내기 위해 차단기동을 하고 있다. 서해의 평화는 NLL이란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 정착될 수 있다.(사진/ 국방부)</font>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평화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평화 의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현재 한반도에서 평화가 당장 필요한 곳은 서해다. 1999년과 2002년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남북한은 그동안 해상경계선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대립해왔다. 2차 남북 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해상경계선 문제는 우리 사회 내부의 가장 뜨거운 감자가 됐다. 역사적 사실과 냉전시대의 ‘만들어진 기억’ 사이에 쟁투가 벌어지고 있다. 이념의 믿음으로 기억을 만들어보려 하는 사람들은 북방한계선(NLL)을 말한다. NLL은 남과 북을 가르고, 이제는 남쪽 내부의 이념적 경계선이 됐다.
문제는 NLL이 아니다. 서해 평화 정착이다. NLL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찬반을 떠나, NLL은 합의된 군사분계선이 아니다. 분쟁의 씨앗은 정전협정에 있다. 정전협정은 육상경계선, 즉 군사분계선을 명확히 했지만, 해상경계선 문제는 공백으로 남겨두었다. NLL과 관련해 실효적 지배를 강조하는 논거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남북한이 NLL을 합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유엔사에 오랫동안 근무한 이문항(미국명 제임스 리)씨가 분명히 밝혔지만, 1953년 7월 군사정전위원회 1차 본회의부터 마지막 회의였던 1991년 2월 459차 본회의까지 유엔사가 ‘북방한계선’을 거론한 적은 없다. 40여 년의 세월 동안 북한의 서해 해상침투 사건, 납치 사건을 비롯해 다양한 해상에서의 도발이 있었다. 그러나 판문점에서 열렸던 모든 회의, 전화, 서신, 그 어디에서도 ‘NLL 침범’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다. NLL은 합의된 개념이 아니다. 정전협정 15항에 근거해 우리 쪽 인접 해면의 침입을 협정 위반이라고 따진 것이다.
그렇다고 서해경계선 문제를 지금 논의할 수 있을까? 서로가 상이한 경계선을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계선을 재확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2006년에 4차 장성급 회담, 그리고 올해에 5차와 6차 장성급 회담을 했지만, 남북한의 견해 차이는 분명하다. 해법의 근거는 결국 1992년에 합의한 남북 불가침 부속합의서 3장 제10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남과 북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합의했다. 협의가 가능한 환경은 포괄적인 군사적 신뢰구축 노력이 병행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남북 군사당국 간 신뢰를 쌓고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이 성과를 보일 때, 해상경계선 문제도 풀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경계선을 확정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이 지역에서 평화를 만들어가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선 서해 평화 정착은 군사적 충돌 방지에서 시작할 수 있다. 2004년 6월 2차 장성급 회담에서 남북한은 합의했다. 함정들이 서로 대치하지 않도록 하고, 상대 함정에 물리적 행위를 하지 않으며, 오해를 줄이기 위해 통신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임시방편이지만 군사적 신뢰구축의 첫걸음이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서해경계선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기 이전에는 긴장의 가능성이 상존한다. 따라서 현재의 합의를 좀더 구체화하고, 완충수역에서의 물리적 접근을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해주직항로, 왜 안 되나
더 중요한 것은 서해에서 호혜적 이익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공동 어로와 직항로 문제는 현재 상태에서도 풀어갈 수 있다. 서해에서 공동 어로는, 1999년과 2002년의 군사적 충돌이 결국 꽃게잡이 경쟁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중요하다. 현재 남북한은 공동 어로의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문제는 기준수역을 어떻게 정하느냐다. 남쪽은 NLL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고, 북쪽은 NLL 남쪽 지역을 공동어로 구역으로 주장하고 있다. 역시 NLL 문제다. 필자는 지금 상황에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상황은 마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 가겠다고 우겨서 결국 둘 다 못 가는 형국이다.
북한도 물리적 충돌을 우려해 NLL 이남으로 오기를 꺼리고, 남쪽 역시 NLL 밑에 어로한계선을 지정해 우리 어선이 월선하지 않도록 어업지도를 하고 있다. 매년 꽃게철이 되면 남북한은 신경전을 벌이고, 그사이로 중국의 저인망 어선들이 새까맣게 출동해 꽃게를 잡아간다. 이제는 남북한 해군이 힘을 합쳐, 중국 어선들이 오는 것을 막고, 공동 어로를 합의해야 한다. 서해5도 전 해역에 기준수역을 정하는 것이 어렵다면, 우선 시범적인 공동 어로 구역을 설정해 운영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이 영토, 영토 하는데, 만약 어로한계선 이북수역에 들어가 어로활동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영토가 늘어나는 것이지 줄어드는 건 아닐 것이다. 공동 어로의 기준수역을 정할 때 신축성이 필요하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우리가 양보하면 마치 북한의 잠수정이 인천 앞바다까지 올 것처럼 얘기하는데, 분명한 것은 공동 어로가 가능한 평화수역에는 당연히 군사적 목적의 함정은 드나들 수 없다.
직항로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미 예성강이나 해주 인근 해역에서 모래를 싣고 오는 남쪽 배들은 직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박들이 해주항으로 들어오려면 백령도를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해 차선모 남북해운협력 북쪽 대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는 남북경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물류비를 낮춰야 하고, 그러려면 항로를 단축해 운행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선모 대표는 오히려 반문했다. 직항로 문제는 사실 북쪽이 남쪽에 요구하고 싶은 사항이라면서, 해주 직항로 문제를 거론했다. 민간선박에 한정해서 직항로를 허용해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군함의 통행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다.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협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서해평화경제지대의 창설을 제안하고자 한다. 수산 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한 평화수역, 한강 하구의 공동 개발, 해양평화공원, 그리고 해주항의 개방과 산업단지를 만드는 것이다. 평화수역은 시범구역부터 시작해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한강 하구 공동 개발은 이미 남북한이 합의했고, 정전협정에서도 민간선박의 운항을 허용했기 때문에,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
홍해처럼 해양평화공원을
일제 시기까지 한강은 바다로 통하는 강이었다. 전쟁과 분단으로 한강은 임진강이 만나는 하구에서 끊어졌다. 남북한은 이미 2006년 6월 12차 경제협력 추진위에서 한강 하구의 골재 채취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한강 하구 개발은 친환경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남북합의문에 공동 개발이라는 포괄적 용어가 있음에도, 골재 채취라는 표현을 쓴 것은 참으로 유감이다. 한강 하구는 희귀생물, 습지 등 생태보전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환경단체들도 이 지역의 생태보전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이제 남북 경제협력 과정에서도 환경과 개발을 균형 있게 고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물론 막대한 양의 토사가 하구로 유입되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한강에서 서해까지 배가 다니려면 준설작업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사업을 추진하기 이전에 종합 환경조사를 충분히 거치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노력이다. 분단이 준 유일한 선물은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서 환경을 보호한 것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은 한강 하구 공동 개발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해양평화공원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해안 접경수역은 연안생태계가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수산자원이 풍부하고 물범과 저어새 등 각종 보호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에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홍해 해양평화공원은 1994년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맺은 평화협정의 산물이다. 당시 평화협정에서는 양국의 인접 해면인 아카바만의 군 병력을 철수시키고, 항행의 안전과 자유를 보장하며, 관광 증진을 위한 공동 협력과 해양 생태환경의 보전을 합의했다. 특히 아카바만 산호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해양평화공원을 만든 것이 주목된다. 세계적인 분쟁지역에는 긴장을 완화하고, 공동 협력을 추구하며, 함께 환경을 보전하기 위한 평화공원이 많다. 한반도는 지구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다. 분쟁의 바다 서해에 해양평화공원을 만든다면,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한반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줄 것이며, 국제적인 평화관광 지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해군기지가 있는 해주를 평화협력 단지로 만들 필요가 있다. 해주만의 생태적 가치를 고려할 때, 해주항만을 환경친화적 공간으로 만들고, 위탁가공 위주의 해상 공단을 조성한다면, 그것이 중국의 연안 지역과 남쪽의 서해 산업단지를 묶는 새로운 황해경제권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개성에서 옹진반도, 해주로 이어지는 육로를 개방해, 이곳을 관광지대로 확장하고 배후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면, 그것은 서해 평화 정착의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과거 냉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서해를 평화와 공동 번영의 프레임으로 볼 때가 왔다.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서해가 평화의 바다, 공동 번영의 바다로 전환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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