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 전문가와 정치권 관계자의 설전…업체·정치권·언론의 태도에 문제 없는가
▣ 사회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정리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정치에 여론조사가 도입된 지 꼭 20년이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위험성도 안고 있다. 여론조사가 과학이라고 하지만, 과학적 한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또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조사기관과 그 결과를 공표하는 언론, 결과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정치권의 ‘상업적 이해’와 ‘무지’ 그리고 ‘의도’가 개입될 수 있다. 은 여론조사 업체인 코리아리서치 사장을 거쳐 현재 엔아이코리아를 운영하는 이흥철(50) 대표이사와 고려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가 지금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를 돕는 김장수(40) 박사를 불러, 정치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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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좌담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여론조사가 정치에 미친 긍정적 영향을 먼저 얘기해보자.
이흥철(이하 이): 1987년 대선을 보자. 김영삼과 김대중 두 후보의 단일화가 실패했다.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서로 자기 쪽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내밀었다. 서로 자신이 나가야 당선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여론조사가 많이 과학화·활성화됐다. 후보 지지도 정보 등 유권자 입장에서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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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이하 김): 여론조사를 하는 이유는 정확한 민심을 읽자는 거다. 여론조사는 민주주의의 혈맥일 수 있다. 그만큼 의미가 있지만 조사가 잘못되거나 잘못 보도되면 민심의 왜곡을 불러온다. 과거 여러 사례들이 정치 여론조사의 병폐를 증명한다. 조사 기법이 발달했다는 것엔 동의한다. 하지만 여론조사 기관이 자료를 모으고 분석, 보도하는 방식에서 여전히 정치적으로 편향되거나 민심 왜곡의 가능성이 있다.
이: 김 박사는 여론조사가 유권자의 태도와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제 아래 말한 것 같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에게 영향을 준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내가 1995년에 직접 실험한 뒤 논문으로도 썼지만, 유권자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태도나 신념에 배치되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신념을 바꾸기보다 되레 부정하면서 자기 의견을 더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김: 그런 결과를 부정하진 않는다. 어떤 사물에 대한 확고한 태도가 있으면 다른 정보가 들어와도 쳐낸다. 태도 일관성 이론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사람들이 정책, 가치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당내 경선의 경우엔 바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이명박 둘 중 어느 쪽 지지자가 아니고, 한나라당 후보 중 (본선에서) 이길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여론조사가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더구나 선거가 임박하기 전까지도 유권자들의 선호는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유권자가 조사 결과를 참조할 수 있지만 무지몽매하진 않다. 영향받는 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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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의 대표성 확보할 수 없는 이유
사회: 조사 업체의 정치적 편향성이 새삼 정치권의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조사 업체 입장에서 말하자면, 현행 대부분의 조사에서 후보들의 지지도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대체로 주요 일간지에 발표되는 조사 결과들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문제는 조사 결과가 언론에 발표되면서 전화면접인지, 웹메일인지, 자동응답시스템(ARS) 조사 방식인지 명시가 안 돼 혼란을 주는 경우가 있다. 전화면접과 ARS 조사 결과는 차이가 상당하다. ARS는 방법론적으로 훨씬 문제가 많지만, 그걸 전적으로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이런 조사 방법의 차이 때문에 결과들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방법의 차이를 명확히 해주지 않으면 일반인들은 조사가 잘못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김: 조사 결과에 별 차이가 없는데도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 건 문제다. 통계학적 상식에도 맞지 않다. 보도할 때 데이터를 모으는 방법에 따라 결과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똑같은 대상을 놓고 경향적으로 어느 한쪽이 높게 나온다면 조작이 아니더라도 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다. 우리나라 여론조사의 문제는 여론조사의 ‘ABC’(기본)인 표본의 대표성을 제대로 확보하지 않는 데 있다. ARS의 경우 이슈에 특별히 관심이 있거나 불만이 있는 사람의 응답률이 높다. 전화면접 조사의 경우엔 특정 시간대에 특정 연령층이 몰릴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는 밤에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론조사는 이런 원칙을 지키는 곳이 몇 개가 되나? 거의 없다.
이: 우리나라에서 실제 전화조사를 할 때 성공률은 5명 중 1명 정도다. 김 박사의 말대로 그것이 표본의 대표성을 왜곡한다는 것에 100%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 특정 후보 캠프나 언론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전화조사 1천 명을 의뢰하면서 자료 수집 기간을 포함해 고작 3일 정도 준다. 하루에 조사를 끝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 조사기관들은 비용 때문에 표본 대표성에 대한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
이: 문제는 그래서 그런 조사가 어느 정도 왜곡되느냐는 거다. 그것에 대해선 확인된 바 없다. 오차범위에서 차이가 있겠으나, 왜곡은 심각하지 않다.
김: 전적으로 틀렸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여론조사를 하는 데 기본 원칙이 있는데 그걸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다.
이: 나라마다 사정이 있다. 현실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조사 원칙을 지키면 시장에서 사장될 수밖에 없다.

사회: 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권은 유리하면 과학이자 민심이라 말하고, 불리하면 조작됐다거나 정치적 편향성 의혹을 제기하는데?
이: 여론조사에서 뒤지면 음모론을 꺼낸다. 인터넷상에서 조사기관 대표 누구는 어느 쪽 캠프의 학교 후배로 그쪽에 줄섰다, 이런 식이다. 정치적 편향을 얘기할 땐 큰 여론조사 회사와 작은 회사를 구분해야 한다. 조그만 회사나 원칙을 생각하지 않는 분, 또는 정치권과 연계된 분들은 별것 아닌데도 조사 결과를 튀게 하려는 경향이 있다.
김: 여론조사 전문가가 조사 설계를 하려면 인지과학이나 통계를 전공해야 한다. 한국에서 여론조사를 설계하는 분들 중 두 분야에 전혀 전문성이 없는 경우도 많다.
이: 조사 업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비쳐질 수 있는 말은 곤란하다. 무엇이 됐든 조사 설계에서 자료 수집 과정엔 현실적 제약이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편향성에 따라 의도적으로 조사 결과를 짜맞추는….
김: 의도가 없어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면 어느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
이: 대부분 조사전문가의 경우 10~20년 하다 보면 통계학이나 심리학 공부를 안 했더라도 경험적으로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끌어내는 데 큰 문제가 없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하더라도 결과를 분석하는 데 의도가 개입될 수는 있다. 문제는 때론 정치권이 그런 걸 요구한다는 거다. 조사해서 홍보 자료로 쓰겠다는 분들도 있다.
김: 솔직히 캠프에 있다 보니 홍보하려고 유리한 걸 뽑아서 한다.
사회: 조사 업계에 정치적 편향성이 심각한 문제인가?
이: 심각한 건 아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특정 조사 업체) 개인의 문제다. 매도하듯이 얘기하면 안 된다. 실제로 큰 회사의 경우 정치 여론조사가 매출의 5%를 넘지 않는다. 누가 정치 여론조사 때문에 나머지 95%를 희생하겠나.
사회: 여론조사 결과의 검증 절차가 미약한 거 같은데?
이: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현실적 제약 아래 자료 수집 등을 충분히 객관적으로 하려고 노력한다. 검증은 아주 간단하다. 최종적 검증은 선거예측 결과다. 그 이전에라도 엉터리로 조사하면 당장 다른 곳과 비교되지 않나. 여론조사 기관은 내부적으로 면접원들이 제대로 조사하는지 전화 감청을 적게는 30%, 많게는 100% 한다. 또 가끔 의뢰인들이 와서 보기도 한다.
김: 미국에선 선거 여론조사를 하려면 원래 윈캣(Win-CAT)이란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엔 몇 시에 전화를 돌렸는지, 콜백(전화 다시 걸기)은 몇 번 했는지 다 기록된다. 함부로 손을 댈 수도 없어 논란이 될 때 이걸 공개하고 검증하면 된다.
이: 국내에서 캣(또는 윈캣) 시스템을 쓰는 곳은 많지 않다. 캣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1천 명 샘플을 조사할 때 40대의 컴퓨터를 갖추어야 한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몇천만원이 든다. 우리가 갓 먹고살기 시작했는데, 미국엔 이런저런 좋은 시설이 있는데 우리나라엔 왜 이런 시설이 없냐는 식으로 얘기하는 건 무리다. 콜백 했느냐 안 했느냐도 중요한 기준은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4~5번은 해야 되지만, 그걸로 원칙을 지켰다 안 지켰다고 얘기해선 안 된다. 그렇게 조사하려면 2~3일은 걸린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 정치권이나 언론은 조사가 하룻만에 끝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의뢰하는 게 관행이 돼버렸다.
사회: 여론조사가 민심을 읽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정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했다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김: 민심을 정치에 반영하는 게 맞다. 정교한 시스템의 뒷받침 아래 여론조사가 정확히 된다는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여론조사를 통해서 정당 내 후보를 선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취약한 정당정치의 문제가 여론조사로 드러나는 것뿐이다.
사회: 여론조사 만능론이란 얘기마저 나온다. 남북 정상회담 발표 바로 다음날 신문과 방송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김: 그 짧은 기간에 사람들의 태도가 형성될 리 없다. 사실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를 하는 건 부적절하다. 언론의 선정성과 난립하는 조사기관이 만들어낸 한국적 현상이다.
이: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뒤 바로 다음날 FTA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를 하는 게 우리 언론의 현실이다. 이런 무리한 여론조사를 언론사가 부탁해오면 여론조사 업체의 입장에선 못하겠다고 할 수 없다.
김: 심하게 얘기하면 이건 기자 직업윤리의 문제다. 기자들이 잘 모르고 쓴다. 난무하는 조그만 여론조사 회사들한테 문제를 묻기보다 표본오차가 뭔지도 모르고 여론조사 기사를 쓰는 기자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오차범위에서 1%포인트 올라간 것을 “박근혜 상승 추세”라고 보도한다면 문제다. 문제는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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