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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아프간에 금송아지 묻어놨나

등록 2007-08-03 00:00 수정 2020-05-03 04:25

지역재건팀 참여 운운하며 철군 미적거려…윤 하사 사망 뒤 국회 결의안도 묵살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지난 7월20일 12시47분, 는 전세계로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이 한국인들을 납치했다는 소식을 타전했다. 그리고 딱 8시간 뒤 납치 무장단체의 대변인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한국군에 이튿날 정오까지 철수할 것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또다시 한국에 날아들었다. 이튿날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정부는 국회에 금년 말 이전에 임무를 종료하고 철군한다는 계획을 지난해 말 통보했으며 그 계획 이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장관의 철군 재고 요청

탈레반의 요구에서 알 수 있듯이 비극의 씨앗은 미국이 주도하는 점령군의 일원이 된 파병에 있다. 파병반대국민행동은 7월26일 기자회견문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점령과 파병에 있다”고 지적했다. 파병에 따른 테러 위협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아프가니스탄엔 의료지원 부대(동의부대) 58명과 건설공병지원 부대(다산부대) 147명이 파병돼 있다. 2002년 파견돼 해마다 파견 기간을 1년씩 연장해왔다. 박정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팀장은 “다산·동의 부대가 아프간 주민을 도우러 간 것처럼 미화되고 있으나, 한국군의 역할은 대체로 미군을 지원하는 것”이라며 “대테러 전쟁을 하겠다며 파병된 부대가 현지에서 우리 국민을 살리는 데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는 올 12월 말까지 완전 철수하는 조건으로 아프간 파병을 1년 연장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요구가 있기 전까지, 정부의 약속은 오락가락했다. 정부는 아프간 파병을 사실상 점령군 지원을 위한 지역 재건팀(PRT/RRT)으로 ‘변칙적’으로 전환할 계획을 검토 중이다.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과의 통화에서 “현재 일부가 지역재건팀에 참가하고 있지만 (재건팀 증원 등에 대해) 아직 준비된 것도, 결정된 것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장수 국방장관의 발언은 이와는 사뭇 배치된다.

김 장관은 아프간 피랍 사태가 터지기 전인 지난 6월2일 싱가포르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을 만나,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김 장관은 이에 “동의·다산 부대는 국회 의결에 따라 올해 말 철수할 예정”이라면서도 “아프간의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며, 지역재건팀 파견 확대 등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리고 같은 달 8일 열린 제13차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한-미 간 구체적 논의가 이어졌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며칠 뒤 열린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서도 이런 의견을 되풀이했다. “현재 지역재건팀 참여를 다각적으로 검토 중이다. 지역재건팀은 순수 민간 인력으로 편성하는 것이 원칙이고, 지역 군부대에서 경계를 제공한다. 하지만 우리 병력이 직접 가야 할지, 다른 나라의 군 병력을 지원받는 것이 안전한지를 검토하고 있다.” 시각에 따라 추가 파병 가능성마저 열어놓고 있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는 발언이다.

“비슷한 사고 일어날 가능성 매우 크다”

국방부는 지난 6월21일 ‘아프가니스탄 다산·동의 부대가 참여하고 있는 지역재건팀’과 관련된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에 “8명이 미 바그람 (기지) 지역재건팀에 편성되어 공사 감독·지도, 지역개발 회의 참석 및 재건 소요 파악, 구호·의료 지원, 현지 업체 대상 기능공 교육 등 활동을 수행 중에 있다”고 답변했다. 파병을 지역재건팀으로 대체하는 것은, 군인의 전투복이 민간인의 작업복으로 바뀌지만 활동 내용은 똑같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아프간 파병 연장동의안엔 2007년 12월 말까지 전 병력 철수를 완료한다고 못박혀 있고, “필요시 파견 연장기간 종료 이전이라도 철수 가능하다”고 덧붙여놨다. 박찬석 의원 등 국회의원 23명은 지난 2월27일 다산부대 소속 윤장호 하사가 사망한 뒤 ‘아프가니스탄 파견 국군부대 철군 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결의안은 “최근 아프가니스탄 정세로 보아 국군부대가 계속 머물 경우 비슷한 사고가 또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즉각 다산·동의 부대를 데리고 올 것을 대통령과 정부에 촉구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7월26일 피랍된 23명의 한국인 가운데 배형규 목사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정부는 아직도 12월31일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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