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조건 나쁘다는 인식 때문에 경제적 보상 요구 드러내지 않아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그리 길지 않은 기자 생활 경험에 비춰볼 때, 독자 의견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주제는 ‘공공 갈등’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아닌가 싶다. 자기 집 근처에 들어오는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기사라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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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그런 경험이 있었다. 647호(2월13일치) ‘시사넌센스’ 코너에서 쓰레기 소각장 광역화를 반대하는 서울 목동 주민들의 사연을 비꼬았다가 여러 통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흥미로운 현상이 발견됐다. 메일을 보낸 주민들은 “자신들이 집값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고, “우리를 ‘님비’(NIMBY·지역이기주의)로 매도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이옥신 등 쓰레기 소각장의 위험성 때문에 싸운다”고 말했다. ‘집값’이 아닌 ‘건강권’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건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는 시민단체 관계자에게서도 비슷한 인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소각장 광역화에 반대하는 주민들 가운데는 정치적 목적이나 재산상의 목적을 가진 분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정말 순수한 마음을 가진 주민들도 있다”고 했다.

님비를 주장하면서 님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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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의문이 들었다. 정치적 목적이나 재산상의 목적을 갖는 건 사악한 것이고, 건강권을 주장하는 건 순수한 것일까. 주민들의 항의 메일에는 수긍할 수 있는 주장이 많았기에 후속 기사(3월6일치 649호 ‘신뢰가 소각된 자리, 대립만 남아’) 를 출고했다. 그렇지만 찜찜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님비는 나쁜 것인가?
생각을 조금만 돌려보면, 님비는 우리 일상에서 쉽게 관찰되는 자연스런 사회 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경기 하남의 경우에서 보듯 광역 화장장을 지어 생기는 편익은 경기도 전체로 분산되는 데 반해, 그로 인한 교통혼잡·소음·지역 이미지 손상 등의 비용은 하남 주민들에게 집중된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 손해를 입는 사람이 이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시민적 권리다. 그래서 경제학에서는 편익을 얻는 전체 구성원들이 피해를 보는 지역 사람들에게 ‘비용-편익’만큼의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가르친다.
배귀희 한국행정연구원 협력·갈등관리연구단 단장은 “님비가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집단의 이익을 희생시키라는 주장으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남의 예에서 보듯 모든 사람들이 자기 마을에 화장장 설치를 원하지 않는다면, 결국 경기도에는 화장장이 들어설 수 없게 되고 그 피해는 경기도민 모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는 서울시와 서초구 원지동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2000년부터 8년째 해결을 못 보고 있는 원지동 추모공원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루 처리 능력이 69구에 불과한 서울시립 벽제 화장장은 매일 80구 넘는 주검을 처리하고 있고, 그마저 모자라 서울에서 숨진 사람들은 화장장 밖에서 밤을 새워 차례를 기다리거나 지방으로 가야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집단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도덕적으로 꺼림칙한 느낌 때문에 사람들은 님비에 가까운 주장을 펴면서도 자신들은 님비가 아니라고 강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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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나는 님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도리어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는 데 있다. 박홍엽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공공 갈등의 발생 원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가치 추구적’인 갈등이고, 다른 하나는 ‘이익 갈등’이다. 가치 추구적 갈등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이 옳다고 믿는 신념이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고, 이익 갈등은 공공 정책이라는 제도 변화로 생기는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이다. 즉, 한 마을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선다고 할 때 ‘집값이 떨어지니 절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익 갈등이고 ‘건강권을 수호하자’고 외치는 것은 가치 추구적 갈등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행정권력
이익은 돈으로 계량 가능하고, 그 때문에 밀고 당기는 협상을 벌일 수 있지만 가치는 협상 대상이 되지 않는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투쟁이 4년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토지 보상가 상향 조정’이 아닌 ‘평화’를 말했기 때문이다. 천성산 도롱뇽 싸움과 새만금 방조제 싸움, 부안 방폐장 입지를 둘러싼 갈등도 이익이 아닌 ‘환경 보존’이나 ‘반핵’ 같은 가치를 둘러싼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때때로 ‘경제적 보상’을 바라면서도 그런 요구를 감춘 채 가치 투쟁에 나서곤 한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말하지 않기 때문에 협상은 어려워지고 갈등은 오래 지속된다. 갈등이 오래될수록 사람들은 돈보다 가치와 명분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인 문제는 ‘님비’라는 사회 현상이나, 님비이면서 님비가 아니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것은 꾸준한 토론과 협상을 거쳐 합의를 도출해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피곤해하는 행정권력이다. 민주주의는 고도의 지식을 갖춘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보다 평균적 지식을 가진 시민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하는 게 장기적으로 사회 공동체에 이로울 것이라고 믿는 신념 체계다. 배귀희 단장은 “공공 갈등에 맞닥뜨린 행정기관은 궁극적 해결책은 사업의 강행보다는 설득이고, 설득이 안 되면 사업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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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 조정 매뉴얼, 튼튼한가 |
우리나라에는 공공 갈등을 일으킬 사업을 추진하는 행정기관이 따라야 할 매뉴얼이 정해져 있다. 2007년 2월12일 대통령령으로 제정된 ‘공공기관의 갈등 예방과 해결에 관한 규정’이다. 공공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낭비한 지난 경험으로 볼 때 규정 제정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규정이 정의하는 ‘갈등’이란 공공 정책을 수립하거나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해관계의 충돌을 말한다. 규정은 공공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행정기관이 가져야 할 갈등 해결의 원칙으로 △자율 해결과 신뢰 확보 △참여와 절차적 정의 △이익의 비교형량 △정보 공개 및 공유 △지속 가능한 발전의 고려 등 다섯 가지를 꼽았고, 갈등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한 기구인 갈등관리심의위원회·갈등조정협의회 등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도 못박았다.
규정의 핵심은 행정기관이 공공 정책을 시행할 때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주거나 공공 갈등이 예상돼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될 때 갈등 영향 분석을 실시할 수 있다고 한 점이다. 분석되는 내용에는 공공 정책의 기대효과, 이해관계인과의 의견 조사, 전문가 의견, 갈등 예방·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영향 분석은 ‘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해야 한다’는 의무는 아니다.
다른 문제는 규정이 대상으로 삼는 기관이 중앙 행정기관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토지 수용 과정에서 공공 갈등을 자주 일으키는 것으로 악명 높은 대한주택공사·한국토지공사 등의 공기업이나 지방자치단체는 규정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규정은 “지방자치단체, 그 밖의 공공기관은 이 규정(대통령령)과 동일한 취지의 갈등 관리 제도를 운영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역시 의무 사항은 아니다. 규정은 새만금, 부안, 천성산,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 등 커다란 공공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좌충우돌해왔던 지난 행정 관행에 대한 반성으로 읽히는 구석이 많지만, 대부분 조항이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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