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알고도 기지를 받았습니까” 국회 환노위 현장조사에서 드러난 미군 캠프 지하의 기름막
▣ 파주·의정부=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국도 1호선은 신의주와 목포를 잇는 우리나라 제일 가도다. 전쟁으로 도로는 끊겼고, 그 길을 따라 줄줄이 연결된 미군부대는 지난 반세기 동안 북의 침입으로부터 서울 서북전선을 방어하는 인계철선 역할을 해왔다. 2004년 부터 시작된 미 2사단 병력의 이라크 차출로 임진강 너머 캠프 그리브스를 시작으로 문산의 캠프 자이언트와 캠프 게리오언, 파주의 캠프 스탠턴, 캠프 에드워즈, 캠프 하우즈는 텅 비었고, 지난 5월31일 우리 품으로 반환됐다.
광고

이 지역의 미군 범죄를 관할하는 부대는 캠프 하우즈에 있던 미 2사단 헌병 2중대 3소대였다. 기자는 1998년 10월부터 2000년 9월까지 헌병 2중대에 배속된 카투사였다. 3소대가 훈련에 끌려가 부대를 비울 때면, 내가 근무하던 의정부 캠프 스탠리의 4소대가 그 지역의 치안 업무를 떠안아야 했다. 캠프 그리브스에서 캠프 하우즈까지 예하 부대들을 한 번 찍고 오는 데만 3시간 넘게 걸렸다. 파주의 미군부대들은 광범위한 지역에 퍼져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기름 오염은 일상이었다. 녹색연합이 2005년 6월 펴낸 보고서 ‘반환 미군기지 환경문제와 개선방안’을 보면 1991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부대에서 터진 환경오염 사고가 드러난 것만 75건에 이른다. 1999년에는 캠프 하우즈의 송유관에서 200ℓ의 기름이 유출돼 부대 앞을 흐르는 고산천으로 유입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다. “괜찮냐”며 그쪽 부대에 근무하던 동기들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용산 미군기지 영안소 부소장(이후 소장으로 승진) 맥팔랜드가 포름알데히드 20상자를 한강에 흘려보낸 사실이 드러난 2000년 7월13일, 미군 소대장은 “그것은 인체에 큰 해가 없는 물질”이라며 우겼다.
광고
7년 만에 찾은 부대는 퇴락해 있었다. 2007년 6월14일 오전 10시40분.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캠프 에드워즈(면적 7만6천 평)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의원들을 태운 버스가 들어섰다. 캠프 에드워즈에서 미군들이 모습을 감춘 것은 2004년 여름이다. 그때까지 그 땅에 머무른 것은 미 2사단 82공병대였다. 미군들이 떠났고, 기지는 버려졌다. 건물 벽면에서 그곳에 머물렀던 부대의 이름과 건물 번호들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국회 환노위는 이날 캠프 에드워즈, 캠프 하우즈, 캠프 카일 등 3곳의 반환 미군기지를 찾아 현장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6월25일부터 이틀 동안 ‘주한미군 반환기지 환경치유에 관한 청문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캠프 에드워즈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50여m 꺾어져 들어가면 미군들의 주유소(fuel point) 터를 만날 수 있다. 그 터 너머 우악스런 옅은 황토색 건물은 82공병대의 주차장·정비소(motorpool)이다. “이곳이 지난번에 2.4m의 기름층이 관찰된 곳입니다.” 주유소 앞에 놓인 기름탱크 옆에 뚤린 가로 7㎝, 깊이 6m의 관정을 가리키며 환경부에 파견된 군환경 태스크포스(TF)팀의 유수호 중령이 말했다. 이곳의 환경오염 조사를 담당했던 농업기반공사 직원이 관정 속으로 관측기기 ‘인터페이스 미터’를 집어넣었다. 길게 이어지는 ‘삐’는 물이고 급박하게 끊겼다 이어지는 ‘삐’는 기름이다. “삐삐삐삐!” 기기가 급하게 울었다. 유 중령은 “지하 3.9m 아래쪽에 1m 깊이의 기름막이 형성돼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 2005년 조사 때는 2.4m 깊이의 기름이 확인됐던 곳이다. 오염이 의심되는 땅속에 관정을 박으면 토양에 스며든 기름이 압력 차에 의해 관정 속으로 스며든다. 농업기반공사 직원이 두레박으로 투명한 빛깔의 얇은 통에 기름을 건져올렸다. 노란 빛깔의 맑은 기름이었다. 정부는 한-미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자들에게는 어느 기지의 어느 곳이 얼마나 오염됐는지를 보여주는 환경오염조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땅 파자 역겨운 기름 냄새 진동
미 군용트럭들은 우리나라에서는 쓰지 않는 JP-8이라는 연료를 사용한다. 근처 송유관에는 ‘JP-8 to draw tank T-4’ ‘JP-8 to T-2’ 등 어지러운 영문 표기가 선명했다. “이게 무슨 기름입니까?” 이경재 한나라당 의원이 물었다.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 부대에서 사용한 연료유인 것으로 보입니다.” 유 중령이 답했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우원식 의원과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이 막대 위에 기름을 붓고 불을 붙였다. “이 기름을 차에다 넣으면 그냥 간다고 합니다.” 우 의원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날 현장조사에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서재철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미군이 우리나라를 산유국으로 만들어줬다”며 쓰게 웃었다. 관정 바로 옆의 땅을 포클레인으로 3m 정도 파내려가자 역겨운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이 지점 토양의 석유계총탄화수소(TPH) 농도는 1만2108mg/kg으로 우려 기준인 500mg/kg을 20배 이상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광고
“미군이 오염 물질을 제거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병호 의원이 물었다. “그렇습니다.”(유 중령) 일문일답식 대화가 오갔다.
“그런데 왜 이런 모양입니까.”(단 의원)
“미국 쪽에서는 치유 기준을 정한 게 아니라 6개월 동안만 바이오슬러핑(지하수 속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 기법으로 치유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기름띠가 2.4m 관찰됐지만, 지금은 1m로 줄었고.”(유 중령)
“이것을 두고 환경 치유를 했다고 할 수 있습니까.”(단 의원)
“미흡합니다.”(유 중령)
“그런 사실을 알고도 이런 기지를 받았습니까?”(단 의원)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답변을 드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닌 것 같습니다.”(유 중령)
비슷한 대화는 캠프 에드워즈에서 캠프 하우즈를 거쳐 의정부의 캠프 카일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자신들의 실책이 드러날 것을 우려한 외교부·국방부·환경부 등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청문회를 준비 중인 국회의원들의 자료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오염 치유가 아닌 단순한 청소 수준”
우원식 의원은 “문제는 미국이 근본적인 환경오염에 대한 치유는 고사하고, 자기네들이 해결하겠다고 말한 8개항 오염원 제거 약속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제거하기로 한 8개항은 △지하연료 저장탱크 △변압기 절연유(PCB) 물질 제거 △저장탱크 유류방출 및 제거 △냉방장치 냉각제 배수 및 제거 등이다. 증거는 도처에 널려 있다. 의정부시 캠프 카일 창고에는 배관이 절단돼 냉각제가 날아가버린 냉방기가 쌓여 있었다. 하나씩 세어보니 70대였다. 그 안에 들어 있던 프레온가스는 모두 공중으로 날아가버린 것으로 보인다. 프레온가스는 오존층을 파괴한다. 그 부대의 한 쓰레기장에서는 석고 보드와 유리 섬유가 가득 담겨 있었다. 캠프 하우즈에선 기름저장 탱크 66개 가운데 51개에서 기름을 완전히 빼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우원식 의원실의 곽현 보좌관은 “미국의 약속 사항은 오염 치유가 아닌 단순한 청소 수준”이라고 말했다. “프레온가스 처리에 큰돈이나 기술이 드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성의 문제죠. 우리 정부를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러겠습니까.”
이진용 강원대 지구물리학과 교수는 “상태가 생각보다 너무 나쁘다”며 “오염원 제거가 시급히 이뤄지지 않으면 오염 범위가 점차 더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승복 않고 지지층 결집 메시지…민주 “용납 못 할 선동”
‘그 짝에 있는 건 다 달아요’ [그림판]
[단독] 헌재, 프린트도 안 썼다…선고요지 보안 지키려 ‘이메일 보고’
한덕수, 내란문건 봉인하나…‘대통령기록물’ 되면 최대 30년 비공개
우원식 개헌 제안에 국힘 ‘동참’, 민주 ‘성토’…이재명은 ‘침묵’
[단독] 미, 한국 최대 염전 소금 ‘수입 금지’…강제노동 이유
‘이재명 저지’ 시급한 국힘…‘친윤 쌍권’ 체제로 대선 치른다
윤석열, 관저 안 나오고 뭐 하나…“문 전 대통령은 하루 전 내쫓더니”
머스크, 트럼프 관세 발표 사흘 만에 “미국-유럽 무관세 필요”
‘대구 산불’ 추락헬기 44년 쓴 노후 기종…70대 조종사 숨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