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경제적·신체적·정신적 고통 외면하고 병원은 돈벌이에 바빠
▣ 글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려고요.”
여성전문병원에서 시험관아기 시술을 준비하고 있는 정희경(가명·40)씨는 이번 시험관아기 시술이 ‘마지막’임을 강조했다. 목소리는 지쳐 있었지만, 아이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는 듯했다. 정씨의 시험관아기 시술은 7년째 계속되고 있다.
“아기가 갖고 싶은데, 정말 갖고 싶은데…. 잘 안 되니까 답답해요. 그래서 2700만원 주고 대리모도 구해놨어요. 그런데 병원에서 ‘황우석 사건’ 이후 대리모 시술을 잘 안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다시….”
![](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465/309/imgdb/original/2007/0531/02100300012007053132_1.jpg)
시험관아기 시술 1회에 300만원
벌써 시험관아기 시술만 11번째다. 아이에 대한 소망은 어느덧 집착이 됐고, 집착할수록 몸도 마음도 망가져만 갔다. 정씨는 “치료 부작용으로 자궁에 물혹이 자꾸 보이고 잦은 과배란 유도로 난소는 붓고…, 마음의 상처도 이만저만이 아니다”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그런데 어쩌겠어요. 포기는 안 되고, 아쉬운 건 전데요.”
청춘을 불임 전문병원에서 보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만큼 애틋하게 아이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디 정씨뿐일까.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안타까운 사연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8쌍 중 1쌍꼴로 불임”(한국보건사회연구원·2003)에서, 이제 “7쌍 중 1쌍꼴로 불임시대”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 4월25일 발표한 ‘임신·출산 관련 의료서비스 이용추이 분석’에 따르면 보험가입자(2005년 말 기준)의 불임 관련 진료는 총 46만 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11만 건보다 4배 이상으로 늘었다. 불임 전문병원 마리아병원 홍보팀의 임성희씨는 “1997년에는 하루 평균 150명 정도가 불임치료를 받으러 왔는데, 요즘에는 하루 평균 300명 정도가 방문한다”고 밝혔다.
물론 불임 인구가 갑자기 늘었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이들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불임 문제가 보편적인 사회문제가 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당사자에게만 ‘맡겨져’ 있다. 불임부부들은 경제적·신체적·정신적 삼중고에 시달리며 사실상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불임을 경험한 여성(479명)들의 84.2%는 “불임 문제에서 정신적 고통과 우울이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불임치료 비용의 부담이 가정 경제에 심각하다고 응답한 경우는 83.2%, 시부모 등 가족의 편견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51.1%로 나타났다(‘우리나라 불임 및 불임 관련 의료이용 실태와 문제해결을 위한 연구’·2003)
임신이 어렵다는 것도 고통인데 비싼 치료 비용이 더해져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이들도 적지 않다. 통상 시험관아기 시술은 1회에 300만원이 들고, 인공수정 시술은 16만~30만원이다(시험관아기 시술은 난자와 정자를 얻어서 시험관에서 인위적으로 수정한 뒤 이를 다시 자궁 안에 넣어서 임신시키는 방법이고, 인공수정은 남성의 정자를 여성의 생식주기에 맞춰 자궁에 넣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보통 시험관아기 시술 전 단계로 인공수정을 시도한다). 이런 금액은 각종 검사 비용은 제외한 것이다. 불임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는 호르몬 검사, 나팔관 검사 등 기본 종류만 7가지다. 이런 기본검사 비용에는 20만~30만원이 든다. 난임단체 ‘아가야’의 박춘선 대표는 “양약뿐만 아니라 난자의 착상에 좋다는 한약과 좋은 음식까지 먹으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시험관아기 시술 10번 하면 1억원이 날아간다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쉽게 노출되지는 않지만, 불임부부들은 심각한 우울증을 호소한다. 하지만 사회적 지원은커녕 당사자조차도 이를 제대로 치료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결혼한 지 4년, 불임으로 3년 넘게 고생하고 있는 김민정(가명)씨는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차에 뛰어들고픈 충동이 일어났다”며 “임신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죽고 싶다”고 말했다. 불면증과 두통과 구토에 시달리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울다 정신차리면 밤이 오는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기는 일도 잦다. 나팔관이 막혀 시험관아기 시술을 준비하고 있는 최수연(가명)씨는 지난 설에 남편과 말다툼을 하다 남편이 “아이도 못 낳는 게”라고 말해서 큰 상처를 받았다. 최씨는 이혼을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병원, 다짜고짜 시술부터 권해
불임부부들이 의지하는 곳은 현재로서는 병원뿐이다. 그러나 상업적이고 권위적인 병원에서 더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김정인(38)씨도 한때 임신이 잘 안 돼 걱정을 했다. 26살에 결혼한 김씨는 5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았다. “왜 애를 낳지 않냐”는 시댁 식구들과 주변의 압력은 점점 심해졌다. 급기야 김씨는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는 ‘원인 불명’. 그런데도 의사는 김씨에게 바로 인공수정을 권했다. “처음부터 인공수정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의사가 당장 애를 갖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해서 시술을 했죠.” 결과는 실패였다. 상실감이 컸지만, 의사는 실패한 이유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고 다음 시술을 준비하라고만 했다. 자신이 병원에 ‘낚였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김씨는 병원에 발길을 끊고 일에 전념했다. 3년 전 자연임신을 했고 건강한 딸을 낳았다. “불임 경험자들이 병원에서 상담받는 걸 보세요. 바쁜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다짜고짜 시술부터 권한다니까요.”
유외숙 상담21 성건강연구소 소장(심리치료학 박사)은 “맞벌이 부부들의 경우 섹스리스 커플이 적지 않은데, 성생활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결혼 몇 년차에 피임을 안 하는데 임신이 안 되면 불임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면서 “일단 이런 얘기를 들으면 당사자들은 당황하게 되고, 그때부터 심리적 부담이 가중돼 임신이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병원의 횡포는 권위주의와 상업적인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결혼한 지 14년째인 노선영(가명·41)씨는 10년 전부터 불임 전문병원을 다니고 있다. 병원은 시험관아기 시술을 할 때마다 노씨에게 “쓰고 남은 난자를 실험용으로 써도 좋다”는 내용의 동의서를 요구했다. 한번의 시술을 위해 난소에서 여러 개의 난자를 채취하기 때문에 잉여 난자가 생긴다. “의사나 간호사가 동의서를 쓰라고 주면 안 쓸 수가 없어요. 의사한테 잘 보여서 최대한 케어(보살핌)를 받고 싶으니까.” 그러면서도 노씨는 동의서를 쓸 때마다 찜찜하다고 했다. 질 좋은 난자를 연구용으로 쓰고 나머지 난자를 난임부부에게 이식한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동의서를 휴게실 등 오픈된 공간에 비치하면 아마 쓰지 않을 거예요. 돈은 돈대로, 난자는 난자대로 병원에 갖다 바치는 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불임부부를 위한 의료지원 시스템은 어느 정도로 갖춰져 있을까? 보건복지부는 불임부부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난해부터 불임부부의 시험관아기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도시 근로자 가구 월평균 소득 130%(2인 가족이라면 월 419만원, 1인 증가시 20만원씩 추가) 이하의 소득 수준, 여성 연령 44살 이하인 불임부부들이 지원대상이다. 1회에 150만원을 지원하고 2회까지 가능하다(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1회 255만원씩). 그러나 불임부부들은 이런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경남 양산의 가게에서 일하는 임경진(가명·39)씨는 “저소득층에게는 불임검사 비용과 인공수정비도 부담이 된다. 시험관아기 시술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아예 검사조차 못 받는 사람들에 비해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다. 지원의 우선순위가 잘못됐다는 것이다.
보험 적용은 커녕 사업예산 줄여
김명희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교수는 경제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불임부부가 임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돈 들여 백날 시험관아기 시술하면 뭐해요.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쉬지를 못하니 난자가 자궁에 착상이 안 되잖아요. 직장생활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시간’적인 배려를 해줘야 해요.” 일러스트레이터인 성수인(35)씨는 “마감에 시달리고 바쁘다 보니 남편과 관계를 가질 시간도, 병원에 갈 시간도 없다”며 푸념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불임치료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일에 신경을 못 쓴다는 말처럼 들릴 텐데, 이런 상황에서 병가를 내겠다고 하면 회사 윗분들은 기절할 거예요.”
성씨는 불임을 ‘병’으로 인정해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일정 기간 휴직도 가능하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란 체크할 때는 약값에 보험이 적용되는데, 인공수정을 하는 순간부터 똑같은 약이라도 보험 적용이 안 돼 서너 배 비싼 가격으로 약을 사먹어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일이죠. 불임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게 절실합니다.”
불임부부들이 병원을 찾았을 때 정신과 상담을 같이 받을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우울증 예방뿐만이 아니다. 적지 않은 불임부부들이 어렵게 임신이 되고 난 뒤 유산 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룹미팅으로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러나 정신과 상담은 물론, 건강보험 적용이나 병가 처리는 현실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불임치료의 건강보험 적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연구한 것도, 재정상 검토된 것도 없다”면서 “보험을 적용하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쉽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김혜선 보건복지부 출산지원팀장은 “법적으로 불임휴가라는 제도는 없으며, 이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보험 적용은커녕 2006년 213억원이던 보건복지부의 불임지원 사업예산은 올해 142억원으로 대폭 줄었다.
앞서 정희경씨는 “불임부부가 살기에 한국 사회는 너무 폭력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아무런 이유도 해법도 찾지 못한 채, 무조건 아기를 만나려고 길고 끝없는 길을 걷고 또 걷습니다.”
정씨에게 ‘아기’라는 ‘희망고문’이 덜 고통스러워지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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