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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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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은 블루오션인가

등록 2007-05-10 00:00 수정 2020-05-02 04:24

아트펀드가 두각을 나타내지만 개미 컬렉터들의 투자 무대로 거듭나기엔 한계 많아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미술품은 만만한 재테크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주식시장처럼 대중적 투자의 텃밭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부터 미술시장이 활황 국면에 들어가면서 주식·채권 등의 대체 투자 수단으로 미술품을 ‘어필’하려는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 경매시장 참여를 유도하는 것은 필수이고, 금융사와 화랑들은 서로 손을 잡고 매입한 미술품의 가치를 굴려 수익을 창출하는 아트펀드를 잇따라 내놓았다. 지난해 9월 국내 처음으로 표화랑과 신한금융그룹의 굿모닝신한증권이 손잡고 출시한 75억원짜리 서울 명품아트 사모1호펀드(이하 명품펀드)와 지난해 말 박영덕화랑, 박여숙화랑, 조현화랑 등 5개 상업 화랑이 한국미술투자라는 펀드운용사를 만들어 골드브릿지자산운용과 함께 시작한 100억원짜리 스타아트펀드(이하 스타펀드)가 그것이다.

기관투자가와 기업을 상대로 이미 투자가 마무리된 상태인 두 펀드는 목표수익률이 각각 2년 만기에 9.5%+@, 3년6개월 만기에 17%다. 유한층 혹은 지식인층의 고급 취미로 인식되던 미술품이 미술시장 활황의 기세를 업고 자본의 입김이 묻은 금융상품으로 변신을 꾀한 셈이다. 일단 돈 돌아가는 판을 만들고 시장 규모를 키워 시장의 존립 기반과 수익성 확대를 도모하려는 노림수가 엿보인다.

증권, 채권처럼 대중적 투자 대상이 될 정도로 국내 미술시장의 기반이 성장한 것일까. 일부 상업 화랑들과 금융권의 증권사, 자산운용사들은 얼핏 경매사들이 성과물로 내놓는 통계들을 우선 분석 대상으로 삼을 만하다. 서울옥션이 지난해 말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경매 거래 시가총액은 630억7천만원으로 2005년(168억원)보다 250% 이상 늘었다. 경매에서 거래된 국내 주요 작가 15명의 지난 7년간 거래의 연평균 수익률이 보통 은행 이자보다 높은 수치인 12%라는 분석도 나와 있다. 아트펀드를 운영 중인 금융사와 화랑들은 예상 수익률이 은행보다 높은 고수익을 강조해왔다. 최종 수익금은 펀드가 종료되는 시점에 확정되는데, 편입 작품들은 활황으로 값이 크게 올랐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직 시장의 규모가 미치지 못해

하지만 결론적으로 미술시장이 주식시장의 개미군단처럼 개미 컬렉터들의 투자 무대로 거듭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금융권 등의 부동자금이 미술계로 본격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스타펀드를 운용하는 골든브릿지자산운용의 서정기 이사는 “금융기관의 대체 투자수단을 조금 확대한 것에 불과하며 주식이나 부동산에서 미술품 쪽으로 대규모 자금 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스타펀드의 경우 매입한 작품들의 시세는 올라가고 있어 추가 모집을 준비하고 있으나 대규모 공모펀드로 전환하기에는 시장의 규모가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게 서 이사의 전언이다. 그는 “공모를 할 경우 홍보비, 판매비도 들어가야 하므로 규모가 300억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그러나 “투자와 감상의 두 측면을 충족시키는 것인 만큼 안목과 정보를 계속 축적하면 투자의 개념으로서 충분히 아트펀드를 생각할 수 있다”고 했다. 명품펀드를 운용 중인 굿모닝신한증권 신사업부의 정현정 대리도 “시장이 더욱 활성화하고 있고 작가들도 유명 중국 작가들로 구성되어 목표수익률을 맞추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며 “미술계 특징이 생각과 달리 특이한 게 많아 금융과 직접 접목시키는 게 쉽지 않으나 여건만 되면 공모를 시도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1년 전 뮤지컬 공연을 위한 아이다펀드를 조성한 적이 있다는 하나은행 이성곤 차장은 “아트펀드가 시장도 크지 않고 미술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접근이 힘들어 취미가 있는 이들만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구의 경우 영국을 중심으로 서너 개의 아트펀드가 결성됐지만, 매입한 작품을 되팔기가 어려운데다 자금 회전율이 낮고 원금 회수기간도 길어 대부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작품 정보 공유 안되고 작전 규제도 힘들어

미술시장은 어떤 금융시장보다 진입장벽이 높다. 경매의 거래가격, 가격동향이 공개되지만, 주요 미공개 작품들의 소장 정보나 진위를 둘러싼 정보 등은 온전히 공개되지 않고 사적 인맥을 통해 공유되는 경우가 많다. 경매사의 경우도 심의위원 등의 측면에서 폐쇄적이며 경매사를 운용하는 메이저 화랑들 간의 유착관계, 작전 의혹 매매가 적지 않다. 두 메이저 화랑이 지배하는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의 경우가 이런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주식시장과 달리 이들 화랑의 내부자 거래나 특정 작가 밀어주기에 대해 특별한 제도적 규제를 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비돼 있지 않다. 미술품 투자전문가인 이승현 아트이즈 대표는 “시장 중심부에서 가격 움직임을 훤히 들여다보면서 거래 손맛을 느끼는 사람과 처음 매혹을 느끼고 막연히 경매시장을 기웃거리는 이와의 정보력 격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며 “자산운용사가 주문을 내어 고객 돈으로 작품을 사거나 내부자 거래를 해도 이를 제어할 제도적 보완책이 없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트펀드의 경우는 실제로 투자자 이익에 복무한다기보다 전속작가의 작품값을 올리려는 화랑 운영사의 고도의 수단이 아니냐는 의혹 섞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명품펀드와 스타펀드 모두 운용 화랑이 주로 거래하거나 전속하는 중견작가들만을 위주로 펀드에 편입시켜, 시장성 있는 작가의 작품을 창의적으로 찾아 투자한다는 아트펀드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채 재고 미술품을 처분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실제로 만기에 매물로 내놓아야 하는 이들 아트펀드를 되팔고자 할 경우 쉽게 수익률에 준하는 가격대에 올려 팔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갤러리 현대의 도형태 대표는 “아트펀드를 3년간 외국에서 공부했고 실무준비까지 했으나 제대로 운용하려면 펀드당 최소 1천억원대의 자금이 확보돼야 해 현재 상황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장기적으로 중국·한국이 연합한 아시아 최고의 아트펀드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세무당국, 양도소득세 부활 카드?

유동자금을 쥔 약삭빠른 개인·기관 투자가들이 자금회전율이 더디고, 툭하면 감정 진위 논란이 일어나고, 가격 구조가 낙후하고, 버블 함정의 소지가 있는 미술시장에 올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호황 기조를 주시해온 세무당국이 올해 거래되는 서화 등의 차익에 대해 양도소득세 부활 카드를 꺼내들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도 쉽게 지갑에서 투자금을 꺼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맨해튼 화랑가를 주무르며 엔디 워홀 등의 팝아티스트를 지원했던 당대의 화상 레오 카스텔리는 “시장가격은 평가할 수 없는 것에 근거를 둔 가격”이라고 했다. 어찌보면 미술의 성격 자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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