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을 공동체에 귀속시키는 전근대성, 국가주의적 근대화, 군대의 체험이 합쳐진 효과
▣ 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조승희라는 개인이 범죄를 저질렀는데, 주미대사가 미국 국민에게 사과를 한다. ‘대사’라는 직책이 나라 밖에서 나라를 대변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어쩔 수 없이 거의 미국 국민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사과 비슷한 의미를 띠게 된다. 파문이 일자 대사는 부랴부랴 자신이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으나, 당시 상황이 기록돼 있어 대사의 해명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왜 한 개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국민 전체가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적 개별화를 이루지 못한 아시아의 근대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이것은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아니라, 실은 ‘아시아’와 ‘구미’, 나아가 ‘서구’와 ‘비서구’의 차이다. 가령 처음에 범인이 ‘중국계’로 알려졌을 때 중국에서도 대단히 긴장을 했다고 한다. 다시 범인이 그냥 ‘아시아계’인 것 같다는 보도가 흘러나올 때쯤에는, 미국의 온라인에서 아시아 각국의 네티즌들이 행여 범인이 제 나라 사람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우려를 드러냈다는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만약 범인이 ‘유럽계’였다면,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그런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서구와 같은 고도의 발전 수준을 보이는 일본은 어떤가? 예전에 일본의 어느 회사원이 거대한 횡령 사건을 저질렀을 때, 그 회사의 임원들이 전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그를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또 한 사내가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는 그의 가족이 카메라 앞에 서서 모든 국민에게 사과를 하는 것도 본 적이 있다. 우리 눈에도 이상해 보이는 이런 관행은 문화라는 상부구조가 토대의 발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해 있음을 보여준다.
한 성원의 책임을 집단이 함께 짊어지는 것은 전통사회의 일반적 특성이다. 서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가령 기독교에서는 아담이 지은 죄를 인간 모두에게 뒤집어씌우지 않던가? 이런 종적, 유적 책임론과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이 바로 ‘희생양 제의’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죄가 아니라 인간들 전체가 지은 죄를 씻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렸다. 이런 설정은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아주 자명하고 당연하게 여겨졌을 게다.
한 개인의 책임을 집단에 돌리는 것은 전근대적 사회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과거의 왕조 시절에 반역을 일으킨 자는 3족을 멸하고, 반역자를 낳은 지역 전체를 차별하고, 조세의 부담을 종종 공동체 단위로 지게 했다. 이렇게 전통사회에서는 집단 책임론이 아예 법률적, 행정적 형태로 존재하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가족의 사상 전력 때문에 고통받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사회에서 ‘연좌제’가 폐지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서구는 근대화 과정에서 경제적 산업화만 이룬 것이 아니라, 정치적 개별화를 이루었다. 근대화의 신체 프로젝트의 핵심이 바로 ‘자율적 개인’으로서 주체의 형성이 아니었던가. 그것은 바로 개인에게 권리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권리를 개별적으로 수여하기에 책임도 개별적으로 물을 수가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법적, 윤리적, 정치적 책임과 권리의 단위가 철저하게 개인으로 상정된다. 미국인들이 조승희의 범죄를 ‘한국인’의 범죄로 보지 않고 철저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서구 이외의 지역에서 근대화 프로젝트는 주로 산업화를 주축으로 이루어졌다. 당장 시급한 것은 경제적 격차를 따라잡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의 습속은 보수적이어서 집요한 관성을 갖고 토대의 변화에도 끈질기게 존속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일면적 근대화의 결과, 개인의 권리를 주장하기 힘든 분위기고, 따라서 개인의 책임을 묻는 인식도 희박하다. 여기서 개인은 집단의 한 부분으로 여겨지고, 집단 속에서만 권리를 누리고, 그 결과 책임도 집단적으로 묻는 현상이 발생한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일면적 근대화는 습속으로 존재하는 전근대성을 척결하기는커녕, 외려 그것을 온존시켜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박정희식 근대화는 성원들을 개별화하는 대신에 외려 ‘국가’라는 집단으로 종속시켜, 봉건적 충성심을 끌어내려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집단과 구별하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신체의 습속은 ‘국가주의’라는 더 강력한 코드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개인들은 이제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나서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믿으며 살아가게 된다.
특히 한국의 남성들은 군복무를 통해 집단책임의 논리를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한국의 군대에서 한 사병의 잘못은 그가 속한 단위 전체가 책임져야 할 일이 된다. 이른바 ‘연대책임’이라는 것을 통해 사병들은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처벌을 받는다. 하다못해 유격훈련을 받을 때 한 사람이라도 마지막 숫자를 외칠 경우 훈련생 전원이 얼차려에 가까운 단순 동작을 끝없이 반복해야 한다. 이렇게 개인을 독립적 인격이 아니라 집단의 한 기관으로 만드는 군사문화는 제대한 몸을 통해 사회로 다시 나오게 된다.
한국의 언론은 이 사건을 조승희 개인의 범죄로 규정한 미국의 여론을 전하며 ‘다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다행’이라는 말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려할 필요가 없는 일을 우려하다가 다행하다고 느끼는 감성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개인을 공동체의 부분으로 여기는 전근대적 습속, 시민을 국가의 기관으로 여기는 국가주의적 근대화, 거기에 사병을 전쟁기계의 한 부속으로 만드는 군생활의 체험. 이 모든 것이 합쳐져 한 개인의 잘못을 전체의 책임으로 느끼는 기이한 정서적 메커니즘이 형성된 것이다.
책임질 일이 아닌 데서까지 책임감을 느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고귀한 덕목(?)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것의 이면이다.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일에서 책임을 느끼는 정서가 다른 이를 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령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에서 비슷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보자. 서구인들은 이것을 그 사람 개인의 범죄로 인식할 것이지만, 한국인들은 그 사람의 범죄에서 그가 속한 국적을 가진 모든 사람의 책임을 볼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에서 미국인들이 혹시 저지를지 모른다고 우려하던 그 짓을 가차 없이 저지를지도 모른다. 무서운 것은 바로 이것이다.
시청 앞에서는 희생된 미국인들을 위한 촛불집회가 열렸다. 무고한 범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것은 귀한 일이다. 하지만 세계에서 무고하게 죽어가는 이가 어디 미국인들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이라크에서는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희생당하고 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들을 위해 촛불을 들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무정한 이들이 왜 미국인들의 희생에는 애도를 표하고 싶은 것일까? 어느 보수신문의 인터넷판은 미국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게시판을 링크로 걸어놓았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잉 반응의 이면엔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한국인들은 이번 사건에 왜 그렇게 과잉 반응을 하는가? 그 바탕에는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국익과 국익이 충돌해 갈등을 빚기도 하는 정상적 외교관계로 이해되지 않는다. 과거에 미국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남한을 지켜주는 보루의 역할을 해주었다. 냉전의 시대가 지난 뒤에는 미국은 그 거대한 시장을 가지고,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우연히 자기와 국적이 같은 한 개인의 범죄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한국인들의 정서는, 이번 일로 행여 한-미 동맹에 금이 가지 않을까 하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비약을 한다.
이번 사건에서 한국인들이 보인 과민반응의 본질은 한마디로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적을 가진 이가 이와 비슷한 범죄를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저질렀다고 해보자. 그때에도 사람들은 물론 그의 개인적 범죄를 마치 자신의 허물인 양 부끄러워는 하겠지만, 이번처럼 거국적 규모로 과잉 대응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들어야 할 것은 남을 추모하는 촛불이 아니라,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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