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청소년 침해하는 청소년보호법

등록 2000-08-08 00:00 수정 2020-05-02 04:21

어른들의 지나친 불안·두려움·공포… 청소년도 욕망의 주체로 봐야


“청소년보호법은 오늘날의 청소년 문화가 주는 불안, 두려움, 공포로부터 어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의제적(擬制的)으로 만든 장치일 뿐이다. 정작 청소년이 보호돼야 하는 것은 청소년보호법으로부터다.”(문화평론가 이재현, ‘너희가 십대를 아느냐’란 글에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일상과 권리를 법과 제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대표적인 법이다. 97년 7월 시행된 이 법은 지난해 개정을 거쳐 최근 재개정이 다시 추진되고 있다. 그만큼 이 법의 존재 이유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개정안은 줄곧 ‘더 많은’ 규제와 단속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개정안, 쌍벌죄 도입 추진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것이 청소년보호법의 철학적 기반이다. 청소년 문화의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이나 표현의 자유와 권리 및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의 청소년 개념은 애초 빠져 있다. 지난 7월 이현세씨의 만화 에 대해 법원이 미성년자보호법(지난해 7월 청소년보호법 개정으로 폐지)을 적용해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는 청소년판을 만들면서 문제 장면을 수정했는데도 유죄를 벗어나지 못했다.

청소년보호법을 반대해 온 문화연대는 “미성년자들은 생각도 판단도 없는, 사리분별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라고 지레 ‘염려하는’ 어른들의 인식이 이 법의 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 세계의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비디오 음반 영화 연극 만화 책 방송 간판 벽보 등 모든 매체물을 대상으로 삼고 있고 유해매체물로 분류되면 청소년에게 판매 또는 대여하는 것을 금지한다. 제작자나 유통업자는 청소년유해물 여부를 표시하고 유해물은 포장을 따로하는 등 구분·격리해야 한다. 청소년유해업소는 유흥주점 단란주점 비디오감상실 노래연습장 무도장 게임방 만화방 등을 모두 포괄한다. 이들 업소에서는 청소년고용이나 출입이 금지되고 ‘19세 미만 청소년 출입·고용금지업소’라는 표시를 부착해야 한다.

문화연구가 고길섶씨는 “청소년보호법은 생활세계 모든 곳에 개입하면서 철저하게 성인의 세계와 미성년의 세계를 인위적으로 분리해냄으로써 새로운 적대전선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단서만 잡히면 청소년보호를 명분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무엇이든지 감시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청소년보호법의 청소년 인권침해는 불심검문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청소년보호법 시행직후 경찰은 유흥업소에 드나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학교나 공원 주변에 모여 있는 중·고생들을 상대로 마구잡이로 불심검문과 몸 수색을 벌여 술과 담배를 가진 청소년들을 적발하기도 했다. 판매업소를 들춰내기 위해 이들을 검문하고 가방을 뒤진 것이다. 유해매체물로부터의 청소년보호의 실제 속 모습은 청소년들의 문화와 권리에 들이대는 ‘칼날’이라는 것이 고씨의 설명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청소년보호법 재개정안은 청소년도 처벌하는 쌍벌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청소년에게 술·담배를 팔거나 유해업소에 출입시킨 업주뿐만 아니라 해당 청소년도 금주·금연교육과 고전음악감상 같은 건전문화 체험교육 그리고 사회봉사명령을 시킨다는 게 개정 요지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들

이에 대해 최충옥 한국청소년개발원장은 “청소년보호라는 명목 아래 많은 청소년을 처벌하고 범법자로 낙인찍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처벌하고 금지한다고 해서 학교에서도 만연된 청소년들의 술·담배 문제가 해결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문화평론가 이재현씨도 “이른바 일탈이나 비행을 중심으로 청소년을 보는 형사정책적 접근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공권력이 개입하고 관리하는 지금의 청소년 정책을 펴는 사람들 역시 미성숙한 존재”라고 공권력 만능주의를 경계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의 문화적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담론에 접근하는 것마저 통제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유해매체물로 지정한 이희재씨의 만화 가 대표적이다. 우리만화발전을 위한 연대모임 이동수씨는 “는 음란물도 아니고 밑바닥 사람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삶을 다룬 것이다. 그런데도 만화에 등장하는 몇몇 술집장면 등을 문제삼아 실패한 인생들에 대해 청소년들이 고민해볼 기회를 차단했다”고 말했다.

‘청소년의 건전한 인격과 시민의식 형성을 저해하는 반사회적 반인륜적인 것’. 이것이 청소년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유해매체물이다. 문화연대 이동연 청소년문화위원장은 “이런 규정으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걸리지 않는 매체가 없다. 청소년을 유해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간행물윤리위원회나 영상물등급위원회 등 다른 심의기관이나 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청소년보호법은 폐지가 마땅하지만 개정한다면 금지와 처벌 일변도에서 포지티브하게 청소년 문화를 진흥하는 쪽으로(청소년진흥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세대간의 통로를 가로막는다

청소년보호법이 개정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현실과 워낙 동떨어진 규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법은 유흥주점 단란주점 호프집 노래방 비디오방 등에서 청소년에게 호객행위를 시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또 밤 10시가 넘으면 청소년들의 노래방과 게임방 출입을 못하게 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는 청소년 유해마크를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청소년 시청불가 영화는 적색 원안에 ‘19’를 쓴 마크를, 심야영화에는 ‘심’을 쓴 마크를 방송시간 내내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조처가 현실적으로 청소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보호’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 법에 따라 유흥업소나 윤락업소가 밀집해 있는 지역중에서 청소년들이 들어가서는 안 될 곳(청소년통행금지구역.Red Zone)으로 예순일곱 곳이 지정했으나 방배동 카페골목 등 상당수는 뒤늦게 ‘현실을 감안해’ 해제됐다.

문화연대 이동연씨는 이 법의 탄생과 법을 제정한 권력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했다. “청소년보호법은 어떤 비판이나 분석도 없이 청소년들의 감수성과 매체수용력을 자의적으로 재단한 어른들의 기준에 의해 만들어졌다. 찬성과 반대도 어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여기에 청소년들의 주장과 표현은 전혀 개입할 공간이 없다.” 만화 사태도 같은 맥락에서 바라봤다. “의 몇몇 음란한 표현이 ‘해로운지’ 청소년 자신들에게 물어보기나 했냐”고 그는 반문했다. 보호당사자인 미성년자에게 그의 인권이나 자유를 침해했는지 묻지도 않은 채 어른들이 자의적으로 심사하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모든 매체를 포괄하는 청소년보호법을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미국 독일 영국 등은 영상 도서 약물 유해업소 등 분야별로 그리고 나이별로 청소년 관련법을 따로 두고 있다. 중앙대 최윤진 교수(청소년학과)는 “우리처럼 광범위하게 청소년을 규제하는 나라는 없다. 청소년보호법은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채 획일화돼 있다. 대학생도 술을 먹으면 범법자로 취급되는 등 현실과 맞지 않는 대목도 많다”며 청소년을 보호한다기보다는 오히려 활동을 제약하는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청소년공동체 ‘품’의 심한기 대표는 청소년보호법이 세대간의 통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 법은 권리주장과 자기표현을 막고 가두고 묶는다. 그래서 아이들은 기성질서에 종속되거나 그로부터 일탈하든지 아니면 아예 어른세대를 거부한다. 기성세대에 소속되거나 단절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결정권을 가진 사회·정치적 자율체로서의 10대를 부정하는 억압장치로 청소년보호법을 보는 시각도 있다. 고길섶씨는 “국가보안법이 ‘이적성’을 무기로 하여 마녀사냥을 즐겼듯 청소년보호법은 ‘유해성’을 무기로 그렇게 한다. 청소년보호법 지지자들은 청소년을 위해 성인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논리는 청소년 자신들의 표현 및 소통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이 욕망하는 주체임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들을 보호 대상이 아니라 욕망하는 주체로 보아야 한다.”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