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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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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 여러분, 안전하십니까

등록 2007-04-05 00:00 수정 2020-05-03 04:24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는 ‘연돌 효과’ 때문에 실내 공기 안 좋고 불 나면 인명 구조도 어려워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공간 구조로만 본다면 아파트는 폐쇄적이다. 세대와 세대가 분리돼 있고, 단지의 안과 밖은 구획돼 있다. 한국 아파트는 폐쇄적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농촌에선 ‘논두렁 아파트’가 마을 커뮤니티의 침입자처럼 우뚝 섰으며, 아파트 단지는 일반 동과 임대 동의 정문을 따로 냈다. 그사이 복도형 아파트는 공용 공간을 줄여 두 집만 마주 보는 계단형 아파트로 진화했다. 2000년대에 출현한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정문에서부터 입주민과 비입주민을 갈라 출입을 통제하고, 공용 공간인 놀이터마저 울타리를 쳐 자신의 것으로 귀속시켰다.

C등급 헬기만 착륙 가능

아파트의 밀폐성은 범죄 보안 측면에서 안전성을 증가시켰지만, 정반대쪽에서 안전성을 저하시켰다. 밀폐된 건물에서는 ‘연돌 효과’가 생긴다. 굴뚝 효과라고도 불리는 연돌 효과는 밀폐된 공간에서 엘리베이터, 비상계단, 환기통로 등 수직 통로를 통해 공기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굴뚝을 따라 연기가 솟아오르는 걸 떠올리면 된다. 밀폐도가 크고 내·외부 온도차가 클수록 연돌 효과는 커진다.

연돌 효과는 초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날 때 인명 구조를 어렵게 만든다. 유독가스가 비상계단과 엘리베이터의 수직 공간을 통해 올라가 전체 건물로 퍼지기 때문이다. 불이 나면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은 순식간에 매연통이 된다. 소방방재청 관계자는 “화재 지점 상부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구조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소방차의 사다리는 몇m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52m다. 그럼 52m의 사다리차는 몇 층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15층이다. 이보다 훨씬 높은 초고층 건물에 대해서는 소방 헬기가 동원돼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 작전을 벌인다. 그래서 현행 건축법에는 바닥 면적 합계가 1만㎡이 넘는 11층 이상 건축물에는 헬리포트를 옥상에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법에는 ‘틈새’가 있다. 헬기장 크기는 가로세로 22m 이상이어야 하지만, 옥상 크기가 작을 경우 15m까지 줄일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는 서울을 ‘수직 도시’로 바꾸고 있다. 높이 249m의 63빌딩이 한국의 최고층 빌딩이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은 2003년 준공된 타워팰리스Ⅲ(서울 도곡동)로 69층 261m다. 현대 하이페리온(서울 목동)은 69층 256m이며, 타워팰리스Ⅰ(서울 도곡동)은 66층 233m다. 이 밖에도 63빌딩과 어깨를 견주는 주상복합 아파트는 여럿이다. 당연히 화재 진압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초고층 주상복합은 이미 소방 사다리차의 고도를 훌쩍 넘었다.

헬리포트 또한 법이 만든 틈새 때문에 무용지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시내 대부분 아파트는 5인승 헬기인 MD500 기종만 착륙이 가능하다. 서울소방항공대가 2005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 39개 동 가운데 14인승 헬기(AS 365)의 이착륙이 가능한 A등급은 하나도 없었다. 7인승 헬기인 B등급이 이착륙이 가능한 곳은 14개 동이며, 나머지 25개 동은 5인승 헬기만 이착륙이 가능한 C등급을 받았다.

5인승 헬기의 구조 능력은 매우 낮다. 조종사, 정비사, 구조대원 3명을 제외하면, 한 차례에 겨우 2명만 구조가 가능하다. 서울소방항공대 관계자는 “헬기가 옥상에 착륙하지 않고 10인승 구조낭을 이용해 구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풍이 불면 이마저 무용지물이다.

저층의 오염물질이 상층부에 쌓여

구조 장비는 수적으로도 열세다. 서울에서 15층 높이의 고가 사다리차는 15대. 그리고 서울소방항공대가 14인승 헬기 2대와 7인승 1대, 중앙119 구조대가 14인승 2대를 소유하고 있다. 소방구조대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매연을 뚫고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40~60층의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뛰어서’ 대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층당 2.8m의 천장고를 가진 건물에서 피난자의 층당 평균 대피 속도는 약 16초. 2001년 9·11 사태 때 50층에서 작업하던 청소 노동자가 1층까지 탈출하는 데 무려 53분이 소요됐다.

이런 난점 때문에 초고층 건물 진화는 화재 예방과 자동 진화 설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일정 높이 이상의 건물은 소방시설 설치 기준을 강화하고 화재영향평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화재 발생 때 물리적 구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연돌 효과는 실내 공기의 여러 문제점도 유발한다.

박영기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 등 3명은 2005년 ‘초고층 주거 건축의 거주 후 평가모델 개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냈는데, 연구진은 논문에서 “초고층 거주자의 경우 건조함으로 인해 피부 건조, 감기 증상 악화 등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과 심층 인터뷰를 한 거주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초고층으로 이사한 뒤 피부가 건조해졌어요. 겨울에 워낙 건조하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코피가 날 정도였어요. 워낙 건조한데 감기까지 겹치고 나면 감기가 더 악화되곤 하죠.”

아주대학교 건축학부 박상현·이규인씨의 논문 ‘초고층 주거복합 건축물의 지속 가능성 평가 연구’에서 나온 설문조사 결과도 흥미롭다. 연구진은 2005년 말 164명을 대상으로 주상복합 아파트의 만족도 조사를 했는데, 안전 경보 시스템(5.22점), 방범 시스템(5.66점)은 평균(5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자연 환기 상태(4.44점), 실내 공기 질의 건강성(4.62점) 등은 낮은 점수를 받았다.

실내 공기 문제는 발코니가 없는 공간의 밀폐적 특성에서 비롯되지만, 연돌 효과로 인해 사정이 악화된다. 아파트 저층부의 오염물질이 엘리베이터 등 수직 통로를 통해 상층부로 올라가 집적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2003년 측정 결과(‘실내 공기 질 공정 시험방법 도출 연구’)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확인됐다. 저층부에서 0.2ppm 수준이던 포름알데히드는 고층부에서 0.6ppm까지 치솟았다. 보고서는 “계단실의 연돌 효과에 의해서 상층부의 온·습도가 저층부에 비해 다소 높아지는 경향에 의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포름알데히드는 단열재, 합판, 가구 등의 접착제에서 수년 동안 방출되는 오염물질이다.

사람으로부터는 안전하겠지만…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땅과 멀어질수록 인공적으로 조절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경기와 국가 경제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건설회사와 국가가 초고층 주상복합 열풍을 부추기고 있다”며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문제에 너무 둔감하다”고 말을 이었다. 수천 명이 사는 초고층 주상복합은 그 자체로 요새 도시다. 한 달 100만 원 이상의 관리비를 모아 최첨단 보안·냉난방 시스템으로 요새 도시가 운영되지만, 아래에서 뚫고 들어온 독한 바람은 요새를 잠식하고 있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사람으로부터 위험은 줄어들었을지 몰라도 환경으로부터의 위험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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