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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힌 돌’의 복장 터짐이여

등록 2007-03-29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 과거에 발목잡힌 김근태·정동영·천정배…최근 손학규에 대한 미묘한 입장차 드러나</font>

▣ 김종배 문화방송 진행자·전 편집국장

이 말이 딱 맞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려 한다. ‘굴러온 돌’이 언론의 주목을 받으며 입지를 넓히는 반면 ‘박힌 돌’은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지도 못한다.

‘박힌 돌’로선 복장 터지는 일이지만 뽀족수가 없다. 존재가 그렇다. ‘박힌’ 상태다.

어디에 박힌 걸까? 공간은 아니다. ‘박힌 돌’이 머문 공간은 범여권·비한나라당 영역이다. ‘굴러온 돌’이 흘러든 곳도 같다. 공간이 겹친다. 그렇다면 ‘박힌 돌’이 가슴을 칠 이유가 없다. ‘박힌’ 만큼 뿌리, 즉 조직기반이 튼튼하다.

‘반 FTA’의 진정성 의심 받는 김근태

그럼 돌부리가 박힌 곳은 어디일까? 시간이다. 김근태·정동영·천정배 세 사람은 집권 여당의 수뇌부와 참여정부의 장관직을 두루 거쳤다. 이 시간의 흔적이 부재증명을 어렵게 한다. 과거에 갇힌 것이다. 박한 평가일지 모른다. 대한민국 대선엔 특성이 있다. 과거 책임을 묻기보다는 미래 비전을 선택하는 성향이 강하다. 이 점이 ‘박힌 돌’에게 여지를 남겨준다.

시간의 연속성을 끊는 방법이 있다. 새로운 경기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호각을 불면 된다. 그러려면 구도를 새로 짜야 한다. 참여정부를 비껴갈 수 있는 구도를 창출해야 하고, 그에 걸맞은 이슈를 선점해야 한다.

길은 분명한데 발걸음은 상쾌하지 않다. ‘박힌 돌’이 내놓는 구도 또한 박혀 있다. 참여정부 내내 논란을 거듭했던 이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근태 전 의장의 경우가 그렇다. 최근 들어 ‘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깃발을 들었지만 새롭지가 않다. 시민사회 영역이 정부에 맞서 문제제기했던 수준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본인은 개혁 성향을 부각시키는 카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오히려 자충수가 되기 십상이다. 시간이 그를 휘감는다.

한-미 FTA 협상이 진행된 시기는 김근태 전 의장이 집권 여당의 사령탑을 맡은 때와 겹친다. 그래서 이런 말이 따라붙는다. “그때는 뭘 하고 이제 와서 뒷북치느냐?” 이런 지적이 제기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근태 전 의장은 지난해에 ‘뉴딜’을 추진했다. 재벌개혁 줄 테니 일자리 달라고 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뉴딜’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였다. 양상이 비슷하다. 김근태 전 의장은 한-미 FTA의 무모한 ‘딜’을 비판하지만 ‘뉴딜’도 무모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제기된다. ‘반 한-미 FTA’의 진정성이다. 그의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것이다.

정동영 전 의장의 상황도 다를 바 없다. 정동영 전 의장이 최근에 집중적으로 제기하는 화두는 교육이다. 학제를 개편해 교육을 개혁해야 한다고 한다. 의아하다. 교육계에서 이미 연구·검토되고 있는 사안을 만지작거린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동영 전 의장은 익숙한 길을 놔두고 가지 않은 길을 택했다.

정동영 전 의장에겐 통일부 장관으로서 쌓은 성과가 있다. 운 좋게 때도 맞는다. 북핵 해결의 기조가 잡혀가고 있다. 과거의 경력과 인맥을 잘 활용하면 평화의 전도사가 될 수도 있다. 정동영 전 의장도 이 사실을 안다. 그래서 개성공단 방문을 추진한다.

현재로선 무승부로 가는 게 최선

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주목받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다. 언론과 여론의 관심만이 아니다. 북한의 관심도 다른 데 가 있다. 과거의 파트너인 정동영 전 의장을 제쳐놓고 이해찬 전 총리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정치적 맥락이 무엇이건 정동영 전 의장으로선 아픈 대목이다. 김근태 전 의장이 과거에 갇혀 있다면 정동영 전 의장은 과거로부터 버림받았다. 현상적으론 그렇다.

천정배 의원의 처지는 더 궁색하다.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면서 시간의 연속성을 끊으려 했지만 거기서 멈춰버렸다. 민생을 모색한다고 하지만 뭣 하나 내놓는 게 없다. 여야의 틈바구니에서 찬반을 정하는 수동적인 위치에 멈춰서 있다. 고장난 시계가 돼버린 것이다.

세 사람 모두 박혀 있다. 경기판을 새로 짜지 못한 채 기존 경기판에 붙잡혀 있다. 이러니 방어에 치중하는 것 외에 달리 펼칠 전술이 없다. 무승부로 가는 게 현재로선 최선이다. ‘안티’ 기조가 이래서 나온다. 대선 주도권을 쥔 한나라당에 반대하고, 국정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노무현 대통령을 견제한다. 이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한계가 뚜렷하다. ‘박힌 돌’이 지금 당장 경쟁해야 하는 대상은 한나라당도, 노무현 대통령도 아니다. ‘굴러온 돌’을 상대하는 게 급선무다. 하지만 ‘굴러온 돌’을 상대로 ‘안티’를 선언할 수가 없다. ‘박힌 돌’이 자력으로 바람을 일으키기 힘든 상황이다. 아무래도 ‘굴러온 돌’의 바람에 얹혀 날아오르는 게 현실적이다. 그러려면 ‘굴러온 돌’을 밀어줘야 한다.

아이러니한, 그래서 복장 터지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은 아니다. ‘굴러온 돌’이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아직 지지율로 연결되지는 않고 있다. ‘굴러온 돌’의 지지율이나 ‘박힌 돌’의 지지율이나 현재로선 도토리급이다.

딱 한 사람만 예외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다. 그는 줄곧 범여권 통합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해왔다.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한 뒤 비록 소폭이나마 지지율이 더 올랐다. 자칫하다간 손학규 전 지사에게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 다른 ‘굴러온 돌’과는 달리 대해야 한다.

그들의 마지막 선택, 탈당

그래서일까? ‘박힌 돌’ 사이에 미묘한 입장차가 나타나고 있다. 김근태 전 의장과 천정배 의원은 ‘걸어온 길’과 ‘정치적 금도’를 거론하면서 거리두기에 나섰다. 반면 정동영 전 의장은 함께할 뜻을 밝혔다. 얼핏 봐선 마음 비우기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 같다. ‘손학규 배제’를 택하면 그만큼 자기 영역이 넓어지고, ‘손학규 동조’를 택하면 그만큼 좁아진다. 하지만 단견이다. 이런 점도 있다. 손학규 전 지사에 대한 입장차가 부재증명이 될 수도 있다.

‘정치적 배신’을 비판하면 족쇄가 된다. 자기 다짐이 된다. ‘정치적 배신’을 비판한 사람이 ‘정치적 배반’을 감행하는 건 겸연쩍은 일이다(열린우리당을 이미 탈당한 천정배 의원의 경우는 예외지만). 하지만 ‘정치적 배신’을 용인하면 그만큼 자신의 선택 여지도 넓어진다.

다른 얘기가 아니다. 이도저도 안 돼서 어쩔 수 없이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할 때, 즉 시간을 극복하지 못해 인위적으로 끊어야 할 때를 대비한 부재증명이다. 자신의 시간이 머문 자리, 바로 열린우리당 탈당 여부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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