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약탈 이후 남아 있는 유물도 난개발과 환경파괴로 만신창이…한국도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 아래 보호사업에 적극 나서야 할 때
▣ 민병훈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팀장(중앙아시아학회장)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지붕 파미르고원을 정점으로 동쪽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서쪽은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 국가군으로 구성돼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과거 동서문화 교류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던 실크로드의 맥동이 절정에 달했을 무렵, 조로아스터교를 비롯해 불교 등 여러 종교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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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개종 뒤 감옥이나 양떼 우리로 사용
중앙아시아는 사막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건조지대이므로 일반적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기후 조건을 지녔다. 이들 지역에 위치한 여러 유적들은 건조한 사막기후의 특성으로 인해 1천 년 이상의 세월을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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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문화재는 불교 등 우리 고대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에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가 한반도와도 직결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둔황석굴이나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석굴, 쿠차의 키질석굴 등은 불교의 동점 과정에서 혹서와 혹한을 피해 효율적인 불사를 영위하고자 사막지대의 암벽에 조영한 불교의 성지였다. 이들 종교 시설은 캐러밴 루트의 중요 거점에 위치해 국제 교역상의 중요 정보를 공유하는 무대였고, 실크로드를 내왕하며 부를 축적한 대상무역의 상인들을 위한 안식처였다. 당시 상인들은 어두운 밤거리를 내왕하는 실크로드 상인들을 위해 자신의 두 팔을 태워 길을 밝혀주는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 등이 그려진 석굴사원에서, 상거래의 안위와 사후의 영생을 기원하며 사원에 많은 재물을 냈다. 그 때문에 이들 유적에는 수십 수백 개의 사원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석굴사원군이 조성돼 화려했던 시절의 편린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실크로드의 중요 유적과 유물들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당시 유럽 열강들은 지리적 공백 지대나 마찬가지였던 중앙아시아 지역에 앞다퉈 진출해 석굴사원의 벽화를 절취하고, 고대도시 유적이나 고분군을 무참히 파헤쳐 출토 유물을 대거 자기 나라로 반출했다.
10세기 이래 점차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 지역에서는 서구 열강의 문화재 약탈에 아무런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당시의 석굴사원은 감옥이나 처형장 또는 유목하는 양떼들을 밤새 가둬두는 우리로도 사용됐다. 둔황석굴의 경우 러시아혁명 뒤 이 지역으로 망명한 백계 러시아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탓에 일부 석굴은 취사로 인한 그을음이 내부 전체를 뒤덮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 열강과 일본의 탐험대는 이들 유적을 무참히 파괴했을 뿐 아니라 주민들을 시켜 유적의 소재를 파악하거나 유적에서 가져온 유물을 헐값에 구입했다. 주민들은 앞다퉈 유적을 파괴하고 돈이 될 만한 유물을 가져와 탐험대 앞에 내놓았다. 석굴사원 내부를 장식하고 있던 불상 등은 매우 곱게 정제된 흙으로 빚은 것이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를 가져다 밭갈이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중앙아시아 최대의 석굴사원으로 불리는 키질석굴의 경우 230여 개의 석굴사원 내부에 온전한 불두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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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화와 빗물에 의한 침식으로 심각한 피해
실크로드에 산재돼 있는 문화유산은 그 뒤에도 거의 방치된 상태로 있다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뒤 이들 문화유산을 국가문화재로 지정하는 등 적극적으로 보호의 손길을 뻗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사막과 초원지대의 난개발과 이로 인한 환경파괴로 이들 유적이 급속히 파괴돼가고 있는 형편이다. 오아시스에 자연이 허용하는 범위 이상의 인구가 거주하면서 지하수 남용으로 방풍림이 스러져가고, 양고기의 공급과 수요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초원 역시 황폐해져갔다. 그 결과 연중 비가 거의 내리지 않던 사막의 오아시스에 평균치를 훨씬 초과하는 비가 내리면서, 사막에 탁류가 흐르며 도로가 절단되는 등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자연의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무른 암반을 굴착해 조영한 석굴사원의 내부에 조그만 비에도 빗물이 스며들어 벽화의 안료층이 떨어져나가거나 스며든 빗물이 마르면서 내포돼 있던 염분이 벽화의 안료 밖으로 스며나오는 염화 현상이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둔황연구원의 리주이슝 부원장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중국 북서부 지방의 실크로드 연변에 산재하는 석굴사원이나 흙으로 빚은 건조물 1200여 곳에 이르는 유적의 9할 정도가 사막화나 빗물에 의한 침식으로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다. 그중에는 원형을 거의 확인할 수 없는 유적도 적지 않다. 나머지 1할도 파괴가 진전될 가능성이 커 국가 차원에서 이들 유적의 긴급한 수복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한다. 둔황연구원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미국의 게티연구소나 일본의 국립도쿄문화재연구소 등과 협력해 벽화와 불상의 보존·수복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독일·러시아·영국·일본의 탐험대들에 의해 만신창이가 된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석굴 등은 본격적인 수복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이 유적들은 더 이상 특정 국가나 민족의 자산이 아니라 인류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문화유산이기에, 우리도 이 문화유산들의 보존과 수복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할 때가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본의 탐험대가 실크로드에서 절취해온 벽화 조각 수십 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를 더 안전하고 오랫동안 보존하기 위해 철저한 현지 조사와 세계 각국의 보존처리 기법을 참조해 세계 최고 수준의 벽화 보존처리 기술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벽화의 안료를 채취하지 않고서도 안료의 정확한 실체를 분석할 수 있는 기법이나 벽화의 제작 연대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탄소동위연대 측정법 등이 개발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기술 혁신은 구미의 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는 같은 종류의 소장품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박물관은 2008년부터 투루판 문물국 등과 협조해 석굴사원의 보존·수복을 위한 공동 조사와 연구를 추진함으로써, 이와 관련된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석굴사원 보존·수복에 실제로 응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우리의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자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을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이를 인류의 영원한 문화유산으로 삼기 위해서는 일반인들의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현지 문화기관에서 관련 전시회를 유치해 이들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히고, 여러 단체들이 공동 조사나 발굴 등을 추진해 더 적극적으로 실크로드의 문화유산 보호에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일본에 진출한 한국 굴지의 전자회사는 문화재보호예술연구조성재단에 기금을 제공해 실크로드의 문화유산을 후세에 전하기 위한 중국의 보존·수복 전문가 양성 사업을 돕고 있다. 이젠 한국도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에 산재된 실크로드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존·수복하는 데 기술과 자본을 제공해 문화 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단계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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