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사들의 세부 지표까지 공개하는 미국에 비해 황폐한 현실…일단 건강전문가에게 문의하고 소비자 정보를 폭넓게 모아야
▣ 위스콘신=조병희 서울대 교수 보건사회학·위스콘신대학 방문교수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정보사회에서 정보는 일단 많아야 한다. 건강정보 역시 적은 것보다는 많은 것이 좋다. ‘건강정보의 홍수’라고 하는데 사실 건강정보가 정말 많은지에 대해 필자는 의구심이 있다. 무슨 약 선전이나 병원과 업소 선전, 건강식품 선전은 많은지 모르겠지만 정말 필요한 건강정보는 부족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나라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에 ‘건강’ ‘건강정보’라고 넣으면 우선 보이는 것이 대부분 건강 관련 업소 광고다. 사이트 하나하나 들어가보아도 전단지 광고 정도의 내용이 대부분이다. 반면 영어권 검색엔진인 ‘구글’에 같은 내용을 영문으로 검색하면 상업적 내용도 있지만 우리와는 달리 공적인 건강 관련 데이터베이스들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인터넷의 기술적 기반은 갖추고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콘텐츠에 해당하는 데이터화된 건강정보는 빈약하기 짝이 없고, 눈에 보이는 정보는 단편적이고 일방적 선전에 가까운 것들이 많다.
정보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라
이처럼 절대 수준에서는 건강정보가 부족하지만 우리 일상에서는 건강정보가 난무하는 것도 사실이다. 신문과 방송은 매일 새로운 약과 치료법, 건강관리법을 소개하고, 거리에서도 건강정보는 쉽게 만날 수 있다. 만일 건강정보가 너무 많아서 어떤 것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정보를 누가 만들었는지 파악하고, 정보를 만든 사람이나 기관이 그 정보를 제공해 어떤 이익을 보는 것이라면 일단 진실성을 의심해보는 것이다. 제약회사·병원·○○건강원·○○건강연구소 같은 공급자들이 제공하는 정보라면 환자나 고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이 강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러한 정보도 필요할 때가 있다. 우리 몸의 어디가 아파서 진단을 받고 싶거나 아니면 약품이 아닌 자연치료법을 선택하고 싶은데 어디에 가야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지 알고 싶을 때 이러한 공급자들의 광고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여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공급자들은 대체로 자기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정보로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약 광고를 할 때 약의 효능에 대해서는 너무나 친절하고 자상해 얼른 그 약을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한다. 그렇지만 그 약이 부작용이 있는지, 다른 약과 같이 복용해도 되는지, 내 특수한 건강 상태에서 정말 효과가 있는지 등 정작 중요한 요소들은 빠져 있거나 아니면 구석에 조그마한 글씨로 알아보기 어렵게 써놓는 것이 보통이다.

병원의 광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의료진이 어떤 분야를 전공했고, 어떤 최신 장비를 갖고 있으며, 어떤 질병을 전문으로 고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준다. 그렇지만 의료진들이 얼마나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치료하다 잘못된 경우는 없는지, 치료비는 얼마나 드는지, 다른 부작용은 없는지 등 환자들이 정말 궁금해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병원은 드물다. 미국의 경우 ‘Health Grades’란 인터넷 홈페이지(www.healthgrades.com)에 가면 미국 전역의 의사와 병원의 정보를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의사 개인의 학력과 경력, 치료 분야뿐만 아니라 해당 분야의 연구논문과 수상 경력, 그리고 의료 과실의 보상 정보까지 상세하게 수록돼 있다. 예컨대 보스턴시에 정형외과 의사가 920명인데 지난 10년간 의료 과실 건수가 120건이고, 윌슨이라는 의사는 10년 동안 1회의 의료 과실 보상 경력이 있고, 보상액은 ’평균 수준‘이라는 정보가 제공된다. 의료 과실 보상이 아닌 법적 기소 여부, 의사회와 병원에 의한 처벌 여부 등도 밝혀져 있다. 공식적으로 제공되는 정보 이외에 추가적인 불만사항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은 병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병원별로 임상적 수월성, 환자 안전, 전문성, 질 관리 등의 분야로 나누어 등급을 매기고 각 분야의 세부 지표의 점수가 낱낱이 공개된다. 따라서 환자는 어느 병원의 의사가 자신의 증상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데 가장 좋은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또 종합적으로 ‘우수’(best), ‘기대하는 정도’(as expected), ‘나쁨’(poor)으로 종합 평가를 해준다. 우리나라도 보건복지부에서 병원 서비스에 대한 조사를 하지만 그냥 뭉뚱그려 1, 2, 3등 순위를 발표하기 때문에 정작 병원을 선택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병원 서비스의 질에 중요한 지표이지만 병원에서는 공개하기를 꺼리는 (아마도 제대로 데이터를 수집하지도 않을 것 같은) 지표인 원내 감염률, 사망률, 수술퇴원 뒤 재입원율 등의 데이터는 찾을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환자들이 서울의 큰 대학병원만 찾는 이유
이러한 정보 부재 상황에서 환자들은 그냥 서울의 큰 대학병원을 찾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안전 보장책이 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환자들의 행태가 큰 병원이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라고 폄하하지만 정보 부재 속에서 환자는 나름대로 ‘합리적 선택’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동네에 있는 병원이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객관적 증거가 있고 이를 신뢰할 수 있다면 왜 환자들이 굳이 돈과 시간을 써가며 멀리 큰 병원을 찾겠는가.
의료 영역에서 벗어나 ‘건강’ 영역으로 들어가면 유용한 정보는 더욱 찾기 어렵다. 우리를 건강하게 해준다는 각종 식품, 약초, 건강법, 물리기구, 비만감소법, 미용법 등이 난무하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내 방식대로 했더니 이렇게 좋아졌다”는 식의 일방적 광고와 다름없다. 여기서 과학과 사기(quack)를 구분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사기꾼이 파는 건강상품은 일종의 만병통치약이다. 이 약은 시대적 유행을 따른다. 비타민이 유행하는 시대에 만병통치약은 비타민의 일종으로 선전되고, 기능성 식품이 유행하면 이것은 다시 기능성 식품으로 포장된다. 그리고 그 약은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발명이지만 이를 시기하는 제도권 전문가들의 견제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기 존재를 합리화한다. 또한 이 약을 파는 ‘약장수’들은 대체로 점쟁이와 비슷하게 카리스마적인 풍채와 언행을 가지며 믿어야지만 약효가 있다는 식으로 사람을 홀린다.

사실 이들은 약효 자체보다는 치료될 수 있다는, 또는 살을 뺄 수 있다는 ‘희망’을 파는 경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일부 언론에 이 약이 소개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약효에 대한 검증(즉, 부작용이 얼마나 있는지 또는 약의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고 또 얼마나 실패할 수 있는지) 없이 효능만을 밝히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이 약을 사는 사람들은 현대의학의 한계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거나 건강에 대한 과도한 염려증을 가진 사람들일 경우가 많다. 합리적 의심보다는 정서적 기대가 우선될 때 만병통치약은 매우 선풍적으로 팔리게 된다.
건강정보의 해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자신이 판단하기 어려우면 건강전문가에게 문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앞서 의료전문가 또는 병원들도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질책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가장 믿을 만하다. 그래서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의사는 당신의 주치의에 해당하는 의사이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오랫동안 진료해왔고, 당신의 병력과 건강 상태를 충분히 알고 있고, 당신의 말이나 의문점을 경청해주는 의사이며, 불필요한 약 처방이나 주사를 놓지 않으며, 당신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선택이 가능하면 당신이 선택하도록 해주는 의사이다. 환자와 이런 관계를 맺고 있는 의사라면 당신을 대신해서 효과가 없거나 무익한 건강정보를 걸러줄 것이다.
다음은 소비자 정보를 모아보는 방법이 있다. 당신이 받으려는 치료나 복용하려는 약, 또는 실행하려는 건강법을 먼저 사용해본 사람들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보는 것이다. 주변이나 인터넷에서 물어보거나 아니면 공적 기관에 질문을 해보아도 된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과 친한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병원을 갈지, 어떤 약을 먹을지, 어떤 비만치료법을 실행할지를 결정하는 데 주변의 친한 사람이 준거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 건강정보에 대한 평가는 주관성이 강하게 들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변 경험의 범위를 좀더 넓혀서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또한 건강 관련 소비자단체에서 제공하는 상담도 유용할 수 있다.
공적 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 개발·보급해야
어쨌든 우리나라에는 상업적 목적의 건강정보를 제외하면 건강정보가 매우 부족하다. 복지부나 국민건강보험공단 또는 건강증진기금 등은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 개발에 좀더 열심히 나서야 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모두 건강 주체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상업광고 수준의 정보가 많은 것도 달리 보면 우리가 소비자로서 지위가 약하고 건강관리의 주체성이 약해 공급자들의 유인과 조정에 취약한 상태임을 의미한다. 우리의 건강 주체성이 강화되면 자연히 그에 걸맞은 소비자 중심의 건강정보가 생산될 것이다. 나아가 우리의 경험을 혼자만 갖지 않고 다른 사람과 나눠 정보화하는 공유의 정신도 필요하다.
국내에서 건강 주체성을 확립하려면 소비자의 노력과 함께 정부나 공공기관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최근 ‘e-헬스’ 구축이니 건강정보센터 신설이니 하면서 공급자가 필요로 하는 진료정보, 환자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기관끼리 공유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의료 산업화 과정에서 그런 정책도 필요하지만 소비자에 대한 관심이 너무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최근 유시민 복지부 장관이 향후 보건정책의 기조를 질병 치료에서 벗어나 건강 증진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자체는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공급자들이 주도하는 건강 증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소비자가 주체가 되는 건강 증진이 되어야 정부가 의도하는 의료비 절감도 달성될 수 있다(지금까지의 복지부 정책이나 의료의 현실을 보면 건강 증진도 의료 공급자들, 건강전문가들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려면 일반 국민이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어야 하고, 여기에 소비자 중심의 건강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과 손쉬운 활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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