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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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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병테크’의 명암

등록 2007-02-03 00:00 수정 2020-05-03 04:24

생애주기별로 살펴본 의료 오·남용 사례와 올바른 건강관리 대책…첫 울음을 터뜨리면서부터 시작되는 불필요한 검사와 약물복용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현재 세계에서 가장 큰 다국적 제약회사는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화이자이다. 화이자는 콜레스테롤 저하제인 고지혈증 치료제 ‘리피토’만으로 1년에 13조원을 벌어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보험에 따른 총 진료비(2005년 기준)의 절반을 웃도는 수치다. 화이자의 리피토 마케팅 전략은 단순하다. “건강한 사람도 심장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문은 ‘질병 퍼뜨리기’에 한몫하고 있다. 요즘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200mg/㎗만 되더라도 고지혈증 치료제를 찾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위험 수치로 거론되는 220㎎/㎗에서 한참 벗어난 180㎎/㎗ 때부터 ‘예방’ 차원에서 콜레스테롤 관리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처럼 거대 제약회사는 건강한 사람의 범위를 줄이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모든 사람을 ‘예비 환자’로 만드는 것이다. 이 예비 환자들은 규칙적인 운동이나 식습관, 금주, 금연 등 생활습관을 바꾸기보다는 수익의 30% 이상을 홍보와 광고, 마케팅 비용으로 쓰는 제약회사의 전략에 말려들기 일쑤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미국이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DTC·Direct to Consumer) 허용을 요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 저널리즘스쿨 허지수 교수(메디컬 저널리즘)는 “대중매체를 통한 자유로운 광고는 의료정보를 전달한다는 명목을 내세워 잠재적 고객으로 만들려는 전략”이라고 지적한다.

비단 제약회사에 의해서만 예비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집안이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으려면 각종 질병을 예방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컨대 부모가 암에 걸리거나 자신이 만성질환을 앓게 되면 집안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병테크’가 ‘재테크’라며 가족의 ‘건강 포트폴리오’를 작성하기도 한다. 치아가 망가져 임플란트로 수백만원을 날리기 전에 바른 칫솔질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신생아 때부터 노년기까지 불필요한 진단과 처방에 몸을 맡긴다는 데 있다. 몸의 상태가 변화기에 접어드는 생애 건강주기별로 의료 오·남용의 사례와 건강관리의 ‘사소한’ 대책을 살펴보자.

유아기(0~6살)

산모는 신생아의 울음소리가 멈추기도 전에 간호사의 ‘제안’을 받아야 한다. 간호사는 “대사질환 검사를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잠시 머뭇거리는 산모에게 “기본 6종은 무료이고 나머지 40여 종은 유료입니다. 성장·발달이 늦어져 각종 장애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라고 속사포처럼 ‘엄포’를 놓으리라. 의사의 진단도 없이 수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질환을 검사하라는데, 이를 무시하지 않으면 적게는 20만원에서 많게는 80만원까지 들여야 한다. 물론 의사의 진단이 없다면 무료 대사검진만 받아도 충분하다. 출산방을 나오면 수백만원대의 제대혈 보관과 지방유래줄기세포 추출을 ‘권유’받는다. 물론 이를 20년 이내에 이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과학적 근거가 불분명한 유전자 검사를 올해 하반기부터(예정) 금지하기로 했다. 여기에는 비만이나 지능, 호기심, 폭력성, 우울증 등 14개 항목이 속한다. 하지만 암 고위험군, 유방암, 백혈병, 키 등은 제한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173개 의료기관과 바이오벤처를 통해 상업적으로 이뤄지는 유전자 검사가 부분적으로 유지되는 셈이다. 항목별로 3만~8만원에 이르는 유전자 검사는 질병이나 행동에 대한 민감성만을 따질 뿐이다. 질환에서 나타나는 특이성이 없다는 말이다. 당연히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 수준의 검사인 셈이다.

=> 예방의학의 뿌리를 키우는 시기다. 예방접종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DPT·소아마비·홍역·볼거리·풍진 등 기본 예방접종을 제때 해주고, 되도록이면 A형간염·뇌수막염·폐구균백신 같은 선택적 예방접종도 하는 게 좋다. 성인기에 신약의 볼모가 되지 않으려면 패스트푸드를 멀리하고 칼슘 섭취량이 많은 식단을 짜는 게 좋다. 이때 우유 섭취가 많으면 칼슘을 배출해 뼈를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치아 관리에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청소년기(13~16살)

만일 초등학교 때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면 정서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과잉행동이 내면으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불안이나 우울 등의 정서장애가 있더라도 대부분은 ‘일시적 증세’로 끝난다. 장기화되더라도 약물 복용은 피하는 게 좋은데 정신과 전문의를 만나면 약물 치료부터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시판되는 항우울제는 모두 성인용으로 개발된 것이다. 당연히 청소년에게 안전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복용 당시에 약효가 나타나지 않거나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고 성인이 됐을 때 성기능 장애에 시달릴 수도 있다.

이 시기에 과체중이나 비만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방이나 소금, 설탕 등 연소하기 힘든 고열량식을 먹으면서 몸을 사용할 기회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만이라는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고열량식을 피하고 몸을 움직이는 게 최선이다. 비만이 되는 것은 유전자 때문이라는 말은 허구에 가깝다. 1만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만 갑상선 기능저하나 시상하부 또는 유전자 장애 때문에 비만이 된다. 몸집이 크더라도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다면 몸을 맘껏 움직일 기회를 갖는 게 중요하다. 어쨌거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기 전에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기 어렵다.

=>청소년기에 책상을 벗어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언제나 ‘수험생’으로 여기면 성장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한다. 운동을 게을리하면 성장호르몬이 적게 생성되고 성장점 자극도 이뤄지지 않는다. 성장호르몬이 적게 나온다고 호르몬요법을 시행하다 다른 질병에 노출되거나 면역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적어도 하루에 2시간은 운동을 하는 게 좋다. 백신 예방접종도 해야 한다. B형과 C형 간염 바이러스, 결핵 등과 함께 여자라면 신형 자궁경부암 백신 접종도 고려해볼 만하다.

장년기(40~45살)

이전까지 종합검진에 투자한 진단 비용은 그다지 소용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리라. 사실 40살 이전에 ‘프리미엄 건강진단’이라는 이름으로 CT(X선 단층촬영장치), MRI(자기공명영상) 등으로 주요 암이나 장기별 질환을 진단하는 것은 의료 구매력을 자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별한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CT 같은 기기에 몸을 넣지 않는 게 좋다.만일 전시 CT 촬영을 한다면 방사선 노출량이 10mSv나 된다. X선 사진을 한번 찍을 때 0.1mSv인 것을 떠올리면 엄청난 방사선에 노출되는 셈이다. 자칫 질병을 검진하려다 백혈병이나 고형암 등에 걸릴 수도 있다. 진단기기의 효용성이 높아진다 해도 방사선 노출량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이때부터 대머리에 대한 염려가 현실의 문제로 다가온다. 남성의 경우 50살에 50% 이상이 심각한 수준의 빈약한 머리숱이나 대머리로 골머리를 앓게 된다. 지금까지 수많은 대머리 치료제가 나왔지만 단 두 개만 시판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모낭의 발달과 주기를 조절하는 게 아니라서 완전한 효능을 기대하기 어렵다. 여성들이라면 심각한 ‘주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기도 할 것이다. 특정 뇌세포의 손상에서 비롯되는 우울증은 조기에 치료하는 게 좋다. 약물의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지는 않을지라도 운동량이나 야외 활동 부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햇볕은 우울증의 상비약이다.

=>40대에 접어들면 건강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 게 좋다. 앞으로는 건강보험으로 40살(16, 66살 포함)에 무료 검진을 받을 수 있다. 가족력에 따라 질환별로 정밀검진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각종 만성질환에 노출되면서 건강보조식품을 상복하게 된다. 물론 마구 먹으면서 운동을 하지 않으면 노화를 촉진할 뿐이다. 식이요법과 운동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메트포르민(당뇨병 약물의 일종)보다 당뇨병 발병 확률을 낮추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약물의 마법 같은 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노년기(65살 안팎)

아마 이전부터 노화 방지의 묘책을 찾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으리라. 예컨대 항산화제를 다량 함유한 식품을 섭취해 활성산소를 흡수하도록 해서 노화가 느리게 진행되길 기대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활성산소가 인체에서 사라지면 죽음에 이르고 만다. 비타민제만 해도 기미와 주근깨는 없애준다지만 노화를 막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노화를 막는 최선의 방법은 충분한 영양섭취와 규칙적인 운동이다. 일부에서 장수의 비결로 제시하는 적게 먹는 ‘칼로리 제한’은 동물실험에서는 효과를 보였지만 인간에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그래도 과식보다는 소식이 낫다.

노화와 함께 나타나는 기억력 감퇴를 피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혈액순환 개선에 효능을 보이는 은행잎 제제만 해도 건강한 노인들의 기억력과 주의력 등을 개선한다는 연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설령 효과가 있다 해도 일시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몸이 굳거나 쇠약해지고, 성욕이 감퇴하는 식의 노화 증세는 필연적이다. 젊은 시절 몸을 최적의 상태로 관리하면 해마다 체력이 0.5%씩 줄어 절정기의 90% 이상 유지할 수 있다. 만일 몸 상태가 절정기의 50%에도 이르지 못한다면 몸을 방치한 대가로 여겨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운동에 의한 노화 방지 만한 효과를 내는 마법의 약물은 없다. 여기에 물을 자주 마시거나 걷고 스트레칭을 한다면 불로장생의 명약이 따로 없다. 일단 노년기에 접어들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노화를 질병이 아니라 삶의 과정으로 여기는 것이다. 병테크의 방법은 멀리 있지 않다. 유아기에서 노년기까지의 병테크는 고가의 건강검진이 아니라 운동과 식습관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기억해야 한다.


도움말 주신 분: 경북 안동 신세계병원 박경철 원장,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이도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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