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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빛나는… 4인4색

등록 2007-01-26 00:00 수정 2020-05-02 04:24

주목해야 할 작가 미야베 미유키, 온다 리쿠, 히가시노 게이고, 오쿠다 히데오…즐겨라, 집요한 사회파 추리와 종횡무진하는 판타지, 포복절도할 만한 유머를

▣ 김봉석 문화평론가

지금 국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본 여성 작가는 미야베 미유키와 온다 리쿠다. 미야베 미유키의 시리즈와 온다 리쿠의 가 한 달 사이에 연이어 출간되었다. 추리, 판타지, 청춘소설, 괴담 등 장르도 다양하다. 에쿠니 가오리가 주요 독자인 20대 여성에게 일상과 연애 이야기로 어필하는 것과 달리, 미야베와 온다는 ‘그럴듯한 이야기’로 독자를 유혹한다.

범죄에 얽힌 현대인의 적나라한 모습

미야베 미유키는 일본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작가다. 1960년생인 미야베 미유키는 87년 가 올요미모노 추리소설 신인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트릭보다는 범죄의 근원과 이유를 파고드는 사회파 추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나오키상을 받은 미야베의 대표작 는 화려한 고층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가족 살해사건을 파헤친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집합명사에 묶어두지 않고 개개인의 윤곽을, 그 깊이와 음영까지 지극히 꼼꼼하고 선명하게 그러낸 이야기’라는 평을 받은 는 인터뷰 형식으로 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파고들면서 범죄가 단지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는 빚에 시달리다 신용불량자가 되자 자신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린 여인의 이야기다. 신용카드나 할부, 대출 등 현대 신용사회의 근간이 되는 제도들이 생활의 편리함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비인간적인 시스템인지를 폭로한다. 280만 부 이상이 팔린 은 원고지 6천 매의 대작이다. 극장형 범죄자의 엽기적인 범죄를 소재로, 범죄가 하나의 이벤트로 변해버린 현대 사회와 범죄에 얽힌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무겁기만 한 작가는 아니다. 미야베는 솔직한 시선으로, 범죄와 인간을 바라본다. 미야베는 같은 진지하고 꽉 짜인 작품만이 아니라, 같은 코지 미스터리에도 손대고 있다. 또한 소시민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의 하나인 는 거창한 범죄가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하다면 소소한 사건들을 다룬다. 우리의 시야에도 흔히 들어오는, 조금 비열하고 속 좁은 사람들의 일탈과 반칙 같은 것들. 이 인간의 악마성을 그리고 있다면, 는 인간의 나약하면서도 비루한 본성을 한편으론 측은하게 고발한다. 또한 게임중독이라는 세간의 평처럼, 등 역할수행게임(RPG)을 연상시키는 판타지 소설과 시대소설도 발표했다.

정통적인 작풍의 미야베 미유키에 비하면, 온다 리쿠는 신세대적 작가다. 1964년생인 온다는 도시 괴담을 청춘소설이란 장르 안에서 매력적으로 변용시킨 가 91년 일본판타지노벨 대상의 최종 후보작에 오르면서 데뷔했다. 온다는 ‘자신이 읽고 싶은 것을 쓴다’라고 말한다. 라이트 노벨의 작가들처럼, 독자로서의 즐거움이 창작으로 승화된 경우다. 그들은 이 세계를 모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취향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발현해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작가인 야마다 마사키는 “현실의 체험도, 좋아하는 음악을 들은 감동도, 마음에 드는 소설을 읽은 독서 체험도 모든 것이 똑같은 가치로서 인식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온다를 평했다. 온다 리쿠에게 중요한 것은, 리얼리즘이 아니라 상상력이다.

유머·청춘물·추리·판타지… 상상력의 끝은?

온다 리쿠는 장르에 익숙하면서도,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다. 청춘소설인 은 제2회 서점대상을 받았고, 은 공상과학(SF)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같은 유머소설을 쓰는가 하면, 추리작가협회상 등 수상 경력이 화려한 는 작은 마을의 집단독살 사건을 다층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는 진지한 작품이다. 4장으로 구성된 은 장르를 종횡무진 활보하면서, ‘이야기’에 대한 기발한 생각들을 현란하게 펼쳐놓는다. 지나치게 ‘취향’이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꺼리는 독자도 있지만, 온다 리쿠는 다음 작품을 정말 기다리게 하는 작가다. 그의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일지, 온다의 작품을 읽다 보면 정말 궁금하기 때문에.

온다 리쿠가 상상력 때문에 감탄하게 되는 작가라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한 여운 때문에 팬이 되는 작가다. 나오키상 수상작 은 ‘본격미스터리 베스트10’과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10’ 등 연말 랭킹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추리소설이지만, 트릭이라는 면에서는 찬반이 많았다. 하지만 은, 트릭 때문에 걸작이 된 것은 아니다. 수학의 천재이지만 세상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던 초라한 남자가, 폭력적인 전남편을 죽인 여성을 구하기 위해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단지 그녀를 짝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낸다. 수학의 엄정함으로, 차가운 열정을 담아서. 그가 어떤 심정으로, 어떤 끔찍한 트릭을 만들어냈는지를 아는 순간, 누구나 알게 된다. 이 세상이 얼마나 냉정한 것인지를.

1958년생인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85년 가 에도가와 람포상을 받으면서 데뷔했다. 등 인간복제, 성정체성, 교육과 입시, 영혼 등 첨예한 사회문제를 ‘이과’의 시선으로 냉철하게, 그러나 열정적으로 그려낸다. 가장 좋아하는 책이 만화인 와 인 것에서 짐작되듯, 히가시노는 인간의 의지와 연민이 무엇인지 아는 작가다. 이 세상이 얼마나 냉혹한 것인지 보여주었던 걸작 만으로는 부족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밤만을 걸어왔던 그 남자의 마음을 에서 굳이 보여준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생명력과 유머 가득한 ‘목적의식’

히가시노보다 유머러스한 오쿠다 히데오는 잡지 편집자, 카피라이터 등을 거쳐 40살이던 98년 으로 데뷔했다. 미야베나 히가시노처럼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면서도, 오쿠다의 방식은 다르다. 대중의 관심과 취향을 예측해야 하는 직업을 거쳤던 이력을 십분 활용하여, 오쿠다는 대중이 가려워하는 곳을 정확하게 긁어준다. 2004년 나오키상을 받은 는 오로지 본능만으로 살아가는 천진난만한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오는 손님의 고난을 통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뒤집어쓴 우리의 가면을 유쾌하게 폭로한다. 다분히 목적의식적이지만, 오쿠다의 소설은 생명력으로 가득하다. 전설적인 혁명투사였지만, 집단이 아니라 개인을 택한 남자의 가족 이야기 는 아나키즘적인 도피와 유머를 통해, 경직된 진보운동이 왜 패배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말해준다. 중요한 문제 제기를, 포복절도할 상황과 만담으로 끌어가는 오쿠다의 재능은 정말 탁월하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지만, 소설로 각색된 현실이라면, 이 정도의 즐거움은 줘야 한다. 덤으로 깨달음까지 있으면 더욱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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