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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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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 쌍곡선, 은행에서 생긴 일

등록 2006-12-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우리은행의 비정규직 전환 결정으로 돌아본 외환위기 이후 은행 역사…구조조정 칼바람과 비정규직 고착화, 최대 실적에도 노동 강도는 증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외환위기의 충격이 지난 10년간 ‘장기’에 걸쳐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현상은 ‘비정규직 급증’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현상은 자신 또는 남편, 부인, 아들·딸 등 누구에게나 닥친 문제이고, 한국의 어느 가족 할 것 없이 느끼고 있는 충격이다.

외환 보유고 고갈, 주가·부동산 가격 폭락 등 다른 쇼크는 이미 오래전에 회복됐지만, 국제통화기금(IMF) 쇼크가 고용에 미친 효과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이다. 물론 비정규직이 외환위기 이후에 생겨난 건 아니다. 그러나 ‘급증’한 것은 분명하고, 한 번 비정규직 함정에 빠져들면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된 것도 외환위기 이후에 나타난 뚜렷한 특징 중 하나다.

우리은행, 임금 차별은 그대로 존속?

그런데 지난 12월20일 굵은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은행 노사가 은행권 최초로 2007년 3월부터 비정규직 행원을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비정규직은 3100명 가량으로, 대부분 영업점 창구 전담직원인 텔러들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별도 시험이나 업무 평가를 거쳐 일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사례는 있으나 비정규직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금융노조 우리은행지부 조용진 부위원장은 “은행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는 등 수익성이 크게 회복된 건 상당 부분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었다”며 “이제 수익도 호전되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 비정규직을 희생당하는 상태로 둘 수 없다. 정규직 전환의 길을 트는 원칙에 노사가 일단 합의했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 해소 등 구체적인 대목은 노사가 점차 협의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갈등과 문제를 하나하나 헤쳐나가면서, 외환위기 이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갈라진 은행 노동자들이 하나가 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건 △정년이 58살까지 보장돼 고용이 안정되고 △노동조합에 가입해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의 복리후생을 정규직과 똑같이 적용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임금체계는 독립 직군별로 차등 적용된다. 계약직 행원은 △영업점 단순 창구업무를 맡는 매스마케팅 직군 △콜센터 업무를 주로 하는 고객만족 직군 △단순 사무를 지원하는 사무지원 직군으로 각각 나뉘는데, 업무별 직군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명확히 구분되고 임금 테이블도 다르게 적용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개정된 비정규직 법안의 ‘동일노동 차별대우 금지’ 조항을 둘러싸고 무엇이 동일 업무에 속하는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는데, 직군제를 도입하면 임금 차별을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며 “이번 노사 합의는 계약직 행원들의 고용 안정만 보장할 뿐 임금 차별은 그대로 존속시키는 반쪽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우리은행 노조는 “이미 상당한 규모로 들어와 있는 비정규직 임금을 한순간에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런데 ‘반쪽’이라고 하더라도 외환위기 10년의 상징을 비정규직이라고 볼 때 이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2005년 6월 현재 일반은행(시중·지방은행) 정규직은 9만8천 명, 비정규직은 4만1천 명으로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은 41.9%에 달한다. 비정규직 임금은 대부분 월평균 150만원 이하로 정규직의 절반 이하다.

정규직 전환을 노사가 논의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는 은행 수익성의 뚜렷한 회복을 꼽을 수 있다. 일반은행 수익성 지표를 보면, 1998년에 -12조5천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냈으나 2001년(3조5천억원)부터 흑자로 돌아서 2004년 6조3천억원, 2005년 9조2천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순익을 냈다. 올 상반기에도 벌써 8조8천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외환위기 이전인 1990∼96년의 일반은행 당기순이익(평균 8734억원)에 견주면 놀라운 실적이다. 은행권에 오랫동안 몰아쳤던 퇴출과 인수·합병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다.

은행 창구가 젊어진 이유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봄 대규모 명예퇴직으로 직장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눈물의 비디오’로 상징되는 제일은행은 어떨까? 뉴브리지캐피털에서 스탠더드차터드로 주인이 두 번 바뀐 SC제일은행도 사상 최대 순익을 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당시에 은행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하루 1조원씩 예금 인출 사태를 겪었던 제일은행의 BIS 비율은 현재 10.58%, 점포는 404개에 이른다. 한보·기아·대우 사태가 터지면서 유동성 위기에 봉착해 기업 점포를 대부분 폐쇄했는데 이제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다시 회복됐다.

최근 IMF 10주년을 앞두고 마음을 다잡기 위한 사내 연수용으로 쓰겠다면서 눈물의 비디오를 구하는 기업체의 문의가 많다고 한다. 이에 대해 SC제일은행 관계자는 “2000년에 뉴브리지가 인수한 뒤 비디오테이프를 모두 없앴다. 예전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건 제일은행 브랜드 가치에도 좋지 않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올해 계약직 107명을 노사합의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또 향후 5년간 매년 정규직을 200명 이상 신규 채용하고, 영업점도 10% 이상 확충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은행에 근무하는 개별 노동자들의 고용과 삶도 완전히 회복되어 안정을 되찾은 것일까? 은행에서 일하는 모습은 비슷하지만 창구에 배치된 텔러들은 대부분 이제 비정규직이다. 한창 명예퇴직 바람이 불 때는 퇴직 여행원들이 다른 은행의 계약직 텔러로 재취업하면서 나이든 왕언니들이 많았다. 전국금융노조 공광규 정책실장은 “그러나 최근에는 은행 창구가 훨씬 젊어졌다”며 “은행에서 퇴직한 경력 여성들을 다시 비정규직으로 고용해 쓰다 보니 관리하기도 힘들고 갈등이 많았는데, 이제는 대졸자를 새로 뽑는 추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각 은행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중에 1997년 말 당시 은행에 근무했던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고 한다.

외환위기 이후 다른 어느 부문보다 구조조정 칼바람이 혹독하게 불어닥쳤던 은행산업의 종사자들은 이제 ‘성과주의’라는 또 다른 유령과 직면하고 있다. 자본 자유화와 금융산업 개방, 금융상품 겸업화에 따라 방카슈랑스·적립식 펀드 등 판매 상품도 대폭 늘어났고, 실적이 부진하면 자리가 뒷줄로 밀리거나 일자리를 잃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상여금이 나오면 스스로 방카슈랑스 상품을 구입해 실적을 올리는 일도 흔하다. 금융산업노조가 2006년 9월 전국 18개 은행의 정규직 남녀 469명(4·5급이 86%)을 조사한 결과, ‘고용불안’ 정도는 외환위기 이전에 1.86(5점 척도·거의 느끼지 못한다 1점, 매우 큰 편이다 5점)이었으나 2000년 초에 3.82로 대폭 높아졌고 지금도 3.7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 특히 ‘향후 고용불안’이 4.06으로 나타나 고용불안이 더 심화할 것으로 느끼고 있었다. 은행의 수익성은 크게 개선되고 있지만 고용불안의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수익성 개선되도 고용불안은 더 커져

고용불안의 이유로는 ‘구조조정 압력’이 40.4%로 가장 높았고, ‘은행 간 경쟁 심화’가 19.4%였다. 외환위기 10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구조조정 걱정이 은행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 강도는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매우 강화됐다’가 45.2%, ‘다소 강화됐다’가 23.9%였다. 치열한 경쟁과 성과주의 속에서 노동 강도가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것인데, 수익이 대폭 개선된 SC제일은행의 경우 직원이 외환위기 직전 8천여 명에서 지금은 5600여명으로 줄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은행들이 자꾸 대형화되는 추세인데, 자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또 매각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다”며 “구조조정과 감원에 대한 불안이 사라진 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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