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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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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위기, 무엇을 할 것인가

등록 2006-12-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외환위기 이후 10년, 다양한 통계가 보여주는 양극화와 삶의 불확실성…고용불안과 함께 출산율 저하·자살 증가·가족 해체 현상이 급격히 진행돼

▣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과

현대 한국 사회는 지난 40여 년 동안 세 차례 큰 전환을 경험했다. 1960년대 시작된 산업화, 80년대 후반 민주화 이행, 90년대 중반 세계화가 그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국내외적인 요인들 가운데서도 주로 국내적인 요인에 의해 추동됐다면, 세계화는 오히려 국외적인 요인들에 의해 추동됐다. 그 결과, 한국의 세계화는 김영삼 정부 초기 공격적 중상주의로 출발했으나, 곧 파국적인 경제위기로 귀결됐다.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 지원을 받기 위해 국제통화기금이 요구하는 개혁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재벌 지배구조 개혁을 포함했다.

‘금융부자’ 증가 속도 아시아 최고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기업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였다. 그리고 그 방법은 고금리 정책을 토대로 했다. 부채에 의존해 문어발식 기업 확장을 추구해온 재벌기업들이 직접 타격을 받아서, 기아·한보·삼미·진로 등 주요 재벌기업들이 부도가 났다. 개발연대에 정부와 대기업의 유착으로 만들어진 ‘대마불사’ 신화가 깨지면서 대기업들도 잇따라 쓰러졌다. 정부는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다른 재벌기업들이 부실기업을 매각하고 기업을 합병하도록 유도했다. 또 재벌기업들과 하청관계를 맺고 있던 수많은 중소기업들도 부도를 경험해 1998년 1년 동안 무려 6만8천 개의 사업체가 문을 닫았다. 이러한 대량 기업부도와 정리해고는 곧바로 노동자들의 대량실업으로 이어졌다. 98년의 경우 매월 10만 명 정도의 신규 실업자가 발생하는 전대미문의 대량실업 사태가 벌어졌다.

98년 2월 노동시장 유연화에 관한 노·사·정 합의에 따라 비정규직 고용이 늘어나면서, 정규직이 비정규직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경제위기 아래 이뤄진 노·사·정 합의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이루어진 합의였지만,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고통 전담으로 귀결됐다. 96년 이후 2005년까지 피고용자는 약 198만 명이 늘어났지만, 이 가운데 정규직은 41만 명에 불과한 반면 임시직과 일용직은 각각 약 115만 명과 42만 명 늘었다. 정규직은 전체 피고용자의 58.1%에서 52.1%로 줄었고, 임시직은 27.9%에서 33.3%로, 일용직은 14.0%에서 14.6%로 늘어났다. 2005년 현재 임시직과 일용직은 전체 피고용자의 47.9%를 차지했다.

정리해고는 연봉제 아래서 상대적으로 임금 부담이 높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이뤄졌다. 명예퇴직제와 조기정년제와 같은 퇴직제도가 도입되면서, 정년까지 같은 직장에 근무한다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졌다. 그 결과, 전반적으로 고용 불안정이 커졌다. 2002년 한국의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으로 유럽 국가들의 절반 정도였고,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6.6년(1996년)보다도 더 짧았다. ‘오륙도’ ‘사오정’ ‘삼팔육’과 같은 용어들은 이러한 경제 환경 속에서 심화되고 있는 고용불안을 반영하는 대중적인 언어들이다.

고용불안 시대에서 정년이 보장되는 직업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근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고, 고3 졸업생들이 교육대학으로 몰리고 있다.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정년이 보장되는 직종으로 학생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전공을 불문하고 각급 공무원 시험과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고용불안은 곧바로 소득불안으로 이어졌다. 특히 비정규직의 소득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에 불과해 일을 하더라도 소득이 낮아 빈곤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빈곤층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근로빈곤층은 2004년 현재 빈곤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소득 기준으로 취업가구 중 13~14% 정도에 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부유층의 부는 빠르게 증가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최근 미국의 증권회사 메릴린치는 한국이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부유층의 증가 속도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른 나라라고 밝혔다. 메릴린치 보고서를 보면 2005년 100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을 보유한 한국 부자의 증가율은 21.3%로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평균인 7.3%와 비교해 3배에 이르렀다.

강력범죄 연평균 20% 늘어

금융자산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부유층 부의 증가도 광적으로 이뤄지면서 자산 불평등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아파트 가격 폭등 때문에 ‘수도권/지방’ ‘강남/비강남’이라는 이중적 위계서열 구조가 굳어졌다. 강남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이미 지방과 비강남에 비해 훨씬 높지만, 아파트 가격 상승률에서 큰 차이를 보여 주택자산 불평등은 더욱 확대됐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 3년간 배로 오른 반면, 아파트 가격이 강남의 10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방도시 아파트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1년 사이에 수억원씩 오르는 아파트 가격 폭등이 수년간 계속되면서 자산불평등은 극단적인 수준에 달했다. 이러한 아파트 가격 차이는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수도권에서 강남으로 이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사회적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97년 이후 불평등 심화와 빈곤층 확대 현상은 흔히 ‘양극화’라고 불렸다. 양극화 문제는 그것이 경제적인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해체적인 양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다. 지난 10년 동안의 경제위기는 곧바로 사회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사회 안전망이 부실한 한국 사회에서 경제위기는 사회 각 부문의 위기로 곧바로 전환됐다. 인구 재생산 위기, 생활안전의 위기, 가족의 위기, 노후의 위기 그리고 희망의 위기가 그것이다.

먼저 두드러진 사회적 위기는 인구 재생산 위기다. 고용이 불안정하고 새로 집을 마련하는 것이 대단히 힘든 상황에서 결혼을 피하거나 미루는 현상이 나타났고, 임신·출산도 꺼리게 됐다. 96년 초혼 평균연령은 남성 28.4살, 여성 25.5살이었으나, 2004년 초혼 평균연령은 남성 30.6살, 여성 27.5살로 10년 사이 초혼 평균연령이 2살 이상 늘었다.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결혼을 늦추는 ‘만혼’이 일반화한 것이다. 출산율 저하 현상도 기록적이다. 여성 1명이 평생 동안 낳을 아이 수인 ‘합계출산율’은 96년 1.58명에서 2005년 1.08명으로 줄었고, 신생아 수는 96년 69만5825명에서 2005년 43만8062명으로 무려 25만7천 명 정도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산아 제한을 외쳤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오늘날의 현실은 너무도 달라졌다.

생활안전의 위기는 범죄의 폭증이 시민의 삶을 불안하게 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위기는 여러 형태의 범죄를 확대재생산해낸다. 재산범죄는 97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10% 정도 늘었다. 살인과 폭력 범죄를 포함한 강력범죄는 더욱 빠르게 늘어 97년부터 2000년까지 연평균 20% 정도 늘었다. 모든 국민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심각한 사회 불안이 나타났다. 또 살인의 형태도 과거와는 달리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살인사건이 많이 발생하면서, 범죄에 대한 불안심리가 크게 높아졌다.

가족의 위기는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되는 것으로 가족 집단자살이나 이혼 등이 주된 원인이다. 실업이나 신용불량 등으로 생활이 어려워진 가족에서 가장의 자살이나 가족 전체의 자살이 늘어서 97년 이후 자살률은 매년 12.5%씩 증가했다.

2005년 현재 자살자 수는 자동차 사고 사망자 7947명보다 훨씬 많은 1만2047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하는 셈이다. 생활고를 비관해 달리는 지하철에 뛰어드는 끔찍한 사건이 매주 발생한다. 가족 구성원 일부나 전부의 자살은 곧바로 가족의 해체로 이어져 버려진 아이들이 생겨났고, 고아가 급증했다.

이혼율 급증에 따른 가족관계의 해체도 폭증했다. 가부장제 아래서 경제능력을 상실한 남성들은 가족 내에서 가부장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게 되면서,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혼이 크게 늘었다. 60년대 서구에서 나타난 이혼 혁명에 버금가는 이혼율 폭증이 90년대 후반 한국에서 나타났다. 97년부터 2005년까지 8년 사이 약 116만 쌍이 이혼했다. 90년 4만5649건에서 2003년 16만7096건으로 13년 사이 거의 280%나 늘었다. 그 이후 약간 줄어들어 2005년 12만8468건이었다. 이런 변화는 직접적으로는 이혼에 대한 태도 변화의 산물이지만, 이혼에 대한 태도 변화의 요인에는 경제위기로 인한 가부장제의 약화와 길어진 평균수명 등이 있다.

오래 사는 건 축복이 아니라 고통

노후의 위기는 평균수명은 늘어나는 데 반해 정년은 더 빨라져 노후의 삶이 더 불안해지는 것을 뜻한다.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97년 74.39살에서 2005년 78.63살로 늘어났다. 매년 0.5살 정도로 평균수명이 늘었다. 그러나 노동시장에서의 퇴출이 빨라지면서, 노후 생활이 어려워지고 있다. 현재 노인 3명 가운데 1명이 빈곤층이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이 될 수 있는 사회적인 변화가 일어나면서 노후불안 문제는 한국 사람들의 가치관을 뒤흔드는 위협적인 요소가 됐다. 과거 가족이 노부모를 봉양했지만, 자녀 수가 줄면서 더 이상 자녀가 노부모를 책임지는 것이 불가능해지고 있다.

사회심리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희망의 위기’다.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현재를 희생하는 동기 요인이다. ‘대학교육을 받고 취업하면 나름대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기대가 모든 사람들에게 공유되었기 때문에 자녀교육에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 이런 기대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보장받을 수 없는 고용과 소득,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인해 소득을 통해서는 이룰 수 없는 자기 집 마련의 꿈, 불안한 노후 등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상실로 이어진다. 희망의 상실은 여러 사회적 위기를 강화한다.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 셈이다. 현재의 어려움보다 미래 희망의 상실이 더 심각한 위기다.

한국 사회는 모든 변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소용돌이 사회이다. 97년 외환위기로 촉발된 한국 사회의 변화는 그 이전에 형성됐던 경제체제와 사회조직의 근간을 뒤흔든 거대한 전환을 낳았다. 변화의 핵심은 ‘불확실성의 증대’이다. 치솟는 범죄, 불안정한 가족, 고용불안, 불확실한 노후 등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생겨났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국가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21세기 한국 사회는 안전하고 안정된 삶이 보장되는 사회가 아니라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교육·부동산 광기는 정책의 문제

외환위기 직후 새로 등장한 김대중 정부는 단기적으로 외환위기를 해결하는 데만 급급했다. 많은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의 요구대로 신자유주의적인 방식으로 한국경제를 재편했다.

정책이 불러올 장기적인 사회 변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다. 외환위기 10년, 한국 사회는 크게 변했다. 그 변화는 긍정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많은 경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행위 주체는 정부나 정치권이라는 점에서 정부나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모색하고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미래가 불안할수록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더욱 매달리게 된다. 고용이 불안할수록 부모들은 자녀들이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어학연수를 포함한 각종 연수를 더 받아 다른 학생들과 차별성을 갖게 하려 하기 때문에 교육비용이 끊임없이 늘어난다. 또 노동소득을 통한 주택 마련이나 부의 축적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다른 방법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교육과 부동산 광기는 개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과 제도의 문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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