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2002년부터 시작된 긴 싸움, 대추리를 외롭게 두지 않은 사람들…농민들은 트랙터를 끌고 몰려들고 젊은이들은 ‘지킴이’로 눌러앉아</font>
▣ 이유빈 평택 미군기지 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간사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평택 대추리. 2002년부터 시작된 긴 싸움은 이곳을 아주 유명한 곳으로 만들어버렸다. 내가 대추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5년 2월 겨울, 대학생이었던 나는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농활을 오며 이곳 주민들과 거의 1년을 함께했다. 이곳에서 언론들이 노래를 불러온 ‘폭력시위 집단’과 ‘보상금을 노리는 무리’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평생 땅 파서 농사짓고 살겠다는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하루 종일 힘든 농사일을 마치고 끼니를 거르더라도 촛불행사에 나가겠다는 어른들의 모습에서 나도 이곳에서 함께 살 일을 찾아야 했다.
“우리 아기 새울이에게 대추리 쌀을”
지난 3월15일, 수천 명의 경찰과 용역을 앞세운 1차 영농차단 작업이 있었다. 바로 다음날 경기도는 물론, 전라도·경상도·강원도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대추리·도두리로 몰려들었다. 트랙터를 가져오지 못한 농민들은 버스를 대절해 이곳으로 와 평택 농민들의 힘을 북돋아주었다. 경찰들은 수많은 병력과 컨테이너 등을 동원해 고속도로, 주변 도로, 마을 입구를 차단했지만, 30여 대의 트랙터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은 끝내 막지 못했다. 그 트랙터들은 하루 종일 대추리 주민들과 함께 논을 갈았다.
지난 4월이었던 것 같다. 웬 남자가 혼자 대추초등학교를 찾아와서는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꼭 한번 대추리에 와본다는 것이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붓글씨 쓰는 것밖에 없다”며 “마을에 글씨를 좀 써도 좋겠냐”고 물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분처럼 대추리를 조용히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감동적인 편지도 줄지어 도착했다. 용돈을 털어서 성금을 보낸 학생들은 “대추리까지 오지 못해 너무나 죄송하다”고 말했고, “이 정당한 싸움이 꼭 이기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어떤 분은 얼마 전 낳은 첫아기의 이름을 황새울을 따 ‘새울’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는 “새울이에게 대추리 쌀을 먹은 엄마의 젓을 주고 싶다”며 “쌀을 살 수 있겠냐”고 문의했다.
5월4일 대추초등학교 철거 이후 설치된 경찰의 불법 검문소 탓에 많은 사람들이 대추리를 찾았다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러나 주민들의 든든한 정신적 버팀목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신부님들이었다. 5월4일 이후 정의구현사제단의 전국 각지 교구에서 신부님과 신도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대추리를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있다. 빈집 강제 철거가 있던 9월13일에는 신부님들이 경찰 병력에 둘러싸인 길바닥에서 주민들과 함께 평화의 미사를 드렸다.
젊은이들은 혈혈단신으로 짐을 싸 대추리로 몰려들었다. 우리는 그들을 ‘지킴이’라 부른다. 이젠 대추리 주민이 되어버린 지킴이들은 스무 명 남짓이다. 그들은 직장인, 활동가, 학생들이다. 지킴이들은 마을의 잔일을 돕고, 농사도 배우고, 마을에 큰일이 나면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다. 지킴이들은 빈집을 청소하고 고쳐서 마을 도서관, 찻집, 어린이 놀이방, 마을 방송국도 만들었다.
기억하는 한 지지 않으리
자신이 해왔던 생활의 틀을 깨고 일정한 수입도 보장되지 않는 이곳 대추리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어가고 있는 지킴이들이 대추리에서 주민들과 함께할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지킴이 가운데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 대추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고. 대추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우리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3월에서 5월까지 경찰의 영농 차단, 철조망 설치, 불법 검문소 설치, 빈집 강제 철거 등에 저항하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연행되고 벌금을 물고 구속되는 아픔을 겪었다. 국방부와 검찰은 이런 공권력 남용이 대추리를 결코 잊을 수 없게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대추리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대한민국에 진정 묻고 싶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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