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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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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이전 재협상 불가피

등록 2006-12-21 00:00 수정 2020-05-03 04:24

평택 이전 늦춰지면 개정안 마련하고 국회동의 다시 받아야…기반시설 교체비용도 협상안에 규정된 것보다 50배 이상 초과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06년 5월4일 경기 평택시 대추리·도두리 일대는 이른 아침부터 ‘전쟁터’였다. 그날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은 주민들이 피땀으로 지어놓은 대추분교를 허물었고, 안성천 도하 작전을 감행한 군인들은 드넓은 들녘에 철조망을 쳐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만들었다. ‘여명의 황새울’이란 작전명이 붙은 그날 ‘행정 대집행’을 위해 정부는 경찰 110개 중대(1만1500여 명)와 수도군단·700 특공연대 2개 연대(2800여 명), 그리고 철거용역 업체 직원 600명을 동원했다. 군을 동원해 민간인을 ‘진압’하기까지 했으니, ‘계엄 치하냐’는 비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무리수였다. ‘기지 이전 일정을 맞추기 위해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게 당시 정부의 논리였다. 그런데….

2008년까지 이전해야 법적 효력 지녀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 늦춰질 것이라는 얘기들이 슬며시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의 공식·비공식 채널을 통해서다.‘2011년 이후’ ‘2012년 말+α’ ‘2013년 말’ 등 그 버전은 여러 가지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이 애초 예정된 2008년 말이 아니라, 2011년 이후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인 시기는 평택 미군기지의 청사진인 시설종합계획(MP)이 나올 연말이나 내년 초에나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전에 기지 이전 작업이 얼마나 지연될 것인지를 추산해볼 만한 잣대가 있다. 지난 11월17일 미 극동공병단은 중견 건설업체 서희건설과 ‘캠프 험프리(이전 예정 주한미군 기지) 확장 부지 조성공사’ 계약을 맺었다. 279억4767만8944원에 낙찰된 이 계약으로 서희건설이 떠맡은 ‘성토작업’ 면적은 확장 이전 예정 부지 349만 평 가운데 약 28만 평이다.

이 업체 문세훈 과장은 “공사 기간은 착공일로부터 1145일”이라며 “내년 1월 중 착공을 목표로 현재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확장 이전 예정 부지 가운데 10분의 1도 안 되는 면적의 부지 조성 공사조차 2010년 3월께나 돼야 완료될 것이란 얘기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지 공사가 최소 3년 이상 지연될 수 있다는 공기 지연에 불과할까?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부는 이미 발효돼 집행 중인 용산기지 이전 협정(대한민국과 미 합중국 간의 미 합중국 군대의 서울 지역으로부터의 이전에 관한 협정 비준 동의안)을 고쳐 개정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그 개정안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 절차도 다시 밟아야 한다.

왜 협정을 개정해야 하나? 문제에 해답이 있다. 한-미가 2004년 10월26일 합의한 협정문에 친절하게 나와 있다. 협정은 “서울 지역으로부터 유엔사·연합사 및 주한 미군사의 이전을 완료하는 데 필요한 원칙, 일정 및 이행 절차를 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협정은 두 달 뒤 국회의 비준 동의를 받았다. 법적 효력을 지닌 것이다. 따라서 기지 이전의 일정과 이행 절차 등은 법으로 정해진 셈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협정의 제2조 3항이다. “유엔사·연합사 및 주한 미군사의 본부 이전을 위한 목표 일자가 2007년 12월31일로 된다는 양해하에 모든 이전이 2008년 12월31일까지 완료될 것이다.” 즉, 법적 효력을 지닌 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은 2008년 12월31일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2011년 이후로 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이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은 협정 내용과 달라진다는 얘기이자, 법의 효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통외통위) 열린우리당 간사인 임종석 의원은 “공사가 길어지면 기존 한-미 간에 합의한 것의 범위가 달라진다”며 “협의한 것의 재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같은 당 최재천 의원도 한목소리다. 그는 변호사 출신으로 17대 상반기 국회(2004~2006년)에서 법제사법위원회 열린우리당 간사를 지낸 법률 전문가다.

C4I 비용이 3천억~4천억원에 이를 것

최 의원은 “어떤 계약을 맺어 언제까지 의무를 이행한다고 해서 이행할 수 없게 되면, 기한의 연장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하다”며 “협정 비준 동의안은 한시법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의미에서 2008년 12월까지 기한을 정해준 것으로서, 그 기한을 넘어서려면 별도의 개정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개정할 필요가 없도록 협정문에 기지 이전 완료 시점을 신축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둔 것도 아니다. 최 의원은 “한-미 간 조약상 권리와 의무 관계의 변경도 포함되지만 주한미군 재배치를 둘러싼 개발 계획과 그에 따른 예산 구조의 변경 등 중대한 국내 정책의 변화가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협정을 개정하고 다시 한 번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협정안을 뜯어보면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협정은 기지 이전이 수조원대의 혈세를 쏟아붓는 국책사업임에도 총예산에 대한 정확한 제시나 추계가 없는 기형적 구조다. 그런데 딱 한 군데서 이전 계획을 시행하는 데 발생하는 비용에 대한 구체적 수치가 나온다. 협정의 제5조 자금 편의 3항의 ‘가’다.

“대한민국은 시설종합계획(MP)에 따라 새로운 시설에서 지휘·통제·통신·컴퓨터 및 정보 체계(C4I) 기반시설을 제공하고, 유엔사·연합사 및 주한미군사의 C4I의 기존 장비를 이전한다. 특정 장비가 재사용이 불가능하거나 이전이 교체보다 더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그 장비는 교체될 것이다. 장비의 교체를 위한 대한민국의 부담은 미화 900만불(달러)을 초과할 수 없다.”

최근 정부 당국자들의 입을 통해서 C4I 비용이 3천억~4천억원에 이를 것이란 추정치가 새어나오고 있다. 즉, C4I 비용으로 협정에서 설정한 한계(900만달러)의 최고 50배 가까이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우리 정부가 비용의 한계가 있으니 가용한 것을 뜯어 옮기겠다고 버텨왔지만, 새것으로 교체해달라는 미국 쪽의 요구가 거셌다”고 말했다. C4I의 비용도 ‘법대로’ 하자면, 정부 당국자들의 입에서 아예 900만달러 이상의 수치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합의된 청문회도 흐지부지되나

최재천 의원은 “일찍이 가장 염려했던 것이 C4I 비용이 늘어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통외통위가 협정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주기 직전 채택한 심사보고서에서도 이같은 우려가 ‘예언’돼 있다. “미국 쪽은 C4I 현대화 비용과 관련해 우리 쪽의 분담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는 협정 내용에 반하는 것이므로 방위비 분담 협상 과정에서 우리 쪽 입장이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무시한 채 정부가 대충 넘어갈 순 없다.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외국과의 협정은 헌법 제60조 1항에 따라 정부가 국회의 동의를 받아 비준해줬을 때만이 효력을 지니고, 또 그 동의 범위 내에서 효력을 지닌다. 헌법은 제60조 1항에서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LPP’(2002년 3월29일 서명된 대한민국과 미 합중국 간의 연합토지관리계획협정에 관한 개정 협정 비준 동의안)의 사례는 용산기지 이전 협정 개정에 중요한 참고서다. LPP는 2000년 2월 주한 미군기지의 통폐합 필요성이 제기된 뒤 2002년 협정 체결과 국회의 비준 동의로 발효됐다. 하지만 곧 협정 내용에 변경할 만한 상황이 발생했다. 이듬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군 제2사단 재배치 원칙에 대한 합의가 나오면서다. 캠프 하야리야 등 도심에 위치한 미군기지의 반환을 2011년에서 2005년으로 앞당기는 등 반환 시기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 핵심이다. 이렇게 기지 이전의 시점을 조정하기 위해 LPP를 개정했다는 것은, 용산기지 이전의 완료 시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협정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가 12월15일 성명을 통해 “평택 미군기지 사업 연기는 부실 협상의 예견된 결과”라고 지적한 것처럼, 첫 단추(협정)가 잘못 끼워지면서 이미 예상된 문제점들이 터져나오는 측면도 크다. 국회의 방관과 무책임이 그 혹을 키웠다. 특히, 국회는 용산기지 이전 청문회를 하겠다고 한 지난 2004년 12월의 약속을 아직도 지키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통외통위 간사 간 합의로 안건으로 다뤄질 예정이었으나, “한-미 동맹을 해칠 수 있다”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 논리에 부딪혀 좌절됐다. 11월엔 꼭 열겠다는 국회의 또 한 번의 약속도 결국 흐지부지됐다. 청문회 개최를 거듭 주장해온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쪽은 “통외통위 차원에서 합의한 것이니 꼭 해야 된다. MP가 나오면 정부가 약속했던 것처럼 국회 보고가 이뤄질 것이고, 그때 논쟁이 되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비준 동의안의 여전한 문제점들

포괄협정만 국회 동의 받고 이행 합의서는 제외돼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우린 쉽게 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잘못된 역사가 자주 되풀이되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2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2004년 12월 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용산기지 이전 협정 비준 동의안을 통과시켜주면서 기록을 남겼다. 비준 동의안에 대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차원의 심사보고서와 통외통위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에는 협정의 문제점들이 잘 집약돼 있다. 두 보고서의 내용은 같다. 보고서의 내용은 지금도 유효하며, 왜 청문회와 협정의 재협상이 필요한지 근거들이 되고 있다. 보고서의 내용을 정리해보자.

“포괄 협정(통상 ‘기지이전 협정’·UA)만 국회 비준 동의를 받고 이행 합의서(IA)는 비준 동의를 받지 않았다. 이행 합의서에 우리측 비용 부담의 규모 및 재원 조달 계획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캠프 킴 등 12곳의 주한미군 시설 및 구역의 반환 연도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

이전에 소요되는 추정 비용은 3조9570억원이지만, 2005년 말 시설종합계획(MP)이 완료돼야 구체적 비용이 산출될 수 있다. 여기에 평택시 등 이전 대상 지역에 대한 지원과 9·11 테러 이후 건축 기준이 강화된 미 국방부 기준에 따르도록 하는 등 비용을 증대시킬 가능성이 있는 부분들이 많다. 협정의 ‘(기지) 이전과 관련된 그 밖의 비용을 부담한다’는 조항처럼 부담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것은 문제다. 미측이 전술지휘통제체계(C4I) 현대화 비용의 분담을 우리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포괄협정의 내용에 반하는 것이다. 일반회계로 재원 조달의 한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기지 이전 특별회계를 마련할 경우, 재원의 상당 부분을 공공자금 관리기금으로 구성하면서 국가 부채의 부담이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캠프 그레이의 대체시설 자금 지원 부담을 상위의 포괄협정에서는 미측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해놓고,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하위의 이행 합의서에는 우리측이 부담하는 것으로 변경을 가하고 있다. 포괄협정에서 모든 시설·용역 및 비용은 주한미군지위협정 합동위원회가 정하는 절차에 따라 지급되는 것으로 한 만큼 이들의 결정 사항에 대해 정부가 사전에 국회에 보고하는 체제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

보고서의 이같은 지적들은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았다. C4I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쪽의 무리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고, 우리 쪽 소요비용은 2004년 국방부가 제시한 예상치에서 1조원이 훨씬 늘어난 5조원을 넘어설 것이란 얘기들이 정부를 통해서 나오고 있다. 환경 치유 비용 등의 분담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그런데도 국회는 협정 비준 동의안을 처리해준 뒤 아무런 보고를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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