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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대선의 결정적 변수는?

등록 2006-12-14 00:00 수정 2020-05-03 04:24

2002년 대선의 승부를 갈랐던 지역주의와 이념 갈등은 약화될 듯…삶의 불확실성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비전이 핵심 변수로

▣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2007년 대선은 2002년 대선과 무엇이 달라질까. 어떤 갈등 구도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하는 기준이 될까. 지금 시점에서 이런 질문들에 답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대선 결과가 자주 극적 반전의 드라마였다는 점에서 내년 대선을 예측한다는 것은 일종의 모험 행위이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정치 현상들을 분석해 그 속에 담긴 핵심 트렌드(경향성)를 추출하고 그것을 미래의 모습으로 확장시켜보는 것은 가능하다. 이 글의 대선 예측이란 딱 그런 정도의 수준으로 보면 된다.

툭하면 지역주의 탓?

과거 역대 대선의 양상과 승패를 좌우했던 핵심적인 변수 내지 갈등 구도를 꼽으라면 개혁-수구의 이념구도, 영남-호남 지역구도, 노-소 간 세대구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이런 구도들은 하나같이 지속적으로 약화돼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먼저 과거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로 작용했던 지역갈등 구도는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계기로 그 영향력이 현저하게 축소되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탈지역주의적 유권자 집단이 선거 시장의 새로운 고객으로 꾸준히 유입해 들어왔고, 그것이 급기야 2002년의 시점에서 정치적 양질 전환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바로 이런 유권자 시장의 구조 변화를 지역주의 타파와 정치개혁이라는 시대정신으로 절묘하게 꿰뚫었던 것이라고 보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도 툭하면 지역주의의 정치구도 때문에 아무 일도 안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물론 지역주의의 폐단은 아직도 건재하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라진 측면도 분명히 있다. 예전처럼 걸핏하면 ‘영남 죽이기’니, ‘호남 말살’이니, ‘충청도 핫바지’니 하면서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자기 지역에 내려가 규탄대회 여는 사람이 지금도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당장 얼간이라고 비웃음당하고 말 것이다. 최근 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의 한판 해프닝이 그것이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만 가지 악의 근원이고 과연 올인(다 걸기)의 주제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진짜 지역주의가 어떤 것이었는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다. 지역주의의 피를 자기 손에 선연하게 묻히고 있으면서도 지역주의가 내 팔을 비틀고 있다고 절규하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든다.

2002년 대선에서는 과거 대통령 선거의 절대적 황금 변수였던 지역주의 구도의 위력이 쇠퇴하고 대중의 거대한 열정이 선거 과정에 투입되면서 역사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개혁-수구의 이념구도가 펼쳐졌다. 개혁-수구의 이념구도에 세대갈등 구도가 가세하면서 지역주의와 폭로정치에 집착했던 한나라당이 낡은 정치세력으로 규정되고 선거가 매우 역동적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서는 이 구도들도 지역주의 구도만큼이나 빠르게 쇠퇴하고 있다. 오히려 민주화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역포위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현재까지도 개혁-수구 구도가 여전히 유의미하게 작동하고 있는 영역은 대북 정책을 둘러싼 갈등 정도이다. 하지만 그 이슈조차도 민주화 세력의 비교우위가 많이 허물어졌다.

물론 기존의 지역, 세대, 이념 갈등의 변수들이 조만간 완전히 사라진다고 볼 수는 없다. 그것들은 2007년 대선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다. 특히 민주화 세력의 약화에 편승해 수구세력의 반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들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은 새롭게 떠오르는 핵심 변수에 의해 재구성되고 활용되는 양상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대선의 갈등구도는 중층적인 갈등구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새로운 핵심 변수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유사 중도’ ‘유사 진보’가 지지받는 이유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현재 민심의 상태를 잘 들여다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해답인 것이다. 내년 대선의 판도를 결정하는 변수는 바로 사회·경제적 이슈가 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사람들이 경제적 문제로부터 연원한 자기 자신과 가족의 미래에 대한 극도의 불확실성에 완전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최근 ‘만인 대 만인의 약탈 현상’으로 나타난 부동산 광풍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제 사회적 연대의 가치를 믿는 사람이 더 이상 많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원자화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고, 밀림 같은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통용되는 가치는 ‘자기 이익’이라고 믿는다. 이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결속해야 할 유일한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라고 느낀다. 이것이 바로 영화 신드롬의 사회적 실체인 것이다.

그런데 경제가 문제라고 결론을 내린다고 하더라도 상황이 거기에서 끝나지는 않는다.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경제적 이슈란 어떤 단일한 해법으로 바로 결판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과거처럼 박정희식 성장 처방 혹은 신자유주의적 시장 논리를 갖다댄다고 문제가 술술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의 경제 침체는 성장의 침체만이 아니라 사회 양극화라는 구조적 모순과 서로 깊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보수적 산업화 세력들의 전통적 내지 정통적 경제 처방을 곧바로 적용할 경우 엄청난 계층갈등으로 발화하게 되어 있다. 사회는 더욱더 산산이 파편화되고 약탈경제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물론 경제 문제가 근본적 초점이 되고 있는 현재의 조건은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에게 유리한 판도를 형성하고 있다. 과거 산업화를 이끌어온 보수세력의 경력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현 민주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이 불가피한 상황적 구조 때문이다. 또 한나라당이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점도 있다. 공동체 자유주의에 입각한 ‘선진화’ 담론의 제시나 진보개혁 진영의 가치에 가까웠던 ‘생태’ ‘공영’(공공성) 담론을 역이용한 청계천 복원·교통관리체계 개편, 최근 아파트 반값 정책의 당론 채택 등 일련의 현상들은 한나라당이 더 이상 수구세력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한쪽에서는 ‘중도’와 ‘공공성’을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기(팔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 정치적 기업가(political entrepreneur)들이 주도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중도 마케팅은 윗돌 빼서 아랫돌 박는, 이른바 조삼모사식의 눈속임 측면이 상당히 강해 보인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그들의 정치 마케팅 기법이 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의 세 배에 가까운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는 배경에는 좀 어려운 말로 표현하면 ‘가치와 실적의 전위(轉位) 현상’이 존재한다. 쉬운 비유를 통해 설명하자면, 개발주의자로 평생을 살아온, 그리고 지금도 사실상 개발주의자인 이명박씨가 가장 개혁진보적 인물로 평가받는 역설적 현상 같은 것을 말한다. 과거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중심 집단들은 대체로 자아실현에 대한 지향이 강하고 토론적 설득에 공감하며 공공성의 구현에 적극적이라는 특성들을 갖고 있었다. 그만큼 ‘가치지향적’(value-oriented)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집단들이 지금은 대거 한나라당 지지로 옮겨가 있다. 당면한 현실 문제를 풀 새로운 가치를 도저히 제시하지 못할 것 같은 열린우리당 등 민주개혁 세력에 대한 극도의 실망과 좌절감이 ‘개발’과 ‘실적’을 유사 중도 및 진보 가치로 포장한 ‘이명박 상표’ 마케팅에 감응하게 만든 것이다.

새로운 진보-보수의 가치 투쟁

최근 민주개혁 세력이 빈사 상태에 빠진 틈을 타고 극우보수 세력이 무섭게 기세를 올리고 있다. 이들이 주도하는 ‘증오의 정치’에는 사회 양극화 추세 속에서 탈락한 사회적 열패자들이 가세하고 있어 그 양상이 보통 심각한 정도가 아니다. 얼마 전 뉴라이트(신보수) 계열의 교과서포럼이라는 단체가 일제 식민사관이나 다름없는 역사관을 유포시키려다 역풍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이런 사건들은 결코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대선에 가까이 갈수록 더욱 집요해지고 빈발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수구세력을 기반으로 정치적 지분을 챙기려 드는 정치인들도 생겨날 것이다. 최근 이회창씨의 정계복귀 시도 움직임을 그런 맥락에서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런데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역으로 뒤집어보면, 마땅한 출구가 없는 민주개혁 세력으로서는 그같은 보수세력의 패착이 은근히 기다려지고 고맙게 느껴질 지경일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2007년 대선에서는 수구집단들이 보수세력 전체의 국면을 결코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내년 대선의 승부는 사회·경제적 의제 영역에서 ‘성장동력의 재창출’과 ‘사회 양극화 극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느냐에서 갈린다고 볼 수 있다. 어디를 둘러봐도 믿을 사람 하나 없는 불안하고 답답한 이 세상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는 해답을 누가 국민들의 일상적 삶에 다가가는 언어로 체화시켜 제시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개혁-수구 갈등과는 차원이 다른 새로운 진보-보수의 가치 투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열린우리당 등의 민주개혁 세력이 이런 문제들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그것이 내년 대선 국면의 양상을 여러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지금처럼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민주개혁 세력이 이 문제를 자꾸 우회해 가려고 하는 한 대선 승패는 이미 갈린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 5·31 지방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선거는 해보나 마나다. 설령 한나라당이 두세 갈래로 찢어져 대선 후보들이 난립한다 해도 지금 상태를 지속해서는 열린우리당이 절대 이길 수가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찢어지더라도 ‘전통적 보수-새로운 보수’의 싸움 구도로 발전함으로써 민주개혁 세력은 대선판의 아웃사이더(주변인)로 전락할 수도 있다.

최근 당의 진로를 놓고 열린우리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을 보면 내년 대선은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심판으로 진행되는 것을 피할 길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정 실패의 책임이 모두 한나라당과 언론의 탓이고 자신은 별로 잘못한 게 없다고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버전으로 우기는 대통령과, 비전 창조 대신에 세력 규합을 통한 살아남기에 골몰하는 통합신당파들의 공통점은 ‘책임 전가’와 ‘기득권에 대한 집착’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 각각 다른 두 대의 버스가 향하고 있는 각각의 행로는 바다 속 아니면 늪 속이다. 이 두 대의 버스를 정차시키지 못하면 열린우리당이 영원히 재기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민주개혁 세력 전체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이들이 사즉생(死卽生·죽기를 각오하면 곧 살 것이다)의 각오로 총력을 다해 대처하면 길은 있다고 본다. 설령 내년 대선에 지더라도 금방 재기의 발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민주주의와 개혁의 가치를 지지하고 추동했던 사회집단들 속에서 사회적 연대의 가치들에 대한 회의가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개혁 세력에게 매우 불리한 요소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분노 그리고 전향이 그들의 이해관계와 삶의 욕구를 진정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 보수혁명(conservative revolution)이 일어날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한국에서 보수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보수세력 내부의 발전적 분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그들은 여전히 뭉뚱그려져 있고 반사이익의 섭취에 만족하고 있다. 또한 민주주의의 경험과 기억을 넘어서는 강렬한 도덕적 유인을 제시하고 있지도 못하다.

문제는 바로 ‘시대정신’이다

진보적 가치에 대한 대중의 지향이 여전히 강하게 살아 있음을 상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중도 및 진보 마케팅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이유다. 그동안 열린우리당은 중도와 실용을 많이 이야기해왔다. 이는 꼭 열린우리당의 어떤 특정 계파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개혁파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결정적 시점에 가서는 더 지독한 실용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한나라당의 중도 및 실용과 열린우리당의 그것을 비교하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이명박씨과 홍준표 의원을 보자. 자신한테 정치적으로 이익이 되면 남의 것도 서슴없이 갖다쓰는 것이 그들의 실용이라면, 제 것이나 남의 것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열린우리당의 실용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사람들이 자신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 즉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중도적 진보의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하고, 그 속에는 공공성과 사회적 정의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정의와 감동이 없는 유사 진보상표의 신개발주의와 대립하는 전선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같은 전선을 주도할 만한 새로운 세력, 새로운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진정한 변화와 진정한 미래의 삶에 관해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30~40대 초반 신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호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길이다. 이른바 ‘집토끼’(고정 지지층)를 만드는 방법이다.

그런데 제도권 내의 정치인들은 이런 해법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정치공학적 셈법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뭔가 손에 잡히는 어떤 이익을 가져다줘야 하고 세력을 과시해서 사람들을 유인해야 한다는 그런 유의 사고에 젖어 있다. 그러나 대중의 삶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정체성이 문제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핵심은 ‘미래의 희망’을 보여주느냐 보여주지 못하느냐에 있다. 이것을 바로 우리는 ‘시대정신’의 문제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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