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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천정배 강금실 정운찬…

등록 2006-12-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절박한 상황에 놓인 여권에 ‘제3의 후보’는 메시아처럼 떠오를까…필요조건을 고루 갖춘 후보라면 정계개편 와중에 쉽게 끼어들 수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격언이 있다. 말 그대로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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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다. 여권(집권세력)에서 ‘제3의 후보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제3의 후보론은 ‘잠룡’(승천하지 못한 채 물 속에 숨어 있는 용) 등으로 달리 불리기도 하며 그 표현과 경계 또한 모호하지만, “당장 크게 주목받지 못하거나 정치권 안팎에서 대선 출마의 뜻을 아직 밝히지 않은 잠재적 후보”를 가리킨다고 정리할 수 있다. 현재 유력하게 거론되는 대선 후보로는 집권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상황을 반전시킬 새로운 주자의 필요성이 자연스레 낳은 말이자 발명품이다.

“GT와 DY는 아니라는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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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상황에 놓인 여권이 만든 발명품들은 두 가지가 더 있다. 정치세력 구도의 판을 다시 짜려는 정계 개편 추진과 기득권 없이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를 뽑을 수 있도록 한 오픈프라이머리(국민참여경선) 방식의 도입이다. 대선 구도를 어떻게 짜고 어떤 형식으로 경선을 치르냐는 분명 중요한 문제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누구냐?”다. 인물로 모아지는 것이다. 여권은 어느 정도의 대중적 인기는 물론 도덕성·청렴성·국가경영 능력 등 대통령 후보로서 갖춰야 할 몇 가지 필수조건 이외에도 상대방인 야권의 후보를 누를 만한 경쟁력을 갖춘 후보를 찾아내거나 만들어나가야 한다.

제3의 후보론이 나올 만큼 여권의 현 상황은 절망적이다. 5·31 지방선거 완패 이후 더 심각해졌다.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김근태 당의장은 오랫동안 여권의 대표적 대선 주자로 꼽혀왔다. 이들의 지지율은 대선을 1년 앞둔 최근 기껏해야 1~2%대를 맴돌고 있다. 한나라당의 후보로 뛰고 있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수십 분의 1에 불과하다.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문제는 당장 이들의 지지율이 낮다는 것이 아니다. 열린우리당 한 인사는 “DY(정동영)와 GT(김근태)의 인지도가 90% 안팎에 이르는데도 지지율이 5%도 안 나오는 것이 문제”라며 “인지도가 낮다면 인지도를 높이면서 지지율을 같이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DY와 GT의 경우엔 이미 시장에서 충분한 검증을 통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내려진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새로운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제3의 인물론은 곧 여권의 탈출구이자 희망을 상징하는 언어다.

희망의 역사적 증거들도 있다. 대선을 1년 앞둔 2001년 12월20~22일 한국갤럽이 전국 유권자 3157명을 대상으로 대통령 당선 예상자를 묻는 질문에 노무현 민주당 고문은 1.6%에 불과했다.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31.6%로 나타났다. 노무현은 주목받지 못했다. 대선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 100명당 한두 명만이 ‘노무현이 혹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 뒤, 국민들은 노무현을 선택했다. 또 한 편의 노무현 드라마를 제3의 후보가 나타나 재연할 것이란 믿음이 여권 내 폭넓게 퍼져 있다.

외부 선장론에 반대의견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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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누구나 제3의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딱 부러지게 말할 순 없지만 몇 가지 성공 조건들이 있다. 일단 후보의 상품성이 있어야 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다고 ‘정치를 모른다’거나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등의 이유가 상품성을 해치는 큰 변수는 아닐 것이다. 출발선에서 정치를 잘 알고 대중성이 높은 주자가 승리한다는 법칙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요소가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1년이란 마라톤 코스는 결코 짧지 않다. 조건만 맞으면 불은 순식간에 타오를 수 있다. 후보의 상품성은 어디에서 나올까? 앞서 얘기했던 기본적인 것들을 포함해 다양할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인사는 “정책능력이 최우선이다. 기존의 정치 리더십으론 안 된다. 정책을 아는 사람에게 정치를 가르치는 것이 정치를 아는 사람에게 정책을 가르치는 것보다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정책보다 정치에 가깝던 노무현과는 다른 리더십이 요구되고, 정치권 밖에서 후보를 끌어와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마디로 ‘외부 선장론’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많다. 민병두 의원은 “그냥 외부에서 사람 데려온다고 크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데려오기에 앞서 기존의 후보들을 우선 키워야 한다. 그래야 제3의 후보도 그들을 타고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 내부의 인물인지 외부의 인물인지와 상관없이, 영·호남 등 고정적인 지역 표밭을 가졌거나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인물을 둘러싼 조건엔 미리 정해진 정답은 없다.

여러 조건들을 갖춘 후보가 오픈프라이머리와 같은 개방된 경선 방식과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 과정에서 오히려 쉽게 끼어들 기회와 공간을 찾을 수 있다. 5·31 지방선거에서 강금실이 나온 다음에야 오세훈의 상품성이 부각된 것을 봤을 때, ‘대선판에 뛰어드는 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지적도 나름의 일리가 있다. 대선을 치렀던 1997년, 2002년 초 여론조사 1위를 달렸던 박찬종, 이회창은 모두 꼬꾸라졌다. 무엇보다 제3의 후보가 나오려면 정치적·사회적 환경도 중요하지만, 워낙 복잡하고 가변적이어서 앞서 얘기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제3의 후보론은 주로 여권에 해당되는 얘기다. 한나라당은 그런 발명품이 필요 없다. 이명박이 대세론을 형성하는 가운데 박근혜도 대선 주자들 가운데 꾸준히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지지율 5%를 밑도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제3의 후보론에 넣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이미 대선 주자로서 충분히 알려지고 주목받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고건 전 총리도 어디로 갈지 모르겠으나, 제3의 후보군에 넣을 필요는 없다. 얘기를 다시 여권으로 돌리면, 당장 ‘이 사람이다’ 싶은 인물이 안 보인다. 제3의 후보가 안 뜰 수도 있다. 기존의 후보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지금의 정당 지지도를 배경에 깐 지지율은 큰 의미가 없다. 경쟁력을 지금 판단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최대의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면…

제3의 후보가 여권엔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불확실한 메시아다. 한나라당엔 불확실한 두려움이다. 이를 제성호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중앙대 법대 교수)는 “내년 대선은 박근혜, 이명박, 손학규 가운데 한 사람과 고건, 박원순의 3자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며 “고건 쪽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옹립될 그 ‘누구’가 연합해 최대의 이벤트를 만들어내면, 한나라당은 대선에서 또 한 번 고배를 마실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누구’는 ‘히든(숨겨진)카드’, 즉 제3의 후보를 말하며, 그는 히든카드 제1순위로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소장)를, 다음으로 천정배 장관을 꼽았다. 정치 전문가도 아닌 제 교수가 누구를 꼽았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다만 보수 진영이 2002년 대선 패배에서 학습했던 것처럼, ‘예상외 인물’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강금실, 김부겸, 김혁규, 박원순, 유시민, 이해찬, 정운찬, 정몽준, 진대제, 천정배, 추미애, 한명숙….’ 여권의 제3의 후보로 떠도는 이름들이다. 이 가운데 누가 제 교수가 얘기하는 ‘누가’ 될 것인지 알 수 없다. 없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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