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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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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르텔은 깨졌다!

등록 2001-03-06 00:00 수정 2020-05-02 04:21

족벌언론 겨냥한 방송사의 반란… 신문과 방송의 상호비평 시대가 열리는가

지난 2월 초 한국방송(KBS)에서는 주목할 만한 한 모임이 있었다. 모처럼 부서간의 벽을 넘어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취재2주간을 중심으로 경제부의 국세청 출입기자, 문화부의 미디어 담당기자, 정치부 기자 등이 머리를 맞댔다. 갑자기 마련된 이날 모임의 의제는 KBS에 대한 일부 족벌언론들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였다. 이날 모임에서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이 연일 방송 관련 기사를 통해 외곽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는 데 대해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데 이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KBS,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하다

당시 는 국제언론인협회(IPI) 보도를 통해 KBS 사장 선임방식을 문제삼는가 하면, KBS 구조조정 문제도 거론하며 계속 KBS에 화살을 던지고 있었다. 또한 일부 오락프로그램을 문제삼아 KBS를 공격하고 있었다.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갈등의 불똥이 족벌신문과 방송간 싸움으로 튄 것이다.

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언론문제에 대한 KBS의 보도방향을 다각도로 논의했는데, 일부 참석자 중에서는 “이참에 아예 족벌언론의 친일경력, 언론사주 비리 등을 본격 보도해 한바탕 일전을 불사하자”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급적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팩트를 중심으로 차분하게 대응하자”는 게 대세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KBS 노조는 당시 상황을 2월12일치 노보에서 “작금 C일보, J일보 등의 KBS에 대한 편파적 보도로 난감한 입장에 처한 회사가 그 신문들의 비리를 들춰내기 위한 공격조, 이른바 TF(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는 후문”이라고 전했다. 노보는 또 “신문들은 이미 어마어마한 실탄을 장전해 지금도 여차하면 다발총 공격을 할 수 있는데, 노조가 진작부터 매체비평을 제대로 하라고 했더니 이제야 실탄을 장전한다고!”라며 신문사에 30년을 침묵해온 회사의 때늦은 대응을 못내 아쉬워하는 한 조합원의 심경도 전했다.

이 모임은 곧장 정치권의 논란으로 비화됐다.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은 2월26일 국회에서 박권상 KBS 사장이 출석한 가운데 “KBS가 언론사주에 대한 비리수집에 나섰다는데 ‘신문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며 “언론사간 갈등이 심화하는 시점에서 방송의 신문비평은 언론을 언론으로 길들이는 ‘DJ식 신언론길들이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모임에 참석한 KBS의 한 기자는 “일부 족벌신문이 정부를 상대하기 껄끄러우니까 KBS를 계속 물고늘어지는 상황이어서 KBS 나름대로 분명한 대응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취지에서 모였다”며 “신문들의 공격에 대한 큰 대응방향만 잡았을 뿐 일부 언론이 한나라당 의원의 입을 빌려 주장한 것처럼 이날 모임이 신문사주 비리수집 등 신문과의 일전불사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회의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KBS 보도국의 모임이 이른바 신문 공격조 성격의 태스크포스팀인지, 아니면 팀이라고 하기보다는 반짝모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신문보도에 대한 이례적인 KBS의 대응은 어쨌든 언론계 안팎에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십년 동안 신문들의 일방적인 때리기에 잠자코 있던 KBS가 보도국 차원에서 족벌언론에 대한 맞대응을 논의했다는 점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원죄’와 무관한 젊은 기자·PD들

KBS는 지난 98년 초 노사가 함께 ‘개혁실천-이제는 말한다’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걸고 와 란 개혁 프로그램을 완성해놓고 실제로는 방영하지 못한 역사가 있다. 이를 겨냥해 KBS의 한 조합원은 최근 노보를 통해 “신문비리 수집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뭐 필요있나. 영상자료실 불방테이프를 뒤져보면 공격무기가 나온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배종호 KBS 기자협회장은 “과거에는 방송이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원죄를 가진 방송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원죄와 무관한 젊은 기자와 PD들이 많아서인지 신문에 정면대응하자는 목소리가 높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사실 신문과 방송사간의 예각대립은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선봉에는 문화방송(MBC)이 섰다. MBC는 1월11일 ‘신문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란 주제의 으로 첫 포문을 연 데 이어 1월16일 ‘다시 신문개혁을 말한다’를 방영했다. 공교롭게도 이 프로그램들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직후 방영된 탓에 한나라당과 조선, 중앙, 동아 등은 이를 ‘음모론’으로 몰아붙였다. 정권이 방송사와 미리 짜고 언론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담당 PD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의 정길화 PD는 “우리가 만든 프로는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낼 수 없는 것인데다 이미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전부터 기획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MBC는 2월1일 ‘신문개혁, 자율인가? 타율인가?’에 이어, 2월22일 ‘언론개혁인가, 언론장악인가’를 주제로 한 을 잇따라 내보내 족벌언론의 여론독점, 사주의 개입, 불투명한 신문경영, 신문판매시장과 광고시장의 문제점 등을 전방위적으로 다뤘다. MBC는 또 1월16일의 에 이어, 2월27일에는 조선일보사 등이 발행하는 스포츠지의 선정성 문제도 집중해부했다. 그동안 방송가에서 금기시해오던 족벌언론의 폐해에 정면으로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족벌신문사들의 역공

MBC의 돌격에 KBS도 가세했다. 세무조사 발표 이후 잇단 뉴스를 통해 세무조사의 필요성을 적극 주장하고 나섰고, 2월3일에는 프로그램에서 언론개혁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그동안 잠자코 있던 서울방송(SBS)도 침묵을 깨고 뉴스 등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뒤늦게 주창하고 나섰다.
방송사들의 이런 움직임에 신문사들의 역공이 뒤따른 건 어쩌면 당연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국제언론인협회(IPI)관련 보도. 는 1월28일치 신문에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IPI총회에서 “최근 정부 통제하에 있는 방송사들이 정권에 유리하게 편파보도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는 내용을 ‘방송사 친정부 보도 시정 촉구’란 제목을 달아 크게 보도했다. 도 같은 날짜 신문에서 IPI총회와 관련해 ‘방송사 친정부 편파보도 심각’이란 제목을 뽑았다. 는 같은 날짜 신문에 이어 2월13일 또다시 ‘공영방송 편파보도 우려국 한국도 포함’이란 제목으로 IPI 관련기사를 크게 실었다.
는 특히 2월6일치 36면 방송/연예면에서 ‘언론개혁 토론프로 시청률 떨어졌네’라는 제목으로 방송사 언론개혁 프로그램들의 시청률이 평균시청률보다 낮게 나타남으로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MBC의 팀은 즉각 반박성명을 내어 “조선일보의 기사는 방송 때리기 및 ‘비판을 위한 비판기사’로서 왜곡보도의 전형”이라고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팀은 “이 기사는 부정확한 시청률 통계를 자의적으로 인용해 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고 있으며, 이는 MBC가 지속적으로 신문개혁을 다루는 데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한 데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문제의 기사를 쓴 조선일보 진성호 기자는 “기사의 취지는 공영방송에서 시사·기획물은 시청률을 떠나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최근 언론개혁을 다룬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는 말이 많아서 시청률을 보니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을 쓴 것이다. 국민의 관심도와 거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던 것뿐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이어 “방송이 물론 신문판매 시장의 문제 등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에서 언론개혁을 세번씩이나 잇따라 다루는 건 이례적이다. 그래서 방송이 정치권력의 압력을 받고 신문때리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방송사의 움직임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조중동 3사만이 아니었다. 한나라당도 거들고 나섰다. 지난 2월19일 국회 문광위에서 야당의원들은 “방송사들의 집중적인 언론개혁 프로그램 편성은 정권의 나팔수임을 자임한 행위”라면서 “언론탄압에 공영방송이 나선 것은 정말 서글픈 일”이라고 공세를 펼쳤다. 특히 이날 김정기 방송위원회 위원장이 “(방송위가 주관하는) 방송사 비공식 사장단회의 등을 통해 방송의 신문비평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기다렸다는 듯 다음날 신문지면을 통해 ‘방송이 언론탄압 도구냐’, ‘방송부터 언론개혁을’, ‘공영방송이 언론 길들이기에 앞장’이란 제목을 달아 일제히 목소리를 높였다.

상설프로 통과될까

최근에 빚어진 방송과 신문 사이의 이런 신경전은 겉으로는 일단 방송의 적극적인 신문비평에 대한 족벌신문의 수세적 방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의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한 PD는 이에 대해 “1997년 족벌언론들이 대통령선거 과정에 개입해 신뢰를 잃어버린 것과 달리 방송인들이 상대적으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쌓아온데다 신문들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경영진과 달리 이로부터 자유로운 방송인들이 방송민주화투쟁 등을 통해 자신감을 얻은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이런 방송과 신문의 예각대립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방송과 신문의 상호비판을 상설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 지난 2월1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사무실에서는 최진용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회장을 비롯해 김영신 PD(KBS 편성국 부주간), 정길화 PD(MBC 시사교양국 차장), 최용익 기자(MBC 보도제작국 부장), 박수택 기자(SBS 노조위원장) 등 3개 공중파 방송의 기자와 PD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상파 3사의 방송인들이 모여 언론개혁과 신문권력에 대한 비판 문제를 함께 논의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들은 이날 방송이 매체비평 프로를 상설화해 방송과 신문이 상호비판하는 새로운 언론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KBS 김영신 PD는 “기본적으로 뿌리가 부실한 한국언론의 모습을 바로잡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이해관계가 다른 방송과 신문이 상호비평함으로써 제어하는 것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일 것”이라며 “현재 단절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좀더 지속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의 신문비판이 일상적이고 상설화된 형태로 발전할 조짐은 실제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용익 MBC 보도제작국 부장은 오는 4월16일로 예정된 MBC봄철 프로그램 개편에 맞춰 (가제)이란 제목의 주간 단위 신문비평 프로그램 기획안을 제출해놓았다. 같은 방송사 시사교양국의 정길화 PD 등도 이미 오래 전부터 비슷한 내용의 신문비평 프로그램 신설을 주창하며 기획안을 편성국에 내놓은 상태이다. 이 기획안은 최고경영자의 결정만 있으면 언제든지 가동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게 이들의 이야기다. MBC는 이미 지난해 5월 노동조합이 이같은 프로그램 신설의 필요성을 제기해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한 바 있다. 방송가에서는 MBC가 가장 본격적이고 상설화된 신문비평 프로그램을 선보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치고 있다.

전체 언론의 자기정화를 위하여

신문보도를 비판하는 방송사 프로그램이 그동안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KBS는 현재 란 프로그램을 통해 신문비평을 내보내고 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은 4주에 1번씩밖에 방영되지 않아 일상적인 신문비평 프로그램으로 보기는 어렵다. KBS는 봄철 프로그램 개편 때 이 프로그램을 좀더 적극적인 매체비평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KBS 권혁부 취재2주간은 “의 시간대를 일요일 오전 시간대에서 저녁으로 옮기고 신문비평 꼭지를 2주에 한번 정도 늘리는 방안을 논의중”이라고 말했다. KBS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신문들의 비판에) 방송이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게 사실이다. 대응해서 뭐 도움될 게 있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도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고 매체 영향력도 뒤지지 않는다. 신문에 대해서도 알릴 건 제대로 알리겠다”고 말했다.
매체비평은 기실 방송가만이 아니다. 창간 때부터 매체비평을 해오던 에 이어 최근에는 등도 다른 신문들에 대한 비평을 하고 있다. 도 지난 2월10일 미디어면을 신설해 눈길을 끌었다. 의 미디어면 신설에 대해서는 언론계 일각에서 방송의 비판에 대한 공격적 방어의 성격이 아닌가 하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조선일보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편집국 안에서 미디어면을 만들자는 내부 의견이 있었고, 면을 신설하는 준비를 해오다 이번에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방송도 들여다 보면 문제가 많다. 대통령이 사실상 사장을 지명하는 구조 속에서 인사문제도 탈이 많다. 뉴스 보도 역시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조차 안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만큼 뉴스보도가 과연 공정한가 의문을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의 방송비평이 단순히 드라마나 쇼프로그램의 선정성·폭력성 비판에 그치지 않고 본격적인 뉴스보도 비판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미디어면 신설은 도 계획중에 있다. 중앙일보 편집국은 최근 기자들에게 미디어면을 전담할 부서와 지면성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될 경우 방송의 신문비판, 신문의 방송비판, 신문과 신문의 상호비판이 전개되는, 바야흐로 매체간 상호비평이 한국에서도 일상적인 형태로 정착할 날도 멀지 않은 듯 보인다.
신문과 방송의 상호비평이 정착될 필요성에 대해서는 언론학계 등에서도 매우 적극적이다. 한일장신대 김동민 교수는 “매체간 상호비평을 줄기차게 말해왔지만 이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이 좋은 계기”라고 말했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는 “(매체간 상호비평은) 전체 언론의 자기정화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오늘날 조중동과 같은 족벌언론이 조폭언론이 된 것은 바로 방송의 신문비평, 신문과 신문사이의 비판 등 상호비평과 견제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으로 방송의 신문비평 프로그램 신설 등은 우리나라 신문개혁과 언론개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취재중 만난 한 PD는 이렇게 말했다. “상호비판은 상호발전이다. 방송과 신문들은 진정한 참언론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때가 왔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이제 더이상 서로를 온존시키고 부패케 한 침묵의 카르텔을 깨자!”

이창곤 기자 goni@hani.co.kr
조계완 기자 key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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