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 화재사고로 딸을 잃고 자립공동체 자원봉사자가 된 엄마의 편지… 재개발도 좋지만 거기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구제하는 방법부터 세워야
▣ 엄마·2005년 3월27일 화재사고로 딸 가을(가명)씨를 잃음
저는 2005년 3월27일 하월곡동 화재사건으로 24살짜리 딸을 잃은 엄마입니다. 그로부터 몇 달 지난 뒤부터 지금까지 자립지지공동체에서 자원봉사자로 성매매 여성들과 같이 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탈성매매 여성들을 ‘딸’이라고 부릅니다.
그 거리엔 아직도 취객들이…
처음 내가 딸들과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우리 세대에 맞지 않는 행동이나 말들이 있어서 거부감도 들고, 화가 날 때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지나고 보니 이들을 좀더 여유로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딸이 살아서 저런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드니까 우선 그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랄까 그런 게 생겼습니다.
딸들이 이 사회에 대해 알 수 없는 분노를 지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요. 그런 아이들을 바라볼 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서글펐습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과 편안함을 주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도 2년이 넘었군요. 며칠 전 퇴근길에 성구매자들이 불이 났던 집 근처를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서 정부는 법을 만들어놓고 무엇을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도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성을 사려는 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데 경찰은 시간을 정해놓고 단속하는 건지, 아니면 수박 겉 핥기식 단속으로 어슬렁거림으로써 끝내는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9월 서울 종암경찰서는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 집결지 실태조사 보고서’라는 책자를 발간했더군요. 경찰의 업무는 실태 조사가 아니라 단속 내지는 그에 해당하는 처벌이어야 옳지 않을까요. 무엇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실태 조사를 했다면 당연히 성매매를 인정한다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경찰은 왜 경찰 본연의 업무를 모르고 생색만 내려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적어도 세금을 납부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몹시 가슴이 아픕니다.
이곳 미아리 성매매 집결지는 재개발 때문에 들썩이고 있습니다. 갈팡질팡하는 공무원들이 만들어놓은 재개발을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오네요. 재개발 하면 건물주 내지는 세입자인 성매매 업주에게 엄청난 이익이 돌아갑니다. 그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그러면 그 속에서 생활하던 여성들의 행로는 어떻게 되는 건지요. 옛날 서울역 부근 양동이 재개발될 때, 그곳에 있던 여성들이 이곳 미아리로 집단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럼 이곳의 딸들은 또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는 말인데, 우리 정부는 그 여성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슨 방책이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딸들아, 훨훨 날갯짓해라
수많은 돈을 들여 재개발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먼저 그곳에서 고통받고 있는 딸들을 구제하는 방법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100명 중 10명의 실효를 거둔다 할지라도 자활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책상놀음을 많이 하는데 성과만 따질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이 시점에서 정부마저도 외면하면 그곳에서 생활하던 여성들의 갈 곳은 불 보듯 뻔합니다. 알면서 아무런 방법도 써보지 않고 또다시 헤어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내몰지 말고, 누구라도 “직업이 뭐냐”고 물었을 때 떳떳하게 자신의 직업을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들어주고 싶은 게 엄마된 제 속마음입니다.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난 딸애가 무척 보고 싶습니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것만큼 힘든 게 또 있을까요? 갑자기 “엄마” 하고 불러줄 것같은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군요. 문득문득 딸 얼굴이 떠오를 때면 정말 미칠 것처럼 힘듭니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딸들을 생각하면서 저들을 돕는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달래고 있습니다. 때로는 딸들로부터 제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도 드니까요. 내가 사는 동안 더 많은 딸들이 힘든 곳에서 나와 밝은 환경에서 훨훨 날갯짓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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