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실패냐 정치의 실패냐…여당 참패로 부동산 정책의 위기 보이자 급등…강력한 억제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경제통상학부
집값이 미쳤다고들 한다. 지난 10월의 집값 상승을 두고 ‘단군 이래 최대 폭등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집값 상승의 패턴도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에는 ‘버블 세븐’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집값이 국지적·제한적 폭등세를 보였던 반면, 지금은 수도권 전 지역에서 크기와 주택 유형을 가리지 않고 가격이 폭등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 오를 것이 확실하다면…
이런 상황은 올 상반기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정책 당국자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도 올 하반기의 부동산 가격은 안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8·31 대책(2005년)과 3·30 대책(2006년)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발휘될 것이라는 점과 금리가 두 차례 인상됐다는 점이 그런 예상을 하게 한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예상과는 정반대로 전개됐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태의 시발점을 5·31 지방선거로 잡고 싶다.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하고 나자, 곧바로 선거 참패의 원인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라는 진단이 여당 내에서 터져나왔다. 열린우리당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보유세 강화 정책을 완화하라고 청와대를 압박했고, 이는 결국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에 부과되는 재산세의 강화 속도를 완화한다는 결정으로 이어졌다. 최근의 집값 폭등이 중저가 주택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은 이 결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책의 부분적 후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5·31 지방선거의 결과가 열린우리당이 재집권할 가능성이 없음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이 재집권에 실패한다는 말은 비교적 강도 높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곧 끝난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이번에 시장 참가자들에게 강한 신호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부동산 가격은 시장 참가자들의 미래 가격에 대한 기대에 큰 영향을 받는다. 앞으로 부동산 정책이 완화되고 부동산 값이 올라갈 것이 확실하다면, 지금 아무리 강도 높은 부동산 정책이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수요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다주택 보유자들은 보유 주택을 팔지 않고 버티게 되고 주택 구입 시기를 저울질하던 무주택자들은 매입에 나서게 된다.
정부 여당의 ‘정치의 실패’가 정책에 대한 신뢰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고, 그것이 다시 시장 참가자들의 기대를 변화시켜서 예상치 못한 집값 폭등을 초래했다는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본다. 보수언론들의 ‘세금폭탄론’과 ‘공급확대론’에 부화뇌동해,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 정책(보유세 강화, 양도세 중과, 개발이익 환수 등)에 대한 흠집내기를 끊임없이 시도해온 한나라당의 행태도 정책 신뢰를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투기 국면의 마지막 단계
부동산 불로소득을 차단하는 데 보유세 강화만큼 좋은 정책은 없다. 그리고 보유세가 충분히 강화될 때까지 불로소득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는 과도기적으로 양도세를 중과하고 개발이익 환수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유세 강화와 양도세 중과, 개발이익 환수는 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정책이며 따라서 투기 대책의 핵심이 되어야 함에도 이를 후퇴시키겠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입장이다. 그런 한나라당의 집권이 확실시되는 마당에, 시장 참가자들이 정책 후퇴에 따른 집값 상승을 예상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물론 정부 여당도 5·31 선거 이전부터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정책의 수립과 입법화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며 중요한 내용을 스스로 후퇴시켰던 것은 제쳐두고라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정책 당국자들이 집값과 관련해 과도한 단언들을 마구 쏟아낸 것은 치명적이었다. 과도한 단언들이 집값 안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감을 정도 이상으로 높인 상태에서 실제로 집값이 잡히기는커녕 꾸준히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자,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됐고 그것이 정책 신뢰성의 하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번 집값 폭등의 원인을 정책 실패로 보건, 정치 실패로 보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기존의 방식대로 새로운 부동산 대책의 발표를 통해 집값 폭등세를 잠재우기는 무척 어렵다. 더욱이 8·31 대책과 3·30 대책 속에 웬만한 대책은 이미 다 들어 있기 때문에, 금리 인상과 같은 극약 처방 외에는 새롭게 내보일 수 있는 카드도 별로 없다.
부동산 시장에서 초과 수요가 가격을 상승시키고 가격 상승이 초과 수요를 더욱 확대시키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과도한 낙관론에 사로잡혀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부동산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부동산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사람들의 견해가 시장을 지배하는 경향이 나타나면, 그 시장은 파국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좋다. 학자들은 이런 현상이 부동산 투기 국면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난다고 본다. 이 단계가 지나면 거꾸로 부동산 값이 폭락하는 사태가 뒤따른다. 이 마지막 단계에서 자칫 잘못해서 금리 인상이라는 극약 처방을 쓰면 부동산 시장의 역전은 더욱 극적으로 진행되고, 그것은 금융을 비롯한 경제의 다른 부문에 엄청난 충격을 가해 금융위기와 경제침체로 이어지기 쉽다.
2006년 상반기까지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 국지적인 불안은 있었지만 이런 파국적 상황이 시작될 조짐은 없었다. 참여정부가 그런대로 부동산 시장을 조절해왔던 셈이다. 그러나 최근의 상황은 지금까지와는 질적으로 달라 보인다. 부동산 투기 국면의 마지막 단계가 시작된 듯하다. 문제는 파국이 시작되는 위기 상황에서 현 정부의 정책적·정치적 역량이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는 점이다.
세금폭탄론에 언제까지 기댈 것인가
정책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현 정부에는 그럴 만한 힘이 없다. 차기 정부를 담당할 포부를 갖고 있는 대선주자들이 나서야 한다. 정책 신뢰의 추락이 차기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예상에 기인하는 만큼, 대선주자들이 나서 부동산 불로소득의 차단을 내용으로 하는 투기 억제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 천명한다면, 나아가 그것을 내용으로 하는 협약이라도 맺는다면, 현재의 위기 상황은 의외로 쉽게 해소될 수 있다.
현재 집권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은 더 이상 참여정부 공격용으로 써먹던 세금폭탄론이나 공급확대론에 기대서는 안 된다. 부동산 투기가 높은 불로소득 획득 가능성에서 비롯된다는 상식을 인정한다면, 그 불로소득을 차단하지 않고서는 투기를 잠재울 수 없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을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수단으로는 토지보유세가 꼽힌다는 사실, 우리나라의 보유세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너무 낮아서 항상 투기를 촉발할 제도적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는 잘 알려진 사실도 이제는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집권을 꿈꾸는 대선주자라면 지금쯤이면 부동산 문제가 단지 참여정부 공격에 써먹을 재료가 아니라 자기의 숙제가 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강력한 투기 억제 정책의 대명사인 토지공개념 제도를 도입한 것이 누군가? 바로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정당)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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