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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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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북과 친미는 모두 분열세력일 뿐”

등록 2006-11-01 00:00 수정 2020-05-03 04:24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활동해온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 인터뷰… 진보는 북한의 인권을, 보수는 경제개발을 얘기해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10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정토회관 2층에서 평화재단 이사장 법륜 스님을 만났다. 법륜 스님이 이끌고 있는 정토회는 (사)한국JTS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 사업과 (사)좋은벗들을 중심으로 한 탈북난민 지원 및 북한 인권운동, 평화재단이 주체가 된 평화·통일 문제 연구활동 등 세 가지 분야로 나눠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애쓰고 있다.

핵실험과 인권 문제에서 시작해 북한의 정치현실과 동북아 정세에 이르기까지,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2시간30여 분 동안 막힘없이 이어졌다.

핵무기 개발, 현대판 천리장성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우리 사회 내부의 시각차가 크다.

=북의 핵개발을 이해는 하지만, 동조하지는 않는다. 불행히도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는 것은 현실이 됐다. 현실을 인정한 위에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생각할 시점이다. 궁극적 목표는 핵보유가 아니라 핵포기인 만큼, 북한이 핵을 어떻게 포기하게 하느냐는 방법론이 나와야 한다. 북한은 핵개발이 체제 보위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의 핵심은 체제 보장이고, 체제 보장의 핵심은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 아닌가?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면 핵을 폐기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다.

북한은 경제 문제를 이유로 안보정책을 바꾸지는 않는다. 북한식 표현으로 하자면, ‘사탕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총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에 찬성하지 않는다. 고구려도 안보를 위해 천리장성을 쌓았지만, 결국은 민심 이반과 내부 분열로 멸망했다. 군사안보뿐 아니라 민생 문제를 해결하는 인간안보도 중요하다. 핵무기 개발은 현대판 천리장성과 같은 것이다.

일부에선 북한의 자위적 핵무장을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민주사회니까 어떤 주장도 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기는 어렵다. 북의 핵보유를 용인한다면 남한의 핵보유, 일본과 대만의 핵무장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가능성에 가장 민감한 나라가 중국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북한과 중국 관계에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수도 없고, 북한의 핵보유를 용인하기도 어렵다. 이럴 때 중국의 선택은 무엇이겠나? 중국은 미국의 대북정책에 동조할 수도 있다. 결국 북한의 체제 보장에도 어려움을 야기하는 것이다. 이들의 ‘북한에 대한 고려’가 진정 북한을 위한 것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초기부터 보수 진영이 논쟁을 주도해왔다. 진보 진영이 북한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이유는 뭐라고 보나?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째, 북한 사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없지 않았다. 두 번째는 미국이 인권 문제를 통해 북한을 압박하니까, 북한 인권 문제를 거론하면 미국의 반북정책에 동조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한번 옳은 것이 영원히 옳지는 않다. 과거의 정당한 권력이 부당한 권력이 되기도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변증법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인도적 지원에 정치적 고려 없어야

흔히 북한이라고 말하는 실체를 세 가지로 구분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유엔에 가입한 자주·독립국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 국가로서의 북한이다. 그리고 현재의 집권세력인 김정일 정부가 있다. 세 번째로 북한에 사는 민중이 있다. ‘북한’이라고 할 때, 국가·정부·민중이 뒤섞여 있어서 혼란이 빚어진다. 독립국가로서 북한이 가지는 권리는 인정돼야 한다. 하지만 김정일 정부가 인권 문제, 민주주의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면 비판을 해야 한다. 인권·민생 문제에 대한 비판이 북한이라는 국가를 부정하는 반북은 아니다. 흔히 탈북난민 지원은 ‘반북’, 대북 인도지원은 ‘친북’으로 생각하지만, 일관된 관점에서 보면 인도적 지원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군사적 대응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의 인권 개선도 요구할 수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며, 이 문제가 해결돼야 정치·시민적 인권도 북한 정권에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개발이 우선이지 무슨 인권이냐, 이런 주장은 보수가 해야 한다. 진보는 개발보다는 인권을 강조해야 하는 것 아닌가? 둘 다 거꾸로 하고 있다. 진보는 보수에 “남한 인권은 거론도 안 하더니 무슨 북한 인권이냐,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하고, 보수는 진보에 “남한 인권 문제는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더니 북한 인권은 왜 외면하느냐, 그동안 인권을 빙자한 정치투쟁이 아니었나”라고 말한다. 과거를 문제 삼는 일종의 색깔론이다. 이렇게 해선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북한은 이제 이상국가도, 두려워할 만한 힘을 가진 위협국가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북한 인권상황의 열악함을 인정하고,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상당 부분 안보 문제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한반도 평화정착이 북한 인권 개선의 토대가 된다. 인권을 유보할 만한 이유를 없애기 때문이다. 안보가 불안하면 인권 개선 주장이 체제 위협으로 몰리게 된다. 그런 면에서 정치·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때도 인도적 지원은 증대돼야 한다.

북한 민중을 도우려면 북한 정권의 손을 거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

=아무리 ‘반김정일’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도 김정일 정부가 현재 북한을 대표하고 있는 이상 이들을 통하지 않고 대규모로 북한 민중을 도울 길은 없다. 북한 정부의 원칙이 부당하다고, 쓰임새가 투명하지 않다고 지원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피해는 북한 민중에게 돌아간다. 바꿀 수 있는 만큼은 주장을 하되, 지원을 끊는 것은 안 된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평가는 인도적 상황이 얼마나 개선됐느냐여야지 지금처럼 정치·군사적 변화가 얼마나 이뤄졌느냐가 평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에 관계없이 열악한 북한 민중의 현실을 볼 때 계속 확대돼야 한다. 그리고 북한 정부도 변하고 있다.

10년 전 북한 돕기 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 북한에 대한 태도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북한동포 돕기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어떤 면에서 북한을 긍정적으로 봤다. 대규모 기아사태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도, 굶어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처럼 부정적인 편견뿐 아니라 긍정적인 고정관념도 진실을 보는 데 장애가 된다. 현재의 입장이라면, 북한이라는 국가는 긍정하지만 김정일 정부에 대해서는 일부 비판적이다. 민중에 대한 사랑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평화와 지원은 북의 변화를 이끈다

김정일 정권을 타도해야 한다는 주장과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 평화체제의 동반자로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이 현실적으로 공존하고 있는데.

=우선 남북한은 유엔에 동시 가입된 국가로,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정상적으로 맺어야 한다. 미국도 북한을 국가로서 인정하고 조건 없는 수교를 해야 한다. 북의 체제는 유지되지만, 북의 정부는 바뀔 수도 있다. 북이 처한 현실로 보면, 급박한 변화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염두에 두되 중심에 두면 안 된다. 만약 북한이 긍정적으로 변한다면, 북한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오더라도 북한 체제의 붕괴가 아니게 된다. 북의 변화가 북의 안정화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도 평화와 지원은 도움이 된다. 외부 조건이 안정되면 내부의 변화 가능성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미정책은 미국에 대한 이해 부족, 미국의 대북정책도 북한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생긴 정책적 오류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북한도 미국도 심각한 손실을 보고 있다. 남한은 그 사이에 끼어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가 합리적인 방식으로 여론을 통일해내면, 미국과 북한을 견인할 수 있다. 친북과 친미, 어느 쪽도 분열세력일 뿐이다. 진정한 통일세력은 친미가 아니라 미국을 잘 아는 미국통, 친북이 아니라 북한을 잘 아는 북한통이 돼서 통일세력으로 통합되는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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