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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돈은 크고 따기는 힘든 도박

등록 2006-10-26 00:00 수정 2020-05-02 04:24

경부운하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장밋빛 전망과 회색빛 전망의 격차…운하 운송에 적합한 광물 등 별로 없고 서울~부산 간 물동량도 적어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환경 논란을 접어놓고 본다면 경부운하는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줄까. 경부운하와 관련해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타당성 검토가 이뤄졌지만, 1990년대 중·후반에 이뤄진 연구라 1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시점에 바로 적용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특히나 두 연구가 제시하는 결론이 정반대여서 혼란스럽다.

38조와 2조 사이의 까마득한 거리

먼저 장밋빛을 보자.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 ‘경부운하 건설계획’의 영감을 준 세종연구원은 1997년 4월 ‘경부·경안운하와 물류혁명’(세종정책연구 2집)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는 운하를 만들어 50년 동안 사용할 때 우리 사회는 골재·토사 매각 수입, 부지 획득 수입, 수송비 절감, 교통혼잡비 감소, 용수 편익, 홍수관리 편익 등을 합쳐(적용 할인율 10%) 1996년 9월30일 현재 가격으로 38조499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편익을 얻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에 견줘 운하 건설에 드는 사회적 비용은 건설비 8조6712억원, 유지 보수비 1300억원(50년 동안 매년)에 불과하다. 이를 토대로 보고서는 경부운하 건설로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총편익을 총비용으로 나눈 편익-비용 비율(B/C)은 5.4(보통 1이 넘으면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한다)로 나타나, 경부운하 건설사업은 “충분한 경제적 타당성과 매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고서는 또 운하를 만들면 (수치로 계산하기 힘든) 막대한 관광효과, 고용효과, 산업파급효과, 국방전략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회색빛 보고서의 전망은 정반대다. 수자원공사의 의뢰를 받아 국토개발연구원(현 국토연구원·이하 국토연)이 1998년 1월 발표한 보고서 ‘지역간 용수수급 불균형 해소방안 조사연구’는 경부운하 건설계획에 대해 “타당성이 없다”는 냉담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국토연은 경부운하의 규격을 길이 540km·수로 폭 47~5·수심 4m로 잡고, 이 수로로 배가 오가려면 하천 전 구간의 표고차를 고려할 때 16개의 댐과 20개의 갑문이 새로 건설돼야 한다고 봤다. 여기에 터널과 35.5km의 우회수로, 선착장 41개와 터미널 5개의 공사비와 보상비 등을 합하면 전체 사업비는 9조8073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문경새재를 통과하는 터널 구간에서 세종연구원 검토 노선과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건설비 1조2천억원 정도로 절대적이지 않다.

문제는 운하의 경제성에 대한 두 기관의 해석차다. 국토연은 운하를 건설한 뒤 50년 동안 이용한다고 볼 때 기대되는 편익은 수송, 수자원 개발, 환경오염 감소 등을 합쳐 4조2125억원(1996년 현재 가치)으로 계산했다. 할인율을 8%로 잡고 운하 사용 기간을 50년으로 두면 편익은 2조6202억원, 비용은 8조1179억원. 편익-비용 비율은 0.323에 머무른다. 또 운하를 사용하는 물동량도 많지 않아, 서울~부산 사이에 운하 운송이 가능한 물량은 2021년 기준 2207만t(경부축 전체 물동량의 3.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됐다. 연구의 종합 결론에서 국토연은 “기술적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나 타당성이 없다”고 사실상 사형 선고를 내렸다.

도로 개통으로 물류비도 많이 떨어진 상태

두 기관의 연구 결과는 왜 극명한 차이를 보인 것일까. 그것은 운하를 이용하는 물품의 특성 때문이다. 1986년 유럽에서 운하를 통해 수송된 주요 화물들의 성격을 분석(국토연 보고서 인용)해보면, 부피가 크고 단위 가치가 낮은 비금속 광물, 금속 광물, 석탄 등이 전체 물동량의 50%, 석유화학 제품이 30%를 차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견줘 우리 나라의 무연탄·유연탄·시멘트·광석·목재 등은 수입품의 경우 수요처에 가까운 항구를 통해 이동하거나 강원도의 전통적 탄광지대에서 영동선·태백선·중앙선 등 철도를 통해 이동한다. 서울에서 부산 사이에는 운하로 옮기기에 적합한 물품이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 전 시장 쪽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갑문 기술이 발달해 서울~부산을 운하로 잇는 데 40시간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경우 국토연 분석보다 운하의 경제성이 다소 나아질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서울과 부산을 직접 잇는 화물 통행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2005년 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요금징수시스템(TCS·Toll Collection System)이 집계한 화물차량 통행 자료를 분석해보니, 하루에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간 화물차는 평균 1만6716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목적지는 수원 36.2%(6059대), 기흥 13.8%(2319대), 오산 14.1%(2363대) 등 주로 수도권 지역으로, 전체 화물차의 91.3%가 충북 청주에 못 미쳐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반대 방향인 부산에서 출발한 화물차량 4897대의 흐름을 봐도 95.4%인 4676대가 경북 김천 이전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났다. 같은 경부축인 중앙선과 중부내륙선에서도 비슷한 경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때문인지 세종연구원의 2006년 6월 보고서(미공개)는 경부운하의 비용-편익 비율을 1997년 연구(5.4)의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1.14로 산출했다(그래픽 참조).

지난 10년 동안 우리 국토 곳곳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4년 4월에는 ‘돈 먹는 하마’ 경부고속철도가 완공됐고, 2001년 12월에는 춘천~부산을 잇는 중앙선, 그 1년 뒤인 2002년 12월에는 평택~충주를 잇는 평택~충주선과 양평~마산을 잇는 중부내륙선이 새로 개통되거나 확대 개통됐다. 나랏돈만으로 도로를 짓기에는 지쳤는지 민간 자본을 끌어들여 2005년에는 천안~논산고속도로, 2006년 2월에는 대구~부산 민자고속도로을 새로 뚫었다(그러나 교통수요 예측치가 부풀려진 탓에 재정 절감이라는 애초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다). 그 탓에 1996년 8만2342km이던 도로의 총길이는 2005년 10만2293km로, 고속도로 총길이는 1866km에서 2932km로 57%나 늘었다. 도로의 확충은 기업의 물류비 부담을 떨어뜨렸다. 1996년 기업 매출에서 물류비가 차지하던 비율은 12.6%였지만, 2003년에는 9.9%였다. 미국(7.5%), 일본(5.0%)에 견줘 여전히 높은 수치지만 절망적인 정도는 아니다.

그것은 공익인가 사익인가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놓고 볼 때, 경부운하를 만들어서 우리 사회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매우 불투명하거나 의심스런 수준이다. 불확실한 도박을 위해 대한민국 인구 절반의 식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을 판돈으로 던져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대한민국 전체의 공익 때문일까, 특정 대선 예비후보의 사익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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