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이 인도와 주변국의 관계를 얼마나 복잡하게 만들었는지 아는가… 북한이 느끼는 ‘불안감의 저주’를 풀어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
▣ 프라풀 비드와이 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북한의 핵실험을 강력하고 분명하게 비판해야 한다는 점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전세계 수많은 나라가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의문스런’ 이유로 이미 오래전 핵실험을 결행한 나라들이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다.
불안감의 역사는 한국전 때부터
이런 국가에는 미국과 러시아를 위시해 중국·영국·프랑스 등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이른바 핵 보유국(NWSs)의 지위를 인정받은 나라와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 등 핵 보유 사실이 잘 알려진 세 나라가 있다.
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핵 보유국의 ‘핵우산’을 받아들인 일부 핵 비보유국들도 문제로 거론할 수 있다.
특히 ‘핵우산’ 아래 있는 두 번째 부류의 나라들은 말도 안 되는 이중잣대를 자기 이익에 맞게 활용한다. 핵 비보유국에는 ‘참으라’고 설교만 늘어놓는다. 반면 핵 보유국들은 모두 ‘책임 있는’ 나라들이므로, 핵무기를 계속 보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나라가 북한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논리적 일관성과 도덕적 권위를 잃게 되는 이유다.
북한이 지난 10월9일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비이성적 ‘광기’ 때문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직 정권을 지키기 위해 핵실험을 강행하지는 않았을 게다. 북한의 붕괴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임박한 일이 아니다. 너무나 과도한 대응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은 현존하고 분명한 위협에 대한 대응책이었다.
핵무기와 관련해 북한이 느끼는 불안감의 역사는 한국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유엔군 사령관은 북한 전역 26개 지역의 목표물을 겨냥한 핵 공격 계획을 세운 바 있다. 전쟁 뒤 지금껏 미국·남한과 지속돼온 대결구도는 북한의 불안감을 씻어주지 못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 경향도 북한의 불안감을 키웠다. 동북아에선 냉전이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이 느꼈을 ‘불안감의 저주’가 꼭 한 번 끊겼던 시기가 있었다. 지난 1994년 빌 클린턴 행정부와 제네바 기본합의에 서명한 때다. 하지만 이마저도 미국이 중유 공급과 경수로 제공을 거부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악마화한 것은 북한에 엄청난 위협이었고,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거짓말을 근거로 이라크를 불법 침공한 것은 불안감과 공포의 현실감을 키웠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 스스로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노골적인 증오심을 드러냈고, 여러 차례 북한 정권 붕괴를 공언한 바 있다.
그러니 북한이 느끼는 위기감은 상상의 산물이 아니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결과 ‘9·19 공동성명’이 나왔음에도 위협은 더욱 증폭됐다. 미국이 북한의 핵 포기를 규정한 성명 1항만 강조한 채, 북-미 양국이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공존을 통해 관계 정상화로 나아가기로 한 성명 2항의 이행을 저버린 탓이다.
남한도 핵무기 개발에 나선다면?
요점은 안보와 억지라는 잘못된 논리를 벗어나 북한이 느끼는 불안감의 근본 원인을 풀어줘야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현 한반도 위기 국면을 타개하는 열쇠가 있다. 북한의 경우를 인도와 비교해 살펴보자. 1998년 일련의 핵실험을 통해 핵 보유국임을 선언했을 당시 인도는 안보위협에 직면해 있지 않았다. 중국과 파키스탄을 포함한 이웃 나라와의 관계는 날로 진전되고 있었고, 경제력도 급속히 커지고 있었다. 인도의 핵무기 보유는 국제사회에서 ‘세력과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안보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니 인도와는 달리 북한은 ‘안전’에 대한 확신이 들도록 설득하면 핵무기 포기가 가능할 수 있다. 미국이 사회·정치적 차이에도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북한의 열망을 이해하고 외교관계를 맺을 만한 나라로 적절히 대우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또 북-미 양자회담을 통해 북한과 정치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은 미국이 자기 정권을 파괴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핵무장한) 북한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제재 강화와 군사적 공격, 그리고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의 외교적 노력이 그것이다. 미국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줄곧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경제적인 ‘전쟁’도 북한의 핵무장을 막진 못했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는 더 이상 강화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강화된 형태의 대북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게다가 경제제재를 견뎌내는 북한의 능력은 탁월하며, 북한 정권은 경제제재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에 구애받지 않는다.
군사적 공격 방안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조치다. 또 한반도에서 이를 선택 가능한 방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 남한엔 약 3만 명의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북한은 120만 대군과 1만1천여 문의 포, 각종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이런 재래식 병력은 남한은 물론 4만여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일본까지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제 핵공격까지 퍼부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미국은 이라크의 혼란에 빠져 있다. 동북아로 미군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럼 남한 스스로 핵무장한 북한에 맞서 독자적 핵무기 개발에 나설 수 있을까? 물론 안 된다. 만약 남한이 핵무장에 나선다면 파괴적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것이며, 한반도의 전략적 불안감은 더욱 커질 것이다. 나는 인도의 핵무장이 주변국 사이의 전략적 ‘등식’을 얼마나 복잡하게 만드는지, 불확실성과 불안감을 얼마나 가중시키는지를 지켜봐왔다. 핵무장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근본적 해결책은 세계의 군축협상
한반도는 인도-파키스탄의 실수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강제력을 동원하지 않은 외교적 노력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미국과 여타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 않도록 안보·경제적 유인책을 내놓고 설득하고, 농업·산업 지원과 식량·에너지 원조에도 나서야 한다. 군사적 신뢰구축 과정도 뒤따라야 한다. 또 검증 가능한 방식으로 핵물질 생산을 중단시키고, 남북한 모두 위기를 낮추기 위한 조처를 단행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동북아 모든 나라의 안보 우려를 씻어낼 수 있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런 지역적 움직임을 바탕으로 현재의 잘못된 국제 핵 질서를 바로잡는 작업도 펼쳐질 수 있다. 핵 비확산 체제는 핵 비보유국이 핵무기를 만들거나 보유하기 않기로 하고, 이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통해 검증받도록 규정하는 한편 핵 보유국은 전세계적 핵 군축협상에 진지하게 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핵 보유국은 자기 몫의 의무를 철저히 저버렸다. 그러니 근본적 해결책은 전세계적 차원의 군축협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핵무기가 ‘힘의 화폐’로 기능하는 현실이 사라지지 않은 한 또 다른 ‘일탈행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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