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명태로 흥성거렸지만 이제는 주낙을 버리는 강원도 고성 어민들… 수온 상승과 남획으로 90년대부터 어획량 들어들다 요즘은 손 놓을 지경
▣ 고성=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9월6일 찾은 강원도 고성의 거진항은 한산했다. 새벽녘 태풍주의보가 해제됐지만, 배들은 바다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항구 한쪽에는 한때 수십만 마리의 명태를 낚아올렸던 주낙이 버려져 있었다.
스물여덟 살에 명태를 잡으러 왔다가 거진에 정착한 이태홍(68)씨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저 명태 주낙들은 박물관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1980년대 연간 2만t, 지난해 17t
이씨는 취재진을 자신의 어구 창고로 데리고 갔다. 문을 열자 먼지 낀 폐그물이 가득 쌓여 있었다. 심해에서 산란기 명태를 잡는 그물이었다. 이씨는 “이 명태 그물도 올해 안에 감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물이나 주낙을 ‘감척’한다는 것은 ‘명태를 잡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군청에 감척 신고를 하면 보상금조로 그물 한 장에 2만5천원 정도 받을 수 있을 거야. 이제 미련 없어. 명태는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이씨가 1970~80년대만 해도 배를 타고 나가면 명태 스무 바리는 우습게 가져왔다. 이곳 사람들은 명태 스무 마리를 한 두름이라 하고, 열 두름을 한 바리로 친다. 그러니까 새벽에 바닷일을 나가 오전 11시께 항구에 돌아오면 4천 마리를 싣고 오는 것이었다. 특히 명태가 산란을 하는 12월 중순에는 어민들은 바다를 ‘동지밭’이라고 불렀다. 명태가 밭에서 무를 캐듯 널려 있었다는 것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고성의 세 항구는 명태로 흥성거렸다. 거진과 대진, 아야진은 명태로 가득 찼고, 오전에 시작한 경매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졌다. 찬물에 사는 회유성 어종인 명태는 오호츠크해에서 지내다가 10월이면 산란을 하러 동해안으로 내려왔고, 이듬해 3~4월이 돼서야 치어와 함께 북상했다. 그런데 이런 명태의 ‘산란성 회유’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고성군의 명태 어획량은 1990년대 들어 줄기 시작했다. 1980년대 연간 2만t에 육박했던 어획량이 1990년대에는 5천t 아래로 떨어졌다. 2000년대 들어선 세 자릿수로 떨어지더니, 아예 씨가 마르기 시작했다. 2003년 336t을 올린 뒤 2004년엔 72t, 그리고 지난해에는 17t의 초라한 어획고를 올렸다. 20년 전인 1985년 어획고 1만4533t의 0.001%에 해당하는 양으로 준 것이다.
박평원(51) 대진 어촌계장은 “더 이상 어민들이 명태를 잡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관령과 진부, 용대리에서 덕장에 걸어 말리는 황태도 모두 러시아에서 잡아온 것이라고 했다. 이제 어민들은 명태 조업 기간인 10월에서 이듬해 3월까지도 명태잡이용 그물과 주낙을 가지고 나가지 않는다. 보통 잡어를 잡다가 우연히 명태가 걸려들었을 경우 한 번 명태 그물이나 주낙을 가지고 나가보는 정도다. 김용복 고성군수협 조합장은 “2001년 명태잡이 어선 30여 척을 감척했다”고 말했다. 일부 선장과 선원들은 바다 일을 그만뒀고, 아예 고성을 떠난 사람도 있다고 했다.
“바닷물 만져보면 미지근해”
명태는 왜 돌아오지 않을까. 박평원 어촌계장도 이태홍씨도 바닷물이 따뜻해졌다고 입을 모았다. “바닷물을 만져보면 미지근한 게 느껴져. 바다에서 건져올린 그물추를 만지면 손이 떨어질 정도로 찼는데 말이야.”
동해안의 이상 현상은 명태에 그치지 않았다. 올해 8~9월 한참 오징어를 잡아야 할 어민들은 지금 헛물을 켜고 있다. 오징어가 사라진 것이다. 원래 오징어는 울릉도를 거쳐 북한 해역까지 북상했다가 이때쯤 고성 앞바다로 내려와야 한다. 조한기 고성군수협 지도총무과장은 “지금 바닷물은 명태가 살기에는 너무 따뜻하고, 오징어가 살기에는 너무 차갑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고성 배 32척은 충남 서산과 보령 등 ‘오징어 특산지’로 새롭게 떠오른 서해안으로 원정 조업을 나갔다. 김용복 조합장은 “가는 데 걸리는 시간만 36시간, 기름 값만 360만원이어도, 고성에 남아 노느니 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동해안의 온도 상승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특히 서울대 해양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다. 1985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해양대기관리처(NOAA)의 인공위성 자료를 분석했더니, 동해의 연평균 수온이 17년 동안 1.5℃ 높아진 것이다. 이는 매년 0.087℃씩 오른 셈으로 전세계 바닷물 평균 수온이 매년 0.014℃ 오른 것에 비해 6배나 되는 상승폭이다. 전문가들은 물고기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수온 1℃ 오른 것이 내륙에서 온도 10℃ 오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만큼 생태계에 충격이 크다는 것이다.
동해안의 온도가 높아지는 이유는 북한한류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북한한류는 북극권에서 가까운 오호츠크해에서 발원해 연해주를 따라 동해안으로 남하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라 약해진 시베리아 고기압은 북극권의 해빙 생성을 가로막고 빙산의 소멸을 재촉한다. 이러니 북한한류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쿠로시오 난류에서 뻗어나온 동한난류는 동해 북부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북한한류를 타고 오는 명태가 남하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반도 연근해 5곳에서 어종을 주기적으로 관찰하고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명정구 박사의 말이다. “난류성 어종이 북쪽으로 치고 올라가고 있어요. 난류성 어종과 한류성 어종을 구분하는 북방 한계선이 자꾸 북상하고 있는 거죠.”
명 박사의 최근 조사 결과, 동해 독도에는 제주도 남부 해역에서나 볼 수 있는 자리돔, 줄도화돔이 대형 군집을 이루고 있었으며, 경북 후포 앞바다의 왕돌초에는 남해안에 주로 분포하는 감태 사이로 자리돔과 황놀래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명 박사는 “아열대 어종이 한반도 근해에 많아지기 시작했다”며 “얼마 안 있어서 참치를 한반도 근해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엔 북한이 중국 어선에 조업 허가
동해의 어민들은 최근 몇 년의 갑작스런 변화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어민들은 지구온난화에도 영향이 있지만, 쌍끌이 어선 등 남획에 의한 결과라고도 말한다. 대형 수산회사들이 오호츠크해와 베링해에서 닥치는 대로 명태를 잡아 산란성 회귀 명태의 절대량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북한이 중국의 대형 어선에 강원도 북부 장전 앞바다의 조업을 허가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어쨌든 동해 어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은 지난 시기 자연과의 ‘윈윈 게임’에 실패한 인간의 탓으로 보인다. 지구온난화든 대량 남획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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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화탄소, 누구의 죄인가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권원태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장은 “지구온난화는 지구적인 문제이면서 지역적인 문제”라고 말한다. 대표적인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의 소멸 주기는 100년. 쉽게 말해 한번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오랫동안 지구에 고루 퍼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동해나 미국 알래스카에서 측정한 이산화탄소 농도 수치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른 말로 하자면, 지난 세기 동안 이산화탄소를 대량 배출했던 선진 산업국가의 죗값을 아무 잘못 없는 저개발 국가도 나눠 치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권 실장은 “지구온난화가 현실화된 이상 지역적인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측정된 이산화탄소 농도는 급증하고 있다. 기상연구소 기후연구실이 펴낸 ‘한반도 기후 100년 변화와 미래 전망’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제주도에서 이산화탄소 농도가 1991년 357ppm을 기록한 뒤 2000년 373.6ppm까지 지속적으로 늘었다. 1904년과 2000년까지의 기온을 보면,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1.5℃ 상승했다.
기온 상승은 계절 변화와 집중 호우를 일으킨다. 1990년대의 겨울(일 평균기온 5℃ 이하)은 1920년대에 비해 한 달 정도 짧아졌다. 14개 측정 지점을 조사한 결과 연평균 호우(하루 80mm 이상) 발생 빈도는 1954~63년 연평균 1.6일인 데 비해 1994~2003년은 2.3일로 증가했다. 강수량은 늘어났지만 강우일은 줄어들었다. 가뭄과 집중호우가 동시에 늘어났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온실가스 증가량을 토대로 기후 변화를 예측하면 어떻게 될까. 기상연구소가 기후변화예측모델(A2)에 따른 시나리오를 내본 결과, 2100년에 지구 기온은 4.6℃ 상승하고, 동아시아는 이보다 높은 6.5℃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지구 강수량은 4.4% 증가하고, 동아시아에서는 10.5%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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